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거룩한 삶과 효도
본문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습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 선생이 쓴 ‘여지승람(輿地勝覽)’이란 문헌에 설날이 ‘달도일’로 표기되었는데, ’달’은 슬프고 애달파 한다는 뜻이요,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추위와 가난 속에서 맞는 명절이라서 서러운지, 차례(茶禮)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여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합니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입니다.
이러한 설날은 원일(元日) · 원단(元旦) · 정조(正朝) · 세수(歲首), 세초(歲初) · 세시(歲時)· 연두(年 頭) · 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립니다. 이와 같은 설은 우리 고유의 명절로서 지켜졌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만 고향을 찾고 부모님과 친척, 이웃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새해 첫인사를 드리는 날로서 지켜집니다. 이런 의미를 가진 설날을 생각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 즉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오늘 주신 말씀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가운데 “너희는 거룩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회중들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해서 우리와 상관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로서 오늘 성도들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오세원 목사에게 말씀하시되 오목사 너는 대구칠곡교회의 온 교인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대구칠곡교회 교인인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거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카도쉬’로서 ‘구별되다’ ‘분리하다’란 뜻입니다. 모든 죄악된 것과 부정한 것으로부터 구별되어 분리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 속성상 거룩하신 분으로 죄악 된 모든 것과는 본질적으로 분리된 절대 순결하신 분입니다. 출애굽기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사무엘상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어떤 신보다도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약 백성도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와 부정으로부터 분리되어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은 정결법을 제정하셨고, 정결법 준수를 통해 외적 정결상태에서 내적이고 영적인 정결의 상태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거룩이란 단어가 신구약 통틀어서 447구절에나 사용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사용된 곳은 창세기2:3에 육일동안 창조하신 후 안식일을 허락하실 때 말씀하신 내용에 사용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 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이것이 주일성수해야 할 이유입니다. 다른 날과 구별된 안식일도 중요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도 다른 물건과는 구별된다고 해서 거룩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출애굽기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장소도 일반 장소와 구별되기 때문에 거룩이라 표현했습니다. 여호수아5장15절에 보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22장31절에 보면 우리를 향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사람은 먹는 것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동물의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질지니라” 세상 사람들은 아무 것이나 다 먹는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목지 말라고 한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러주신 말씀을 보면 거룩한 모습, 즉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아야 할 내용을 크게 세 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고, 둘째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고, 세 번째가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나름대로 잘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바쁜 명절 속에서 예배당에 나오셔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불신 가족은 집에 있거나 친척을 찾아다니고 있거나, 이웃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극장을 찾거나 놀이공원을 찾거나 젊은 아이들은 게임방에 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주일이기 때문에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이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일의 거룩함을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20장11절 후반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을 다른 날 보다 구별했다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복된 날입니다. 우리는 안식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특별히 예배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나름대로 이 부분은 잘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의 날을 거룩히 지키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아침에 가족들이 예배를 드렸거나 아니면 예배를 마치고 가서 가정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세시 풍습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차례를 지내는 것입니다. 즉 제사지내는 일입니다. 온 백성들이 제사를 지내지만 그것을 지내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불신자들이 행하는 제사를 지낸다면 거룩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거룩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즉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즉 거룩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첫 번째로 거룩함의 행위 중에 부모를 공경하는 부분에서 거룩함이 나타나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부분에서 불신자들과 구별됩니까 구별된 효도가 행해지고 있습니까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부분들도 우리가 우상을 섬기지 않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처럼 차별성이 있는 효도가 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불신자들의 효와도 구별될 정도의 효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명절을 정해놓고 효도하는 날로 지키고 있는 거기에 우리도 따라가고 있는 정도입니다. 우리도 역시 지금까지는 세상 사람들의 효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버이날도 세상 사람들이 함께 지키는 효의 날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하게 부모에 효도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구별되게 잘 할 것을 명령해 놓았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10계명 가운데 보면 제5계명이 부모공경에 관한 계명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5계명은 인간과 관계되는 계명 중에는 으뜸계명입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잘 지키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이 주어집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입니다. 출애굽기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심지어 부모 같은 어른들을 공경하라고 하신 말씀이 레위기19:32 입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노인들을 공경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인은 마치 부모와 같은 분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말씀 가운데도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명기5:16 “너는 네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예수님도 부모를 공경하는 데 상당한 비중을 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5:4-6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전통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드리고 나면 부모에게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인간의 전통을 지킨다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6:2-3에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당수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공경에 특별히 거룩해야 합니다. 다른 모든 삶에서도 거룩해야 하지만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너희는 거룩하라”고 하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 고 하셨습니다. 사실 경외라는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께 주로 사용하고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경외라는 단어도 무려 170구절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 대부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경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부모를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경외’라는 단어는 원어로 보면 ‘야레’입니다. ‘야레’라는 단어는 여호와께만 사용하는 단어로써 두려움을 가지고 존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를 경외하라고 하는 것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특히 늙은 부모를 홀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가장 먼저 드러내어야 할 곳은 가정이며, 가장 먼저 드러내어야 할 사람은 부모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인 성도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신앙의 의무를 핑계로 부모를 등한시 하는 일은 없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일과 성도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서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진정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야말로 이 땅에서 성도의 가장 근본 되는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친애하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을 친애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세상에서 신자와 불신자를 가장 큰 차별성을 갖게 해야 할 것이 효도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보세요. 공자가 가르친 유교에서의 교훈에도 보면 “효도는 덕의 근본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모공경을 거룩함으로 드러내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교육 지침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랍비가 질문을 합니다. “자녀가 마땅히 부모에 대하여 가져야 할 공경이란 어떠한 것이뇨” 그러면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합니다.
“그것은 곧 부모님의 뜻을 거스리거나 부모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요, 또한 부모님의 말씀에 반박하거나 그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도 아니며, 살아계실 때는 물론이요 돌아가셨을 때도 부모님의 존함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아니하고 대신 ‘제 부친, 제 모친’ 혹은 ‘어르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또한 물질적으로 성심껏 보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혹시 부모님을 찾지 못했거나 찾을 계획조차도 없는 분 계십니까 계획이 없었더라도 다시 계획을 세우십시오. 찾으십시오. 물질이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얼굴을 보기만 해도 됩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분들은 집안 어른들, 지금까지 소홀히 했던 집안 어른들을 찾아보십시오. 당신이 예수 믿는다고 싫어하신 분들일 수록 더욱 찾으십시오. 다른 집안 식구들조차도 잘 찾아보지 않는 집안 어른이 계신다면 그런 어른을 우선적으로 찾아가십시오. 그것이 거룩의 모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다른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확실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엡6:1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함부로 거역해서는 안됩니다. 세대차이의 말이라고, 생각이라고 무시해버리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잠언23:25에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내게 물려준 재산이 없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하실 수 없는 분이라도 나를 낳아준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태어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라도 부모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룻기1:16-17에 보면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고백한 내용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리니 /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보세요. 시어머니 나오미에게는 재산도 없습니다.
집도 없습니다.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반겨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따라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룻이 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효도였습니다. 오늘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으면 모시지도 않습니다. 아니 재산이 있어도 그 재산만 탐내지 부모님을 모시려고 하지 않는 세상 풍속도라고 하면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재물이 없더라도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외에도 여러분이 효도하는 방법을 강구하십시오. 찾아가지 못한 분들은 편지를 쓰든지, 전화 걸든지,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 드리십시오. 돈을 좋아하시면 돈을 드리십시오. 얼굴을 보기를 원하시면 얼굴을 보여드리십시오. 그리고 혹시라도 부모님의 가슴에 박힌 못이 있다면 그것을 빼어드리세요. 가슴에 못박아 놓고 다른 것을 아무리 잘 해드려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원주에 있는 가나안농군학교에 가면 효도십계명이 있습니다.
1. 신앙을 갖도록 해드린다.
2.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 드린다.
3.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4. 궁금증을 풀어드린다.
5.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용돈을 드린다.
6. 향토적인 음식을 해드린다.
7.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린다.
8. 일거리를 찾아 드린다.
9.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 드린다.
10. 등을 긁어 드리고, 손발톱을 깍아 드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신앙을 가진 자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잘하지 못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성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들이 있음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욕을 얻어먹거나 집안 식구들 가운데 불신자들로부터 믿음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니는 성도 한분이 상담을 했는데 제일 속상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목사님의 딸이 맏며느리인데도 혼자 사시는 시어님을 모시고 가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자기도 믿지만 자기는 이 집안에 들어와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신앙에 회의가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한 가지 사실만으로, 내가 남편을 만났고 아내를 만난 사실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분명히 구별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함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 선생이 쓴 ‘여지승람(輿地勝覽)’이란 문헌에 설날이 ‘달도일’로 표기되었는데, ’달’은 슬프고 애달파 한다는 뜻이요,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추위와 가난 속에서 맞는 명절이라서 서러운지, 차례(茶禮)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여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합니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입니다.
이러한 설날은 원일(元日) · 원단(元旦) · 정조(正朝) · 세수(歲首), 세초(歲初) · 세시(歲時)· 연두(年 頭) · 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립니다. 이와 같은 설은 우리 고유의 명절로서 지켜졌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만 고향을 찾고 부모님과 친척, 이웃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새해 첫인사를 드리는 날로서 지켜집니다. 이런 의미를 가진 설날을 생각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 즉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오늘 주신 말씀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가운데 “너희는 거룩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회중들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해서 우리와 상관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로서 오늘 성도들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오세원 목사에게 말씀하시되 오목사 너는 대구칠곡교회의 온 교인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대구칠곡교회 교인인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거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카도쉬’로서 ‘구별되다’ ‘분리하다’란 뜻입니다. 모든 죄악된 것과 부정한 것으로부터 구별되어 분리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 속성상 거룩하신 분으로 죄악 된 모든 것과는 본질적으로 분리된 절대 순결하신 분입니다. 출애굽기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사무엘상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어떤 신보다도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약 백성도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와 부정으로부터 분리되어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은 정결법을 제정하셨고, 정결법 준수를 통해 외적 정결상태에서 내적이고 영적인 정결의 상태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거룩이란 단어가 신구약 통틀어서 447구절에나 사용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사용된 곳은 창세기2:3에 육일동안 창조하신 후 안식일을 허락하실 때 말씀하신 내용에 사용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 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이것이 주일성수해야 할 이유입니다. 다른 날과 구별된 안식일도 중요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도 다른 물건과는 구별된다고 해서 거룩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출애굽기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장소도 일반 장소와 구별되기 때문에 거룩이라 표현했습니다. 여호수아5장15절에 보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22장31절에 보면 우리를 향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사람은 먹는 것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동물의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질지니라” 세상 사람들은 아무 것이나 다 먹는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목지 말라고 한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러주신 말씀을 보면 거룩한 모습, 즉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아야 할 내용을 크게 세 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고, 둘째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고, 세 번째가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나름대로 잘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바쁜 명절 속에서 예배당에 나오셔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불신 가족은 집에 있거나 친척을 찾아다니고 있거나, 이웃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극장을 찾거나 놀이공원을 찾거나 젊은 아이들은 게임방에 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주일이기 때문에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이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일의 거룩함을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20장11절 후반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을 다른 날 보다 구별했다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복된 날입니다. 우리는 안식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특별히 예배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나름대로 이 부분은 잘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의 날을 거룩히 지키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아침에 가족들이 예배를 드렸거나 아니면 예배를 마치고 가서 가정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세시 풍습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차례를 지내는 것입니다. 즉 제사지내는 일입니다. 온 백성들이 제사를 지내지만 그것을 지내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불신자들이 행하는 제사를 지낸다면 거룩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거룩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즉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즉 거룩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첫 번째로 거룩함의 행위 중에 부모를 공경하는 부분에서 거룩함이 나타나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부분에서 불신자들과 구별됩니까 구별된 효도가 행해지고 있습니까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부분들도 우리가 우상을 섬기지 않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처럼 차별성이 있는 효도가 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불신자들의 효와도 구별될 정도의 효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명절을 정해놓고 효도하는 날로 지키고 있는 거기에 우리도 따라가고 있는 정도입니다. 우리도 역시 지금까지는 세상 사람들의 효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버이날도 세상 사람들이 함께 지키는 효의 날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하게 부모에 효도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구별되게 잘 할 것을 명령해 놓았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10계명 가운데 보면 제5계명이 부모공경에 관한 계명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5계명은 인간과 관계되는 계명 중에는 으뜸계명입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잘 지키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이 주어집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입니다. 출애굽기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심지어 부모 같은 어른들을 공경하라고 하신 말씀이 레위기19:32 입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노인들을 공경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인은 마치 부모와 같은 분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말씀 가운데도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명기5:16 “너는 네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예수님도 부모를 공경하는 데 상당한 비중을 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5:4-6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전통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드리고 나면 부모에게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인간의 전통을 지킨다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6:2-3에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당수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공경에 특별히 거룩해야 합니다. 다른 모든 삶에서도 거룩해야 하지만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너희는 거룩하라”고 하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 고 하셨습니다. 사실 경외라는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께 주로 사용하고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경외라는 단어도 무려 170구절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 대부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경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부모를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경외’라는 단어는 원어로 보면 ‘야레’입니다. ‘야레’라는 단어는 여호와께만 사용하는 단어로써 두려움을 가지고 존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를 경외하라고 하는 것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특히 늙은 부모를 홀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가장 먼저 드러내어야 할 곳은 가정이며, 가장 먼저 드러내어야 할 사람은 부모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인 성도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신앙의 의무를 핑계로 부모를 등한시 하는 일은 없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일과 성도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서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진정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야말로 이 땅에서 성도의 가장 근본 되는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친애하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을 친애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세상에서 신자와 불신자를 가장 큰 차별성을 갖게 해야 할 것이 효도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보세요. 공자가 가르친 유교에서의 교훈에도 보면 “효도는 덕의 근본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모공경을 거룩함으로 드러내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교육 지침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랍비가 질문을 합니다. “자녀가 마땅히 부모에 대하여 가져야 할 공경이란 어떠한 것이뇨” 그러면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합니다.
“그것은 곧 부모님의 뜻을 거스리거나 부모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요, 또한 부모님의 말씀에 반박하거나 그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도 아니며, 살아계실 때는 물론이요 돌아가셨을 때도 부모님의 존함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아니하고 대신 ‘제 부친, 제 모친’ 혹은 ‘어르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또한 물질적으로 성심껏 보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혹시 부모님을 찾지 못했거나 찾을 계획조차도 없는 분 계십니까 계획이 없었더라도 다시 계획을 세우십시오. 찾으십시오. 물질이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얼굴을 보기만 해도 됩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분들은 집안 어른들, 지금까지 소홀히 했던 집안 어른들을 찾아보십시오. 당신이 예수 믿는다고 싫어하신 분들일 수록 더욱 찾으십시오. 다른 집안 식구들조차도 잘 찾아보지 않는 집안 어른이 계신다면 그런 어른을 우선적으로 찾아가십시오. 그것이 거룩의 모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다른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확실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엡6:1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함부로 거역해서는 안됩니다. 세대차이의 말이라고, 생각이라고 무시해버리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잠언23:25에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내게 물려준 재산이 없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하실 수 없는 분이라도 나를 낳아준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태어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라도 부모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룻기1:16-17에 보면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고백한 내용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리니 /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보세요. 시어머니 나오미에게는 재산도 없습니다.
집도 없습니다.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반겨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따라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룻이 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효도였습니다. 오늘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으면 모시지도 않습니다. 아니 재산이 있어도 그 재산만 탐내지 부모님을 모시려고 하지 않는 세상 풍속도라고 하면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재물이 없더라도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외에도 여러분이 효도하는 방법을 강구하십시오. 찾아가지 못한 분들은 편지를 쓰든지, 전화 걸든지,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 드리십시오. 돈을 좋아하시면 돈을 드리십시오. 얼굴을 보기를 원하시면 얼굴을 보여드리십시오. 그리고 혹시라도 부모님의 가슴에 박힌 못이 있다면 그것을 빼어드리세요. 가슴에 못박아 놓고 다른 것을 아무리 잘 해드려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원주에 있는 가나안농군학교에 가면 효도십계명이 있습니다.
1. 신앙을 갖도록 해드린다.
2.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 드린다.
3.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4. 궁금증을 풀어드린다.
5.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용돈을 드린다.
6. 향토적인 음식을 해드린다.
7.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린다.
8. 일거리를 찾아 드린다.
9.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 드린다.
10. 등을 긁어 드리고, 손발톱을 깍아 드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신앙을 가진 자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잘하지 못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성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들이 있음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욕을 얻어먹거나 집안 식구들 가운데 불신자들로부터 믿음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니는 성도 한분이 상담을 했는데 제일 속상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목사님의 딸이 맏며느리인데도 혼자 사시는 시어님을 모시고 가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자기도 믿지만 자기는 이 집안에 들어와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신앙에 회의가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한 가지 사실만으로, 내가 남편을 만났고 아내를 만난 사실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분명히 구별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함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