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TOP
DOWN

[송구영신] 오늘이 내 삶의 시작과 끝

본문

오늘의 설교 제목을 놓고 설교자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다고 여기실 분도 계실 듯 한데 구태여 부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실은 탈무드에 나오는 말입니다. “오늘이 그대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오늘이 그대의 첫 번째 날이라고 생각하라” 매우 모순된 말처럼 들리는 이 탈무드의 명언을 줄여서 오늘의 설교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졸업식을 영어로 commencement 라고 하는데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탈무드의 명언에서 나온 서양식 사고인 듯 합니다. 졸업은 끝을 의미하는 데 시작이라는 단어를 쓰는 묘미를 알듯합니다. 인간이 평균 70년, 80년을 살고 많이는 90년, 100년을 사는데 이 기간을 한 번에 사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일 살아서 80년, 90년, 100년이 됩니다. 며칠 전 모 일간지에서 128번째의 생일 파티를 하는 엘살바도르의 여성(크루즈 에르난데스)이 가족이 입에 넣어주는 생일 케이크를 받아먹는 장면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는 아직 비공식인데, 기네스북에 실린 최고령자의 나이는 116세인 에콰도르의 여성(마리아 이스더 데카파빌라)이라고 합니다. 이토록 세계에서 제일 오래 동안 살고 있는 분들도 하루하루를 살아서 116세가 되고 128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전 생이고 일분일초가 전 생입니다. 오늘이 나의 삶의 시작이요 오늘이 나의 삶의 끝입니다.
오늘 나의 삶을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벅차겠지요 오늘이 나의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면 긴장되겠지요 매 오늘이 내 삶의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그 삶에 더욱 충실하게 됩니다. 여러 해 전에 미국의 한 유명한 설교자가 목사님들 앞에서 강연을 하면서 “설교할 때마다 당신의 오늘의 설교가 마지막 설교라고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말씀을 전하라. 그러면 훌륭한 설교자가 될 것이다. ”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설교준비를 할 때마다 그 말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1000을 얻으려면 1을 중요시하여야 합니다. 일확천금을 노려서는 아니 됩니다. 1을 계속 모아가야 1000이 모아지는 법입니다. 성공한 상인들의 머릿속에서는 늘 1(하나)을 중시하기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1원 쓰기를 겁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두쇠 소리를 듣게 됩니다. 지극히 작은 것을 아끼는 자가 큰 것도 아낍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하는 법입니다. 우리들의 일생을 아주 넉넉하게 잡아서 100년이라고 치면 일 년 365일, 10년 3650일, 100년 36500일 인데 별로 많은 날이 아닙니다. 지내놓고 보면 1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간격이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창립 71주년이 되는 날인데 하루하루가 쌓여서 71년이 되었습니다. 그 숫한 날 하루하루 많은 성도님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고 친교를 나누면서 수송교회를 오늘까지 지켜왔습니다. 창립 시 10여세 정도였던 박한호 장로님이 여기 계시는데 첫 창립예배를 드리고 71년이 지낸 지금 80을 넘으셨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한지가 12년이 거의 다 되었는데 그렇게 오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지난 12년의 오늘이 어제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인생의 삶을 한 경 점으로 설명했습니다. 한 점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저의 이 교회에서의 목회의 날들이 약 3800일 정도인데 어느 하루도 건너뛰지 않고 그 날들의 하루하루 모두 거쳐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일생이 하루하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오늘의 신약의 본문 마6: 34에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 라고 말씀함에서 하루가 얼마니 중요한 가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그 사람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탈무드가 말하는 처음의 날인 동시에 마지막 날로 오늘을 인식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나의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기대가 크고 또한 신나게 됩니다. 오늘이 나의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면 진지하게 살게 됩니다.
1984년 도쿄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야마모토라는 무명의 선수가 신기록을 세우면서 일등을 했는데 어떻게 준비를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혜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2년 후에 이태리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서 그가 또 일등을 했습니다. 그때도 지혜 덕분입니다 라고 아리송하게 대답했습니다. 이 지혜의 내용을 그 이후 10여 년이 지나서 그의 자서전에서 밝혔습니다. 마라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오로지 결승점만을 목표로 하고 달렸는데 10여 키로 정도 달리면 피로가 왔다고 합니다. 목표지점에서 30키로나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심리적인 부담이 와서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주의 방식을 바꿨는데 달리는 거리를 사전에 조사하여 눈에 잘 띄는 건물이나 광고판 등을 적당한 거리거리에 정하여 놓고 한 코스 한 코스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점과 종점으로 삼고 달렸더니 피로도 덜하고 심리적인 압박감 없이 잘 달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코스마다 시작하는 마음으로 달리니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자세로 살면 일생을 멋지게 살게 됩니다.
서양의 “스핑크스 수수께끼”에 보면 인간이 육신이라는 탈것을 타고 지상의 입구에 내렸을 때 스핑크스 괴물이 길을 막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이 이제 시간의 덫에 걸린 것을 아는 가” 라고. 인간은 시간의 덫에 걸려서 육신의 수레에 의지한 채 한 필의 삶의 피륙을 짜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구약의 오늘의 본문의 때 설명은 더 명쾌합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매일 매일 한결같아야 합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계속하여야 효력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꾸준하게 계속하여야 효과를 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상쾌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 시간들이 특색을 가지고 맞아줍니다. 자연의 사계절처럼 말입니다. 인생에게도 삶의 계절들이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이름 하는 각 계절은 각기 특색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는 생물들이 다시 활기를 찾습니다. 죽었던 만물들이 다시 살아납니다. 여름에는 무더위로 좀 지겹고 짜증나는 때도 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시원한 계곡이나, 울창한 숲 속, 혹은 바닷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름이 지나 가면 가을이 성큼 다가옵니다. 그 땐 총천연색의 단풍을 즐깁니다. 늦가을에 낙엽들을 밟으면서 사색에 깊이 잠기게 됩니다. 겨울 역시 좋습니다. 하얀 눈이 대지 위에 내릴 땐 어린이들은 너무나 좋아합니다. 어른들도 어린이들처럼 즐거워합니다. 길이 미끄러워 고생은 많이 합니다만. 사계절들이 모두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한 계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각 계절에 해당한 가치관, 우선순위, 태도, 활동내용, 스타일 등등이 다릅니다. 따라서 삶의 각 단계에서 거기에 해당된 요구들이 충족되어야 하고, 주어진 의무들이 수행되어야 하고 또한 해당된 문제들을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 각자의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의 여행에 여호와 하나님이 정한 법칙(룰)입니다. 우리 모든 인생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이 기한과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인생의 처음 출발이 봄입니다. 봄은 생성의 계절인데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 소년 소녀가 되고 미혼 청년기가 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그 길고 무더운 계절인 여름은 여러 가지의 놀랍고 신기한 일들이 생기는 계절입니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기르고 직업을 갖거나 사업을 일으키는 기간입니다. 삶의 생명력을 한껏 발휘하는 계절입니다. 여름은 그 낮의 그 뜨거움과 벅찬 일 때문에 피곤해지고 불안한 시기입니다. 사회 각 계의 중진 자리에서 보람 있는 일에 종사하는 시기입니다. 가정적으로도 안정감을 찾습니다. 하고픈 일을 어느 수준까지 올려놓는 시기입니다. 중년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인생의 가을의 찬바람이 조금씩 느껴집니다. 이른바 삶의 은퇴기입니다. 그러나 이 가을 역시 아름다운 계절이요 여유 있는 계절입니다. 이때는 일에서 해방되는 시기입니다. 후배들과 자식들이 대신 그 자리를 메우고 열심히 일해 주기 때문입니다. 고로 허리띠를 늦추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쉬면서 일찍 심었던 인생의 수확을 걷어 들이면서 여유 있는 삶을 삽니다. 손자 손녀들이 생겨서 주변을 맴돕니다. 그러나 그들을 길러야 할 책임은 없습니다. 오직 그들을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한창의 여름, 일거리가 너무 많아서 쉬지 못하고 뛰신 분들은 가을이 되면 푹 쉽니다. 여기에 가을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배꽃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그 아름다웠던 배꽃이 떨어진 다음에 오는 열매를 먹는 것은 더 좋습니다.
가을이 지나면 곧 겨울이 닥칩니다. 추위를 잘 타시는 노인들은 겨울이면 바깥출입을 거의 안 합니다. 새들은 더위를 찾아 남쪽으로 이주하고 나뭇잎은 떨어져 앙상하게 되고 모두가 활동을 중지하는 듯 합니다. 봄에 올라왔던 싹들이 여름에는 그토록 무성하게 푸르더니 어느새 색깔이 변하고 그리고는 곧 시들어 겨울에는 모두 죽어 버리고 맙니다.
자연의 사계절도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라면 삶의 사계절도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고로 우리 모두는 이 삶의 사계절을 겸손히 받고 순종하여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즐겁게 옮겨가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자연의 사계절에 차례로 적응해 가듯, 인간 삶의 한 계절 한 계절에 기쁘게 적응해 가야 합니다. 한 계절의 기한과 목적이 끝나면 다른 계절로 옮겨가야 한다는 진리를 우리 모두 겸손히 받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이 정해주신 이 기한과 목적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 분들입니다. 다른 계절에의 진입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항상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으려는 청년들은 늘 봄에만 살려는 사람들입니다. 다 커서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젊은이들은 다음 계절로 들어가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름을 계속 연장하려고 합니다. 외모에 있어서, 활동에 있어서, 가치관에 있어서, 삶의 스타일에 있어서 자기 나이에 걸맞지 않는 태도를 고집합니다. 이것은 마치 가을이 왔는데도 가을의 옷을 거부하고 여름의 옷을 고집하는 것과 같습니다. 겨울이 왔는데도 가을의 옷을 계속 입겠다는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 모두에게 각 계절에 따라서 필요한 은총을 주셨습니다. 인생의 전반부에서는 야망, 에네르기, 기회 등을 주셔서 가정을 구성케 하고,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시작하게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게 하십니다. 나머지 후반부에서는 또 다른 선물들로 채워주시는데, 예를 들어 생존경쟁에서 등한히 했고 잊었던 우정, 가족들에 대한 관심, 숨어있던 재능들을 다시 가동시켜서 마음과 정신이 높이 고양되어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해 줍니다. 우리 삶의 전반과 후반은 각기 그 나름대로의 삶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양자가 뒤섞여질 때 노이로제 현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따라서 전반부의 삶의 스타일을 과감하게 버리고 후반부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취하여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각 계절에서 도전과 기회가 주어집니다. 고로 당당하게 자신 있게 한 계절에서 다음의 계절로 건너가시기 바랍니다.
각자의 계절의 도전과 기회를 적절하게 이용하셔야 합니다. 이에 방해되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나간 과거에 머물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보다 즐거웠고 생산적이었고 충만했던 계절들을 부러워합니다. 그 좋고 아름다웠던 과거사를 지금의 상념과 대화 속에 계속 전시하고픈 유혹을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의 계절의 축복을 지나쳐 버립니다. 인생의 가을이나 초겨울에 들어 선 사람들이 곧 잘 빠지는 유혹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을이나 겨울에 누릴 인생의 멋진 성숙의 아름다움을 맛보지 못하고 맙니다.
두 번째의 방해 요소는 미래에 살고자 하는 유혹입니다. 정작 주변의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고 쌍안경을 가지고 멀리만을 보려는 사람과 같습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설문을 했더니 9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기대하며 산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어떤 것에가 아니라 미래만을 생각하는 이들은 예를 들면 더 좋은 일자리, 결혼, 승진, 아이들의 미래 등을 생각하거나 은퇴를 바란다거나 심지어 죽음을 기다리면서 산다는 분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지나가고 있는 그 계절을 전혀 즐기지 못합니다. 오늘이 나의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연의 계절이 겨울인데 춥다고 여름을 동경하거나 아니면 봄만을 그리워하면서 산다면 그는 인생의 주요 부분을 놓치는 것입니다. 여름을 만났으면 그 뜨거움을 즐기셔야 합니다. 겨울이 오면 오싹 오싹 추운 겨울의 맛,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의 계절을 즐기십시다. 추위와의 전쟁도 해 볼만 합니다. 그것이 도전을 주고 용기를 줍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계절로 진입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특히 겨울을 싫어하는 이유는 잎이 모두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을 보기 싫어서 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삶의 끝 계절로 들어서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라도 더 연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여호수아처럼 하늘의 태양이라도 멈추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늙고 싶지 않고 그리고 죽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늙는 때가 있고 죽는 때가 있다고. 이것이 우리 인생에 정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봄이 온다는 확신을 줍니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 라는 시구처럼 삶의 사계절 이후에는 영원한 봄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현재 어느 계절에 있으신 가요 그 계절을 즐기세요. 신 바람나게 즐기세요. 겨울이라도 즐기세요. 그리고 겨울이 끝나면 영원한 봄을 누릴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만해 놨습니다. 미래에 살아서도 아니 되고 과거에 살아서도 아니 됩니다. 오늘에 살아야 합니다. 수송교회 71년을 맞으셨습니까 오늘을 여러분의 교회의 삶의 시작으로 알고 교회에 충성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난날에 연연하지 마세요. 오늘이 여러분의 삶의 시작입니다. 오늘이 여러분의 삶의 끝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