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본문
여러분들도 언제든지 전화 116번을 누르시면 10초 간격으로 다음 시각을 알려주는 다음시각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소리는 단순히 현재 시각을 알려주는 음성만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한번 맞게될 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는 카운트다운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인류종말의 시각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기도 합니다. 이 카운트다운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은 마지막 때에 관하여 그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도다(롬13:11).
한 마리 미물 소도 도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한 마리 강아지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할 때에 불안해하며 두려워떨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답니다.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마지막 때를 망각하고 살아 한 마리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묻습니다. 오늘이 여러분 생애에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여러분이 천국문에 들어서게 될 때에 그 천국의 집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핸리 벤 다이크의 대저택이라는 책에 보면 이 땅에서 존경받는 많은 사람들, 이 땅에서 부유한 삶을 누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천국에서 개집에 살고 이 땅에서 별로 이름이 없던 사람들, 참으로 낮은 자리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는 대조적인 삶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 게놈(Genome) 프로젝트가 보고된 이후에 금방이라도 이 땅에 천국이 건설될 것인 양 기대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 같지만은 않습니다.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의 강의 가운데 제4의 물결, 디지털 혁명과 생명공학의 혁명이 우리 가운데 성큼 다가왔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의 클린턴은 게놈 프로젝트가 발표된 지난 26일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어를 해독했다고 선포했습니다.
게놈이란 한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전체 DNA 구조로서 우리 말로는 유전체라고 합니다. 인간이 구성된 유전자 지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용한 설계도, 청사진을 인간이 발견해 낸 것입니다.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인간생활의 변화가 일어나기까지의 준비기간을 스핑크스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이제 길지않은 스핑크스의 침묵이 끝나게 되면 우리 삶 속에 엄청난 변화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긍정적인 면에서 우선 감염으로 인한 질병외에 모든 질병들 - 암, 유전병, 백혈병, 치매, 당뇨, 대머리, 이상비만등 모든 질병들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고 조기치료가 가능해 지게 되었습니다. 한 방울의 피로 경찰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장, 간장등 모든 장기의 손상을 예측하고 자신에게 맞는 인공장기를 주문해 놓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 부속이 낡으면 새 것으로 바꿔 끼우듯이 이제는 우리의 장기를 다 바꿀 수 있게 되었단 말입니다. 이미 특정 영양분이 많은 쌀을 연구하고 개발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흰 쌀밥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쌀을 먹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령 노란색은 비타민이 많은 쌀, 빨강색은 철분이 많은 쌀, 그래서 알록달록한 밥을 먹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들로 이 땅에 파라다이스 - 낙원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게놈 프로젝트의 부정적 측면도 만만치 않습니다.
나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보험가입이 어려워집니다. 몇 년 후에 이 사람이 이런 질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예측이 되어지는데 보험회사에서 가입하도록 허락해 주겠습니까 그것이 예견되었을 때에 여러분들의 심리는 어떨까요 얼마나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까요 나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회사 취직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결혼도 유전자가 나쁜 사람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탁월한 지능과 예술성, 체력과 외모를 가진 맞춤아기가 탄생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막강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해당이 됩니다.
때문에 소수의 우성 유전자 인간과 정상적인 혈통에 의해 태어난 많은 평범한 유전자 인간으로 나뉘어지게 될 것입니다. 소위 20세기는 인종 차별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유전자 차별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특허권 경쟁에 가열되고 이 모든 것들이 선진국들에 의하여 이기적으로 악용될 경우 저들은 영원한 선진국으로 이 땅을 지배하게 될 것이며 후진국들은 하루아침에 몰락해 갈 것이고 다시는 그 후진국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한 지구의 이분법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연구의 리더였던 콜린스 박사는 이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가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면 발견할 수록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연구실에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더랍니다. 그리고 인간의 미래를 깨달아 갈수록 창조주 앞에 항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 앞에 항복합니다. 당신을 인정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인류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독실한 크리스챤이 되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 연구는 종말의 표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또 다른 한 과학자는 지구에 만약 원자폭탄이 터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깜짝 놀랄만한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구 표면의 85%를 차지하는 바닷물 즉 수소원자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전 세계가 한 장의 종이를 말아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 속에 집어 던져 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불타버리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느날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벧후3:10에서 이런 말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이 지구는 폭발 직전의 주유소와 같다고.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강남에 한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녀신사들이 깨끗하게 단장된 사무실에 모여 앉아있습니다. 참으로 긴 시간동안 진지하게 그들은 엎드려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마쳐진 다음에 저마다 펜을 끄집어내 유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유서를 써놓고 자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유서쓰기공동체 멤버들이었습니다. 유서를 써서 변호사에게 정중히 맡깁니다. 그리고 일년 후 다시 그 시간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끔은 지난해 썼던 유서가 그대로 효력을 발생할 때도 있고 또 그 자리에 모이게 되면 작년에 있었던 유서는 받아서 찢습니다. 그리고 다시 유서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유서에는 재산의 처리 방법, 유산물림에 대한 언급들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자녀에게는 한푼의 유산도 물려지지 않습니다. 어린자녀에게는 대학을 마칠 때까지 소요되어지는 최소한의 유산이 약속되어집니다. 그렇게 했더니 자녀들의 자세가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유서를 써 놓으셨으니 이제 나에게 돌아올 몫은 없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진지해 지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인생입니다. 인생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생일이 있으면 장례식이 있습니다. 건강해도 병들어 죽을 날이 있습니다. 가졌다고 하나 모든 것 내려놓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환자를 앞에 놓고 임종을 알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환자에게 임종의 시간을 알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편안하게 그대로 죽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토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알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남은 시간 죽음을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끝을 아는 것은 지혜요 축복입니다. 종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시간입니다. 지혜롭게 정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늘 그렇게 강의를 합니다. 큰 교회 목회 못해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양 무리들이 주님 오시는 그 시간에 모두 들림받고 구원받는 공동체가 된다고 한다면 종말의 승리자가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참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한 인간 인생살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의 축복이 영혼을 흐리게 만들면 아니됩니다. 땅의 보물로 하늘의 부요를 빼앗기면 아니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칭찬듣고 살았다 할지라도 주님 재림하시는 날 일어나지 못하면 망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하늘에서 내 집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면 그는 천국의 거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종말론적인 종교입니다. 신앙은 종말 승리의 약속입니다. 교회는 종말로 나아가는 구원공동체입니다. 성경은 종말로 나아가는 지침서입니다. 예수는 종말 구원의 표징입니다. 그래서 헤겔은 지금 인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나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지금 세계 역사는 성경을 증명하는 역사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인류역사는 예수로 말미암아 두 동강이가 났습니다. 예수 이전의 삶과 예수 이후의 삶으로. 금년은 2000년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신 그 이후의 삶과 그 이전의 삶으로 나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만난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으로 두 동강이 나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역사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만 그 엄청난 사건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이 있다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사건, 예수님의 잉카네이션 인류역사는 예수로 말미암아 두 동강이가 났습니다. 예수 이전의 삶과 예수 이후의 삶으로. 금년은 2000년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신 그 이후의 삶과 그 이전의 삶으로 나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만난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으로 두 동강이 나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역사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만 그 엄청난 사건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이 있다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사건, 예수님의 잉카네이션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앞으로 역사 후에 일어나게 될 수 많은 위대한 일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이 있다면 예수님이 역사를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하게 될 재림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시대에 디지털이 어떻고 인간 게놈이 어떻고 굉장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착점에 서서 뒤를 돌아다보면 그것들은 모두 성경에 예언된 것들을 이루어 갔던 자국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가 무엇입니까 어떤 이는 역사를 돌고 도는 순환과 반복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이 실수했던 것 우리도 실수할 수 밖에 없고, 우리 어버이들의 저주를 우리도 똑같이 끌어안고 살아갈 수 없는 비극적인 인생이다. 그래서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목적없이 갈등하고 방황하는 것이 역사라고 얘기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정, 반, 합의 변증법적 과정이 역사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역사는 직선적인 것이다. 시작이 있고 목적이 있고 마침표가 있다. 창조가 있으면 종말이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종말에 관한 두 가지 잘못된 태도가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현실 도피적인 태도요 다른 하나는 현실 안주적인 태도입니다.
첫째는 광신주의 자들의 현실 도피적인 태도입니다.
우선 그들은 환상과 꿈을 통하여 아무게 날 아무게 장소에 예수님이 재림할 것을 알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긴박감을 조성합니다. 다니던 직장을 포기합니다. 자녀들을 학교에 가지 못하게 합니다. 가정을 떠납니다. 가족을 버립니다. 그래서 자신의 공동체에 들어가야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시한부 종말론 자들입니다. 성경을 곡해했고 기독교에 얼마나 잘못된 영향을 남겼는지 모릅니다.
둘째는 안일주의 자들의 현실 안주적 태도입니다.
종말이 어디 있느냐 쾌세라세라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인생이다. 걸핏하면 남의 장례식에서도 밤을 지세우면서도 막상 자신의 장례식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 말입니다.
종말이 무엇입니까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인 것처럼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번 태어난 인생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불은 하늘로 왔기 때문에 하늘을 향하여 타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물은 바다에서 왔기에 바다를 향하여 흘러가게끔 되어있는 것입니다. 아무개를 세상 떠났다고 얘기합니다. 갈 곳이 있으니까 떠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개 돌아갔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온 곳이 있으니까 돌아간 것 아니겠습니까 이게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키에르 케고르의 종말 비유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초만원을 이룬 극장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이들 중 누군가 불이야~ 소리를 지른다면 아비규환, 수많은 사람들이 발에 밟히고 또 불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여 헤매게 될 것이다 생각하고 한 배우가 연극을 중단하고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밖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갑자기 서둘러 뛰어나가다 보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출입구는 뒤에 있고 좌우에 하나씩 있습니다. 출입구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차례대로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내려가시면 어디에 불결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주로 어느 방향으로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것 조차도 연극인 줄 알고 박수를 치고 좋아하고 웃고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라고 아무리 몸부림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연기가 스며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불길이 확~ 순식간에 극장 안을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때는 늦고 만 것이지요.
여러분 종말 종말 말세 말세 하니까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좀더 충성하라고 재미있으라고 연극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롯의 친구들이 농담한다고 그랬습니다. 노아 시대에 방주를 짓는 노아를 향하여 손가락질했습니다.
이 생각은 어제 오늘 있었던 생각은 아닙니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타락한 이후 여호와 하나님은 곧 바로 창세기 3장 15절을 통하여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메시야는 오지 않았습니다. 바벨탑이 무너지는 그 현장에도 메시야는 우리 가운데 오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에도 메시야는 우리 가운데 오시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400년 암흑기를 지날 때에 많은 신학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메시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 한 가운데 실존하는 메시야가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종교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메시야가 온다고 얘기한 것이다.
바로 그때 성경은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때가 차매 하늘 문을 열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지난 2000년 역사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해 얘기를 했습니다. 100년이 될 때마다 500년이 되고 1000년이 될 때마다 메시야에 관한 많은 얘기들, 재림에 관한 많은 기록들이 우리 가운데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막 많은 신학들 가운데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 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 가운데 인격체로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 아니다. 천군천사가 구름타고 온다는 모든 것이 다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 예수님은 찾아 오실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적이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홀연히 찾아오듯이 예수님 우리 가운데 찾아오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가꿀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농부입니다. 인간농사 짓는 농부입니다. 구원농사 짓는 농부이십니다. 추수 때가 되면 참새 떼가 날아들어 알곡을 떨어뜨리려고 몸부림하겠지요.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서 지금 덤벼 들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거짓 선지자, 물질주의, 세속주의, 쾌락주의, 안일주의 참새들이 이 시대에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추수 때가 된 모양입니다.
여러분 날씨가 많이 더워졌지요. 지금이 더워야 할 시기인지 모르겠지만 32℃를 웃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40℃가 넘는 지역들이 허다하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50℃가 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럽에서 더위에 죽었습니다. 양즈 강에서는 지금 홍수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지진과 화산의 징후들이 포착되어지고 있습니다. 올 여름엔 더욱더 엄청난 기상 이변들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세메이온(sign)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마지막을 알리는 싸인들이 너무나도 많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말의 싸인 가운데 예수님이 친히 하신 몇 가지 세메이온(sign)이 있습니다.
1.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고 저들이 다시 독립을 하게 되면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내가 이 땅에 올 것이라고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1915년동안 나라가 없는 세월을 살아야 했습니다. 지구상에 1915년 동안 나라가 없는 그 설움에서 살아가다가 1948년 이스라엘은 독립했습니다. 1900년 동안 없던 나라가 갑자기 지구상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5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한 세대가 얼마를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미 5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는 얘기입니다.
2. 참으로 오래 전에 다니엘이라는 사람은 구약성경에 유럽공동체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라는 땅 덩어리가 하나가 되어서 열 발가락으로 나뉘어서 뿔뿔히 흩어지는 유럽, 그리고 그들이 다시 하나씩 둘씩 모이는 환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저들은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유럽공동체가 온전히 하나가 될 때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할 것이라고 다니엘은 우리에게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예수께서 종말의 시간을 노아의 때에 비유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먹고 마시는 일이 잘못되었습니까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현실에 매몰되어져서 영원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될 때에 돈벌어 돈 쓰는 재미, 치장하고 가꾸는 재미, 쾌락생활에 매몰되어 있을 때에 주의 일을 잊어 버리고 있을 때에 영원을 잊고 있을 때에 홀연히 내가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주 만드는 것 구경가지고는 아니됩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인부로 고용이 되어져서 아마 못질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당에 들어오고 나오고 설교 듣는 것만 가지고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내 방주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내 집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4. 또 다른 하나의 징조는 롯의 때입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17:28-30).
집을 짓고 사고 파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얘기입니까 장사하는 것이 잘못된 일입니까 아닙니다. 영원의 심판을 잃어버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것이 꿈이 될 때에 이 땅에 그들이 너무나도 소중히 여겨져서 그것들이 내 눈을 가리고 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내 집이 보이지 않을 때에 인자가 홀연히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롯의 때처럼 성의 미학을 찬미하는 성 혁명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보다 쾌락을 사랑하는 무서운 종말의 징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 영혼 속에 다른 맛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예배하는 맛을 빼앗아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재미를 빼앗아 갔습니다. 찬송하고 기도하는 행복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행복과 맛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것이 재미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먹고 마시는 것, 성적인 쾌락, 눈으로 보는 쾌락, 안목의 정욕, 이런 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무서운 세계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가 되면 마지막 때가 된 줄로 알아라.
독일에서는 섹스 정당이 생기고 미국에서는 섹스 교회가 생겼습니다. 퇴폐업소는 이 나라에서도 밤낮을 잊어버렸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클릭만 하면 컴퓨터에서는 언제나 성 퇴폐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적 타락에 대한 마지막 저주의 표징으로 AIDS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지 예루살렘에 가면 길이 80km 너비 16km에 달하는 엄청난 죽음의 호수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사해라고 합니다. 지독하게 짠 소금물에 젖어있기 때문에 생물이 살지 못합니다. 심지어 사해 위를 날아가는 새들조차 먹이를 찾지 못하여 사해에 떨어져 죽는 일이 가끔 있다고 합니다.
이 사해는 인류 역사 속에 자리 잡고 저 옛날 소돔과 고무라의 성적타락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해는 웅변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무라가 사해로 멸망에 빠져들어 갔듯이 퇴폐문화 퇴폐역사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 어느 지역 신부들의 20%가 AIDS에 감염되었다고 썬데이 모니터지가 발표했습니다. 한국에도 AIDS를 퍼트리는 협회가 있다고 김홍신이라는 국회의원이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어떤 방송이 연예인들 가운데 40여명이 AIDS에 걸렸다고 보고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처처에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여기 온역이 AIDS가 아닌가 의사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마지막 - 단순히 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완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산의 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마지막 때에 관한 기록이 300번 이상 도도한 맥이 되어서 신구약 성경을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가 연구하고 보니까 예수님의 보혈에 관한 기록보다도 마지막 때에 관한 기록이 더 많다고 얘기했습니다. 믿음을 촉구하는 기록보다도 마지막 때에 대한 징조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우리가 살아야 될 삶의 태도, 사랑의 교훈보다도 더 많은 내용들이 바로 종말에 관한 예언으로 가득차 있다고 누군가는 얘기를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신을 차리라 - 보초가 눈을 부릅뜨고 살피듯이 살아가라는 얘기입니다. 한밤중에 보초를 서는 사람이 잡지 책이나 뒤적거리고 희희락락 할 수 많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근신하라 - 술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몽롱한 속에 어물어물 시간을 보내지 말고 해야할 일, 하지 말아야될 일, 중요한 일, 덜 중요한 일, 귀한 일, 덜 귀한 일을 구별하고 살라는 얘기입니다.
어느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다가 공부할 내용을 칠판에 판서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간밤에 무슨 일을 했는지 갑자기 졸음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쏟아지는 졸음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판서를 하다 말고 분필을 땅에 뚝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빠지더니 흐물흐물 주저앉아 칠판 밑에서 꾸벅꾸벅 졸고 앉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웃는 학생들이 없었습니다. 왜요 학생들도 모두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성직자들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교회도 현실의 생활이 너무나도 중요하여 영원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영원을 설교하게되면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설교인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성도들이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보라 자다가 깰 때가 되었도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추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를 영원에 두고 살아가라는 얘기입니다. 종말의 때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내가 알 바 아니고 너는 세상 끝날까지 복음을 전하라. 한 명이라도 복음을 전할 사람 부지런히 찾으라는 얘기입니다.
오늘 8절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가 죄를 덮느니라 열심이란 말은 원문에 보니까 경주하는 자가 마지막 골인 지점을 향하여 사력을 다해서 뛰어가는 그 모습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하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골인 지점에 너희들이 다다랐다. 온 힘을 다해서 그 테이프를 향해서 뛰어가듯이 천성을 향하여 줄달음쳐야 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사랑하라고 얘기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며 오늘밤이라도 주님이 오신다고 하면 깨끗하게 내 인생을 정리하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주님 앞에 용서받은 삶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얘기입니다. 내 주변에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해하고 덮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오늘 찾아오신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그 시간에 여러분이 이 땅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종은 늘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종에게 복음을 맡기지 않았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눈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부둥켜 안고 씨름하는 그 시간에 주님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목에 피가 터지도록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 시간에,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이 땅을 살아가는 마지막 심판을 선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도들에게 힘있게 선포하는 그 시간에 예수님이 재림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부둥켜 안고 몸부림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가슴에 끌어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묵상하는 그 시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하면 여러분 얼마나 멋진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놓고 좀더 주님을 진지하게 알기 원하여 고민하고 있는 그 시간에 주님이 오신다고 하면 얼마나 멋진 승리자가 될까요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명이라도 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복음을 손에 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뛰는 그 순간에 주님이 찾아오신다고 하면 얼마나 행복한 성도들이 될 것인가요.
어느 교회에 신실한 한 여신도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몸이 이상해서 진찰을 받아 본 결과 간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처음엔 하도 실망이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남은 두달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푼푼히 모아둔 유산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려야지 헌신해야지 하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마음껏 드려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를 잘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 헌금했습니다. 처녀시절에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는데 선교사로 헌신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돈 벌어 보내는 선교사라도 되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관계를 맺고 기도하고 있던 선교사에게 얼마간의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다시 한장 두장 읽어 내려가며 아이들에게 유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화해할 사람을 찾아가 화해를 했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서 사랑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후딱 두 달이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죽을 시간이 다 되었나 보다 생각을 했는데 전혀 이상이 없는 겁니다. 오히려 힘이 용솟음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찾아가서 다시 검진을 해보았더니 의사의 얘기인 즉 지난 번에 간암이라고 우리가 진단한 것은 오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오진이었는지 어니면 그 사이에 기적처럼 병이 나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무튼 병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오진으로 돈을 많이 써버렸으니 후회가 되지 않습니까 이 신실한 부인이 대답을 하지요. 아니오, 지난 두달처럼 의미있고 가치있고 보람있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땅에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보면 종말의식이 예민했던 시대는 언제나 진실하고 성실하고 깨끗했던 시대였습니다. 믿음이 살아있던 시대였습니다. 믿음이 건강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종말의식이 분명하지 않았던 시대는 언제나 병든 시대였습니다.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시대였습니다.
한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말의식이 예민한 성도들은 건강한 신앙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속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병든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원을 준비하지 못한 비극적인 삶을 마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날인 것처럼 오 여호와 하나님 오늘밤에 여호와 하나님이 오시겠습니까 오늘밤에 주님이 오신다고 할지라도 이 예배를 통하여 내가 깨끗하고 정결하고 맑은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시옵소서 이 삶이 주님이 우리에게 거는 커다란 기대의 삶일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은 마지막 때에 관하여 그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도다(롬13:11).
한 마리 미물 소도 도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한 마리 강아지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할 때에 불안해하며 두려워떨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답니다.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마지막 때를 망각하고 살아 한 마리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묻습니다. 오늘이 여러분 생애에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여러분이 천국문에 들어서게 될 때에 그 천국의 집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핸리 벤 다이크의 대저택이라는 책에 보면 이 땅에서 존경받는 많은 사람들, 이 땅에서 부유한 삶을 누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천국에서 개집에 살고 이 땅에서 별로 이름이 없던 사람들, 참으로 낮은 자리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는 대조적인 삶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 게놈(Genome) 프로젝트가 보고된 이후에 금방이라도 이 땅에 천국이 건설될 것인 양 기대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 같지만은 않습니다.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의 강의 가운데 제4의 물결, 디지털 혁명과 생명공학의 혁명이 우리 가운데 성큼 다가왔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의 클린턴은 게놈 프로젝트가 발표된 지난 26일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어를 해독했다고 선포했습니다.
게놈이란 한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전체 DNA 구조로서 우리 말로는 유전체라고 합니다. 인간이 구성된 유전자 지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용한 설계도, 청사진을 인간이 발견해 낸 것입니다.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인간생활의 변화가 일어나기까지의 준비기간을 스핑크스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이제 길지않은 스핑크스의 침묵이 끝나게 되면 우리 삶 속에 엄청난 변화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긍정적인 면에서 우선 감염으로 인한 질병외에 모든 질병들 - 암, 유전병, 백혈병, 치매, 당뇨, 대머리, 이상비만등 모든 질병들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고 조기치료가 가능해 지게 되었습니다. 한 방울의 피로 경찰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장, 간장등 모든 장기의 손상을 예측하고 자신에게 맞는 인공장기를 주문해 놓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 부속이 낡으면 새 것으로 바꿔 끼우듯이 이제는 우리의 장기를 다 바꿀 수 있게 되었단 말입니다. 이미 특정 영양분이 많은 쌀을 연구하고 개발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흰 쌀밥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쌀을 먹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령 노란색은 비타민이 많은 쌀, 빨강색은 철분이 많은 쌀, 그래서 알록달록한 밥을 먹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들로 이 땅에 파라다이스 - 낙원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게놈 프로젝트의 부정적 측면도 만만치 않습니다.
나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보험가입이 어려워집니다. 몇 년 후에 이 사람이 이런 질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예측이 되어지는데 보험회사에서 가입하도록 허락해 주겠습니까 그것이 예견되었을 때에 여러분들의 심리는 어떨까요 얼마나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까요 나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회사 취직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결혼도 유전자가 나쁜 사람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탁월한 지능과 예술성, 체력과 외모를 가진 맞춤아기가 탄생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막강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해당이 됩니다.
때문에 소수의 우성 유전자 인간과 정상적인 혈통에 의해 태어난 많은 평범한 유전자 인간으로 나뉘어지게 될 것입니다. 소위 20세기는 인종 차별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유전자 차별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특허권 경쟁에 가열되고 이 모든 것들이 선진국들에 의하여 이기적으로 악용될 경우 저들은 영원한 선진국으로 이 땅을 지배하게 될 것이며 후진국들은 하루아침에 몰락해 갈 것이고 다시는 그 후진국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한 지구의 이분법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연구의 리더였던 콜린스 박사는 이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가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면 발견할 수록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연구실에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더랍니다. 그리고 인간의 미래를 깨달아 갈수록 창조주 앞에 항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 앞에 항복합니다. 당신을 인정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인류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독실한 크리스챤이 되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 연구는 종말의 표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또 다른 한 과학자는 지구에 만약 원자폭탄이 터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깜짝 놀랄만한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구 표면의 85%를 차지하는 바닷물 즉 수소원자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전 세계가 한 장의 종이를 말아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 속에 집어 던져 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불타버리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느날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벧후3:10에서 이런 말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이 지구는 폭발 직전의 주유소와 같다고.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강남에 한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녀신사들이 깨끗하게 단장된 사무실에 모여 앉아있습니다. 참으로 긴 시간동안 진지하게 그들은 엎드려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마쳐진 다음에 저마다 펜을 끄집어내 유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유서를 써놓고 자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유서쓰기공동체 멤버들이었습니다. 유서를 써서 변호사에게 정중히 맡깁니다. 그리고 일년 후 다시 그 시간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끔은 지난해 썼던 유서가 그대로 효력을 발생할 때도 있고 또 그 자리에 모이게 되면 작년에 있었던 유서는 받아서 찢습니다. 그리고 다시 유서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유서에는 재산의 처리 방법, 유산물림에 대한 언급들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자녀에게는 한푼의 유산도 물려지지 않습니다. 어린자녀에게는 대학을 마칠 때까지 소요되어지는 최소한의 유산이 약속되어집니다. 그렇게 했더니 자녀들의 자세가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유서를 써 놓으셨으니 이제 나에게 돌아올 몫은 없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진지해 지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인생입니다. 인생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생일이 있으면 장례식이 있습니다. 건강해도 병들어 죽을 날이 있습니다. 가졌다고 하나 모든 것 내려놓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환자를 앞에 놓고 임종을 알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환자에게 임종의 시간을 알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편안하게 그대로 죽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토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알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남은 시간 죽음을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끝을 아는 것은 지혜요 축복입니다. 종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시간입니다. 지혜롭게 정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늘 그렇게 강의를 합니다. 큰 교회 목회 못해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양 무리들이 주님 오시는 그 시간에 모두 들림받고 구원받는 공동체가 된다고 한다면 종말의 승리자가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참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한 인간 인생살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의 축복이 영혼을 흐리게 만들면 아니됩니다. 땅의 보물로 하늘의 부요를 빼앗기면 아니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칭찬듣고 살았다 할지라도 주님 재림하시는 날 일어나지 못하면 망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하늘에서 내 집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면 그는 천국의 거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종말론적인 종교입니다. 신앙은 종말 승리의 약속입니다. 교회는 종말로 나아가는 구원공동체입니다. 성경은 종말로 나아가는 지침서입니다. 예수는 종말 구원의 표징입니다. 그래서 헤겔은 지금 인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나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지금 세계 역사는 성경을 증명하는 역사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인류역사는 예수로 말미암아 두 동강이가 났습니다. 예수 이전의 삶과 예수 이후의 삶으로. 금년은 2000년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신 그 이후의 삶과 그 이전의 삶으로 나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만난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으로 두 동강이 나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역사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만 그 엄청난 사건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이 있다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사건, 예수님의 잉카네이션 인류역사는 예수로 말미암아 두 동강이가 났습니다. 예수 이전의 삶과 예수 이후의 삶으로. 금년은 2000년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신 그 이후의 삶과 그 이전의 삶으로 나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만난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으로 두 동강이 나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역사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만 그 엄청난 사건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이 있다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사건, 예수님의 잉카네이션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앞으로 역사 후에 일어나게 될 수 많은 위대한 일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이 있다면 예수님이 역사를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하게 될 재림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시대에 디지털이 어떻고 인간 게놈이 어떻고 굉장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착점에 서서 뒤를 돌아다보면 그것들은 모두 성경에 예언된 것들을 이루어 갔던 자국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가 무엇입니까 어떤 이는 역사를 돌고 도는 순환과 반복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이 실수했던 것 우리도 실수할 수 밖에 없고, 우리 어버이들의 저주를 우리도 똑같이 끌어안고 살아갈 수 없는 비극적인 인생이다. 그래서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목적없이 갈등하고 방황하는 것이 역사라고 얘기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정, 반, 합의 변증법적 과정이 역사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역사는 직선적인 것이다. 시작이 있고 목적이 있고 마침표가 있다. 창조가 있으면 종말이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종말에 관한 두 가지 잘못된 태도가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현실 도피적인 태도요 다른 하나는 현실 안주적인 태도입니다.
첫째는 광신주의 자들의 현실 도피적인 태도입니다.
우선 그들은 환상과 꿈을 통하여 아무게 날 아무게 장소에 예수님이 재림할 것을 알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긴박감을 조성합니다. 다니던 직장을 포기합니다. 자녀들을 학교에 가지 못하게 합니다. 가정을 떠납니다. 가족을 버립니다. 그래서 자신의 공동체에 들어가야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시한부 종말론 자들입니다. 성경을 곡해했고 기독교에 얼마나 잘못된 영향을 남겼는지 모릅니다.
둘째는 안일주의 자들의 현실 안주적 태도입니다.
종말이 어디 있느냐 쾌세라세라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인생이다. 걸핏하면 남의 장례식에서도 밤을 지세우면서도 막상 자신의 장례식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 말입니다.
종말이 무엇입니까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인 것처럼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번 태어난 인생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불은 하늘로 왔기 때문에 하늘을 향하여 타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물은 바다에서 왔기에 바다를 향하여 흘러가게끔 되어있는 것입니다. 아무개를 세상 떠났다고 얘기합니다. 갈 곳이 있으니까 떠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개 돌아갔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온 곳이 있으니까 돌아간 것 아니겠습니까 이게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키에르 케고르의 종말 비유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초만원을 이룬 극장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이들 중 누군가 불이야~ 소리를 지른다면 아비규환, 수많은 사람들이 발에 밟히고 또 불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여 헤매게 될 것이다 생각하고 한 배우가 연극을 중단하고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밖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갑자기 서둘러 뛰어나가다 보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출입구는 뒤에 있고 좌우에 하나씩 있습니다. 출입구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차례대로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내려가시면 어디에 불결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주로 어느 방향으로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것 조차도 연극인 줄 알고 박수를 치고 좋아하고 웃고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라고 아무리 몸부림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연기가 스며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불길이 확~ 순식간에 극장 안을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때는 늦고 만 것이지요.
여러분 종말 종말 말세 말세 하니까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좀더 충성하라고 재미있으라고 연극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롯의 친구들이 농담한다고 그랬습니다. 노아 시대에 방주를 짓는 노아를 향하여 손가락질했습니다.
이 생각은 어제 오늘 있었던 생각은 아닙니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타락한 이후 여호와 하나님은 곧 바로 창세기 3장 15절을 통하여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메시야는 오지 않았습니다. 바벨탑이 무너지는 그 현장에도 메시야는 우리 가운데 오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에도 메시야는 우리 가운데 오시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400년 암흑기를 지날 때에 많은 신학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메시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 한 가운데 실존하는 메시야가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종교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메시야가 온다고 얘기한 것이다.
바로 그때 성경은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때가 차매 하늘 문을 열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지난 2000년 역사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해 얘기를 했습니다. 100년이 될 때마다 500년이 되고 1000년이 될 때마다 메시야에 관한 많은 얘기들, 재림에 관한 많은 기록들이 우리 가운데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막 많은 신학들 가운데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 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 가운데 인격체로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 아니다. 천군천사가 구름타고 온다는 모든 것이 다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 예수님은 찾아 오실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적이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홀연히 찾아오듯이 예수님 우리 가운데 찾아오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가꿀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농부입니다. 인간농사 짓는 농부입니다. 구원농사 짓는 농부이십니다. 추수 때가 되면 참새 떼가 날아들어 알곡을 떨어뜨리려고 몸부림하겠지요.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서 지금 덤벼 들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거짓 선지자, 물질주의, 세속주의, 쾌락주의, 안일주의 참새들이 이 시대에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추수 때가 된 모양입니다.
여러분 날씨가 많이 더워졌지요. 지금이 더워야 할 시기인지 모르겠지만 32℃를 웃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40℃가 넘는 지역들이 허다하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50℃가 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럽에서 더위에 죽었습니다. 양즈 강에서는 지금 홍수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지진과 화산의 징후들이 포착되어지고 있습니다. 올 여름엔 더욱더 엄청난 기상 이변들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세메이온(sign)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마지막을 알리는 싸인들이 너무나도 많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말의 싸인 가운데 예수님이 친히 하신 몇 가지 세메이온(sign)이 있습니다.
1.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고 저들이 다시 독립을 하게 되면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내가 이 땅에 올 것이라고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1915년동안 나라가 없는 세월을 살아야 했습니다. 지구상에 1915년 동안 나라가 없는 그 설움에서 살아가다가 1948년 이스라엘은 독립했습니다. 1900년 동안 없던 나라가 갑자기 지구상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5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한 세대가 얼마를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미 5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는 얘기입니다.
2. 참으로 오래 전에 다니엘이라는 사람은 구약성경에 유럽공동체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라는 땅 덩어리가 하나가 되어서 열 발가락으로 나뉘어서 뿔뿔히 흩어지는 유럽, 그리고 그들이 다시 하나씩 둘씩 모이는 환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저들은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유럽공동체가 온전히 하나가 될 때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할 것이라고 다니엘은 우리에게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예수께서 종말의 시간을 노아의 때에 비유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먹고 마시는 일이 잘못되었습니까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현실에 매몰되어져서 영원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될 때에 돈벌어 돈 쓰는 재미, 치장하고 가꾸는 재미, 쾌락생활에 매몰되어 있을 때에 주의 일을 잊어 버리고 있을 때에 영원을 잊고 있을 때에 홀연히 내가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주 만드는 것 구경가지고는 아니됩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인부로 고용이 되어져서 아마 못질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당에 들어오고 나오고 설교 듣는 것만 가지고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내 방주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내 집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4. 또 다른 하나의 징조는 롯의 때입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17:28-30).
집을 짓고 사고 파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얘기입니까 장사하는 것이 잘못된 일입니까 아닙니다. 영원의 심판을 잃어버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것이 꿈이 될 때에 이 땅에 그들이 너무나도 소중히 여겨져서 그것들이 내 눈을 가리고 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내 집이 보이지 않을 때에 인자가 홀연히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롯의 때처럼 성의 미학을 찬미하는 성 혁명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보다 쾌락을 사랑하는 무서운 종말의 징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 영혼 속에 다른 맛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예배하는 맛을 빼앗아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재미를 빼앗아 갔습니다. 찬송하고 기도하는 행복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행복과 맛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것이 재미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먹고 마시는 것, 성적인 쾌락, 눈으로 보는 쾌락, 안목의 정욕, 이런 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무서운 세계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가 되면 마지막 때가 된 줄로 알아라.
독일에서는 섹스 정당이 생기고 미국에서는 섹스 교회가 생겼습니다. 퇴폐업소는 이 나라에서도 밤낮을 잊어버렸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클릭만 하면 컴퓨터에서는 언제나 성 퇴폐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적 타락에 대한 마지막 저주의 표징으로 AIDS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지 예루살렘에 가면 길이 80km 너비 16km에 달하는 엄청난 죽음의 호수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사해라고 합니다. 지독하게 짠 소금물에 젖어있기 때문에 생물이 살지 못합니다. 심지어 사해 위를 날아가는 새들조차 먹이를 찾지 못하여 사해에 떨어져 죽는 일이 가끔 있다고 합니다.
이 사해는 인류 역사 속에 자리 잡고 저 옛날 소돔과 고무라의 성적타락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해는 웅변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무라가 사해로 멸망에 빠져들어 갔듯이 퇴폐문화 퇴폐역사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 어느 지역 신부들의 20%가 AIDS에 감염되었다고 썬데이 모니터지가 발표했습니다. 한국에도 AIDS를 퍼트리는 협회가 있다고 김홍신이라는 국회의원이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어떤 방송이 연예인들 가운데 40여명이 AIDS에 걸렸다고 보고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처처에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여기 온역이 AIDS가 아닌가 의사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마지막 - 단순히 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완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산의 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마지막 때에 관한 기록이 300번 이상 도도한 맥이 되어서 신구약 성경을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가 연구하고 보니까 예수님의 보혈에 관한 기록보다도 마지막 때에 관한 기록이 더 많다고 얘기했습니다. 믿음을 촉구하는 기록보다도 마지막 때에 대한 징조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우리가 살아야 될 삶의 태도, 사랑의 교훈보다도 더 많은 내용들이 바로 종말에 관한 예언으로 가득차 있다고 누군가는 얘기를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신을 차리라 - 보초가 눈을 부릅뜨고 살피듯이 살아가라는 얘기입니다. 한밤중에 보초를 서는 사람이 잡지 책이나 뒤적거리고 희희락락 할 수 많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근신하라 - 술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몽롱한 속에 어물어물 시간을 보내지 말고 해야할 일, 하지 말아야될 일, 중요한 일, 덜 중요한 일, 귀한 일, 덜 귀한 일을 구별하고 살라는 얘기입니다.
어느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다가 공부할 내용을 칠판에 판서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간밤에 무슨 일을 했는지 갑자기 졸음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쏟아지는 졸음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판서를 하다 말고 분필을 땅에 뚝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빠지더니 흐물흐물 주저앉아 칠판 밑에서 꾸벅꾸벅 졸고 앉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웃는 학생들이 없었습니다. 왜요 학생들도 모두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성직자들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교회도 현실의 생활이 너무나도 중요하여 영원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영원을 설교하게되면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설교인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성도들이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보라 자다가 깰 때가 되었도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추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를 영원에 두고 살아가라는 얘기입니다. 종말의 때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내가 알 바 아니고 너는 세상 끝날까지 복음을 전하라. 한 명이라도 복음을 전할 사람 부지런히 찾으라는 얘기입니다.
오늘 8절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가 죄를 덮느니라 열심이란 말은 원문에 보니까 경주하는 자가 마지막 골인 지점을 향하여 사력을 다해서 뛰어가는 그 모습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하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골인 지점에 너희들이 다다랐다. 온 힘을 다해서 그 테이프를 향해서 뛰어가듯이 천성을 향하여 줄달음쳐야 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사랑하라고 얘기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며 오늘밤이라도 주님이 오신다고 하면 깨끗하게 내 인생을 정리하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주님 앞에 용서받은 삶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얘기입니다. 내 주변에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해하고 덮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오늘 찾아오신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그 시간에 여러분이 이 땅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종은 늘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종에게 복음을 맡기지 않았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눈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부둥켜 안고 씨름하는 그 시간에 주님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목에 피가 터지도록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 시간에,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이 땅을 살아가는 마지막 심판을 선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도들에게 힘있게 선포하는 그 시간에 예수님이 재림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부둥켜 안고 몸부림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가슴에 끌어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묵상하는 그 시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하면 여러분 얼마나 멋진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놓고 좀더 주님을 진지하게 알기 원하여 고민하고 있는 그 시간에 주님이 오신다고 하면 얼마나 멋진 승리자가 될까요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명이라도 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복음을 손에 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뛰는 그 순간에 주님이 찾아오신다고 하면 얼마나 행복한 성도들이 될 것인가요.
어느 교회에 신실한 한 여신도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몸이 이상해서 진찰을 받아 본 결과 간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처음엔 하도 실망이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남은 두달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푼푼히 모아둔 유산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려야지 헌신해야지 하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마음껏 드려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를 잘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 헌금했습니다. 처녀시절에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는데 선교사로 헌신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돈 벌어 보내는 선교사라도 되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관계를 맺고 기도하고 있던 선교사에게 얼마간의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다시 한장 두장 읽어 내려가며 아이들에게 유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화해할 사람을 찾아가 화해를 했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서 사랑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후딱 두 달이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죽을 시간이 다 되었나 보다 생각을 했는데 전혀 이상이 없는 겁니다. 오히려 힘이 용솟음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찾아가서 다시 검진을 해보았더니 의사의 얘기인 즉 지난 번에 간암이라고 우리가 진단한 것은 오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오진이었는지 어니면 그 사이에 기적처럼 병이 나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무튼 병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오진으로 돈을 많이 써버렸으니 후회가 되지 않습니까 이 신실한 부인이 대답을 하지요. 아니오, 지난 두달처럼 의미있고 가치있고 보람있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땅에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보면 종말의식이 예민했던 시대는 언제나 진실하고 성실하고 깨끗했던 시대였습니다. 믿음이 살아있던 시대였습니다. 믿음이 건강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종말의식이 분명하지 않았던 시대는 언제나 병든 시대였습니다.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시대였습니다.
한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말의식이 예민한 성도들은 건강한 신앙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속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병든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원을 준비하지 못한 비극적인 삶을 마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날인 것처럼 오 여호와 하나님 오늘밤에 여호와 하나님이 오시겠습니까 오늘밤에 주님이 오신다고 할지라도 이 예배를 통하여 내가 깨끗하고 정결하고 맑은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시옵소서 이 삶이 주님이 우리에게 거는 커다란 기대의 삶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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