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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내게 내려진 결산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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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해를 마감하는 송년주일이기도 합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마감하면서 송년주일을 경건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에벤에셀, 즉 여호와 하나님이 여기까지 지켜주심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통하여 다함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멍가게를 운영할지라도 그날 판매에 따라서 하루의 결산을 합니다. 본전을 빼고 순수 수익을 꼼꼼히 챙겨봅니다. 그리고 월별로 누계를 내보고, 년 말 총결산을 내봅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어떻게 사업을 할까하고 새로운 계획을 새워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이겠고, 기업체나 정부도 1년 예산과 총결산을 내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차가 출발점이 있는가 하면 종착역이 있듯이 인생의 총결산을 해야하는 그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인 결산의 날이 올 것인데 오늘 말씀이 내 인생 삶에 있어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새롭게 마음을 가짐으로 한 단계 두 단계 자신의 신앙의 성숙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대개 1월이 되면 “이상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6월쯤 되면 “현실주의자”가 되고, 12월에는 “허무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1월에는 갖가지의 설계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비젼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가장 아름다운 신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계획을 세운다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한달 두 달 지나고 6개월이 지나면 세웠던 계획들은 마음대로 이루워지지 않고, 그만 현실속에 푹 빠져버린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년말이 되면 자신이 한 해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하고 생각해 볼 때 참으로 허무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이상적인 자기의 모든 계획이 무너져 버렸고, 내 인생이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가 하고 허무주의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한해를 마감하는 가운데 우리는 나이를 한 살씩 더 들게 되고, 세월의 빠름을 절감하고 있다. 특히 목회자는 세월의 빠름을 더더욱 절감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월의 빠름은 하룻밤을 지나 잠에서 깨어난 것과 같은 느낌일 뿐입니다. 세월은 빨라서 유수와 같고 인생은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들 각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경건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결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올 해를 마감하는 결산을 내어 보고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구상에는 각가지의 직업은 물론 수를 셀 수 없는 사업장들이 있고, 또한 정치는 물론 모든 일에 있어서 한해를 결산을 하고 새해의 예산편성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결산해야 하는가 신앙생활에 대해서 결산보고를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결산을 보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조용히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결산보고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달란트를 받은 자들이 각자가 주인에게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 결산보고를 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특히 여기서 비유로 말씀한 달란트 비유는 종말에 관한 내용이요, 여기서 주인은 주님이시오, 이것은 예수님 재림 때, 역사의 마지막 때, 역사의 종말 앞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달란트에 대해서 결산하고 있다. 이 보고를 통하여 한해를 마감하는 우리는 복음적으로 조명하면서 조용히 자신의 달란트를 보고하자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달란트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천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먼 나라로 떠나면서, 자기의 종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자기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으니라. 그가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곧 여행을 떠났더라’(마 25:14~15) 인생은 누구에게나 달란트는 받아서 태어납니다. 각자의 달란트가 다 있습니다. 특히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달란트가 주어져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는 가장 값진 것들이요, 이는 내가 싫다고 해서, 거절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무적이다. 인생은 누구든지 믿는 자들이나 안 믿는 자들이나 다 자기가 태어날 때 이미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것을 가리켜 세상 사람들은 팔자타령으로 돌립니다. 우리는 너무도 좋은 선물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사명인 달란트가 주어져 있다. 최고의 값진 달란트를 받았는데, 이대로 있어서는 되겠습니까 한해를 마감하는 주일, 오늘 우리는 달란트를 결산해 봅시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면 당연히 다섯 달란트를 이를 남겨서 열 달란트를 주인에게 결산해야 할 것입니다. 두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두 달란트를 더 이를 남겨서 주인에게 돌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가진 자도 왔으나 이를 남기지 아니한 고로 악한 종이 되어 불행한 종말을 맞이합니다. 이를 남긴 종들은 주인에게 대 환영을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 말씀의 배경은 BC 4년에 헤롯 왕이 죽고, 그 이후의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헤롯이 죽은 후, 그 땅은 셋으로 분할이 되었다. 한 나라가 셋으로 갈라져서 한 지역은 헤롯 안티파스가, 또 한 지역은 헤롯 빌립에게, 또 한 지역은 아켈라오에게 주었다. 여기서 이 아켈라로에게 주어진 땅이 유대 땅이다. 아켈라오는 유대 땅을 분할 받고 로마의 형제에게 자신의 왕권을 인정받기 위해서 떠난다. 그때 신하들을 불러놓고 자기가 없는 동안 각자에게 무엇, 무엇을 잘하라고 달란트를 맡기고 갑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우리 예수님이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때를, 역사적인 배경을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켈라오는 모든 종들에게 달란트 직무를 맡겼던 것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도 주께서 주신 달란트를 맡기십니다. 그리고 최종 결산하는 날이 옵니다. 그때가 주님이 재림의 때입니다. “자기의 종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자기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으니라”고 했다. 여기서 자기의 종들은 오늘 우리 성도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자기 재산을 맡겼다는 것은 복음의 사역을 가리킨다. 구원 농사를 의미한다. 그 누구도 달란트를 받지 아니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달란트를 거절할 이유도 없다. 거절한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거역하는 결과가 온다.
2. 달란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주어진다.
‘그가 각자의 능력에 따라’(15)주었다고 했다. 우리는 특별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세 가지의 재능을 주셨습니다.
①.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는 능력을 개발하여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잘 그린다. 어떤 사람은 음악을, 어떤 사람은 말을 잘하고, 어떤 가르치는 일을, 어떤 사람은 봉사하는 일을, 사람들은 다양하게 능력이 잠재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달리 칭찬을 잘해 주는 달란트가 있다. 이것은 모두가 능력에서 나타납니다.
②. 직분을 주셨습니다. 교회가 부흥 성장되면 집사, 교사, 찬양대, 권사, 장로, 목사, 이렇게 직분들이 다 주어져 있게 됩니다. 여기서 달란트는 능력과 직업과 직분, 이 세 가지를 의미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달란트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 왜 이러한 달란트를 주었느냐고 불평하고 항의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왜 내게 이러한 직분을 주셨느냐고 말할지 몰라도 이렇게 하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요 달란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다. 거절할 수 없다. 외면 할 수 없다. 그 일에 1년 동안 열심히 했을 때 1년을 지나고 나면 축복받은 삶이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으면 결과를 기다리십니다. 한 달란트를 주셨어도 그것은 일하라고 주셨기 때문에 1 달란트를 이를 남겨야 한다. 일하지 이 세상 일 하느라고 묻어 두었다면 결과는 성경대로 될 것입니다.
조각가는 나무를 잘 다듬어서 조각을 합니다. 어떤 나무로는 좋은 것을 만듭니다. 좋은 작품을 만듭니다. 그런데 똑같은 나무이지만 조각가에 의해서 어떤 나무는 가치 없는 것을 만들기도 한다. 조각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주인님! 나는 저 나무와 같은 나무인데 왜 나는 좋은 작품으로 만드시지 환영받지 못할 작품은 왜 만들었느냐고, 그렇게 할 수 없다. 조작가에 의해서 좋게 만들어졌던 형편없는 못난이 조각품이 되었던지 간에 이애 대해서 항의하지 못합니다. 만들어진 상태대로, 어떻게 쓰여 지든지 그대로 있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달란트를 다섯을 주었든지, 두 달란트를 주셨든지, 한 달란트를 주셨든지 간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절대로 불평할 수 없다. 오직 주어진 달란트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은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세 가지를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구약교회는 제사 지내는 교회이다. 그러나 신약교회는 일하는 교회입니다. 일하는 것이 신약교회의 특징이다. 신약 교회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어떤 소망도 없이, 예배만 참석하고 헤어지는 신자라면 아직도 그는 구약교회와 다를 바가 없다. 무슨 일이든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다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요 신자입니다. 우리는 달란트를 받은 사명자들입니다.
목회자는 언제나 여러분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언제나 성령님은 가만 놔두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이 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많은 일군들을 세워서 주의 일하도록 기도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더 많은 일군들을 뽑기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를 두 달, 한 달, 그렇게 하게 하시고 마침내 인명장에 도장을 찍고 이름을 기록하기까지 여호와 하나님께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매년 교회들은 주의 일을 위하여 각 기관에서 일할 일군들을 임명하고 주님의 일인고로 각자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 순종하며 감사하며 감당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축복된 삶을 주 안에서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해 줌을 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내려주신 달란트로 사명을 바로 감당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금년에도 다가올 새해에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③. 우리는 주인이 돌아오면 각자가 받은 대로 일한대로 총 결산보고를 해야 한다.
이 세 가지의 달란트를 우리는 각자가 받았다. 그런데 그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 했는가 대해서 각자가 받은 대로 결산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계산보고를 하였는데’(19절)라고 했다. 유대 땅에 왕으로 사명을 가지고 떠났던 아켈라오가 로마로 다시 돌아왔을 때 종들을 부른 다음 계산보고를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충성을 다한 신하는 많은 선물과 재산을 나누어 주었고, 승진시켜 주었다. 그러나 충실치 못한 신하는 즉각 처형시키고 말았다. 이것은 역사적인 기록입니다.
시작의 때가 있으면 끝을 맺는 때가옵니다. 뿌릴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습니다. 맡길 때가 있으면 결산를 보고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이미 가장 가치 있는 달란트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각자의 달란트대로 계산하게 됩니다. 많이 심는 자들은 많이 거둘 것이고, 적게 심는 자들은 적게 거둘 것입니다. 오늘 달란트 비유에 이어서 양과 염소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마25:31~33절)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주님의 재림의 때에 되어질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심판하실 때 양들은 오른편에 두고, 염소는 왼편으로 갈라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 자신은 염소인가 아니면 양인가 염소는 목을 끈으로 매고 끌어야 따라옵니다. 염소는 목을 끈으로 매서 끌어야 억지로 따라갑니다. 이것은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이다. 내가 양과 같이 순종하였느냐 양의 흰 털과 같이 성결하였느냐 양과 같이 가죽과 고기와 모든 것을 다 주인을 위하여 바쳤느냐 아니면 예수님은 입으로 믿고 행동은 자신을 위하여 살았느냐 염소와 같이 죄악 된 생활을 하고 살았는가 세속 된 생활을 하고 살았느냐 염소는 고기밖에 쓸 것이 없다 마 25:31~33절에서 잘 말해줍니다. 사랑하는 연남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자신에게 내려주신 달란트에 대해서 결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겨 놓았더라’(18절). 땅을 파고 받은 달란트를 묻어두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1) 불 충성을 가리킨다. 충성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그 원금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그 원금만 보관하고 있었을 뿐이지 활용하지 못했다. 아무리 주님의 일을 하라고 주님의 종 목사를 통하여 수도 없이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오실 그때까지 불충성하고 살아왔다. 주님은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으면 활용하고 살아야 한다.
2) 쓸모없는 종이라고 했다. 여기서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는 모형적으로 응용한다면 한 달란트는 구약교회의 모형이고, 두 달란트는 은혜시대의 모형이요, 다섯 달란트는 마지막 재림, 환난시대의 모형으로 볼 수 있다. ‘한 달란트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지적하고 있다’고 바클레이는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받아서 보존하였다. 여기서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 율법을 받아서 증거하지 않았다. 쓸모없는 자들이었다. 율법을 활용하지 못한 엄청난 죄를 범하고 만 것이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그들은 잎만 무성한 나무였다.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어야 하겠는데,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할 뿐이다. 이 말씀은 오늘 달란트 비유와도 같은 맥락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달란트의 역사적인 해석은 초림 율법, 구약교회를 의미하지만 또한 복음적인 해석은 예수님의 복음을 받고도 율법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신앙인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가 율법적으로 교회를 아무런 의미도 없이 왔다갔다. 한다면 자신의 능력, 직업, 직분을 보관만하고 활용하지 못한 자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책망과 함께 흑암한 곳에 던져져서 울며 이를 갈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는 것은 예언적으로 볼 때, 역사적인 면에서 마지막 때 창녀 바빌교회로, 그리고 배도하는 교회를 보여주는데 이들이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리고, 땅 차원으로 전락하는 한다. 이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들은 쓸모없는 종들입니다.
세가지 종이 있다. 하나는 유해한 종이 있다. 해를 끼치는 종이 있다. 쓸모도 없는 종이다. 하나는 유익한 종이 있다.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종이다. 교회도 이와 같다.
3)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있다. (26)
남달리 가치 있고 아름다운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귀하고 복 받는 직분을 활용하지도 않고 묻어버렸다. 그리고 주의 일은 관심이 없다. 이것을 가리켜 게을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엄하게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바깥 흑암에 내어 던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무섭고 떨리는 말입니까
4) 땅에 달란트를 묻었다고 했다.
땅에 묻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능력을 자신의 육을 위하여 사용했다는 말이다. 육을 성경은 땅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만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달란트를 활용할 수 없었다. 자신의 유익과 물질주의에 정력을 쏟아버렸다. 이기주의에 쏟아버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 땅에 달란트를 묻어버렸다.
오늘날 우리 한국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타락하고 있는 이유는 첫째,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이기주의는 자기밖에 모른다. 자기중심적이다. 개인주의입니다. 자신에게 모든 유익이 맞추어져 있다. 두 번째, 인본주의로 살기 때문에 타락한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중심, 영적인 중심,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와 민족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와 신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물질주의로 인하여 이기주의로 바뀌어지고 있기에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인본주의가 앞장을 서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이 땅에서 손을 떼시도록 악한 행동을 하고 있다. 주님이 이 민족의 주인이 되어주셔서 앉아 계셔야 할 그 자리에 사람이 대신 앉아 있기에 악해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물질 만능주의’이며, 넷째는 향략주의로 타락하였다. 섹스와 술과 담배와 마약, 그리고 스포츠와 모든 인간의 향락을 다 만들어내서 결국 우리는 아주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금 전국에 대학생, 가정주부, 어린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성을 팔아서 먹고사는 여성이 300만 명이 넘어서고 있다. 우리 한국은 지금 우리 신앙인들이 빛과 소금 역할을 하지 않으면 저들과 우리는 다같이 지진과 재난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며, 끝내는 유활 불속에 떨어지는 멸망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소망이 아주 없는 나라는 아닙니다. 첫째로 우리 교회들이 인본주의를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 제일주의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이기주의, 인본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 이 네 가지를 뿌리채 뽑아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목사는 한 달란트 받은 자를 이기주의자로 봅니다. 이는 땅에 묻어버렸다. 자기 중심적인자이다. 이는 인본주의 자이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이익을 남길 필요가 없는 자였다.
이는 물질주의 자였다. 땅 차원이다. 이는 향락주의 자이다. 이기주의, 인본주의, 물질주의, 결론은 반드시 향락으로 연결되고 만다.
5)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잘못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여, 주께서는 엄격한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것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므로 두려워서 가서 땅 속에 당신의 달란트를 숨겨 놓았나이다. 보소서, 주인님의 돈을 가지소서’(25:24-25).
이렇게 주인이 돌아와서 보았을 때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모든 원인의 탓을 주인에게 돌리고 있다. 당신은 엄격하신 분이라서 두려워서 내가 땅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당신의 돈을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인님의 돈을 가지소서, 합니다.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주인에게 돌리고 있다.
우리도 오늘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앙을 결산하여 보고하라고 말씀하신다면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 때문에, 목사 때문에, 장로 때문에, 교회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열매를 내지 못했다고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그리고 나는 예수를 잘 믿으려고는 했었는데, 내가 사는 것이 가난해서, 물질이 없어서 충성하지 못했노라고, 또는 자식 때문에 신경 쓰는 일이 많아서, 또는 사업 때문에, 아무튼 사사건건 무엇 때문에 라고 이유를 대면서, 그래서 열매를 못 맺었다고 할 것입니까 회개는커녕 누구 때문이라고 한 달라트 받은 자처럼 할 것입니까
여러분! 성도의 가는 길은 자기의 가슴이 멍들었을 때 비로소 성도가 된다고 합니다. 하룻 밤을 자기 전에 가슴을 치며, 주여! 나 때문입니다. 자신의 심장위에 핏 멍울이 지도록 “주님”나 때문입니다. 라고 하는 회개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회개는 성도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소망이 없다. 회개는 어떠한 잘못도 여호와 하나님 품속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회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다시 일으키는 위대한 도구가 되십니다. 할렐루야!
지옥에서 천국으로, 심판에서 구원으로, 책망에서 칭찬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쫓겨남에서 상급으로, 회개는 이토록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이를 남긴 것이 없을지라도 다시 그 시간을 돌이켜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이를 남기지 못했고, 땅에다가 묻었 두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주여! 내가 잘못을 했습니다, 하고 이제부터 그 일을 감당하겠습니다, 하고 회개했을 때 달란트를 다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6) 한 달랄트 받은 자의 결과이다. ‘너희는 그 쓸모없는 종을 바깥 흑암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고 하더라(30절)
여기서 흑암한 곳은 지옥을 가리킨다.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마 25:11에서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문을 닫아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지만 그들도 고통의 자리로 떨어지고 맙니다.
이와 똑같은 말씀이 마 24:51에서 봅니다. ‘그러면 주인이 그를 갈라내어서 위선자들고 함께 그의 몫을 지우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 했다. 이는 악한 종을 가리킨다. 이들은 술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신자들이다. 그리고 술주정뱅이들과 함께 자기 동료 종들을 때린 자들이다. 이들에게 지옥의 불 유황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들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그곳에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영원무궁토록 밤낮 고통을 받으리라’(계 20:10)고 했다.
분명합니다. 결과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인생의 최종 결산하는 날이 주께로부터 임할 것입니다. 분명히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믿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의 길에서 이제는 이를 남기는 자리로 옴겨져야 합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들의 모습,
‘그후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고, 마찬가지로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벌었더라’(16-17절)고 했다.
 첫째는 신실했다고 말한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내가 너로 많은 것들을 다스리도록 하리라. 네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라. ’고 하더라(21) 이는 이처럼 칭찬을 주인으로부터 받았을 때 얼마나 감격했을까 이처럼 우리 주님이 다시 오셨을 때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기남아! 착하고 신실한 종아! 하시는 칭찬을 듣는다면 이 얼마나 감격적인가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칭찬 받을 일을 얼마나 하였을까요 신실하다, 즉 충성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신실하다는 말은 “피스토스”그 의미가 이렇습니다.
 첫째는 ‘믿음이란 뜻’이다. 신실하다는 말씀 속에는 너는 믿음이 있는 자, 그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신실하다는 말은 너는 신실한 종이었다. 3) 맹세라는 뜻이다. 너는 나에게 그 맹세가 변치 아니했다. 넷째는 확신이란 뜻이다. 너는 확실한 믿음을 가졌다는 뜻이다. 다섯째, 보증이란 뜻이다. 너는 진실로 내가 보증한다. 신실한 말은 이렇게 뜻이 많다. 충성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전 4:2에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 했다. 개혁성경에는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모세가 위대했던 것은 바로 신실했기 때문이다. 히3:5에 ‘여호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충성하였으나’충성했다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이를 남긴 종들처럼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이 사람은 주인에게 유익을 남겨주었다. 마 25:20에 ‘보소서, 그것들 외에도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나이다. ’라고 했다. 22에 ‘두 달란트를 더 벌었나이다’고 했다. 이들은 열심히 일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던 게으른 자는 이를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남긴 자들은 부지런 했었다. 최선을 다 했었다. 지혜롭게 일했습니다. 유능한 경영자였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아서 잘 활용하였다. 내가 받은 능력, 내가 받은 직업, 내가 받은 직분을 잘 활용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그 이익을 남겨 드렸습니다.
‘마리안 앤더슨’이란 성악가가 있다. 아주 유명한 미국의 성악가 였습니다. 그가 은퇴할 때, 기자들이 당신의 생애를 한 마디로 정리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때 앤더슨은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을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그동안 사용해 왔습니다. ’ 이는 유명한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능력을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했었다고 결산할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가진 것이 있다면 앤더슨처럼 그 능력을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하여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잘 활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토플레이디’목사는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라고 하는 찬송가를 지은 분입니다. 그는 목사의 직분을 마지막 죽을 때 남긴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조그마한 방안에, 그는 집도 없었고, 그가 남긴 것은 수저와 젖 가락과 밥그릇과 국그릇뿐이었다. 그가 그 직분을 감당하는 동안 재물이던, 명예이던 모든 것을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만 바쳤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게 사라졌다. 직분이건, 직업이건 주님을 위하여 사용해야 됩니다. 우리는 직업과 신앙을 별개의 것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직업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며,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곳이 선교지입니다. 그곳이 내 믿음을 실현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저가 들은 얘기입니다만, 모 부대에 연대장으로 있는 어느 장교가 18개월을 근무하는데, 부대 장병들을 전도하는데 있어서 처음에는 그 장교가 다니는 교회에 성도들이 20-30명 정도였는데, 4개월 만에 250명을 전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부대 전체 연대원이 2,400명인데, 남은 14개월의 임기동안 1,500명을 모두 전도를 해서 세레를 받게 하겠다고 결심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임기동안 교회건물을 건축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군인이 아닐 수 없다. 직업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 하겠다는 그 열이 대단했다.
여러분 직업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거기서 월급이나 받아먹고 죽을 것입니까 그러한 인생은 돼지의 삶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짐승과 같은 인생이다. 직업이 높고, 소중할수록 더 큰 달란트가 주어졌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 송년의 주간이 넘어가기 전에 직업을 결산해 봅시다. 거기서 예수님에 대해서 한번도 외치지 못했다면 이는 성도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셋째로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신실한 종입니다. 신실한 자에게 분명히 결과는 있기 마련이다. 마25:21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내가 너로 많은 것들을 다스리도록 하리라. 네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라. ’고 하더라.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는 동일한 것이다. 칭찬과 축복은 동일합니다. 성도 여러분! 집사 직분에 신실한 자나, 목사직에 신실한 사람이나 다같이 축복을 받습니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최선을 다했으면 동일한 축복을 받습니다. 참 깊은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마 25:29에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게 되어 풍성하게 가지게 될 것이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도 빼앗기게 되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신실한 자의 보상은 휴식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더 풍성하게 일할 것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1년 동안 수고하시고, 새해에는 쉬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요, 악한 생각에서 오는 것이다. 교회의 직분은 휴식이 없습니다. 더 많은 것으로 맡기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직분 자들에게 더 중대한 일거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에게는 축복입니다. 이 땅에서는 일이 과중할수록 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이다. 벗어버리는 것은 큰 저주이다. 축복이 아닙니다. 계 22:12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고 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만, 상급은 믿음의 행위로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년 동안의 여러분 자신의 신앙을 달란트를 결산해 보십시다. 이 총결산보고는 곧 주님 오실 때의 총결산 보고요, 내가 이 땅을 마감할 때의 총결산 보고입니다. 우리지 못한 것이 있다면 남은 기간을 철저히 회개의 기간으로 삼고 혹 내게 이루어진 조그마한 것이 있다면 휴식이 아니라 더 큰 일을 맡아 새해에는 지금보다 더 일하겠다는 결단의 송년주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그 가슴속에 그 혼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히 넘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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