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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마지막 승리는 화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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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우화 중 네 마리의 황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들에서 네 마리의 황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네 마리의 황소들은 풀을 뜯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늘 함께 했습니다. 위험이 닥치면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사자 한 마리가 황소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입니다. 이 사자는 네 마리의 황소를 한꺼번에 상대하기가 너무나 힘에 겨웠습니다. 어느 날 사자는 약간 뒤쳐져 풀을 뜯는 황소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입니다. “다른 소들이 네 흉을 보더라”
사자는 다른 소들에게도 차례로 거짓말을 합니다. 그때부터 네 마리의 황소들은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합니다. 서로를 경개하고 의심합니다. 미워합니다. 시기합니다. 결국 황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사자는 황소들을 차례로 공격해 네 번의 멋진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탄의 전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저와 여러분의 삶,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갖가지 ’불신의 씨앗’을 던집니다. 의심을 가져다 줍니다. 불평을 가져다 줍니다. 소문을 퍼뜨리게 합니다. 좋은 점, 장점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단점과 약점만을 보게 하고, 비웃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게 합니다. 이간질시킵니다. 서로를 비난하고 멀어지게 합니다. 사단의 전략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삶, 믿음생활을 무너뜨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님의 특징은 사랑하게 합니다. 좋은 것만 보게 합니다. 칭찬하게 합니다. 격려합니다. 평화 하게 합니다. 평안하게 합니다. 화평하게 합니다. 화목하게 합니다. 평강과 강건을 가져다 줍니다. 이해해주고 용서합니다. 손잡아 줍니다. 서로를 세워줍니다.
(잠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평안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화평으로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늘 화목하고 평강에 평강이 같이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늘 강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여기 화평케 하는 자란 화평을 만드는 자, 평화를 만드는 자, 화목케 하는 사람, 다시 말하면 이 말은 평안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자, 화목의 예찬론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화목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자, 화해를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화평은 가만히 앉아서 바라거나 선이나 요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언제나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Peace Maker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화해를 원하고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먼저 한 걸음 나아가서 행동하고 실천하지 않고 화해를 기다립니다. 화해를 먼저 청하지 못합니다. 이때 누군가가 나서서 중간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 사이에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고,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된 저희들을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피흘려 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 사이에 화평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와의 불화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찬송가404장 1절)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여호와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부전자전(父傳子傳)(Like a father, like a son)-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들이 그 생김새뿐 아니라 성격에 있어서나 말씨에 있어서나 행동이며 습관에 있어서까지 그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 큰 소리쳐도 불평하고, 문제 일으키고, 원망하며, Trouble Maker가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꼭 어디를 가든지 가는데 마다 Trouble Maker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의 성품을 닮았습니까 문제를 일으키고, 이간질시키고, 싸우게 만듭니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마귀의 자녀입니다.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히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평화를 도모할 것이요.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화목이 없이는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성공했다 해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서로에게 평안이 임할 때, 평화할 때만이 기도가 응답됩니다.
마태복음 5장 24절에 보면, 너희가 제물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누가 너를 원망하는 일이 생각나거든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돌아가서 - 그 사람이 누구든, 무슨 일로 걸렸던 상관하지 말고 - 무조건 평화하고, 속히 화해하고 그리고 와서 제물을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화해가 우선이요, 평화가 우선이요, 화평이 먼저 있어야 기도응답이 임합니다. 모든 일에 축복이 임합니다. 하고자 하는 일들이 형통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듣지 Peace Maker 가 되십시오. 화해자가 되고 축복자가 되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평안과 화평을 만드는 사람, 어디들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화목동이가 되는 것입니다.
화평을 만드는 사람은 평안의 복을 받습니다.
시편 37:37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화평을 만드는 사람은 희락의 복을 받습니다. 좋은 일만 생깁니다.
잠언 12:20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궤휼이 있고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사람이 희락이 마르면 건강도 마릅니다. 희락이 있는 사람은 정신적, 육신 적으로 건강합니다. 그렇습니다. 화평을 만드는 사람은 육신의 건강을 보장받습니다. 잠언 14:30 ”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 화평을 깨는 사람에게는 슬픔과 괴로움만 있을 뿐입니다.
화평을 만드는 사람은 의의 열매를 거두는 복을 받습니다.
야고보서 3:18 ”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의의 열매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 해주시는 복입니다. 기도하면 들으시고, 그의 말과 행동을 보장하시고 책임을 져주시는 복입니다.
화평을 만드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의 복을 받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크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지옥의 자녀, 마귀의 자녀의 특징은 화평을 깨는 불화를 일으킵니다. 상대의 단점을 꼬집습니다. 문제를 일으키고, Trouble Maker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도 화평케 하는 Peace Maker가 될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은 화평케 하는 직책을 너희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화목케 하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나 자신이 화목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든 사람 사이에 서서 불화한 관계, 원수된 관계, 서로 시기 질투하는 세상에 나가서 사랑과 희생과 온유와 인내로 화평을 이루는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 사역을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자기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중국에 두 나라가 서로 싸우는데, 가만히 보니까 더 싸우다 간 두 나라가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이것을 알고 지혜로운 사람 하나가 중간에 나타나 이쪽 나라에 가서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비유해 말하면 당신네는 만월 같고 저쪽 나라는 초생달 같은데, 뭐, 큰 나라가 요 쪼그만 나라를 치려고 하십니까”
그러니까 그 왕이 기분이 좋아 가지고 ”아 그러면 그만 두지 뭐 그까짓거. ” 그래서 기분이 좋았답니다. 그리고 전쟁을 그만 두게 되는데, 이분이 또다시 다른 쪽 나라에 가니까 이쪽 왕이 하는 말이, ”아니 그 나라는 만월이고 우리는 초생달이라 고 이 사람 우리를 이렇게 무시해” 그러니깐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만월은 이제부터 기울 것이고 초생달은 이제부터 커질 것이 아닙니까 절대로 무시한 게 아닙니다. ”
”오, 그거 괜찮구먼!”
그래서 안 싸웠답니다. 글쎄요. 우리의 말 한마디로 인해서 이렇게 쉽게 화해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화목 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넓은 사랑이 있어야 하고, 때로 값을 지불해야 될 때는 그 값을 내가 지불해야 됩니다. 내 편에서 지불할 때만이 화평은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과 조카 롯의 종이 목장 관계로 불화가 생길 때에 아브라함은 화평케하기 위해 거대한 자신의 좋은 목장을 양보합니다.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물과 피를 흘리시므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요일 4:10-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여호와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렇습니다.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겸손해야 됩니다. 사심이 없어야 되고 마음을 비워야 됩니다. 내 욕심을 챙기고 내게 돌아오는 이권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절대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유순한 대답은 노를 쉬게 한다고 말합니다. 저쪽에서는 펄펄 뛰지마는 나는 온유합니다. 온유한 자만이 화평케 할 수 있습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서두르면 안됩니다. 조급한 자는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화평은 절대로 급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은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관용이 필요합니다. 이해해 주고, 용서해야 합니다. 참아야 합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 시켜야 합니다. 자기 희생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겼다고 평화가 아닙니다. 내가 이기는 순간 다른 사람은 졌으니까. 내가 빼앗았다고 좋아할 것이 못됩니다. 빼앗긴 자의 눈물이 저기에 있으니까 말입니다. 내가 성공했다고 기뻐할 것이 못됩니다. 많은 사람의 실패와, 어려움과 억울함이 저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생각해야합니다. Final triumph는, 마지막 승리는 화평, 화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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