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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십시오

본문

오늘 본문에서는 예레미야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위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특별히 선지자, 주의 종 및 주의 일과 관련된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볼까요
1. 선지자 역할의 고통
먼저 본문은 선지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가르쳐줍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종, 선지자의 고통을 이처럼 생생하게 표현한 구절이 있을까요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모친이여
모친이 나를 온 세계에게 다툼과 침을 당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뀌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뀌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온 세계가 자기와 다투고 자기를 치며, 사람들이 다 자기를 저주한다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유다가 축복 받는다. 다시 힘을 회복한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혼자서 유다는 멸망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다 예레미야를 매국노라고 비난하지 않겠습니까
진실을 진실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것은 때로 이처럼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증거합니다.
긍정적으로 말했던 다른 모든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이고,
예레미야의 예언만이 참된 예언이었음을 성경과 역사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하는 예레미야의 고통은 너무 컸습니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마음에 이런 고통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자로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 사실은 믿는 자에게 고통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2. 힘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고통이 똑같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축복입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를 만나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 사람도 다 연약한 양에 불과하기 때문에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를 만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고난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보는 눈을 뜨게 되는 축복이 있지 않습니까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고통의 과정에서 주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다윗은 항상 그런 삶을 살았기에 그 무수한 고난을 이기고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시편 143편 8절 말씀을 보면
인생 최대의 고난을 만났을 때에 다윗이 고난을 극복하는 비결이 나옵니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8절)
그는 새벽마다 조용히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묵상함으로 힘을 얻었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만났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조용한 묵상의 시간입니다.
조용한 묵상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1)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2) 마음이 맑아지고 차분해집니다.
3) 그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감을 얻게 됩니다.
4) 여호와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생명력이 충일해집니다.
이런 모습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만물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닭도 조용한 음악을 들려주면 알을 더 낳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시끄러운 재즈 음악을 틀어주면 신경질을 부리고 알을 낳지 않습니다.
젖소도 조용한 음악과 맑은 물소리를 들려주면 젖을 더 많이 낸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내가 해결할 일이 있고 내 힘으로는 풀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해결하고 풀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열심히 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못하는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마다 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3. 십자가는 복의 근원
여호와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는 선지자를 복의 근원으로 삼을 것입니다.
본문 11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 너로 복을 얻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대적으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
저는 이런 말을 좋아합니다. 역전타를 날리시는 여호와 하나님!
이 본문을 보십시오. 얼마나 멋있는 역전타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저주하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축복해 달라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만 참아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수욕 받은 만큼 영광스런 자리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끄실 것입니다.
천국의 삶은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애굽에서 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도록 끝까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려움을 만났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그때가 바로 인생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환경에 처했느냐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부가 축복인 사람이 있고 가난이 축복인 사람이 있습니다.
번성하고 부가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다면 그게 무슨 축복일까요.
어떤 때는 가난이 축복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 삶에 생동감이 있고, 신선함이 있고, 의욕이 있고,
기도가 있고, 신앙적 열심히 있었던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부해지면 신앙이 느슨해지고, 감사를 잃어버리고, 불평이 늘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연약성이고 인간의 한계성입니다.
노아가 언제 실수하게 됩니까
세상이 악할 때 노아는 결사적으로 여호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았습니다.
실수가 별로 없는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늘 긴장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언제 실수하게 됩니까 홍수가 끝난 후에 실수합니다.
포도농사가 잘되고 대풍이 들었고, 모든 긴장이 사라졌을 때입니다.
그때 술에 취하고 주정을 부리고, 옷을 벗어 던지고 추태를 부립니다.
긴장이 풀리니까 노아도 이런 방심을 하는 것을 보십시오.
자신의 추태를 보고 아들이 웃었다고 아들을 저주하는 태도를 보십시오.
성자 같았던 노아가 홍수 중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아들을 저주합니다.
역시 사람은 문제가 없고 편할 때 실수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사단이나 사자가 무서운 얼굴로 다가오면 정신차리고 방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사자는 웃으며 다가오는 사자입니다.
그 사자가 바로 사단입니다. 그러므로 웃음꽃이 필 때 더욱 깨어 경성해야 합니다.
겨울의 열흘보다 여름의 하루가 음식을 더 썩게 만드는 것처럼
사람도 고생할 때보다 형통할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생스러운 것, 힘든 일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 내 삶에 여호와 하나님밖에 의지할 분이 없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을 꼭 붙잡아 마지막을 웃음으로 장식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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