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어떻게 결산을 하고 계십니까?
본문
이 세상의 법칙은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마지막이 있게 마련이고 그 마지막이란 법칙은 우리 인생의 모든 일에 적용되기 마련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만들어 놓은 날짜의 법칙을 적용해 볼 때 우리 모두가 다 벌써 한 해를 마무리짓는 마지막 12월에다 그것도 하순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이겠지만 저는 이맘때가 되면 몸과 마음이 무척 바쁩니다. 교회의 결산, 성탄절, 구역정리, 청지기 수련회(28~31)와 송구영신 그리고 신앙의 결산 등으로 말입니다.
금년 한 해도 정신 없이 살아왔고 그리고 바쁘게 살아왔는데 이제 조용히 그 일들을 하나 하나 점검해 보면서 정말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그래도 좀 괜찮은 삶을 살았는지를 돌아봅니다.
12월이면 정부도 회사도 또한 어느 단체의 모임도 꼭 해야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결산이라는 것입니다. 연말결산 말이에요.
그것을 통해서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를 남겼고 얼마를 손해 보았는가를 판단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새로운 한 해를 희망의 기대로 또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만일 한 해 동안 지내오면서 행한 일들을 정리해 보는 중에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내년에 다시 정신을 차려서 잘 시작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교회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 신앙의 세계에도 이와 같은 결산을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계십니까
우리가 인생의 정해진 생명을 마무리하고 주님앞에 서는 그날에는 나 자신이 살아 온 인생여정에 대한 신앙의 평가를 하는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바로 그 마지막 날에 대비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예제를 내어주면서 그 속에서 모범 답안을 찾아 지혜롭게 인생을 관리하라는 주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1. 결산에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리켜 줍니다.
달란트 비유에 관한 내용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일학교 생이라도 이러한 정도의 내용은 알고 있을 정도이니까요.
주인이 세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으로 떠났다가 오랜 후에 돌아왔을 때 달란트를 받았던 종들이 그 주인에게 그간의 장사하여 되어진 상황을 결산 보고를 함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즉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과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이 제각기 장사하여 남긴 이익으로 인하여 주인으로부터 굉장한 칭찬을 받고 있는 모습을 21절과 23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한 달란트를 땅에 그대로 감추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옴으로서 주인으로부터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책망을 받은 내용이 또 소개되어 있습니다. (26)
따라서 본문 비유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여기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세 종은 믿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먼 나라에 갔다가 오랜 후에 돌아왔다는 말은 주님의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때까지의 그 기간을 비유하는 것이고 그 동안 우리 모두는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장사하는 종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한 번 잘 살펴보십시오.
이미 결산은 주인의 때에 정해져 있는 것이고 그 결과도 어떻게 장사를 하였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결산을 할 터이니 이 말씀을 받는 너희들은 지나온 삶을 잘 점검하여 앞으로의 남은 삶을 유익 되게 잘 살아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만 그 삶이 나에게 유익한 삶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신앙의 지혜에 달려있습니다.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머잖아 주님 앞에서 일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인데 그 전에 우리는 지나온 시간들을 신앙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음은 그 마지막 날에 후회 없는 신앙의 삶을 결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은 우리의 지난 한 해의 삶을 점검하고 인생의 중간 결산을 한다는 심정으로 주님 앞에 잘못 됨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고요히 주님 앞에 와(시온의 찬미 135장)
①고요히 주님 앞에 와 내 모습 돌아볼 때 순간 순간의 그 모든 일이 죄와 허물뿐입니다. 주님의 손과 발에 다시 못을 박던 이 죄인 빌라도의 병사보다 악하고 추한 몸이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빕니다.
②겸손히 머리를 숙여 기도 드릴 때 순간 순간의 행한 일들이 죄와 허물뿐입니다. 주님의 그 허리에 창을 댔던 이 죄인 빌라도의 군중보다 악하고 추한 몸이 우리 주님 그 앞에서 용서를 빕니다.
③두 손을 마주 붙잡고 눈을 감으면 순간 순간의 그 모든 일이 죄와 허물뿐입니다. 주님의 그 옷자락 다시 잡아 찢던 이 죄인 로마 병정 그 보다 더 악하고 추한 몸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인생 계획을 아무리 거창하게 세운다 할 지라도 그 계획대로 온전히 이루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누리는 시간 하나 하나도 알고 보면 모두가 다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지 우리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잠 16:0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 시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는 이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기간까지만 살다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대로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이 순간에라도 우리를 부르신다면 내가 누리는 이 세상에 속한 그 모든 것을 다 멈추어 놓고 가야만 하는 불가항력적인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살수는 없을 터이고 또 우리 인생도 이 세상을 마감하는 날이 있음을 알아서 그 날을 잘 준비하여야만 합니다..
히 0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 어떤 일을 함으로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우리는 여기서 먼저 달란트라고 하는 경제적 가치의 문자의 의미와 신령한 의미에서의 영적인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달란트(talent)를 경제의 가치로 매겨 본다면 이는 약 6천 데나리온으로서 1 데나리온은 남자 장정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와 경제 지표가 다르기 때문에 하루 일당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다소 좀 무리가 따를 수 있으나 당시의 문화권에서 이 달란트의 가치를 논해 본다면 하루 일용자의 품삯을 어림잡아 약 1만 5천원 정도를 계산해도 한 9천만 원 정도는 되는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 화폐 단위입니다.
그리고 이 달란트를 영적인 면에서 적용해 본다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받은 여러 가지의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 성도 여러분 중에는 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하실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달란트는 누구에게나 다 주셨습니다. 어떤 것이냐고요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에게나 외적 내적으로 달란트를 분명히 주셨습니다. 15절 말씀을 우리 같이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5절은 이 말씀을 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달란트를 주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내에서의 재능이나 교회 밖에서의 세상적인 재능도 알고 보면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인데 다만 자신이 그러한 것을 받고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이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하였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칭찬의 소리를(21,23) 들을 수 있었습니까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여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였다고 했는데 바로 갔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이 두 종이 바로 간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주인으로부터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실행하기 위하여 간 것입니다.
적당하게 아마 이것일 거야 라고 생각하고 일하러 간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을 잘 알고 그대로 실행하기 위하여 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장사를 하는 가운데서 이들은 바로 갔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절약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이 두 사람은 가서 받은 것을 잘 활용하여 열심히 장사함으로서 결국에는 많은 이익을 남기게 되었고 주인으로부터 회계할 새 당당히 그들의 결과를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두 종은 자기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 주인을 항상 생각하면서 성실히 일해 왔음을 보고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보소서 내가…. 남겼나이다: 문장 구조상 내가(에고)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내가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자 하는 내가가 아닙니다. 단지 주인께서 맡겨주신 임무를 성실히 감당한 자신의 성실성을 인정해 줄 주인에게 그 이윤을 펼쳐 놓으면서 외친 기쁨의 탄성인 것입니다(고전 15:58).
이미 14,15절에 보면 주인이 종들을 모아놓고 자기 소유를 맡겼다고 했고 그리고 타국에 갈 새 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아주 이사를 간 것이 아니고 자기 소유를 그들에게 준 것도 아닌 그러니까 주인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고 그때에는 자기의 소유에 대한 결산이 있을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그래서 19절 말씀에 오랜 후에 주인이 다시 돌아와서 결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맡겨 주신 달란트의 활용에 대한 결산 말입니다.
교회 성도 여러분! 여기에서 분명히 알 것은 주인이 얼마를 남겼느냐고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었느냐 못 벌었느냐를 물으신 것도 아니고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물으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신 달란트로 얼마만큼 열심을 다 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3)
이들을 향하여 주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말하였는데 충성된 종이란 어떤 일꾼이며 어떠한 종이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종이란 어떠한 마음가짐의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 충성한다는 것은 지금 교회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서 그 목적대로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내가 일을 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데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은 필히 충성이 문제를 가져올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잘 하여 이익을 남기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마땅히 수고에 대한 위로와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공연히 시기하고 질투하여 트집을 잡고 늘어지는 걸리미가 된다면 이는 소아병적인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넓은 마음의 좋은 매너를 가져 봅시다.
3. 어떠한 일을 하였기에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같이 봉독 하겠습니다)
앞서 칭찬 받았던 종들은 바로 가서 장사하였다고 했는데 여기 이 종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왜 감추어 두었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장사를 하여야지.
자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이 말씀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4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25 두려워하여.
주인이 주관하는 회계의 현장에는 충성된 자이든 불충한 자이든 모두가 나아와 주인의 판결에 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고후 05:10).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여기 굳은(스크레로스) 이라는 말은 “박정하고 포악하며 거칠다” 는 뜻으로 공동번역과 새 번역에서는 무서운 분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단어는 같은 평행 비유인 눅 19:21절에 나오는 엄한 사람(아우스테로스)이라는 단어보다 더 강경한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종은 내가 열심히 장사하여 이익을 남겨 보았자 주인이 다 가져갈 것이고 만일 장사하여 실패를 하게 되면 크게 책임 추궁을 당하고 말 터인데 구태여 장사를 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일하지 아니한 부분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주인을 수전노와 폭군으로 생각하고 악한 인격자로 몰아세워 자신의 불성실을 변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비난 속에는 자신이 다른 두 종들보다 훨씬 적은 양(달란트)을 받은 것에 대해 주인에게 은근한 화를 분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그 사람의 중심에는 완악함이 있고 믿음과 신뢰보다는 원망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잘 활용하라고 준 이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고 혹 잃어버릴까, 다 까먹어 버릴까 두려워하면서 땅에다 안전하게 파묻어 두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은 모험심과 용기가 없었기에 아예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말았으니 이야말로 심히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아주 과소 평가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처럼 믿음 안에서도 일생 동안 자기의 받은 달란트를 활용키 위해 시도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땅에 파묻어 버리고는 그 주위만 맴돌다가 일생의 귀한 시간을 탕진하고 마는 사람들을 우리의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활용하려고 시도할 때에 성공의 기회가 우리 앞에 활짝 열려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 우리 가운데 내가 받은 달란트가 너무 작다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그냥 묻어 두신 분은 아니 계십니까 자신의 달란트를 잘 활용하고 개발하도록 합시다.
미국의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부흥되지 못하는 교회 2백여 군데를 선정하여 왜 부흥이 되지 않는지를 조사를 하면서 그 중의 한 교회 목사님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이 교회가 부흥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은 말도 마십시오.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이 많이 걷히지 않아 선교비가 없고 그리고 교회에 인재다운 인재가 없어서 교회가 부흥이 안 됩니다 라고 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아닙니다. 이 교회는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고 당신에게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모험심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실패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라고 그 목사님에게 충고했습다.
다시 말하면 주어진 달란트를 각자가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데다 더 나아가 신앙의 모험에 대한 도전이 없어서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에 말로 배워서 되로 쓰는 사람이 있고 되로 배워서 말로 쓰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받은 달란트를 얼마나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하느냐를 가르치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침내 주인은 이 종의 행한 일에 대한 준엄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성가시게 굴음, 무가치한, 악독한 이라는 뜻과 게으른, 지체하다, 둔하다, 머뭇거리다 의 뜻을 가지는데 주인은 이 두 마디의 말로서 평가를 하였습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주인의 의도에는 전혀 무신경하고 자기 안일에만 심취하여 결국 주인에게 해가 된 무익하고 무가치한 종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는 21,23절에 이미 제시된 바 착하고 충성된 종과 극명히 대비되는 말입니다. 계속 주인은 이 종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이 구절은 앞서 게으른 종이 한 변명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즉 종의 변명대로 주인이 매정할 뿐만 아니라 원금을 손해볼까 해서 그것을 활용하기가 두려웠다면 최소한 안전하고도 손쉬운 방법으로 이윤을 불릴 수 있는 일을 택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취리(取利)하는 자들: 돈을 맡아 보관하면서 이자를 주거나 수수료를 받고 돈을 교환해 주는 환전상을 가리키는 말로서 오늘날의 은행이나 돈놀이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 돈놀이가 금지되었고(신 23:19; 시 15:05) 다만 이방인과의 거래에만 인정되었습니다(신 23:20).
한편 신약 시대에 이르러 유대 랍비들은 변리로 돈을 빌려주는 것(lending at interest)과 고리 대금업(usury)을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변리로 돈을 빌려주는 무리들이 상당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변리(邊利): 이 뜻은 원래 이자로서 높은 이윤 곧 고리 대금을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서는 부당한 이익이나 억압적인 의미가 아닌 통상적 관례에 의한 이자로 나타납니다. (초기 로마 제국 시대에는 합법적 이자율 8%에서 차츰 12, 24, 48%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의 일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가하게 그늘에 쉬시면서 자주 휴가 여행을 다니시거나 좋은 식당에서 화려한 식사를 하시면서 3년의 공생애를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전도 여행을 다니시면서 힘들면 대충대충 기적을 행하여 가며 시간을 채우지도 않았습니다. 식사시간이 되어서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향해 야! 베드로야 돌 몇 개 가지고 오너라. 오늘은 찐빵을 만들어 먹자 하면서 빵을 만드신 분이 아닙니다.
목이 마르다 바닷물을 퍼 오너라. 시원한 콜라나 한 잔 만들어 먹자 하신 분도 아니십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베푸셨지만 자기의 영광을 위해 베푸신 기적은 한 가지도 없었고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힘들지만 열심을 다해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분이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요 0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니.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이 무익한 종: 유용하지 않은, 쓸모 없는 이라는 뜻으로서 실로 능동적으로는 선한 일에 매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는 주인이 맡긴 일에 소홀히 하는 종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 외에도 소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께 패역한 죄가 됩니다.
바깥 어두운 데로: 이 구절은 앞의 21,23절에서 착한 종에게 했던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라는 말과 반대적 개념으로서 주인과 영영한 관계 단절(斷絶)을 암시하는 동시에 어둠의 세력인 사단이 거할 최종적 심판 장소로 익혀 알려진 표현입니다(계 20:10~15).
말씀을 맺습니다.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주님께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여러 분야에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들이 있음을 아십니까 종종 이야기하는 청지기의 삶을 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나의 생명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시로 내게 잠깐 맡겨 주셨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거두시면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자녀도 맡은 것일 뿐 나의 것이 결코 아니며 뿐만 아니라 나의 재산, 나의 재능, 나의 명예, 나의 지식, 나의 직장, 이 모두가 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견해에서 볼 때에 종으로서 청지기로서 내가 잠깐 맡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이 여러 분야의 달란트를 주신 목적은 이것을 가지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잘 활용하여 이익을 남기라고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달란트는 꼭 같이 주신 것도 아니라 각자의 관리 능력을 따라 주셨습니다. 그저 감사하면서 주님 앞에 충성의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 준엄한 주님의 경고 앞에 다시 이 12월의 하순을 지나고 있는데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 12월이 내 인생의 종말이 아님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역대 미국의 대통령 중 아브라함 링컨은 존경받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흑인도 백인도 자랑하고 존경하는 미국인들의 자랑거리입니다. 그 분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사람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여 열심히 노력한 끝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특징이라면 ①부지런했으며 ②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의 사람으로서 ③언제나 주님을 가까이 하여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④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드리려고 기도를 끊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만들어 놓은 날짜의 법칙을 적용해 볼 때 우리 모두가 다 벌써 한 해를 마무리짓는 마지막 12월에다 그것도 하순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이겠지만 저는 이맘때가 되면 몸과 마음이 무척 바쁩니다. 교회의 결산, 성탄절, 구역정리, 청지기 수련회(28~31)와 송구영신 그리고 신앙의 결산 등으로 말입니다.
금년 한 해도 정신 없이 살아왔고 그리고 바쁘게 살아왔는데 이제 조용히 그 일들을 하나 하나 점검해 보면서 정말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그래도 좀 괜찮은 삶을 살았는지를 돌아봅니다.
12월이면 정부도 회사도 또한 어느 단체의 모임도 꼭 해야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결산이라는 것입니다. 연말결산 말이에요.
그것을 통해서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를 남겼고 얼마를 손해 보았는가를 판단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새로운 한 해를 희망의 기대로 또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만일 한 해 동안 지내오면서 행한 일들을 정리해 보는 중에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내년에 다시 정신을 차려서 잘 시작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교회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 신앙의 세계에도 이와 같은 결산을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계십니까
우리가 인생의 정해진 생명을 마무리하고 주님앞에 서는 그날에는 나 자신이 살아 온 인생여정에 대한 신앙의 평가를 하는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바로 그 마지막 날에 대비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예제를 내어주면서 그 속에서 모범 답안을 찾아 지혜롭게 인생을 관리하라는 주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1. 결산에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리켜 줍니다.
달란트 비유에 관한 내용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일학교 생이라도 이러한 정도의 내용은 알고 있을 정도이니까요.
주인이 세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으로 떠났다가 오랜 후에 돌아왔을 때 달란트를 받았던 종들이 그 주인에게 그간의 장사하여 되어진 상황을 결산 보고를 함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즉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과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이 제각기 장사하여 남긴 이익으로 인하여 주인으로부터 굉장한 칭찬을 받고 있는 모습을 21절과 23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한 달란트를 땅에 그대로 감추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옴으로서 주인으로부터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책망을 받은 내용이 또 소개되어 있습니다. (26)
따라서 본문 비유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여기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세 종은 믿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먼 나라에 갔다가 오랜 후에 돌아왔다는 말은 주님의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때까지의 그 기간을 비유하는 것이고 그 동안 우리 모두는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장사하는 종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한 번 잘 살펴보십시오.
이미 결산은 주인의 때에 정해져 있는 것이고 그 결과도 어떻게 장사를 하였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결산을 할 터이니 이 말씀을 받는 너희들은 지나온 삶을 잘 점검하여 앞으로의 남은 삶을 유익 되게 잘 살아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만 그 삶이 나에게 유익한 삶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신앙의 지혜에 달려있습니다.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머잖아 주님 앞에서 일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인데 그 전에 우리는 지나온 시간들을 신앙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음은 그 마지막 날에 후회 없는 신앙의 삶을 결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은 우리의 지난 한 해의 삶을 점검하고 인생의 중간 결산을 한다는 심정으로 주님 앞에 잘못 됨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고요히 주님 앞에 와(시온의 찬미 135장)
①고요히 주님 앞에 와 내 모습 돌아볼 때 순간 순간의 그 모든 일이 죄와 허물뿐입니다. 주님의 손과 발에 다시 못을 박던 이 죄인 빌라도의 병사보다 악하고 추한 몸이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빕니다.
②겸손히 머리를 숙여 기도 드릴 때 순간 순간의 행한 일들이 죄와 허물뿐입니다. 주님의 그 허리에 창을 댔던 이 죄인 빌라도의 군중보다 악하고 추한 몸이 우리 주님 그 앞에서 용서를 빕니다.
③두 손을 마주 붙잡고 눈을 감으면 순간 순간의 그 모든 일이 죄와 허물뿐입니다. 주님의 그 옷자락 다시 잡아 찢던 이 죄인 로마 병정 그 보다 더 악하고 추한 몸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인생 계획을 아무리 거창하게 세운다 할 지라도 그 계획대로 온전히 이루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누리는 시간 하나 하나도 알고 보면 모두가 다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지 우리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잠 16:0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 시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는 이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기간까지만 살다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대로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이 순간에라도 우리를 부르신다면 내가 누리는 이 세상에 속한 그 모든 것을 다 멈추어 놓고 가야만 하는 불가항력적인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살수는 없을 터이고 또 우리 인생도 이 세상을 마감하는 날이 있음을 알아서 그 날을 잘 준비하여야만 합니다..
히 0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 어떤 일을 함으로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우리는 여기서 먼저 달란트라고 하는 경제적 가치의 문자의 의미와 신령한 의미에서의 영적인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달란트(talent)를 경제의 가치로 매겨 본다면 이는 약 6천 데나리온으로서 1 데나리온은 남자 장정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와 경제 지표가 다르기 때문에 하루 일당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다소 좀 무리가 따를 수 있으나 당시의 문화권에서 이 달란트의 가치를 논해 본다면 하루 일용자의 품삯을 어림잡아 약 1만 5천원 정도를 계산해도 한 9천만 원 정도는 되는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 화폐 단위입니다.
그리고 이 달란트를 영적인 면에서 적용해 본다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받은 여러 가지의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 성도 여러분 중에는 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하실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달란트는 누구에게나 다 주셨습니다. 어떤 것이냐고요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에게나 외적 내적으로 달란트를 분명히 주셨습니다. 15절 말씀을 우리 같이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5절은 이 말씀을 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달란트를 주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내에서의 재능이나 교회 밖에서의 세상적인 재능도 알고 보면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인데 다만 자신이 그러한 것을 받고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이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하였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칭찬의 소리를(21,23) 들을 수 있었습니까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여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였다고 했는데 바로 갔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이 두 종이 바로 간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주인으로부터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실행하기 위하여 간 것입니다.
적당하게 아마 이것일 거야 라고 생각하고 일하러 간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을 잘 알고 그대로 실행하기 위하여 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장사를 하는 가운데서 이들은 바로 갔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절약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이 두 사람은 가서 받은 것을 잘 활용하여 열심히 장사함으로서 결국에는 많은 이익을 남기게 되었고 주인으로부터 회계할 새 당당히 그들의 결과를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두 종은 자기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 주인을 항상 생각하면서 성실히 일해 왔음을 보고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보소서 내가…. 남겼나이다: 문장 구조상 내가(에고)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내가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자 하는 내가가 아닙니다. 단지 주인께서 맡겨주신 임무를 성실히 감당한 자신의 성실성을 인정해 줄 주인에게 그 이윤을 펼쳐 놓으면서 외친 기쁨의 탄성인 것입니다(고전 15:58).
이미 14,15절에 보면 주인이 종들을 모아놓고 자기 소유를 맡겼다고 했고 그리고 타국에 갈 새 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아주 이사를 간 것이 아니고 자기 소유를 그들에게 준 것도 아닌 그러니까 주인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고 그때에는 자기의 소유에 대한 결산이 있을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그래서 19절 말씀에 오랜 후에 주인이 다시 돌아와서 결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맡겨 주신 달란트의 활용에 대한 결산 말입니다.
교회 성도 여러분! 여기에서 분명히 알 것은 주인이 얼마를 남겼느냐고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었느냐 못 벌었느냐를 물으신 것도 아니고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물으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신 달란트로 얼마만큼 열심을 다 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3)
이들을 향하여 주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말하였는데 충성된 종이란 어떤 일꾼이며 어떠한 종이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종이란 어떠한 마음가짐의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 충성한다는 것은 지금 교회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서 그 목적대로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내가 일을 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데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은 필히 충성이 문제를 가져올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잘 하여 이익을 남기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마땅히 수고에 대한 위로와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공연히 시기하고 질투하여 트집을 잡고 늘어지는 걸리미가 된다면 이는 소아병적인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넓은 마음의 좋은 매너를 가져 봅시다.
3. 어떠한 일을 하였기에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같이 봉독 하겠습니다)
앞서 칭찬 받았던 종들은 바로 가서 장사하였다고 했는데 여기 이 종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왜 감추어 두었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장사를 하여야지.
자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이 말씀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4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25 두려워하여.
주인이 주관하는 회계의 현장에는 충성된 자이든 불충한 자이든 모두가 나아와 주인의 판결에 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고후 05:10).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여기 굳은(스크레로스) 이라는 말은 “박정하고 포악하며 거칠다” 는 뜻으로 공동번역과 새 번역에서는 무서운 분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단어는 같은 평행 비유인 눅 19:21절에 나오는 엄한 사람(아우스테로스)이라는 단어보다 더 강경한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종은 내가 열심히 장사하여 이익을 남겨 보았자 주인이 다 가져갈 것이고 만일 장사하여 실패를 하게 되면 크게 책임 추궁을 당하고 말 터인데 구태여 장사를 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일하지 아니한 부분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주인을 수전노와 폭군으로 생각하고 악한 인격자로 몰아세워 자신의 불성실을 변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비난 속에는 자신이 다른 두 종들보다 훨씬 적은 양(달란트)을 받은 것에 대해 주인에게 은근한 화를 분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그 사람의 중심에는 완악함이 있고 믿음과 신뢰보다는 원망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잘 활용하라고 준 이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고 혹 잃어버릴까, 다 까먹어 버릴까 두려워하면서 땅에다 안전하게 파묻어 두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은 모험심과 용기가 없었기에 아예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말았으니 이야말로 심히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아주 과소 평가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처럼 믿음 안에서도 일생 동안 자기의 받은 달란트를 활용키 위해 시도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땅에 파묻어 버리고는 그 주위만 맴돌다가 일생의 귀한 시간을 탕진하고 마는 사람들을 우리의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활용하려고 시도할 때에 성공의 기회가 우리 앞에 활짝 열려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 우리 가운데 내가 받은 달란트가 너무 작다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그냥 묻어 두신 분은 아니 계십니까 자신의 달란트를 잘 활용하고 개발하도록 합시다.
미국의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부흥되지 못하는 교회 2백여 군데를 선정하여 왜 부흥이 되지 않는지를 조사를 하면서 그 중의 한 교회 목사님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이 교회가 부흥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은 말도 마십시오.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이 많이 걷히지 않아 선교비가 없고 그리고 교회에 인재다운 인재가 없어서 교회가 부흥이 안 됩니다 라고 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아닙니다. 이 교회는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고 당신에게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모험심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실패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라고 그 목사님에게 충고했습다.
다시 말하면 주어진 달란트를 각자가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데다 더 나아가 신앙의 모험에 대한 도전이 없어서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에 말로 배워서 되로 쓰는 사람이 있고 되로 배워서 말로 쓰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받은 달란트를 얼마나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하느냐를 가르치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침내 주인은 이 종의 행한 일에 대한 준엄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성가시게 굴음, 무가치한, 악독한 이라는 뜻과 게으른, 지체하다, 둔하다, 머뭇거리다 의 뜻을 가지는데 주인은 이 두 마디의 말로서 평가를 하였습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주인의 의도에는 전혀 무신경하고 자기 안일에만 심취하여 결국 주인에게 해가 된 무익하고 무가치한 종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는 21,23절에 이미 제시된 바 착하고 충성된 종과 극명히 대비되는 말입니다. 계속 주인은 이 종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이 구절은 앞서 게으른 종이 한 변명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즉 종의 변명대로 주인이 매정할 뿐만 아니라 원금을 손해볼까 해서 그것을 활용하기가 두려웠다면 최소한 안전하고도 손쉬운 방법으로 이윤을 불릴 수 있는 일을 택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취리(取利)하는 자들: 돈을 맡아 보관하면서 이자를 주거나 수수료를 받고 돈을 교환해 주는 환전상을 가리키는 말로서 오늘날의 은행이나 돈놀이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 돈놀이가 금지되었고(신 23:19; 시 15:05) 다만 이방인과의 거래에만 인정되었습니다(신 23:20).
한편 신약 시대에 이르러 유대 랍비들은 변리로 돈을 빌려주는 것(lending at interest)과 고리 대금업(usury)을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변리로 돈을 빌려주는 무리들이 상당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변리(邊利): 이 뜻은 원래 이자로서 높은 이윤 곧 고리 대금을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서는 부당한 이익이나 억압적인 의미가 아닌 통상적 관례에 의한 이자로 나타납니다. (초기 로마 제국 시대에는 합법적 이자율 8%에서 차츰 12, 24, 48%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의 일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가하게 그늘에 쉬시면서 자주 휴가 여행을 다니시거나 좋은 식당에서 화려한 식사를 하시면서 3년의 공생애를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전도 여행을 다니시면서 힘들면 대충대충 기적을 행하여 가며 시간을 채우지도 않았습니다. 식사시간이 되어서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향해 야! 베드로야 돌 몇 개 가지고 오너라. 오늘은 찐빵을 만들어 먹자 하면서 빵을 만드신 분이 아닙니다.
목이 마르다 바닷물을 퍼 오너라. 시원한 콜라나 한 잔 만들어 먹자 하신 분도 아니십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베푸셨지만 자기의 영광을 위해 베푸신 기적은 한 가지도 없었고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힘들지만 열심을 다해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분이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요 0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니.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이 무익한 종: 유용하지 않은, 쓸모 없는 이라는 뜻으로서 실로 능동적으로는 선한 일에 매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는 주인이 맡긴 일에 소홀히 하는 종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 외에도 소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께 패역한 죄가 됩니다.
바깥 어두운 데로: 이 구절은 앞의 21,23절에서 착한 종에게 했던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라는 말과 반대적 개념으로서 주인과 영영한 관계 단절(斷絶)을 암시하는 동시에 어둠의 세력인 사단이 거할 최종적 심판 장소로 익혀 알려진 표현입니다(계 20:10~15).
말씀을 맺습니다.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주님께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여러 분야에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들이 있음을 아십니까 종종 이야기하는 청지기의 삶을 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나의 생명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시로 내게 잠깐 맡겨 주셨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거두시면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자녀도 맡은 것일 뿐 나의 것이 결코 아니며 뿐만 아니라 나의 재산, 나의 재능, 나의 명예, 나의 지식, 나의 직장, 이 모두가 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견해에서 볼 때에 종으로서 청지기로서 내가 잠깐 맡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이 여러 분야의 달란트를 주신 목적은 이것을 가지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잘 활용하여 이익을 남기라고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달란트는 꼭 같이 주신 것도 아니라 각자의 관리 능력을 따라 주셨습니다. 그저 감사하면서 주님 앞에 충성의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 준엄한 주님의 경고 앞에 다시 이 12월의 하순을 지나고 있는데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 12월이 내 인생의 종말이 아님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역대 미국의 대통령 중 아브라함 링컨은 존경받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흑인도 백인도 자랑하고 존경하는 미국인들의 자랑거리입니다. 그 분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사람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여 열심히 노력한 끝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특징이라면 ①부지런했으며 ②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의 사람으로서 ③언제나 주님을 가까이 하여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④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드리려고 기도를 끊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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