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산다는 것은
본문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한생명의 삶을 살고 있다. 산다는 것 그것 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 보려 한다. 지금부터 26년전 1967년 8월 22일 낮 12시 40분 충남 청양군 사양면 구봉리의 구봉산소재 구봉광산에서는 큰사건이 하 나 있었다. 이 광산의 지하 125m에 양찬선이라는 광부가 15일 8시간 35분간(368시간 35분) 지하에 매몰되 있었던 사건이다. 이는 당시 한 국에 대대적인 톱뉴스였고 연일 세인들의 관심과 화재의 인물이 되었 다. 한생명을 구출하기위해 동원된 인원은 8,400명이었고, 구출에 들 어간 비용만도 당시 시세로 950만원이었다. 대통령, 문화단체, 사회 인, 언론인, 종교인, 미군들에서 보내오는 위문품이 쇄도하기도 했다. 한생명의 구출을 위해 전화선을 가설하여 자기의 땀흘린 옷을 빨아먹 게 하고 생명을 지탱케 해서 급기야는 15일만에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을 목격한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한생명이 온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교훈을 실감하였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불구의 몸으로 기어다니면서도 살아보겠다고하는 몸부림과 뇌사상태에 빠져 살아가는 생명들을 보면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또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하는 질문들을 던진다.
삶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많은 대답들이 있다. 철학자는 바로 사 고하는 것이 참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시인은 바로 느끼고 힘차 게 사랑하는 것이 정말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며, 윤리학자는 바로 행 동하는 것이 참되게 사는 것이라고 했고, 종교가는 옳게 믿는 것이 바 르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동양의 성현인 공자는 '우리가 생(생)도 모 르는데 어떻게 사(사)를 알겠는가?'라고 했다. 마지막에 산다는 것의 대답을 예수에게 물었다. 그는 바로 죽는 것이 참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죽음을 앞에 놓고서야 산다는 것의 참뜻을 깨닫는 경 우가 많다.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므로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생명의 의미는 예수의 말씀을 철저히 뒤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명의 법칙을 깊이 터득했던 기독교의 사도바울은 사는 것은 물론이요 죽는 것도 유익함이 된다고 고백했다. 우리 몸에서도 죽음으로서 사는 생명 의 변화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동위원소등을 연구하는 과학 자들에 의해서 증명이 된다.
과거의 의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공기를 호흡하는 것은 인체의 노폐한 부분만 을 신진대사작용으로 바꾸어 내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1년동인 인체의 조직은 무려 98%나 재생한 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공기를 호흡하는 동안 에 거기에서 섭취한 새 Atom으로 낡은 Atom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 처럼 우리 몸의 생리적인 현상도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간에 잠시도 쉬지않고 새로 나고 하는데 그 육체를 지배한다는 우리의 정신이나 마 음에 이런 변화가 없다면 그런 정신이나 마음은 이미 죽은지 오랜 것 일 것이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서 짠맛을 낸다. 빛은 자신을 태워서 빛을 발한다. 낙엽이 떨어져야 그 자리에 새순이 돋는 것이다. 모두다 하나의 밀알이 떨어져 죽음으로 생명을 얻는 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세계 제 2 차 대전중에 인도와 버마에서 전사한 국제연합군 을 장사한 North Assam에 있는 국제연합군묘지에 들어가는 정문에 다 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사람들에게 일러 주어라. 우리는 그들의 내 일을 위하여 우리의 오늘은 죽었다고 얼마나 오래사느냐하는 문제 보 다도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여야 한다. 아테나이어스가 그의 스승인 쏘크라테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다. "사람들은 먹기위해서 살지마는 쏘크라테스 자신만은 살기 위하여 먹는다" 이 얼 마나 훌륭한 찬사인가? 우리는 살기 위하여 먹는가? 아니면 먹기 위하 여 사는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산다는 것의 의미는 "이제"와 "여기"에서 우리의 전존재가 영위하는 피가 뚝뚝쳐지는 사실 그 자체이다. 생은 무척 정직한 것이다. 속임수가 없다. 주는 대로 돌 아오는 변함없는 철칙이다.
시인 윗트만은 이렇게 말한다. "노래는 가 수에게 주어진 것으로 대부분이 그에게 돌아온다 / 가르침은 선생에게 주어진 것으로 대부분이 그에게 돌아온다 / 사랑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주어진 것으로 대분분이 그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다시한번 내 생의 존엄성에 대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며 산다는 것의 의미는 "이제"와 "여기"에 어떻게(방법) 죽을 것 인가 하는 것에 진정한 참삶이 깃들어 있음을 주지하며
참 삶의 본을 보여준 한 생명의 삶을 여기 소개하려 한다. 이름모를 누군가에게 빛 과 생명이 된다면 우리 사랑 한번 베풀자꾸나라는 제목은 사랑의 장 기 기증으로 5명에게 새생명을 찾아준 고 양희찬 상병의 추모수기집 이다. 그는 군종병으로 1년 6개월 근무를 하면서 신앙이 돈독하고 사 명감이 투철하여 부대장으로부터 두번씩이나 표창장을 받았다. 때에 따라 빵과 커피를 가지고 초소위문을 하고 토요일이나 주일날에도 근 무를 해왔다. 일과 시간에피곤해진 몸으로 야간 초소위문을 하다가 피로에 지쳐 쓰러져 운명을 달리하는 순간 그의 장기는 한알의 밀알 이 되어 새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양상병은 1971년 11월 27 일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부산합동보수신학대 학 2학년에 재학중인 1991년 4월 15일 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제 1 특공대대 군종병으로 임명되어 특별한 전우애와 군인정신으로 신앙 전력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근무하던중 1992년 8 월 26일 과로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이르자 가족들은 평소 본인의 뜻 에따라 장기를 기증하여 5명의 귀중한 생명을 구한 것이다. 이와같은 양상병의 죽음은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말씀을 교훈케 한다. 그것은 죽음을 통해 새생명을 주고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그 는 생명의 빛을 남긴 것이다. 현재 각막이식을 받아야 할 15만명의 환 우, 신장이식을 받아야 할 8,000여명의 환우, 그외에도 혈액투석환 우, 그리고 심장, 간장, 폐장, 췌장등 이식 받아야 할 수많은 환우들 에게 생명의 귀한 소식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교단에서도 송암교회를 담임하셨던 기원형목사님이 신장이식을 자기 교우에게 이식해 주었고, 문익환목사님의 아버지이며, 본교회에 서도 담임을 하셨던 문재린목사님도 임종하시면서 안구와 신체의 일 부를 기증하여 생명의 기쁜 소식을 증거하였다.
삶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많은 대답들이 있다. 철학자는 바로 사 고하는 것이 참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시인은 바로 느끼고 힘차 게 사랑하는 것이 정말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며, 윤리학자는 바로 행 동하는 것이 참되게 사는 것이라고 했고, 종교가는 옳게 믿는 것이 바 르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동양의 성현인 공자는 '우리가 생(생)도 모 르는데 어떻게 사(사)를 알겠는가?'라고 했다. 마지막에 산다는 것의 대답을 예수에게 물었다. 그는 바로 죽는 것이 참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죽음을 앞에 놓고서야 산다는 것의 참뜻을 깨닫는 경 우가 많다.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므로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생명의 의미는 예수의 말씀을 철저히 뒤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명의 법칙을 깊이 터득했던 기독교의 사도바울은 사는 것은 물론이요 죽는 것도 유익함이 된다고 고백했다. 우리 몸에서도 죽음으로서 사는 생명 의 변화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동위원소등을 연구하는 과학 자들에 의해서 증명이 된다.
과거의 의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공기를 호흡하는 것은 인체의 노폐한 부분만 을 신진대사작용으로 바꾸어 내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1년동인 인체의 조직은 무려 98%나 재생한 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공기를 호흡하는 동안 에 거기에서 섭취한 새 Atom으로 낡은 Atom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 처럼 우리 몸의 생리적인 현상도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간에 잠시도 쉬지않고 새로 나고 하는데 그 육체를 지배한다는 우리의 정신이나 마 음에 이런 변화가 없다면 그런 정신이나 마음은 이미 죽은지 오랜 것 일 것이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서 짠맛을 낸다. 빛은 자신을 태워서 빛을 발한다. 낙엽이 떨어져야 그 자리에 새순이 돋는 것이다. 모두다 하나의 밀알이 떨어져 죽음으로 생명을 얻는 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세계 제 2 차 대전중에 인도와 버마에서 전사한 국제연합군 을 장사한 North Assam에 있는 국제연합군묘지에 들어가는 정문에 다 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사람들에게 일러 주어라. 우리는 그들의 내 일을 위하여 우리의 오늘은 죽었다고 얼마나 오래사느냐하는 문제 보 다도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여야 한다. 아테나이어스가 그의 스승인 쏘크라테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다. "사람들은 먹기위해서 살지마는 쏘크라테스 자신만은 살기 위하여 먹는다" 이 얼 마나 훌륭한 찬사인가? 우리는 살기 위하여 먹는가? 아니면 먹기 위하 여 사는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산다는 것의 의미는 "이제"와 "여기"에서 우리의 전존재가 영위하는 피가 뚝뚝쳐지는 사실 그 자체이다. 생은 무척 정직한 것이다. 속임수가 없다. 주는 대로 돌 아오는 변함없는 철칙이다.
시인 윗트만은 이렇게 말한다. "노래는 가 수에게 주어진 것으로 대부분이 그에게 돌아온다 / 가르침은 선생에게 주어진 것으로 대부분이 그에게 돌아온다 / 사랑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주어진 것으로 대분분이 그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다시한번 내 생의 존엄성에 대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며 산다는 것의 의미는 "이제"와 "여기"에 어떻게(방법) 죽을 것 인가 하는 것에 진정한 참삶이 깃들어 있음을 주지하며
참 삶의 본을 보여준 한 생명의 삶을 여기 소개하려 한다. 이름모를 누군가에게 빛 과 생명이 된다면 우리 사랑 한번 베풀자꾸나라는 제목은 사랑의 장 기 기증으로 5명에게 새생명을 찾아준 고 양희찬 상병의 추모수기집 이다. 그는 군종병으로 1년 6개월 근무를 하면서 신앙이 돈독하고 사 명감이 투철하여 부대장으로부터 두번씩이나 표창장을 받았다. 때에 따라 빵과 커피를 가지고 초소위문을 하고 토요일이나 주일날에도 근 무를 해왔다. 일과 시간에피곤해진 몸으로 야간 초소위문을 하다가 피로에 지쳐 쓰러져 운명을 달리하는 순간 그의 장기는 한알의 밀알 이 되어 새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양상병은 1971년 11월 27 일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부산합동보수신학대 학 2학년에 재학중인 1991년 4월 15일 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제 1 특공대대 군종병으로 임명되어 특별한 전우애와 군인정신으로 신앙 전력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근무하던중 1992년 8 월 26일 과로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이르자 가족들은 평소 본인의 뜻 에따라 장기를 기증하여 5명의 귀중한 생명을 구한 것이다. 이와같은 양상병의 죽음은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말씀을 교훈케 한다. 그것은 죽음을 통해 새생명을 주고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그 는 생명의 빛을 남긴 것이다. 현재 각막이식을 받아야 할 15만명의 환 우, 신장이식을 받아야 할 8,000여명의 환우, 그외에도 혈액투석환 우, 그리고 심장, 간장, 폐장, 췌장등 이식 받아야 할 수많은 환우들 에게 생명의 귀한 소식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교단에서도 송암교회를 담임하셨던 기원형목사님이 신장이식을 자기 교우에게 이식해 주었고, 문익환목사님의 아버지이며, 본교회에 서도 담임을 하셨던 문재린목사님도 임종하시면서 안구와 신체의 일 부를 기증하여 생명의 기쁜 소식을 증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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