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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설날을 맞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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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원단(元旦), 세수(歲首), 정초(正初)라고도 부른다. 원래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 ’사간다’에서 온 말로 조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또 ’섧다’에서 온 걸로 보아 ’슬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따라서 설이란 그저 기쁜 날이라기보다 한 해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모든 일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로 여겨왔다. 그래서 설날을 신일(삼가는 날)이라고 해서 이날에는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집안에서 지내면서 일년동안 아무 탈없이 지낼 수 있게 해주기를 신에게 빌어왔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새해 아침에 입는 새 옷인 ”설빔”을 입고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절을 드리는 ”차례”를 지낸다. 그런 다음 나이가 많은 어른들께부터 새해 인사인 ”세배”를 한다. 세배를 할 때에는 새해 첫날을 맞아서 서로의 행복을 빌고 축복해 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이렇듯 새해 첫날인 설날은 하루종일 복을 빌고 좋은 말을 많이 해 왔다.
조선시대의 의정대신들은 모두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과 표리(거친 무명 또는 흰 명주)를 바치고 정전(왕이 임어하여 조회를 하는 궁전)의 뜰로 나가 조하(조정에 나아가 임금께 하례함)를 올렸다. 이 날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차례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이라고하며 어른들을 찾아 뵙는 일을 세배라고 한다. 이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떡국)이라고 하며, 또한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초백주, 도소주)라 한다. 한편 사돈집 사이에는 부인들이 근친 하는 뜻으로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리기도 했다.
민가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남녀의 나이가 삼재(災)인 자는 세 마리의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인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청참이라고 했다. 또한 오행점이라 하여 나무에 금, 목, 수, 화, 토를 새겨 장기 쪽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자빠지고 엎어진 것을 보아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치기도 했다.
 차례의 의미
차례는 설, 추석, 단오, 동지 등의 아침에 지내는 약식 제사를 말하는데, 보통 4대조까지를 동시에 지낸다. 요즘에는 단오나 동지에 대부분 차례를 지내지 않으므로, 차례는 설과 추석에만 지내게 되었다.
가례를 비롯한 예법서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차례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관습적으로 명절날 살아있는 후손들만 즐기기에 송구스러워 돌아가신 조상님께도 차례라 하여 제사를 올린 것이다.
가례에서 말하는 차례란 ’차(茶)를 올리는 예(禮)’로,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 정월 초하루, 동지, 매월 초하루와 보름, 각종 명절에 제사가 있었고, 이들 중에서 매월 보름에는 술잔을 드리지 않고 차(茶)를 올리던 것을 말한다.
 올바른 세배법
설날 차례를 마치고 나면 가족들은 그 집안의 어른들에게 절을 하고 새해의 첫인사를 드리게 되는데, 이를 세배라 한다. 서양식 인사법에 익숙해진 지금은 예법에 맞게 절을 하는 것이 까다롭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평소에는 아니더라도 우리 고유의 명절만큼은 예법에 맞게 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남좌여우(男左女右·南東女西)
신위나 인사를 받을 사람이 보아 왼쪽에 남자, 오른쪽에 여자가 선다. 즉 남녀가 나란히 섰을 때, 남자의 왼쪽에 여자가 서는 것이다.
▷ 공수(空手)
절을 하기에 앞서 기본자세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고서는 것, 공수할 때 손의 모습은 위로 가는 손바닥으로 아래 손등을 덮어서 포개 잡는데 두 엄지가 깍지끼듯이 교차하는 것이다. 이를 차수(叉手)라고도 한다.
▷ 남자의 큰절 - 계수배(稽首拜)
공수하고 대상을 향해 선 다음, 공수한 손을 눈 높이까지 가볍게 들어올린다. 허리를 굽혀 공수한 손을 바닥에 짚고, 왼쪽 무름을 먼저 굻은 후 오른쪽 무릎과 가지런히 꿇는다. 왼발이 아래가 되게 발등을 포개 뒤꿈치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려 깊이 앉은 다음,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며 이마를 공수한 손등에 댄다.
잠시 머물러 있다가 머리를 들며 팔꿈치를 바닥에서 떼고, 오른쪽 무릎을 먼저 세운다. 공수한 손을 바닥에서 떼어 세운 오른쪽 무릎 위에 얹히고, 오른쪽 무릎에 힘을 주며 일어나서 왼쪽 발을 오른쪽 발과 가지런히 모으며 다시 공수자세를 취한다.
▷ 여자의 평절 - 평배(平拜)
공수한 손을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내린다. 오늘날은 한쪽 무릎을 세우며 손으로 바닥을 짚고 머리를 숙이는데, 손가락은 가지런히 붙여 모아서 손끝이 밖(양 옆)을 향하게 무릎과 가지런히 바닥에 댄다. 윗몸을 약 45°쯤 앞으로 굽히고 잠시 머물러 있다가 윗몸을 일으키며 두 손바닥을 바닥에서 뗀다. 일어나면서 왼발을 오른발과 가지런히 모은 다음 공수하고 원위치를 취하면 된다.
 세뱃돈
설날 웃어른께 인사를 하고 답례로 받는 세뱃돈 풍습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고루 찾아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달리 봉투에 돈을 넣어준다. 새해 첫날 세뱃돈을 주는 관행은 중국에서 시작돼 점차 우리 나라와 일본, 베트남 등으로 퍼져나갔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설이 되면 결혼하지 않은 자식에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붉은 색 봉투에 약간의 돈을 넣어주었다. 붉은 색을 행운의 색으로 생각한 중국인들은 새해 첫 출발에 대단한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다.
체면을 중시한 조선시대 사람들은 돈 대신 세배하러 온 아이들에게 떡이나 과일 등을 내주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돈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베트남에서도 이 같은 풍습이 전해져 빨간 봉투에 새 돈으로 소액의 지폐를 넣어주는 ’리시’라는 관습이 행해진다. 세뱃돈에 해당하지만 세배는 받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부모가 자녀에게 세뱃돈을 주는 풍습은 에도 시대에 있었지만 도시에만 국한됐었다. 현재와 같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은 고도경제 성장기인 60년대 이후부터라고 한다.
최근 들어 우리 나라에서도 세뱃돈의 단위가 점점 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이 권하는 적정규모는 필요한 학용품을 살 수 있을 정도, 세뱃돈은 어린이들에게 만만치 않게 큰돈인 경우가 많지만 부모가 관리하기보다는 자녀가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이의 명의로 저금통장을 만들어 주고 직접 관리하도록 지도하는 것도 좋다.
 한복 바로 입기
여자의 경우, 한복을 입을 때 속바지와 속치마(혹은 페티코트)를 반드시 갖춰 입어야 하며, 이 때 속치마 길이가 치마보다 5Cm가량 짧은 것을 골라 치마 바깥으로 삐쳐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한복에 스타킹이나 색깔 있는 양말, 모피코트 등은 매우 어울리지 않으며, 되도록 버선과 고무신(혹은 고무신형 구두), 두루마기를 입는 게 좋다.
남자의 경우는 바지 입기가 어려운데 우선 큰사폭이 오른쪽으로 오도록 입은 뒤 허리에서 남은 부분을 앞 중심선에서 잡아 오른쪽으로 여민다. 아래쪽 바지통 여분은 바깥 발목뼈에 닿도록 돌린 뒤 대님을 둘러 안쪽 복사뼈 위에 묶는다. 저고리를 입을 땐 내의가 목선 사이로 삐죽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남성은 외출시 두루마기를 입는게 필수, 따라서 마고자 위에 목도리 차림만으로 밖을 나서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한복을 입을 때 화장은 너무 진하지 않게 하는 것이 포인트, 피부색은 깨끗하게 표현해주고, 동정 선이 드러나는 목 부위에도 페이스 파우더를 발라 경계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한다. 눈썹은 자연스러운 아치형으로 각이 지지 않게 그려주고, 입술과 전체적인 메이크업은 한복 색과 조화를 이루는 색으로 마무리한다. 아이새도우는 강조하지 말고, 입술에만 포인트를 주는 것이 좋다. 액세서리는 노리개나 우아한 진주 귀걸이 정도가 무난하며 목걸이는 금물이다.
 설교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이다. 이번 설날에도 뉴스에서는 시간 시간마다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대행렬을 보도할 것이다. 모천회귀라는 말이 있다. 연어는 알을 날 때나 죽을 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에 한국인들은 고향을 찾아간다. 고향을 찾는 한국인의 귀소본능은 가히 본능이라 할만큼 유난히 극렬하다.
교통체증과 불편함을 이끌고서도 고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조상들의 묘소를 찾는 모습이 있고, 둘째는 생존에 계시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찾아 뵙는 효심 어린 모습이 있고, 셋째는 산업사회에 찌들린 현대인의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태고적 고향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 즉, 죽마고우라고 하는 친구들과 흙을 찾아가는 모습이 있다. 넷째는 타향에서 꿈을 이루고 금의환향하는 모습도 있고, 다섯 번째로 가지 못하는 땅을 바라보며 임진각에서 자신의 땅을 바라보는 슬픈 모습도 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소명기사와 스데반의 순교 전 설교에서 조상들의 여호와 하나님 ’아브라함의 여호와 하나님, 이삭의 여호와 하나님, 야곱의 여호와 하나님, 요셉의 여호와 하나님 …. ’ 그리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야기와 출애굽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의한다.
우리는 고향을 찾는 섣달 그믐날의 분주한 발걸음을 통해서 사람은 고향을 찾는 본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음을 안다. 육신의 몸뚱이가 탄생한 산천의 고향을 넘어서 우리 생명의 영원한 본향을 인간은 그리워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와 오늘 우리들의 삶과는 무슨 관계와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모세나 스데반의 조상 이야기에는 우리들이 고향을 찾는 것과는 다른 하나의 이유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여호와 하나님, 이삭의 여호와 하나님, 야곱의 여호와 하나님, 요셉의 여호와 하나님 …. ’이라는 말속에는 핏줄을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구원의 사건에 대한 자손 대대의 고백이 담겨있는 것이다.
설날을 맞으면서 우리는 몇 가지 자각하고 믿음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 첫째는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단순히 혈육의 고향산천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믿음의 본향 영생의 나라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자각함이요. 둘째는 우리 조상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애씀 그들의 고난과 시련을 은혜의 고백으로 감사해야 한다. 셋째는 부모형제가 하나되고 화목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축복의 날임을 알아야 한다.
고향은 육으로만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신으로도 찾아야 하고, 또한 더욱 중요하게 영으로도 찾아야한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어디로 돌아갔단 말인가 반드시 온 곳이 있어야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 영혼의 고향,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세배를 드리는 정성을 제의하고 싶다. 그래서 모세와 스데반과 많은 믿음의 선조들의 공통된 고백인 ’아브라함의 여호와 하나님, 이삭의 여호와 하나님, 야곱의 여호와 하나님, 요셉의 여호와 하나님 .... ’이라는 고백 끝에 ”나의 여호와 하나님” 이라는 고백이 될 수 있어야겠다.
고향을 찾는 마음은 근원을 찾는 마음이며 나의 뿌리를 찾는 마음이다. 불의 근원은 어디인가 하늘 높은 곳 태양이 있기에 불은 항상 태양을 향해 솟구치는 것이다. 물의 근원은 어디인가 저 바다에 있기에 물은 항상 낮은 바다로 향해 내려가는 것이다. 나무의 생명의 근원은 뿌리에 있다. 뿌리가 향하는 곳에 생명이 깃든다. 고향을 찾는 마음이 귀소본능이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존재의 가치로 의미를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새로움이란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을 일으키시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그 사건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성서는 그 사건을 구원의 역사 곧 구원사라 한다.
해가 바뀌고 달력이 새로 바뀌는 것 그 자체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는 것 천체운행의 또 한번의 시작을 말하는 것일 뿐 거기엔 아무런 새로운 뜻이 없다. 사계절의 변화가 수 천만 번 있더라도 거기엔 역사적 의미와 뜻이 없는 것이다.
역사와 조상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의 핏줄을 확인하려는 인간적 동기가 아니라 그들을 불러서 약속의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경륜을 증언하기 위함이다. 과거의 사실들을 오늘 현재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살아나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과거를 이어 온 조상들의 얼을 찾는 고향 찾는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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