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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삼위일체의 바른 이해

본문

성령론에 관한 두 가지의 입장이 있다. 하나는 체험과 은사 위주의 성령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지성주의라고 하는 이론적 성령주의다. 그러나 이 둘 중 혼자로서는 불완전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체험과 은사 위주의 성령 운동에 대한 반발이 생겨난 이유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과 열매가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발심으로 이론적 성령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성경을 통해 잘 조화시켜야 한다.
 성령론에 관해 제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삼위일체론이다. 성격에서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이 내용은 대단히 중요하고 또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이 이단으로 빠지기도 하고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않으면 성령님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분까지만 우리가 살펴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삼위일체론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몇 분이신가 하는 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몇 분이신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그러면 이미 두 분이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말을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개념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하려는 부분을 놓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말은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말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숫자적으로 하나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늘나라에는 누가 계셨는가 숫자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성경의 내용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십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명령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무이한 여호와 하나님 이라는 뜻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신 우일신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개념이 아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신이지 단일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숫자적으로 한 분이라면 예수님과 성령님의 위치가 애매하게 된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하다. 즉 예수님이 중보자의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숫자적으로 하나라고 하면 그리스도의 위치가 애매하게 된다. 결국 예수님과 성령님을 동일하게 여기지 않게 됨으로 삼위일체를 부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을 인간으로 격하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숫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과 성령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이단이다. 이것을 단일신론이라고 한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단일신론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유일신으로 생각하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한국 신자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순진하고 맹목적이라는 점이다. 순진한 것이 무식한 것과 손을 잡으면 위험이 따른다. 아는 것이 적기 때문에 신앙이 자라지를 못하고 있다. 특별히 성령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순진하게 그리고 조금은 무식하게 믿는다. 다시 말하며 바른 성령의 이해 없이 무조건 뛰어든다는 점이다. 조금 성령 체험하면 그게 전부 인냥 돌아다니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비성경적인 성령운동을 소개하고 그 결과로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성도들이 너무 순진하기 때문이고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숫자적으로 한 분이 아니라는 것은 성경 여러 군데에서 나온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 구절이다. 다시 읽어보자! 결코 동일인이 아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때 또는 표현할 때 가장 바른 명칭은 여호와 하나님은 “3 인격체” 또는 “구별된 3 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호칭할 때 “세 여호와 하나님들” 또는 “ 삼 신” 이라고 부르지 않고 “삼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이 하나이면서 셋도 될 수 있다는 숫자적 신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자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많은 이단들이 나왔다. 그래서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숫자적으로 한 분이 아니라 “3 인격체(3 위)”라는 공식적인 신조를 택하게 되었다. 이것이 최초의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지은 찬송가가 9장의 거룩 거룩 거룩 이다. 이 찬송은 3 위 여호와 하나님이 각각 구별되는 인격체이심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하나”라는 개념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살펴보자! 요10:30을 보라! 여기서 예수님이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다면 “너희가 믿든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나다. ”라고 했어야 한다. 그런데 주님은 “나와 아버지”라는 말을 한다. 이건 3 위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영광과 존귀와 능력과 거룩과 의와 모든 신의 속성이 똑 같다는 뜻이다. 즉 본질과 속성에 있어서는 같다는 말이다. 다른 구절을 볼까요 빌2:6-7이다. 여기에서 “본체“ 또는 ”형체“라는 말은 같은 표현이다. 이것은 외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과 속성을 말한다. 즉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여호와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는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숫자적으로 한분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단일신론으로 나타나는데 이 단일신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양자론과 양태론이다. 양자론은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과 성령님을 보내셨기 때문에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같은 분이 될 수 없다는 이론이다. 그들의 주장은 “성자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원래 인간이었는데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영으로 인간 중에 독특하게 불러내어서 아들을 삼으신 자로서 인간이되 인간을 초월한 자”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자 여호와 하나님을 피조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 이신 것과 그가 사람으로 오신 것, 둘 중 하나를 부인하면 적그리스도이고 이단이라고 말한다. 다른 것은 양태론인데 이것은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이 구약에서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으로, 신약에서는 성자 여호와 하나님으로, 현 교회시대에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으로 가면을 바꾸어 쓰고 변신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여자의 위치를 들어 설명한다. 가정에서는 어머니이고 남편에게는 아내이고 부모에게는 딸로서 한 사람이지만 그 역할이 다른 것과 같이 삼위일체도 그렇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앙태론적 설명이다. 또 다른 예는 태양은 하나이지만 거기에는 빛이 있고, 열이 있고, 태양 그 자체가 있는 것처럼 삼위일체가 그와 같다고 말한다. 이럴 때 오해가 되는 것은 성부 여호와 하나님, 성자 여호와 하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3/1씩 3 분되어 모여야 하나의 신이 되고 만다. 이것은 온전하다는 말에 위배 되는 것이다. 3 위 여호와 하나님은 각각 홀로 온전하시고 부족함이 없다는 것에 위배된다. 숫자적으로 하나인 본질을 삼위가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삼위의 본질이 어떻게 차이가 없이 동일하냐 라는 신비를 안고 있는 것이 삼위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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