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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감사의 다른 이름(신1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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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해의 절반이 지나고 7월의 첫 주를 맞이했습니다. 뭔가에 쫓기듯 허둥지둥 달려온 것 같은데 벌써 7월입니다. 7월 첫 주일인 오늘, 많은 교회가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초여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기 예배로 말입니다.


보리 수확과 관련된 절기인 맥추절은 칠칠절(feast of Weeks, feast of harvest)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유월절 둘째 날부터 일곱 주간을 헤아린다고 하여, 칠칠절이라 하고, 유월절로부터 헤아리면 50일 째 되는 날이라 하여 오순절이라 부릅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유월절 둘째 날 보리의 첫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초실절을 지키라는 말이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맥추절이 되면 보리 한 오멜(한묶음)을 하나님께 가져갔습니다. 물론 보리가 얼마나 잘 영글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맥추절이 ‘수확의 절기’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때는 밀과 보리만이 아니라 각종 실과들도 무르익기 시작하는 때이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난 귀한 열매들을 즐겨 바쳤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맥추절(오순절)이 되면 자기 집과 회당을 다양한 식물과 꽃들로 장식하고, 그 땅에서 나는 다양한 곡물과 과일들을 바구니에 담아 행렬 이루어 성전으로 가져간다고 합니다. <변순복과 함께 하는 성경 속의 절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p.185-204 참조>


앞서 말씀 드린대로 맥추절은 수확의 절기입니다. 그러나 맥추절의 또 다른 이름이 오순절인 것을 볼 때에 ‘[토라:율법or말씀]의 절기’라고도 부릅니다. 오순절을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토라를 기념하는 시간(히: 하그 마탄 토라테이누)’이란 뜻입니다.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땅에 정착한 히브리인들은 농사를 지으며 하나님이 주신 은총과 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지나온 역사 속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 하며 ‘노예는 영혼이 없는 존재’였기에 짐승보다 못한 취급당하며 살아온 그들이었습니다. 인권은 고사하고 굶어 죽지만 않으면 감사하며 살던 짐승중의 괴수였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다가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 위해 강한 손과 팔을 내어주시어 애굽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백성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라. 언약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계명이 여기 있다’ 하시며, 하나님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해서, 회당 예배의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매년 오순절 첫날에는 십계명이 포함된 출애굽기 19-20장을 읽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오순절 규례에 관한 부분인 신명기15:19-16:17절과, 민수기 28:26-31과 룻기서를 통독했습니다. 


중세기 이후부터 시작된 관습 가운중 하나는 오순절에 5세 이상의 유대인 아이들은 히브리어 학교에 입학 시키는 날로 정했습니다. 입학식을 마친 다음 유대인 어린아이들은 처음으로 히브리어 알파벳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 때에 학생들에게 맛있는 과자와 꿀과 사탕 등을 나누어 주었는데, 토라(율법)가 그처럼 달콤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 한거지요. 이와 관련된 또 다른 관습으로 19세기 이후에는 오순절에 13세가 되는 소년 소녀들의 성인식이 있었습니다. 소년들의 성인식은 바르 미츠바(Bar Mitzvah)라 하고 소녀들의 성인식은 바트 미츠바(Bat Mitzvah)라고 하는데, 굳이 오순절에 하는 까닭은 스스로 토라를 해석할 수 있는 연령에 이르렀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책임적인 주체가 되라는 뜻입니다. 성인식에 참여할 아이들은 토라의 말씀 가운데 제비뽑기를 통해 자기가 해석해야 할 성경 말씀을 받습니다. 아이는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또 연구하여 정해진 날 회당에 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어른들 앞에서 그 말씀의 의미를 풀어 설명합니다. 어른들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답해야 합니다. 답변을 잘 하고 나면 어른들은 그 아이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넵니다. 이제는 토라를 논하고 해석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음을 공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이 오순절과 관련해서 우리는 신약에 와서도 경험하여 알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120명의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말씀 붙들고 기도할 때에,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시어, 여러 박해와 핍박에 억눌려 있던 120명의 사람들에게 '약속된 주의 말씀‘을 다시 깨닫게 하시며, 움츠려 있던 120명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성령께서 인도하신 가운데 세상에 나가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첫 열매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는 오늘 기억해야 할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영혼 없는 노예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신분으로 거듭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진 우리 자신의 신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맥추감사주일이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첫 열매만 기억할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아울러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었고, 오순절 성령사건을 통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듯, 이 땅 위에 세워진 교회로서, 우리의 사명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나가다 보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0절과 11절 사이에 무려 네 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요. 또 맥추절, 그러니까 오순절의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께 주로 사용하는 표현중 하나가 바로 ‘주님’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예배당에 들어오면서 아무 생각 없이 ‘아픈 다리와 허리 달래가며 자리에 앉아서 “아이고 주여~” 고백’하였겠지요. 또 어떤 때 우리는 집안일이나 어떤 일들 하면서, 넘어지거나 무언가 떨어져 깜짝 놀라 ‘아이고 주여~’ 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님, 주여, 주’ 라는 말을 그 어떤 깊은 묵상과 고백도 아닌 버릇처럼 무슨 주문 외우듯, 쉽게 말하곤 합니다. 


우르과이 한 작은 성당에 이런 주기도문이 적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마라, 세상 일에만 빠져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하지 마라,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지마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마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 우리를 용서하소서' 하지 마라, 누군가에게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마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한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주님’의 이름이 조금 더 다르게 고백 되어지길 소망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그 구원의 은총을 누린 후 50일이 지나서 다시 초실절을 지켰을까요? 이 맥추절(오순절)을 지키며 왜 그들은 토라의 말씀을 암송하였겠습니까?! 그들에게 있어 ‘주님’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애굽에서 건지셨기에 마땅히 숭배해야 할 어떤 신적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온 공동체가 함께 성경말씀을 암송하며 ‘하나님만이 그들의 주 되심’을 고백하였습니다. 이 고백은 어떤 절기와 형식을 위하여 고백하는 암송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영적자존감’이 담긴 자랑스런 고백이었습니다. 하여, 그들은 이 맥추절(오순절)이 다가오면 13세의 자녀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고백하게 하는 축제를 즐겼던 것입니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견신례인거지요. 과거에는 부모의 신앙으로 고백하였던 하나님이었으나, 이 맥추절기를 통하여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시다’ 고백 하는거지요. 이 소년·소녀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신앙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에, 온 이스라엘이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다음세대들 각자가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고백하는 모습들을 축하하며, 온 이스라엘이 함께 많은 감동 받게 되었겠지요. 그 감동에 따라 웃고 울고 찬양함을 볼 때에, 이스라엘의 맥추절은 성장의 절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 시대의 맥추절(오순절)의 모습은 또 어떻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했어도, 로마의 칼과 창이 두려워 떨던 120명의 처음교회 사람들이, 이 오순절 사건을 통해서 성장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님이시다!’ 자랑스럽게 고백하였습니다. 120명의 공동체가 이 고백을 즐기는 것을 넘어 오히려 핍박하던 세상으로까지 나가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시다’ 자랑하며 전했습니다. 젖먹이 어린아이 같았던 성도들의 신앙이, 핍박과 죽음을 불사하며 주님을 자랑 할 만큼 성장했던거지요. 


구약과 신약에서 증거 하는, 이 맥추절(오순절)의 모습을 볼 때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 감사는, 단지 한 해동안의 결실들의 첫 열매로 하나님께 한번 드리고 마는 물질이 아니라는 겁니다. 진정한 감사는 성장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왔고, 교회 직분자로서 형식적으로 고백했던 ‘주님’이 아니라, 진정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우리의 존재됨을 고백 하도록,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의 예물이고 고백입니다. 120명의 처음교회 사람들일 세상에 나가 자랑스럽게 주님을 전하였듯, 세상에 나가면 작아졌던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겁니다. 직장과 사업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믿는 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식당에 가서도 자랑스럽게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맛 집이나 바겐세일에 대한 것보다 우리 주님을 더 크게 자랑하는 등, 신앙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드리는 이 예배가 내 ·외적으로 어떤 성장 없이 단순히 감사예물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길 소망합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스라엘 공동체는 맥추절을 지키며 온 무리가 함께 성경말씀을 암송했습니다. 함께 서로의 신앙적인 성숙을 기도하고 격려하고 축하 해주었습니다. 혈연과 지연을 넘어 다음세대들이 스스로 신앙고백 할 때에는, 자기 자식 대하듯 함께 기도하며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이는 이 축제에는 그 어느 누구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1절 보시면 아시겠지만, 종이나 고아 과부나 나그네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한 몸 이루는’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신분이나 계급, 부와 지식의 차별의 벽들은 모두 파쇄하고,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그 곳에는 어느 특정한 사람이 힘을 모으며 사람 위에 군림코자 하는 목소리가 없었습니다. ‘어린 것이 뭘 안다고’ 가 아니라, 하나님을 고백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온 무리들을 하나로 묶어주었습니다. 어린아이가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이 공동체에 어떻게 사람이 만든 “불협화음”이란게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천국의 주인인 어린아이가 존중 받아 조화를 이루었으니, 그 곳이 바로 하나님나라이지 않았겠습니까? 


오순절 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신앙적인 성장을 이룬 신약의 교회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곳에도 역시 언어, 문화, 인종 및 여러 사상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보타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애굽과 구레네 등에서 모인 사람들이 방언으로 하나가 되어졌습니다. 이 방언과 관련해서 말도 많습니다만, 적어도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바울이 증거 하는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과 다른 것입니다. 이 방언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으로 혼잡했던 언어가 다시 하나로 모여져, 각 사람들에게 서로 소통 되어진 방언입니다. 사람들이 각 자가 자기 나라 언어로 기도하였어도, 어떤 민족이고 출신이든 차별 없이 모두가 다 알아듣는, 하늘의 신비가 가득 찬 사건입니다. 사람이 만든 장벽들이 모두 허물어지고 성령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어졌으니, 이 역시 하나님나라이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첫 열매를 상징하는 맥추절(오순절)을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주님을 기념하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지니, 이보다 더 큰 축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인 ‘개교회주의를 넘어’ 하늘소리가족과 칠석가족이 또 다시 이렇게, 하나 이루는 축제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니, 하나님 보실 때에 이보다 더 큰 감사예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하나님께는 영광 되는 즐거운 잔치로서, 우리는 오늘 하나님나라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감사의 또 다른 이름을 ‘성장’과 ‘조화’로 증거하고 싶습니다.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목사는 우리 수익의 첫 열매인 십일조에 대해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십일조 생활은 돈에 대한 욕심을 제어하는 가장 좋은 훈련이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돈에 대한 욕심을 제어할 수 있으면 그 밖의 다른 욕심들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오만해지기 쉬운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주 되심을 잊지 않으며 살 수 있습니다. 자연스레 신앙적인 성장 또한 함께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신앙의 성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들을, 다시 찾는 법을 배울 때에 감사가 나오겠지요?!


당연하게 생각했던 하루가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배웁니다. 매일같이 하나님께 생기와 호흡을 선물 받는 법도 배웁니다. 일 할 수 있는 건강과 힘을, 매일 만나는 가족, 함께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까지, 모두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2019년 하반기 또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물임을 보게 됩니다. 이 귀한 선물들을 공짜로 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 영적성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나아가 이 좋은 선물을 함께 누리며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한 몸 이루며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하나님께 이보다 더 큰 예물과 감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하늘소리&칠석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는 이렇게 매 절기 때마다 특별하게 드리는 우리의 물질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는 더욱 특별한 감사이고 예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귀한 삶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나를 만나는 모든 이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 역시 우리가 삶으로 고백해야 할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사는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혀지지 않는 삶!! 신앙과 삶, 예배와 삶이 하나 되는 삶!!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 거룩한 삶을 통해 - 우리 가는 곳마다 웃음이, 위로가, 사랑이 가득 깃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주님께서 몸소 보여 주셨듯, 우리도 주어진 여러 삶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첫 열매가 되어져야 하겠습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는 화해의 첫 열매, 차별이 있는 곳에서는 평등의 첫 열매, 소외가 있는 곳에는 찾음의 첫 열매, 상처가 있는 곳에서는 위로와 사랑의 첫 열매, 죽음이 있는 곳에서는 생명의 첫 열매,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첫 열매 되는 삶 살기 위해 힘쓰십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이고 예물인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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