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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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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금년의 마지막 주일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이런 마지막 날이 되면 사람들은 소위 ’망년회’라는 것을 갖습니다.
지난 일을 잊어버리고 새해를 맞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오늘을 잊어버리는 날로 삼을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날로 삼아야 된다고 생각.
물론 우리들이 잊어버려야 할 것도 있지요.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원한, 마음 아팠던 것들, 과거에 실패했던 것들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또 성공했던 것들, 너무 자랑스러웠던 것도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교만해 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만 상책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 입은 것들, 감사해야 할 것들은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잊어버려야 할 것이 있음과 동시에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것, 하나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까 너의 창조자를 잊지 말고 꼭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소위 ’망년회’를 갖는 날이지만, 오히려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이 말씀을 함께 생각하면서 이 한 해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이 말씀은 누구에게 준 말씀일까요
여기 1절에 보면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청년의 때가 언제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2,30대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4,50대도 아직 청년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60대도 아직 청년이라고 합니다.
옛날 같으면 60대는 완전히 노인측에 들었는데 요즈음에는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
허기사 죤 그렌 같은 사람은 77세에 우주 비행기를 탔습니다.
’미국의 샤갈’로 불리는 리버만이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81세에 그림공부를 시작했습니다.
89세에 미국의 명문대학 하바드를 졸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청년의 때란 나이로 계산할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면에서 청년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전도자는 청년의 때를 말하기를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바로 그런 때에 창조자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청년의 때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곤고한 날,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그 아래 보십시오.
3절에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손이 쇠약하여 떨게 될 것이라는 뜻),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다리가 쇠약해 져서 구부러진다는 말),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치아들이 빠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 질 것이며” (눈의 시력이 쇠하여 분별하지 못한다는 뜻)
4절에 ”길거리 문들이 닫혀 질 것이며” (귀의 청력이 떨어져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는 뜻),
어떤 분이 자신의 노년기를 표현한 글 가운데 이러한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젊은 시절이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전연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밤마다 잠자리에 들어 그 다음날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나의 귀는 서랍 안에, 나의 이는 컵 속에, 나의 눈은 책상 위에 놓여져 있곤 한다. ”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치아가 적어 입술로 오물거려 음식을 씹는 것이라는 말),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 (신경쇠약으로 잠을 자지 못하고 일찍 일어나는 것을 뜻함), ”음악하는 여자들이 다 쇠하여 질 것이며” (노래하는 발성력이 쇠약하여 진다는 뜻),
5절에 ”높은 곳을 두려워 할 것이며” (높은 곳을 잘 오르지 못함을 뜻함), ”길에서도 놀랄 것이며” (평지에서도 잘 넘어짐으로 자주 놀란다는 뜻),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머리카락이 희어 질 것이라는 말),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적은 것이라도 힘이 부쳐 짐이 된다는 뜻), ”원욕이 그치리니” (매사에 의욕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말해서, 죽어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게 되고), 그 다음에는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장례식에 사람들이 오고 가게 된다는 뜻이다. )
그러게 되면 6절에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진다” (힘줄과 생명력이 끊어지고 심장과 호흡기관의 박동이 멈추게 된다는 말)
이렇게 해서 7절에 있는 말씀대로 ”흙은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곧 몸은 땅에 묻히고 영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지금의 내가 영원히 계속될 듯이 생각하며 삽니다.
나의 젊음이 계속될 줄로 착각하고, 나에게는 곤고한 날,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안 올 줄로 착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육체적으로 젊을 때에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날이 반드시 온다는 말합니다. 속히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90:10에 무어라고 했습니까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요란했던 새 천년의 첫 해도 이렇게 저물지 않습니까
우리가 금년 첫 날에 얼마나 요란하게 새해를 맞이했습니까
그러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날을 맞았습니다.
이렇게 한 해 한 해를 맞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 곤고한 때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를 맞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지나가고 신속히 가는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말씀은 바로 그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창조자를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창조자를 기억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한 세 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는 줄 안다.
 첫째는, 내게 창조자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서 나는 그 분의 창조를 입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내 자신이 스스로 된 자인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내것인양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고 합니까 (약 4:13-16)
(13)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내가 여호와 하나님 없이 내 마음대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악이라는 말씀.
우리는 그런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연약한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언제나 피조물임을 인식하고 또 주님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하는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창조자를 기억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까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 39:4)
세 가지를 늘 기억하고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는 나에게도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달라고.
또 하나는 그런 나의 종말이 얼마나 빨리 온다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그리고는 나로 그런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교만하지 않고 한 평생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금년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이런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번 따라 해 봅시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창조자를 기억하는 삶입니다.
두 번째로,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말은 피조된 자기의 본분을 바로 알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분인데, 우리가 우리의 창조자를 기억한다는 말은 그런 우리의 본분을 생각하면서 그 본분을 다 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본분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기 13절에 보니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그러니까, 사람의 본분을 크게 두 가지로 말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늘 기억하면서 또 그것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창조자를 기억하는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높인다면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행위가 있는데 그것은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1년 동안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살았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쓴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전에도 말했습니다만, 어떤 사람이 70평생을 살면서 자기가 산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고.
잠- 23년(32. 9%), 일- 16년(22. 8%), TV- 8(11. 4%), 먹는 것- 6년(8. 6%), 여행- 6(8. 6%),
여가- 41/2(6. 5%), 병- 4(5. 7%), 옷- 2(2. 8%), 신앙생활- 1/2(0. 7%).
그런데 이 시간은 70년 평생동안 일주일에 세 번 1시간씩 교회 나가는 데 쓴 시간.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각각 5분씩 묵상의 시간 가짐.
그러니 우리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쓴다해도 얼마나 적은 시간을 쓴다는 것 알 수 있음.
여러분들이 이렇게 매 주일 여호와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 시간이 우리 전체의 시간에 비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들을 빼먹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본분을 다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좁게는 십계명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십계명을 축소하면 무엇이 됩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로 요약된다고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또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이 있지요
그것이 무엇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밖에도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 우리 인생의 본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난 1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셨습니까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셨나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했나요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나요
지난 지난 주일에 선교헌금을 작정했는데, 정말 선교가 우리의 본분인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밖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얼마나 읽었습니까 얼마나 공부하셨습니까
그 말씀대로 살려고 얼마나 노력하셨습니까
이런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목적이라는 말씀입니다.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본분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말은 창조자의 마지막 심판을 기억하면서 살라는 말씀도 됩니다.
여기 14절에 무어라고 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느니라”
또 11:9을 보십시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중한 청년의 때를 주셨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것이나 눈이 좋아하는 것 있습니다.
이것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젊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이나 걱정으로 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마음껏 즐거워하고 마음껏 원하는 대로 한번 살아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금욕적으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마음껏 먹고 마음껏 마시고 마음껏 원하는 일들을 하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는데, 장차 여호와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하는 것이 창조자를 기억하는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금년의 마지막 주일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사람들은 이 날에 소위 망년회를 한다고 하면서 또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면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잊어버리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창조자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창조자가 우리에게 주신 삶의 본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창조자가 나중에 우리의 삶을 다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이것을 기억하면서 보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혹시 내가 인생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려는 교만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장차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업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나간 한 해를 의미 있게 보내고 또 다가오는 한 해를 의미 있게 맞이하여서, 언젠가 우리들에게도 곤고한 때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오더라도 두려움 없이 맞이하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준비를 갖추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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