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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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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 년의 마지막 주일로 감사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일 년 동안 찬양으로 수고해주신 우리 시온찬양대에게 감사합니다. 물론 지금 이 시간 교회학교 교사들도 일 년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지난 1년 동안 돌아보면 감사한 일들이 많은데요,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 때문에 이 시간까지 목회를 할 수 있었고, 또 여기에 서게 됨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한해를 돌아보면서 여러분 모두에게 지난 일 년을 나누어도 남을 수 있는 그런 축복이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저희가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목회자 성경공부를 합니다. 성경공부도 하고 목회계획 얘기도 모였습니다. 성경공부를 다 마치고 일 년을 마감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목사님! KBS연예대상을 하는데 그 대상받은 정종철씨가 수상소감을 들어보셨어요 ”“그게 언제하는 건데요 저는 9시 이후에는 못 봅니다. ” 그랬더니 인터넷에 나와 있으니 꼭 한번 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봤습니다. ‘참 좋다. 참 기특하다. 저런 젊은이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 같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 개그맨 정종철씨의 수상소감 감상-
저는 이분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지난 일 년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그 한마디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신앙심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여러분이 이 젊은이처럼, 2006년 마지막 시간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성경에 있는 말씀을 보면 “일의 끝이 처음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잘난 것 보다는 참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참고, 또 우리 마지막을 잘 정리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두 가지를 성경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1. 끝이 좋으려면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끝이 좋으려면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같이 9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노를 발하는 것! 화를 내를 것! 죄가 아닙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에베소서 4장 2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분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는 건설적인 분노가 있고 파괴적인 분노가 있습니다. 건설적인 분노는 예수님이 성전에 가셔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강도의 굴혈이 되었습니다. 화가 나셨습니다. 채찍으로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형식에 치우신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책망할 때, 건설적인 분노를 내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들, 잘못된 신들에 화가 났습니다. 모세도 아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고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할 때 건설적인 분노를 했습니다.
반면에 파괴적인 분노는 가인과 아벨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내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는데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십니다. 화를 내서 이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파괴적인 분노입니다.
민수기 20장에는 모세가 반석에서 물을 내면서 지팡이로 두 번 내리쳤습니다. 뭐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사명 다 끝났다” 그러시면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파괴적인 분노입니다. 문제는 신앙인이요,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건설적인 분노가 아닌 파괴적인 분노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위대한 사도입니다. 유럽을 복음화 시키고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쓸 정도로 크신 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도 급한 마음에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의 조카 마가, 2차전도 여행 때 바나바가 마가를 데려가려고 할 때 반대를 합니다. 주의 일에 나서겠다는데 반대를 합니다. 이 일로 바나바와 헤어지게 됩니다. 사도바울에 있어서 바나바가 누구입니까 바울이 회심을 했을 때 아무도 바울을 믿어 주지 않습니다. 그때 믿어주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한 은인 중에 은인인데도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차전도 여행 때 마가가 힘들다고 도중하차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처럼 완벽주의자, 완전주의자들은 자기 생각대로 안 되면 화를 내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오해하고 ‘그 사람은 원래 그래!’ 하면서 낙인찍고 뭐한다고 하면 그때 그랬는데 하면서 의심하고 오해하게 되고 결국 화를 내게 됩니다. 사실은 안 그런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도바울이 인생의 만년에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 편지를 쓰기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고 했습니다. 확 달라졌습니다. 사도바울은 내 편이라고 생각했고 내 말에 옳다고 말했던 사람들은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한 사람이 내게 유익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의 저자로써 초대교회의 큰 일군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인도, 사도바울도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그리 쉽게 판단해 버리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죄와 벌’의 저자인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선고를 받고 이제 사형집행이 되게 됐습니다. 사형집행관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하니 5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2분 동안은 ‘그동안 살면서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했고 2분 동안은 ‘살면서 혹시 상처를 주거나 했던 분들에게 용서’를 빌었고 마지막 1분 동안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내가 죽으면 갈 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5분 동안 감사와 용서와 기도를 했을 때 황제로부터 갑작스럽게 사면장이 와서 다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5분의 중요성을 알고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일단은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먼저 생각을 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가 세계적인 소설가가, 문학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5:17장에 보면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자만이 주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극히 인간적인 판단을 해서 급한 마음에 말부터 내 뱉고 화부터 내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지혜로운 자는 이 시간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보기가 좋아도, 그것이 아무리 보기가 나빠도 거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마세요. 속단하지 마세요. 지금 여러분의 형편이 어떻습니까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지난주간 집사님 한분이 눈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병원에 갔는데 그 집사님께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수술을 한 사람이 뭐가 그리 감사한지 여쭤봤습니다. 이 집사님은 공무원인데 높은 사람이 되고 싶었데요.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었는데 정년은퇴를 앞두고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암이 발견된 거예요. 수술 받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셨습니다. 그때 만약에 진급됐으면 바빠서 병원은 무슨 병원입니까 일하다가 그냥 죽었을 것 아닙니까 솔직히 그때는 진급이 안 되서 많이 화가 났었는데 지금 돌아보니까 감사를 드립니다. 눈 수술을 해도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인데 감사할 뿐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제가 말씀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성령님 제게 말씀을 주세요. ’하니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데, “집사님, 여호와 하나님은 집사님보다 집사님을 더 잘 아시잖아요!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더 잘 아시잖아요. 나는 출세를 원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생명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더 잘 아시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뉴욕의 재활병원에 이 글이 써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실로암 안과에도 이 글이 써 있었습니다.
어느 이름 모를 환자가 쓴 글이라고 합니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 지고 싶어 부유함 구했더니 지혜로워 지라고 가난함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폼 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달라고 기도 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것 하나도 주어지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 소원을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미처 표현하지 못한 기도까지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떠세요 어떤 상황과 형편이라고 할지라도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마세요. 기도하세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세요.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세요. 다윗처럼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함께 하심이라”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나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2. 끝이 좋으려면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1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10절입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여러분 옛날이 오늘 보다 낫다는 말을 왜 합니까 오늘에 만족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내일이 보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옛날이 좋다고 옛날에 집착을 하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은 영적으로 마이너스입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게 되면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맹인이 나옵니다. 불행한 인생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의 불행을 보고 누구 죄 때문이냐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의 불행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렇게 하셨다고 그러면서 고쳐주셨습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 옛날을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이고 여호와 하나님 지향적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35장에 야곱은 사람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돈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벧엘로 가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옛날에 좋던 것 다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가 이방신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라헬은 드라빔 우상을 가지고 점을 쳤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여호와 하나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다. 다른 교회 얘기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 설교 중에 뒤에 사람이 듣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권사님들이 옆에 사람 쿡쿡 찌르면서 예배 중에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봐, 올해가 윤년인데 수의는 해놨어 수의 해놔야 좋다는데. 빨리 수의 해놔. ” 말이 됩니까 2006년 쌍춘년이라고 결혼하면 좋다고 합니다. 이제 2006년이 다 지나갔다고 말을 하니 음력으로 하는 거라 아직 남았다고 하더라구요. 여러분 역사의 주인공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 말고 다른 무엇인가가 있어야 되는 것인 냥 말하는 우리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면 다 될 수 있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돈이 있어야 된다고 그러고 명예가 있어야 된다고 그러고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옛날 것을 좋다고 하는 사람은 과거지향적인 사람을 마이너스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이런 것을 좋아합니다. 마귀는 꼭 옛날 것만 얘기를 합니다. 미래에 대해서 얘기를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 은혜 받은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제가 묻겠습니다. 옛날이라 좋다구요 옛날이라고 그리 좋은 게 있습니까 그냥 옛날에 좋았던 것만 생각하니까 좋은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옛날에도 힘들고 어렵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을 때도 있었잖아요. 솔직해 지세요. 일제 36년의 압제, 식민지 생활의 좋았습니까 1950년 김일성이 이 나라에 쳐들어와서 전쟁 일으켜 피난살이 할 때가 좋았습니까
저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목사가 된 것도, 한남제일교회에서 좋은 장로님들과 좋은 교인들 만나서 이렇게 목회하는 것도 좋고 설교하는 것도 너무나 좋습니다. 그런데 밥 먹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밥 먹는 것도 좋습니다. 밥만 먹어도 좋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밥에다 반찬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저는 옷을 입는 것도 너무나 좋습니다. 신발 신는 것도 좋습니다. 옛날에는 신발 도둑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고무신을 사면 구멍 뚫는 게 일이었습니다. 한 개로 부족하면 두 개, 세 개도 뚫었습니다. 그때가 그렇게 좋았습니까 저희 어머니가 어릴 적에 털로 짠 오바를 선물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입고나가니까 대단하더라구요. “창우야! 너 정말 좋겠다. 난 네가 참 좋아. ” 그러면서 사탕하나를 선물해 주시더라구요. 그러더니 자기랑 술래잡기를 하자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옷이 무거우니까 벗어 놓고 하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숨어있었더니 그 아저씨가 찾으러 오지 않더라구요. 그날 엄마한테 엄청 맞았습니다. 저는 지금이 너무나 좋습니다. 사실 옛날이 좋다고 하는 것보다 지금이 좋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늘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조건을 찾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면 할텐데’ 하면서 가정법으로 말을 합니다. 우리아이가 기저귀 신세만 벗어나면 행복할 텐데 라고 말했던 부모들이 몇 년 지나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 가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행복할 텐데… ”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지나요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니에요. 그때 가면 “아이들이 졸업하고 한가해지면 제 인생을 즐길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정말 졸업하면 인생을 즐길 수 있습니까 시집가면 될 텐데.. 손주들 보느라고 또 바쁩니다. 행복한 조건만을 찾는다면 끝이 없습니다. 오늘! 주어진 지금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리지 마세요. 문제가 해결이 되고 남편이 변하고 아내가 변하고 자식들이 변하고 사업이 번창하고 대출금을 갚는다면, 행복해 지겠지···· 이렇게 산다면 불행하고 힘들게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행복을 미루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려면 옛날이 좋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 오늘 주어진 삶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나라 범죄건수 통계를 내니까 9시간마다 1명씩 죽었습니다. 살인사건입니다. 두 시간 마다 강도 강간이 있었고 3분마다 절도 도둑이 있었고, 1분마다 폭력과 싸움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인구가 많으니까 살인은 31분마다 1번, 강도는 1분마다 한번, 절도와 도둑은 1초마다 생겼다고 합니다. 세월일 갈수록 범죄 발생률이 높아가잖아요. 그런데 지나간 일 년을 보내면서 이렇게 빈번했던 범죄와 상관없이 살았다면 그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옛날이 좋다고 말하지 마세요. 오늘이 좋아요. 지금 당장 행복해 지라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강도를 만나 돈을 뺏기고 매를 맞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한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하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일을 처음이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정말 생각을 해보니까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골목길을 수 십 년을 다니면서도 그런 일이 한번도 안 생겼는데 이번에 처음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렇게 위험한 길을 다니는데도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셨는데 그동안 감사하지 못한 것도 용서해주세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바라보면서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여러분 병원에 한 번 가보세요. 숨을 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옛날 것이 좋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에게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현재를 잘 살아야 합니다. 오늘을 온전하게 잘 사는 것이 인생 행복의 비결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거리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 숙제를 내드리겠습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감사할 것을 3가지씩 적고 고백하세요. 그리고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리시고 서로에게 감사할 조건들을 하나 씩 하나 씩 읽어 보세요. 3개가 아니라 그 이상을 적어 보세요. 이것을 부르면서 감사하게 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자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면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영원한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을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거기에 목사님께 감사하는 것도, 한남제일교회에 감사하는 내용을 적어서 감사고백을 해보세요. 그리고 내일 아침 11시에는 온 가족이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기뻐하면 원수 사탄은 망하는 시간이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하시는 시간일 줄로 믿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양 가운데 ‘날 구원하신 주 감사’ 찬송이 있습니다. 사탄은 옛날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은, 오늘에 더 감사를 합니다. 일 년을 마감하면서 일의 시작보다 끝이 좋아야지요. 끝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급한 마음에 노를 발하지 마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옛날이 좋다고 말하지도 마세요. 오늘을 감사하면 내일을 축복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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