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다 끝이 있습니다
본문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저희가 우리 자취를 엿보니 우리가 거리에 행할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이 다하였고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 우리를 쫓는 자가 공중의 독수리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에서도 쫓고 광야에도 매복하였도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하루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며, 한 달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며, 일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월 초하루가 시작이라면 12월 31일은 그 해의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태어날 때가 있으면, 삶을 마감해야 하는 끝이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처음 시작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이 다 하였고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말씀을 중심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이 한 해도 날수가 다 하였습니다.
송구예배를 통해 예배 드리면서 지난 일은 흘러 보내고 영신 예배를 통해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각오를 합니다.
많은 새로운 설계들과 꿈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뜻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 보려고 발버둥쳐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해 놓은 것도 없이 어느새 봄도 지나고, 여름도 지나고 단풍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게 했던 가을도 지나고 흰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든 성탄절도 지나 이 한해의 끝 날이 우리의 삶의 곁으로 점점 큰 소리를 내며 다가왔습니다.
’이 한 해도 다 지나가게 되었구나’ 생각이 들 때 지난 한 해를 살아오면서 잘 했던 일보다는 후회스러운 일들만 뇌리를 스쳐 지나가니 착잡하기만 합니다.
세월이 빠르다고 하더니 정말 세월이 빠르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유수같은 세월, 날아가는 세월이란 말씀이 너무도 강렬하게 가슴에 부딪혀 옵니다.
높은 건물 위에서 물건을 떨어뜨리면 점점 가속이 붙어 땅이 가까울수록 빨라지듯이 인생도 끝이 가까울수록 세월이 빨라지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보내는 세월하고, 연세가 높은 어른이 보내는 세월하고 똑같은 시간이기는 하나 느낌으로 10배, 100배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빠른 세월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옳은가 성경의 교훈을 찾아봅시다.
세월에 대하여 골로새서 4:5.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했고, 에베소서 5:16.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빠른 세월 탓하지 말고 시간을 아끼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을 금쪽처럼 나누어 아낀다면 후회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에이버리”는 ”무슨 물건이든지 낭비해서는 안되지만 더욱 시간을 별코 낭비해서는 안된다. 오늘이란 날은 단 한번밖에 오지 않고 결코 두 번 오지 않는다. 시간을 하늘이 준 선물 가운데 가장 귀한 것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한 번 잃으면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시간도 24시간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시간을 살았습니다. 알렉산더나 칼빈이나 에디슨같은 사람도 하루 24시간 살았을 뿐입니다. 이들은 최대한 시간을 아껴서 최선의 노력을 한 사람이기에 그들의 생애에 놀라운 열매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시인 호지슨도 시간이 머물러 주지 않음에 대한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시간, 그대 늙은 집시 노인이여.
시간 잠시 머무르지 않으려우.
다만 하루라도 그대 마차를 멈추지 않으려우
그대 내 길손이 된다면 모든 것 다 주리.
그대 노새에겐 은방울 달아주고
금은방에 부탁해서 그대에게 크다란 금반지도 만들어 주리
공작이 그대를 겸손하게 맞이하게 하고 아이들은 노래하게 하며
오! 게다가 소녀들은 산 나무로 그대를 꾸미리
시간, 그대 늙은 집시 노인이여
무슨 까닭이 있어 그처럼 총총히 가버리느뇨
지난 주일엔 바벨론에, 어젯밤은 로마에,
오늘 아침에는 군중에 섞여 성 바울 사원 지붕 밑에,
그대 성 바울 사원 시계탑 밑에 마차를 세우나
그것도 잠시뿐 다시 떠나네
어머니 태중에서 눈 뜨지 않은 다른 도시로 떠나
무덤에 들어가기 전의 다른 도시로
시간 그대 집시 노인이여
잠시 머무르지 않으려우
다만 하루라도 그대 마차를 멈추지 않으려우
하루만이라도 멈추어 준다면 달라는 것 다 줄테니 제발 단 하루만이라도 멈추어 달라는 애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애타게 시간을 잡으려해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성실히 살아가는 길만이 최선의 방침이요, 때를 아끼는 지혜가 됩니다.
성도들은 맡은 사명 감당하고, 좀더 성경보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에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 인생의 끝이 점점 가깝다는 말입니다.
중국의 노자는 ”끝을 삼가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살이에는 끝이 중요합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24:1
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끝을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 끝이 가까워지고 있는 삶입니다. 끝이 가까워올수록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일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인내를 말하기도 합니다. 각각 사람의 주장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입장에서 볼 때 끝이 가까울수록 우리는 예수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이유는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신 분이기에 그와 가까이하는 자는 마지막에 승리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3
3.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하는 말씀 따라 최후의 승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 가능한 것입니다.
내 인생 끝나면 주님 만나야 하는데, 그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에 죽었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말씀하시던 주님이 내가 너희 안에 대신에 ”내 말이 너희 안에”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 모신 삶이란 말씀되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함께 사는 이에게 끝은 더욱 영광스럽고 승리로 가득 할 것입니다.
요셉이 믿음으로 살다가 승리했습니다.
3. 세상의 마지막이 이르렀습니다.
베드로전서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처럼 진정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습니다.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세상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때 많은 사람이 미혹케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 말씀이 여기 저기서 이곳 저 곳에서 성행되고 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구의 마지막이 가까운 것입니다.
베드로의 충고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며 믿음에 굳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솝 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살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창기병을 들에 태운 말이 용감하게 적진을 향하여 달렸습니다.
적군들은 흩어져 도망을 쳤습니다. 멀리서 이런 광경을 본 돼지가 말에게 말했습니다.
”말님 조심하셔야지 그러다가 크게 다치겠습니다” 그러자 말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생각해 주는 것 매우 고맙네 하지만 날마다 놀고먹다가 살이 오른 다음에 잡혀 먹힐 날을 기다리는 당신 눈에는 내가 어리석게 보일런지는 몰라도 우리는 자기의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다가 죽는 것을 더욱 귀중하게 여긴 다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취하여 어떻게 살던 잘먹고 잘 살면 된다는 안일한 방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부정과도 피흘리기까지 싸우다 죽는 것이 명예로운 죽음입니다.
요즘은 외국에서 오래 거주하다 온 학생들에게 특별 입학시키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부정 입학한 학생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3학년들 부모님들 얼마나 고생이 많은지 모릅니다. 밤 12시에 들어와 새벽 6시면 학교로 보내는 부모나 학생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권세 있고, 명예 있고, 돈이 있는 부모 가진 자녀들, 외국 나가지 않고 부정적인 방법으로 입학한 학생들과 부모들, 그리고 이런 방법은 세상을 살아 온 사람들은 깊이 회개하는 기회와 선량한 학생들에게 깊이 사과해야 될 것입니다.
힘이 들고 고생이 되더라도 정도를 걸으며 정직하게 바르게 살다가 잘 살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노하지 말고 이것이 큰 명예인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의 끝도 지구의 종말도 다가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최후의 승리를 위해 값진 삶을 꾸려 갑시다.
침례교인이 갖추어야 할 정신적 자세와 침례교회의 특성을 요약해 놓았습니다.
왜 굳이 ’침례(밥티스마)’라는 낱말을 사용하는지,
왜 침례교회에는 ’장로’직분이 없는지 그 궁금증을 모두 해결해 드립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하루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며, 한 달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며, 일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월 초하루가 시작이라면 12월 31일은 그 해의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태어날 때가 있으면, 삶을 마감해야 하는 끝이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처음 시작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이 다 하였고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말씀을 중심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이 한 해도 날수가 다 하였습니다.
송구예배를 통해 예배 드리면서 지난 일은 흘러 보내고 영신 예배를 통해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각오를 합니다.
많은 새로운 설계들과 꿈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뜻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 보려고 발버둥쳐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해 놓은 것도 없이 어느새 봄도 지나고, 여름도 지나고 단풍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게 했던 가을도 지나고 흰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든 성탄절도 지나 이 한해의 끝 날이 우리의 삶의 곁으로 점점 큰 소리를 내며 다가왔습니다.
’이 한 해도 다 지나가게 되었구나’ 생각이 들 때 지난 한 해를 살아오면서 잘 했던 일보다는 후회스러운 일들만 뇌리를 스쳐 지나가니 착잡하기만 합니다.
세월이 빠르다고 하더니 정말 세월이 빠르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유수같은 세월, 날아가는 세월이란 말씀이 너무도 강렬하게 가슴에 부딪혀 옵니다.
높은 건물 위에서 물건을 떨어뜨리면 점점 가속이 붙어 땅이 가까울수록 빨라지듯이 인생도 끝이 가까울수록 세월이 빨라지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보내는 세월하고, 연세가 높은 어른이 보내는 세월하고 똑같은 시간이기는 하나 느낌으로 10배, 100배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빠른 세월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옳은가 성경의 교훈을 찾아봅시다.
세월에 대하여 골로새서 4:5.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했고, 에베소서 5:16.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빠른 세월 탓하지 말고 시간을 아끼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을 금쪽처럼 나누어 아낀다면 후회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에이버리”는 ”무슨 물건이든지 낭비해서는 안되지만 더욱 시간을 별코 낭비해서는 안된다. 오늘이란 날은 단 한번밖에 오지 않고 결코 두 번 오지 않는다. 시간을 하늘이 준 선물 가운데 가장 귀한 것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한 번 잃으면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시간도 24시간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시간을 살았습니다. 알렉산더나 칼빈이나 에디슨같은 사람도 하루 24시간 살았을 뿐입니다. 이들은 최대한 시간을 아껴서 최선의 노력을 한 사람이기에 그들의 생애에 놀라운 열매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시인 호지슨도 시간이 머물러 주지 않음에 대한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시간, 그대 늙은 집시 노인이여.
시간 잠시 머무르지 않으려우.
다만 하루라도 그대 마차를 멈추지 않으려우
그대 내 길손이 된다면 모든 것 다 주리.
그대 노새에겐 은방울 달아주고
금은방에 부탁해서 그대에게 크다란 금반지도 만들어 주리
공작이 그대를 겸손하게 맞이하게 하고 아이들은 노래하게 하며
오! 게다가 소녀들은 산 나무로 그대를 꾸미리
시간, 그대 늙은 집시 노인이여
무슨 까닭이 있어 그처럼 총총히 가버리느뇨
지난 주일엔 바벨론에, 어젯밤은 로마에,
오늘 아침에는 군중에 섞여 성 바울 사원 지붕 밑에,
그대 성 바울 사원 시계탑 밑에 마차를 세우나
그것도 잠시뿐 다시 떠나네
어머니 태중에서 눈 뜨지 않은 다른 도시로 떠나
무덤에 들어가기 전의 다른 도시로
시간 그대 집시 노인이여
잠시 머무르지 않으려우
다만 하루라도 그대 마차를 멈추지 않으려우
하루만이라도 멈추어 준다면 달라는 것 다 줄테니 제발 단 하루만이라도 멈추어 달라는 애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애타게 시간을 잡으려해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성실히 살아가는 길만이 최선의 방침이요, 때를 아끼는 지혜가 됩니다.
성도들은 맡은 사명 감당하고, 좀더 성경보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에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 인생의 끝이 점점 가깝다는 말입니다.
중국의 노자는 ”끝을 삼가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살이에는 끝이 중요합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24:1
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끝을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 끝이 가까워지고 있는 삶입니다. 끝이 가까워올수록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일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인내를 말하기도 합니다. 각각 사람의 주장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입장에서 볼 때 끝이 가까울수록 우리는 예수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이유는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신 분이기에 그와 가까이하는 자는 마지막에 승리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3
3.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하는 말씀 따라 최후의 승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 가능한 것입니다.
내 인생 끝나면 주님 만나야 하는데, 그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에 죽었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말씀하시던 주님이 내가 너희 안에 대신에 ”내 말이 너희 안에”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 모신 삶이란 말씀되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함께 사는 이에게 끝은 더욱 영광스럽고 승리로 가득 할 것입니다.
요셉이 믿음으로 살다가 승리했습니다.
3. 세상의 마지막이 이르렀습니다.
베드로전서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처럼 진정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습니다.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세상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때 많은 사람이 미혹케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 말씀이 여기 저기서 이곳 저 곳에서 성행되고 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구의 마지막이 가까운 것입니다.
베드로의 충고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며 믿음에 굳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솝 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살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창기병을 들에 태운 말이 용감하게 적진을 향하여 달렸습니다.
적군들은 흩어져 도망을 쳤습니다. 멀리서 이런 광경을 본 돼지가 말에게 말했습니다.
”말님 조심하셔야지 그러다가 크게 다치겠습니다” 그러자 말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생각해 주는 것 매우 고맙네 하지만 날마다 놀고먹다가 살이 오른 다음에 잡혀 먹힐 날을 기다리는 당신 눈에는 내가 어리석게 보일런지는 몰라도 우리는 자기의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다가 죽는 것을 더욱 귀중하게 여긴 다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취하여 어떻게 살던 잘먹고 잘 살면 된다는 안일한 방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부정과도 피흘리기까지 싸우다 죽는 것이 명예로운 죽음입니다.
요즘은 외국에서 오래 거주하다 온 학생들에게 특별 입학시키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부정 입학한 학생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3학년들 부모님들 얼마나 고생이 많은지 모릅니다. 밤 12시에 들어와 새벽 6시면 학교로 보내는 부모나 학생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권세 있고, 명예 있고, 돈이 있는 부모 가진 자녀들, 외국 나가지 않고 부정적인 방법으로 입학한 학생들과 부모들, 그리고 이런 방법은 세상을 살아 온 사람들은 깊이 회개하는 기회와 선량한 학생들에게 깊이 사과해야 될 것입니다.
힘이 들고 고생이 되더라도 정도를 걸으며 정직하게 바르게 살다가 잘 살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노하지 말고 이것이 큰 명예인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의 끝도 지구의 종말도 다가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최후의 승리를 위해 값진 삶을 꾸려 갑시다.
침례교인이 갖추어야 할 정신적 자세와 침례교회의 특성을 요약해 놓았습니다.
왜 굳이 ’침례(밥티스마)’라는 낱말을 사용하는지,
왜 침례교회에는 ’장로’직분이 없는지 그 궁금증을 모두 해결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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