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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조상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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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은 참 좋은 시간입니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부모님의 지붕아래서 각각 바쁘게 살던 시간들을 돌아보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다시 한 번 휴식하는 시간입니다. 또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의 흔적들을 추억하면서 남은 자녀들이 다시 한 번 우애를 나누며 부모님의 좋은 유산을 본받기를 다짐하기도 합니다. 성도여러분, 모쪼록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즐거운 명절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기독교인들은 은혜를 갚는 보은(報恩)과 뿌리를 보완하고 더하는 보본(補本)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은혜도 모르고 근본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강한 보은과 보본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 보다 더 큰 보은의 마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님과 친지들에게, 선생님께, 교회의 형제자매와 성도님들에게, 또 친구들에게, 만나는 모든 분들과 심지어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감사합니다.
 심지어 불행도 감사하고, 슬픈 일도 감사합니다. 그 모든 것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아니하고 다 감사 하는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정말로 기독교인은 감사하는 사람이고, 보은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좀 더 구체적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할 것”이란 약속까지 주셨습니다. 효도하는 일에 이런 분명한 보답의 약속을 주시는 종교는 기독교뿐입니다.
사실 명절 때마다 우리 성도들이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조상 제사 문제입니다. 부모님의 제사 상 앞에서 절하지 않음으로, 불효자 같거나 혹은 형제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기분이 들어 즐겁지 못한 명절이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 조상 제사문제에 대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분명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은 명절을 앞두고 이 조상제사문제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전통 한국 종교를 융합하고 근대화 시켰다고 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 때 주목을 받았던 증산도는 조상 제사를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증산도 도전 2편 26장에서는 ‘부모를 하늘땅같이 섬기라’는 제목으로 ‘하루는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 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 이렇게 교육을 합니다.
또한 오랫동안 조상제사를 반대하다가 많은 박해를 당했던 천주교회는 이제는 교황이 공식적으로 조상제사를 허락하였습니다. 이제껏 조상제사문제를 우상숭배로 보고 목숨을 버린 수많은 선배 천주교인들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천주교회에서 초신자를 위하여 발간한 홍보물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천주교회로 초대합니다. ” (서울 대교구 홍보실 발행) “천주교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조상 봉제사(奉祭祀)를 그대로 허용합니다.
제사는 생명의 근본에 보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을 생시(生時)와 같이 공경하는 효도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조상의 영혼을 여호와 하나님처럼 숭배할 수는 없습니다. 유교의 효(孝)사상을 바탕으로 조상제사는 자녀로서 부모와 선조에게 보본(報本) 하고 보은(報恩) 하는 데 그 근본정신이 있습니다.
이렇게 증산도나 천주교는 조상의 선령을 인정하고, 제사를 권장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큰 화를 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성도여러분, 우리 개신교, 즉 교회에서는 왜 조상 제사를 해서는 안 되는가요 간단한 이유입니다. 조상 제사는 무엇일까요 조상 제사의 핵심은 3가지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천지(天地)’ 라고 합니다. 조상제사는 그 근본이 조상이 현재를 사는 후손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세계관 입니다. 즉 “부모는 자식의 천지(하늘과 땅)”라고 까지 생각하고 있기에, 자녀가 조상신을 잘 모시지 않으면 후손의 삶을 지배하는 조상신이 자녀를 박대한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조상신들이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까지 주장합니다. 과연 죽은 조상이 살아있는 후손의 삶을 지배하는 것일까요
 제사상은 자식 집에서만 먹습니다. 조상신이 제사는 자기 자식 집에서만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조상신이 남의 집에는 안 들어오느니라” 합니다. 그래서 만일 자식이 제사를 차려주지 않으면 조상신은 배를 곪는다고 여깁니다. 불신자들이 자녀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그렇게도 싫어하는 이유가 나중 자기가 죽으면 제사상을 차려주지 않아서, 죽어서도 배를 곪을 걱정 때문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됩니다. ‘귀신은 죽어서도 먹어야 한다’ 이것이 정말 맞는 말일까요
 제사는 부모에게 보은의 예절로 봅니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이유입니다. 제사를 부모에 대한 효의 예절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셨다고 부모를 어찌 잊겠는가 그러니 부모님의 은혜에 보은하는 예절로써 제사를 드린다는 생각입니다.
성도여러분, 정말 죽은 조상의 영이 현재를 사는 후손의 삶을 지배하고 있나요 조상의 선령들은 자식의 집에서만 밥을 먹나요 또 사람이 가장 두려운 것이 살아서나 죽어서도 먹는 일입니까 또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예절이고, 효도인가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배워서 알고 있는 대로, 종교의 원시 형태는 자연숭배입니다. 자연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사람에게 제공하고, 자연이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지면서 사람은 자연을 숭배하게 되었고, 그것이 차츰 종교화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자연은 두려운 것입니다. 추위와 더위, 눈보라와 홍수 같은 재난으로 목숨을 잃고 병이 들고 고통을 당할 때, 분노한 자연을 달래어주고 풀어주는 위령제(산신제, 용왕제, 천신제 등)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자연 숭배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태양숭배입니다. 우리나라의 원시 종교도 태양숭배입니다.
오직 하나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종교는 다 출발이 이런 자연숭배입니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아래서 연약한 인간이 자연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는 것이지요. 또 자연은 눈에 보입니다. 뜨거운 태양, 차가운 눈, 쏟아지는 홍수, 거대한 바위 덩어리.. 다 눈에 보이는 두려움과 공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神) 보다는 눈으로 확실히 보이는 우상(偶像)을 좋아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안심이 안 되고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방 종교는 눈에 보이는 신상, 우상이 필수적입니다. 이런 내용은 고등학교 윤리 시간이나, 대학교 1학년 교양시간이면 누구나 배우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런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출애굽을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는 그 잠시 동안에도 그들은 불안해했고, 아론에게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해낸 여호와를 우리에게 보여 달라고’ 아우성 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 무엇에 제사를 드려야 안심을 하겠다는 극단적인 불안 심리입니다. 그래서 아론은 하는 수 없어 금은 패물을 녹여서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고는 백성들 앞에 세워 ‘이것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종교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인격적인 참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불안과 공포를 벗어 버리려고 한 원시적인 몸부림입니다. 이것이 사회의 발달로 모양을 갖추고 제도와 조직이 세워지면서 오늘날의 종교들로 발전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인간은 약합니다. 반드시 무엇인가를 믿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자기 주먹이라도 믿어야 합니다. 뭔가를 믿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성도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神靈)이 있다고 한다면.. 그중에 나에게 가장 호의적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에게 무조건 잘해주는 신령(神靈)이 누구겠습니까 나를 낳아준 조상의 영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종교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조상숭배입니다.
조상 제사의 이유와 목적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와 같습니다. 두려움을 없애주고, 나를 보호해주고, 나에게 복을 주는 존재를 따르고, 화를 내지 않도록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조상들이 나에게 절대로 복을 주지 않거나, 화를 주지도 못한다고 한다면... 아무도 조상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조상에게 정성을 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복도 주지 못하고, 화도 주지 않는다면 누가 제사를 지내겠습니까 효도 효도 하지만... 결국은 나를 위해서 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조상 제사가 보은의 예절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배가 고픈 조상신들의 보복과 행패가 불안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샘이나 강에 감사해야 합니까 아니면 샘이나 강, 그 모든 자연의 창조주이시며 지금 나에게 그 물을 마시도록 허락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 누구보다 은혜를 갚는 보은(報恩)과 뿌리를 보완하고 더하는 보본(補本)의 사람들입니다. 근본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샘이나 강, 태양이나 천둥 번개가 아니라, 죽은 조상의 영혼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상이 누구인가요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분이 맞습니다. 그러나 조상의 조상.. 이렇게 올라가면 결국 누가 나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나옵니다. (눅3;23,38)“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38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라”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 공경하는 자녀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할 것”이란 약속까지 주셨습니다. 누가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을 하셨나요.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을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게 하시겠다고 복을 보장 하시는 분이 누구신가요 근본중의 근본이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인간을 주장하는 분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 한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14절)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13절) 수고하지 않은 땅, 건설하지 않은 성읍을 차지하게 하시고, 내가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땅의 주인이요, 성읍 주인이며, 모든 토지의 주인이며, 땅에서 모든 소산을 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섬김의 대상은 땅이나 조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성도여러분, 조상의 영혼이 우리의 구세주가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구세주입니다. 우리 인생을 주인으로써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지키시는 분은 오직 한분 예수님이심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14절)
여호수아의 결단 촉구에 백성들은 옳은 답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이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 (16-18절) 아멘.
인생의 걸음을 지키시며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그 분입니다. 우리가 조상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은 神이 아니기 때문이며, 조상의 영혼이 지금도 자식의 걸음을 인도하거나 보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았을 때 부모는 자식에게 온갖 사랑을 베푸십니다. 실제로 자녀의 길을 지키며 보호하십니다. 그렇기에 살아 계실 적에 자녀는 감사를 드리며 보은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돌아가시면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마음으로 감사하며 이 사회에 보람있는 일을 함으로 보은하면 됩니다.
십계명의 제 일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이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도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식이고, 윤리요, 도덕이고, 마땅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이라면, 여호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이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2, 3신을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 섬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남편이 2,3인 아내와 같고... 아내가 여러 명인 남편과 같습니다.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신을 같이 섬긴다면 그것은 아직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며, 가능하지도 않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에서 예수님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은 단지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뜻이 아니라, 종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아예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말씀으로 강조하신 것입니다. 당시 종은 한 주인만 섬겨야 했습니다. 오직 한 주인만을 위해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당연하기도 했지만, 종의 입장에서 두 주인을 섬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돗개를 명견이라고 부릅니다. 진돗개가 명견이 되는 이유는 주인을 쉽게 바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진돗개는 평생 한 주인만 압니다. 심지어 주인이 자기를 남에게 팔아도 진돗개는 결코 새 주인을 섬기지 않고 옛 주인을 찾아 수백리 길을 돌아옵니다. 그래서 명견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4-26)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여호와 하나님이시냐 유일하신 창조주이면서 동시에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질투는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복을 주시고,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평강주시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세상에 어떤 우상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어떤 조상신이 이런 마음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창세기 3장을 배워서 알고 있지만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시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을 것이라’ 고 범죄의 현장에서 구원의 복음을 약속하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보내어 범죄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우상은 반대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안 들으면 분노하고, 벌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분노한 우상을 달래기 위하여 재물을 바쳐야 하는데 심지어 사람이 자녀를 죽여서 그 피를 제물로 바칩니다. 이것을 ‘인신제사’라고 합니다. 자기에게 제사를 지내주지 않는다고 후손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조상신들이랍니다. 공포와 형벌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조상신이요, 우상들입니다.
사람을 제물로 받는 우상과...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대신 죽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조상신을 섬기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개인과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유대인들을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그들의 삶에 우여 곡절이 많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긴 유대인들은 약속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유대인만큼 뛰어난 민족이 없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유대인만이 아닙니다. 미국을 보십시오. 미국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대통령선서를 성경위에 손을 얹고 합니다. 미국의 역사가 겨우 200년을 조금 넘습니다. 200년 만에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역사에 유래가 없는 신앙적인 부흥을 이룬 나라입니다. 신앙적인 부흥과 함께 급속한 발전과 부요도 얻었습니다. 지금은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동양권의 수많은 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한국으로 몰려옵니다. 이미 다문화인구 100만 시대입니다. 우리나라도 증인나라입니다. 역사 속에서 기독교를 받아드리고, 성경의 문화를 형성한 나라치고 강성하지 않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민족과 개인이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면 분명 축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개인과 민족은 분명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축복을 주시려고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오늘 추석명절을 맞이한 뜻 깊은 주일에 성경은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분명 도리이고, 명령이며,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여호와가 주시는 복, 여호와께서 지키시는 가정, 여호와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가정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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