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을 믿는 자의 복
본문
부활의 사건은 다른 어떤 종교에도 없는 오직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사건입니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자신의 모든 재능을 동원하여 죽음에 도전해 보았고 또 죽음을 부인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생명의 승리를 믿고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 뿐 아니라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까지 믿어야만이 구원 얻는 믿음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교회는 2천년 동안 부활신앙에 기초해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만 해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토요일이 주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면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식일이 변하여 주일로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난 엄청난 사건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찬식이나 세계예식 같은 것도 부활의 주님의 이름으로 전세계 그리스도인이 함께 드리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 특별한 기사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때 도마는 없었습니다. 도마는 나중에 나타나서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며 불신을 나타냈습니다. 그 후 8일 만에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 이것은 특별히 도마를 위해 나타나신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려는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못자국을 만져보고 난 후에 “나의 주시여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리이다. ”라는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보지 아니하고 부활을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새로운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피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믿을 때에 구원에 이르게 되고 온전한 신앙이 되며 그것을 믿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했습니다.
1. 불안한 마음에 평강을 얻게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을 닫고 한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하신 첫마디가 바로 “평강이 있을지어다. ” 즉 “샬롬”입니다. 비록 저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간 적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책망하지 아니하고 “샬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샬롬”이란 말은 ‘평안하다, 풍요롭다, 온전하다. 범사에 잘된다. 건강하다. ’는 뜻이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부활의 새로운 축복을 약속하신 것을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어떤 잘 믿는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그가 예수님과 함께 바닷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예수님과 자기의 발자국이 모래사장에 나란히 나 있었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또다시 보니까, 이제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몹시 불안한 마음으로 “예수님, 왜 발자국이 하나만 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불안해하고 고통을 당할 때에 나는 너를 내 품에 안았지 그리고 내가 너를 안고 갔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불안에 떨고 있을 때에, 고통을 당할 때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고민할 때에 주님은 우리를 번쩍 들어안고 평강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부활을 믿는 자의
첫번째 축복입니다.
2. 두려운 마음이 용기로 바뀌어집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같이 자기들도 로마군인에게 체포되어 죽게 될 것이 아닌가 두려워 떨면서 문을 닫아 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두려워 떨지 말고 성령 안에서 새로운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비록 죽을지언정 주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와 도망쳤던 다른 제자들이 모두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용기를 주시면서 나를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갔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로마군인들은 예수님께서 빈 무덤을 남겨놓고 부활하셨다는 얘기는 제발 하지 말라고 핍박을 했습니다. 유대인의 무덤은 시체를 쉽게 꺼내 볼 수가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갔다면 그 시체를 끌어내 보이면서 여기 예수가 죽어있지 않느냐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핍박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늘 자유주의자들은 잘못된 생각은 우리의 불신을 가져오게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축복입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예수님이 죽음을 극복하시고 부활하셨는데 그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두려움 없이 용기있게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순교자의 정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늘 우리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능력을 주셔서 성령 안에서 죄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불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증거케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용기있게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축복이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3. 의심이 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본문은 도마의 시가로 가득차 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 의심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도마의 태도는 바로 오늘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도마처럼 이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보고도 믿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믿게 하신 것입니다. 도마는 실증주의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실 때에 도마는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거기를 어찌 하겠사옵나이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의심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심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부정적. 파괴적이 되고 맙니다. 부정적인 무신론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막스주의자는 세상에 지상낙원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지상낙원은 커녕 지상지옥을 만들었습니다. 막스주의를 믿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처츰 나타나셨을 때에 그곳에 없었습니다. 기회를 놓친것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불신의 병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오늘 우리는 의심으로 꽉 차 있습니다. 대화를 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꾸 속아넘어갑니다. 정계가 바뀌어도 여전히 불신은 남아있습니다. 이 부정적인 의심과 회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너는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보지 못하고 믿는 자의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패배자를 승자가 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이젠 예수도 패배자로 끝났고 우리도 실패하고 말았다고 모두들 흩어졌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패배자로 만드는 줄 아십니까? 죄가 우리를 패배케 합니다. 죄를 짓는 자가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죄를 이기셨습니다. 불의와 미움과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렇게 불의하고 이렇게 거짓되고 탐심이 많고 황금만능주의적인 세상에 정의가 어디 있고, 선이 어디 있고, 절대적인 가치가 어디 있는가? 우리는 이 앞에서 패배자인 것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고 죄가 승리자가 아니라, 이들을 다 정복하시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는 패배자에게 승자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안한 마음에 평강을 얻게 하고, 두려운 마음이 용기로 바뀌어지고, 의심이 확실한 믿음으로 변하여, 패배를 승리로 변하게 하는 것, 이것의 부활의 증명인 것을 믿으시고,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느니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1. 불안한 마음에 평강을 얻게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을 닫고 한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하신 첫마디가 바로 “평강이 있을지어다. ” 즉 “샬롬”입니다. 비록 저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간 적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책망하지 아니하고 “샬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샬롬”이란 말은 ‘평안하다, 풍요롭다, 온전하다. 범사에 잘된다. 건강하다. ’는 뜻이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부활의 새로운 축복을 약속하신 것을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어떤 잘 믿는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그가 예수님과 함께 바닷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예수님과 자기의 발자국이 모래사장에 나란히 나 있었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또다시 보니까, 이제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몹시 불안한 마음으로 “예수님, 왜 발자국이 하나만 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불안해하고 고통을 당할 때에 나는 너를 내 품에 안았지 그리고 내가 너를 안고 갔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불안에 떨고 있을 때에, 고통을 당할 때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고민할 때에 주님은 우리를 번쩍 들어안고 평강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부활을 믿는 자의
첫번째 축복입니다.
2. 두려운 마음이 용기로 바뀌어집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같이 자기들도 로마군인에게 체포되어 죽게 될 것이 아닌가 두려워 떨면서 문을 닫아 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두려워 떨지 말고 성령 안에서 새로운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비록 죽을지언정 주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와 도망쳤던 다른 제자들이 모두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용기를 주시면서 나를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갔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로마군인들은 예수님께서 빈 무덤을 남겨놓고 부활하셨다는 얘기는 제발 하지 말라고 핍박을 했습니다. 유대인의 무덤은 시체를 쉽게 꺼내 볼 수가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갔다면 그 시체를 끌어내 보이면서 여기 예수가 죽어있지 않느냐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핍박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늘 자유주의자들은 잘못된 생각은 우리의 불신을 가져오게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축복입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예수님이 죽음을 극복하시고 부활하셨는데 그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두려움 없이 용기있게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순교자의 정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늘 우리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능력을 주셔서 성령 안에서 죄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불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증거케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용기있게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축복이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3. 의심이 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본문은 도마의 시가로 가득차 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 의심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도마의 태도는 바로 오늘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도마처럼 이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보고도 믿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믿게 하신 것입니다. 도마는 실증주의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실 때에 도마는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거기를 어찌 하겠사옵나이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의심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심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부정적. 파괴적이 되고 맙니다. 부정적인 무신론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막스주의자는 세상에 지상낙원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지상낙원은 커녕 지상지옥을 만들었습니다. 막스주의를 믿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처츰 나타나셨을 때에 그곳에 없었습니다. 기회를 놓친것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불신의 병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오늘 우리는 의심으로 꽉 차 있습니다. 대화를 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꾸 속아넘어갑니다. 정계가 바뀌어도 여전히 불신은 남아있습니다. 이 부정적인 의심과 회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너는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보지 못하고 믿는 자의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패배자를 승자가 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이젠 예수도 패배자로 끝났고 우리도 실패하고 말았다고 모두들 흩어졌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패배자로 만드는 줄 아십니까? 죄가 우리를 패배케 합니다. 죄를 짓는 자가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죄를 이기셨습니다. 불의와 미움과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렇게 불의하고 이렇게 거짓되고 탐심이 많고 황금만능주의적인 세상에 정의가 어디 있고, 선이 어디 있고, 절대적인 가치가 어디 있는가? 우리는 이 앞에서 패배자인 것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고 죄가 승리자가 아니라, 이들을 다 정복하시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는 패배자에게 승자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안한 마음에 평강을 얻게 하고, 두려운 마음이 용기로 바뀌어지고, 의심이 확실한 믿음으로 변하여, 패배를 승리로 변하게 하는 것, 이것의 부활의 증명인 것을 믿으시고,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느니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