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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하나님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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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입니다. 마침 오늘이 추석 당일이어서, 많은 분들이 고향으로 갔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추석은 농사를 지어서 처음 추수한 곡식을 가지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잔치를 하는 축제였습니다. 지금이야 농사짓는 일이 옛날 같지 않아서, 으뜸가는 산업이 아니지만, 옛날에는 농사가 나라 경제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으니까, 추석이야말로 가장 큰 명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추수를 하고 나면, 알곡만 남습니다. 볏단도 재활용하기는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재활용이지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알곡을 지탱해왔던 볏단처럼, 알곡을 감싸고 있던 겨 역시 이제 필요 없습니다. 뜨거웠던 햇볕도 논에 물을 채워주던 비도 다 지나가고, 이젠 알곡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알곡만 남아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알곡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 알곡 속에는 알곡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했던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겁니다. 햇볕도, 빗물도, 볏단도, 겨도 그 알곡을 만들어 낸 것이고, 알곡 속에 자신을 심어 놓았습니다. 알곡 속에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겁니다. 알곡이 그런 것들 없이 그냥 저절로, 혼자서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의 어떤 것이 그것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 그런 모습으로 있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사라져간 수많은 것들이 그 안에 흔적으로 남아 기억되고 있는 겁니다. 나비가 처음부터 나비였던 건 아닙니다. 알에서 유충으로, 유충에서 번데기로, 그리고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될 때가지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나비가 되는 것이고, 그 수많은 과정이 다 나비인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지금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서 여기 이렇게 있는 게 아니지요. 내가 지금 이 모습으로 여기에 있게 되기까지 지나간 많은 시간들이 있었고, 나에게 도움을 주고 나를 길러 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동안 흘렸던 땀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나의 모습 속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냥 내가 아니라, 내가 지내온 시간의 총체입니다.
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황이 바뀌고, 지위가 달라지면, 옛날일 잊어버리고, 자기한테는 그런 일 없었다는 듯이 행세하는 사람들 얘기지요. 어려울 때 크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을 보고도, 난 너 모른다는 듯이 외면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옛날 일이 부끄럽고, 다시는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런 것들이 없던 걸로 되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지난날이 없으면 지금도 없습니다.
아이가 커서 부모보다 몸집이 커지고, 부모보다 아는 것도 많아지고, 부모보다 지위도 높아졌다고 해서, 어려서 엄마 젖을 먹고 자란 일이나, 아빠 품에서 잠들던 일이 없는 것으로 되지는 않는 겁니다. 지워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이 내 안에 있고,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부정하는 건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겁니다. 옛날을 지워버리려고 하는 건 지금의 자기를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겁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인공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로케트는 우리 것이 아니고, 인공위성까지는 우리가 만듭니다. 그런데, 인공위성이 우주 공간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인공위성을 싣고 거기까지 가는 로케트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로케트가 인공위성을 싣고 발사되면,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하나씩 하나씩 분리되어서 폐기됩니다. 처음에는 거대한 로케트가 발사되지만, 끝까지 남는 건 인공위성뿐이지요. 그런데, 인공위성이 자기 혼자 남았다고, 자기 혼자 거기까지 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처음부터 자기는 거기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자기를 거기까지 데려다주느라 연료를 다 쓰고 버려진 로케트를 부정하는 건, 지금 자기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세상에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여기 이런 모습으로 있게 해 준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는 것, 그것들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어쩌면 추석은 그 사실을 기억하기 위한 기억의 축제인지도 모릅니다. 곡식을 얻기 위해 흘린 그 많은 땀과 눈물, 그 많은 사람들의 손길, 그리고 해와 비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한 잔치 말입니다.
오늘 성경말씀도 바로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차 들어가게 될 가나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나중에 남유대의 왕인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할 때 백성들에게 읽어주어서 선포했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기억하라는 겁니다. 잊어버리지 말라는 거지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지내온 광야 생활은 너무나 고달프고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고, 할 수만 있다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머지않아 그 광야 생활이 끝나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면, 광야에서처럼, 그런 고생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습니다. 거기서는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살 수도 있을 겁니다.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과 금이 많아져서 재산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이제는 편안해지고 풍족해지면, 그들이 광야에서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지난날을 지워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언제 그랬는지 다 잊어버리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제는 나하고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그렇게 과거를 부정하고 지워버린다면, 그건 그들을 여기까지 이끄시면서 그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지켜주시고, 그들을 죽음에서 건져 살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도 함께 지워버리는 것이 될 것이었습니다. 지난 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셨던 일, 모든 위험에서 나를 건져주셨던 것도 함께 잊어버리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지난 날 지켜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건, 지금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 역시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내가 지금 여기 있는데, 그 여호와 하나님을 부정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저리 치워버리고, 새로운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다음에야 말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자꾸 우상을 섬긴 건, 광야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내신 분이십니다. 노예였던 그들을 해방시키셔서 자유인이 되게 하셨을 뿐 아니라,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주인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종에서 주인으로 바뀌는 그 모든 과정을 시작하시고 진행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종이었던 사실을 잊어버리면, 종에서 해방시키신 여호와 하나님도 잊어버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새로운 나라의 주인이 되면, 자기가 잘나서, 자기 힘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 자기들은 처음부터 주인이었다고 우기게 될 것입니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지요. 엄마 아빠는 인물이 아주 예쁘고 잘생겼는데, 아이는 영 다르게 생긴 경우 말입니다. 도무지 아빠도 안 닮고 엄마도 안 닮았어요. 근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엄마 아빠가 다 원래 타고난 얼굴이 아니거든요. 엄마 뱃속에서 만들어진 얼굴이 아니라 병원에서 만들어진 얼굴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자식은 병원에서 만들어진 얼굴은 닮지 않습니다.
 원래 생겨난 그 얼굴을 닮지요. 그런데요, 원래 못생겼던 자기 얼굴을 기억하지 않고, 얼굴을 나중에 바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기는 원래부터 그렇게 생겼다고 생각하게 되면, 아이가 엄마 아빠를 하나도 안 닮았다, 어디서 이런 게 태어났어, 솔직하게 말해, 예 누구 아이야 그러겠지요. 같은 얘기입니다. 지난 날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잊어버리면, 그래서 그 때 지켜주시고 구원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지금 함께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역시 인정할 수 없게 된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넓고 황량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광야와 물이 없는 사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주시고, 차돌 바위에서 샘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여주셨고, 그래서 굶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단련시키셔서, 이제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당당한 주인으로 살도록 준비시키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들이 광야에서 받은 훈련은 모두 헛것이 되고 말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 그들이 차지하고 누리는 것들이 원래부터 자기 것이었고, 자기들이 원래부터 거기서 그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광야에서 그들이 깨우치고 가지게 된 모든 교훈과 성찰과 능력들이 모두 헛것이 되고, 그들을 훈련시키신 여호와 하나님도 허깨비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바이얼리니스트가 있습니다. 스승이 그를 제자로 받아서 정말 열심히 가르쳐서 그렇게 훌륭한 바이얼리니스트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스승한테 배웠다는 사실을 다 잊어버리고, 스승을 기억조차 하지 않고서, 자기는 아무 한테도 배운 적이 없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바이얼린을 안고 태어났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 스승은 뭐가 되는 겁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고, 거기서 주인 노릇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셨던 일들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그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여기서부터 또 시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거듭 거듭 당부합니다. 주 당신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 당신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주 당신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기억하는 것일까요 그냥 머릿속으로, 아 그 때 그런 일이 있었지, 아 그때 참 아슬아슬했어, 그러면 되는 걸까요 그때 홍해가 갈라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때 참 대단했어, 그러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오늘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법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목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법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전하여 주는 주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머릿속으로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기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당연히 그런 것들을 지킬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으니까 그런 것들도 함께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으니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도 잊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니 여호와 하나님의 법도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기억들이 없으니까 그 규례도 마음속에 없는 겁니다. 바이얼린을 가르친 스승이 했던 말을 다 잊어버린다면, 스승의 존재조차 잊어버린다면,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방법도 잊어버리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바이얼린을 연주하겠습니까
아버지가 나가시면서, 책상 깨끗이 치워놔라, 하고 가셨습니다. 하루 종일 뛰어놀다가, 저녁에 아버지 얼굴을 보는 순간 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이가 아버지의 말씀을 잊어버린 것이고, 그것은 곧 아버지를 잊어버린 거지요. 머릿속에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남아 있었으면 아버지가 하신 말씀도 떠올랐을 텐데,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아버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잊어버리고, 따라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도 잊어버린 겁니다.
그러다가 아버지 얼굴을 보는 순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그러면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도 떠오르게 된 거지요.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서 신명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법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전체에 걸쳐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지만,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 자신을 사랑하듯이 네 이웃을 사랑하여라. 그래서 신명기에서는 추수한 곡식도 혼자만 먹지 말고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고, 이웃과 함께 나누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말입니다.
오늘, 추석입니다. 추석은 농사를 짓게 해주시고, 열매를 거두게 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열매가 저절로 열린 것도 아니고, 내가, 내 힘으로, 나 혼자서 열매를 거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요소들이 나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모든 과정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를 도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기억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는, 구약시대에는 율법이겠지만, 지금 우리로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거기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계명 역시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명령과 법도와 규례와 동일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너 자신을 사랑하라.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요,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규례입니다. 사랑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사랑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면서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무슨 수로 서로 사랑합니까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도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데, 생판 모르는 남을, 게다가 나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원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안 됩니다. 불가능합니다. 영화제목처럼 미션 임파서블, 우리 힘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게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를 지나게 하시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마침내 부활하게 하신 것도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이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까지, 여기 이 자리까지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셨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헛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일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때로는 아픔과 눈물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셨고, 살아온 모든 순간마다 주님이 인도하셨고, 항상 내 옆에 나와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나 혼자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 원래 여기 이러고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기 이 자리에 나와 함께 계시고, 여전히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분이 이제 앞으로도 나를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우연히 내가 이렇게 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우연히 실패하고 우연히 망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앞으로도 인도하실 것이고, 지금까지 나를 사랑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앞으로도 나를 사랑하실 테니까요.
지금까지도 우연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실 테니, 앞날 일을 두고 걱정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이유도 없는 겁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제도 내가 살았고, 지금도 내가 살고 있으니, 내일도 내가 살 겁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주님 나라에서, 여호와 하나님 품에서 살 것이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고 걱정할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추석을 맞으면서, 그동안 우리와 함께 있어주면서 우리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을 기억합시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지켜주시고 함께 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우리 지난 시간들을 잊지 맙시다. 지금 내가 여기 이렇게 있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그 사랑으로 용기를 내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내가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그 놀라우신 은혜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아갑시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풍성한 가을, 풍성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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