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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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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올 해 마지막으로 드리는 주일예배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반성(反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에 비유했습니다(야고보서 1:22-25). 사람이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을 고치는 것처럼,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삶을 올바로 고쳐 나갑니다. 거울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입니다만,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생을 잘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도 있지만, 잘못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의 실패한 부분들을 지적하면서 “우리는 저희들과 같이 되지 말자!” 고 합니다. 저희들이 우상숭배를 했는데 우리는 우상숭배를 하지 말자, 저희들이 간음하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샀는데, 우리는 간음하지 말자, 저희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 죽었는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자, 저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망했는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희들의 실패의 역사를 거울로 삼자(고린도전서 10:6, 11)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여러분의 인생의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시경(詩經)에 니오는 말인데, 남의 산에 있는 돌도 나의 구슬을 다듬는 데 쓰이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기의 지덕(知德)을 연마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제대로 읽으려면 “또 천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14절)”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는 이 비유가 천국의 비유라는 관점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천국은 주인이 각 사람에게 재능대로 맡겨준 달란트로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긴 사람들이 주인의 즐거움에 참가하게 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The man who had received the five talents went at once and put his money to work and gained five more. )” 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성경에는 “투자하다(invest)”라 는 말도 썼고, 또 “장사하다(trade)”라는 말도 썼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돈이 벌릴 것 같다는 감(感)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이 오면, 모두 투자를 합니다. 물론 감이 잡힌다고 해서 모두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가진 돈을 모두 날리고 쫄딱 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큰 돈은 누가 버느냐 하면 이런 사람들이 법니다. 경제학을 강의하는 교수가 큰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경영학을 강의하는 교수가 큰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장사꾼이 법니다.
성경에 보면 장사꾼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흥분하여 그 밭을 사기 위해 있는 것을 모두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래서 밭을 살 뿐만 아니라 보물까지도 얻는다!(마태복음 13:44). ” “또 하늘나라는 값진 진주를 구하기 위해 찾아 다니는 장사꾼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마태복음 13:45-46). ”
장사꾼의 특색은 돈이 될만한 것을 물색해서 거기다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모험(冒險)입니다. 모험에는 위험(危險), risk)이 따릅니다. 오늘날에는 경제학도 발달하고, 경영학도 발달해서 투자를 해도 그만큼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겠지만, 장사하는 사람이 위험 부담을 완전히 줄일 수는 없습니다. 분석하고 또 분석하다가 시기(時機)를 놓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투자를 해도 시기를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는 사람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그에게는 모험심과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이 한달란트 마저 잃어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두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자기 인생을 상당히 보수적으로 안전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이 이 사람을 책망한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26절)”이라고 했고, “무익한 종(30절)”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유로 이 이야기를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사꾼과 같은 태도와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장사꾼들이 가지고 있는 모험심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에 도전(挑戰)하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윌리암 캐리(1761-1834, William Carey)가 남긴 유명한 말이 생각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 ” 1792년에 캐리가 침례회 연합회 모임에서 인도선교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당신을 통해 위대한 세계 선교의 역사를이루실 때인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시도하라했습니다. 그의 계획이 좌절되었을 때에도 그는 이렇게 그의 일기장에 기록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시며,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때, 나의 모든 근심을 내어 맡길수 있었습니다. 내가 설사 이곳에서 생명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나에게 이 고귀한 사명이 맡겨진 사실만으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습니다. ”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늘 하던대로 현상 유지나 하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새로운 일을 찾아보고, 전에 없었던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발상(發想)의 전환(轉換)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God did not give us a spirit of timidity, but a spirit of power, of love and of self-discipline. , 디모데후서 1:7). ” 이 말씀은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준 말씀이지요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디모데에게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와 도전의 정신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제자에게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불어 넣어주고 있습니다. “능력의 마음(a spirit of power)”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은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이 한 순간이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의 마음(a spirit of love)”이란 무엇인가요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모든 일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추진하는 마음 바탕이 사랑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동기가 사랑의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신하는 마음(a spirit of self-discipline)”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자기 자신을 절제(節制)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욕이나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근신의 마음이 있어야 자신의 뜻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 앞에 복종 시킬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올 한 해 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제가 묻는 것은 여러분이 한 해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사셨느냐 하고 묻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재능들을 과감하게 투자하셨습니까 그리고 이익을 남겼습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능력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과 “근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 해를 사셨습니까 그렇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거울로 삼아서 그 사람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실패의 원인 중의 하나는 그는 그에게 달란트를 맡긴 주인울 잘 몰랐습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24-25절). ” 주인이 이 말을 듣고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렇게 화를 내면서 기분 나빠하는 것을 보면, “너는 내가 이런 사람인 줄 아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왜 그 돈을 은행에 예금해서 그 동안 이자(利子)라도 받지 않았느냐” 주인은 이렇게 분노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주인을 인색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몰인정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도 결국은 내 것을 빼앗아가는, 그래서 나에게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탈북자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경쟁력이 없는 것입니다. 지식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삶의 자세가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게으른 것입니다. 생각같으면, 탈북자들이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할 것 같은데 게으르다는 것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는 한국 사회에서 경쟁력이 없지요. 왜 그렇습니까 일을 열심히 해봤자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그 생각이 몸에 밴 것입니다. 그래서 감독자가 있을 때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감독자의 눈만 피하면 일하지 않습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주인이 했던 말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한달란트 받앗던 사람과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이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충성스럽게 일했습니다. 작고 하찮게 보이는 일도 이 사람들은 신실하게 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게을렀습니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주인이 누구인지 잘못 알았을 뿐만 아니라 주인에 대한 지식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과 여러분과의 관계에 적용해 보십시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왜곡되어 있거나 그 지식이 매우 제한되어 있을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문제는 알고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여러분, 호세아 6장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이 말씀을 알고 계십니까 호세아는 자기 민족이 우상숭배에 빠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그 원인이 자기 민족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診斷)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서 아는 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살 길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이 말씀을 빌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살 길은 여호와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는 일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투자하십시오. ” 이 투자만큼 좋은 투자가 없습니다. 이 투자만큼 여러분의 인생에 유익을 주는 투자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는 일에 여러분의 인생을 투자하면 이 사람은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이게 어디 제 말입니까 잠언에 나오는 말씀 아닙니까 보세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언 1:7).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 9:10). ” 생각해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지식과 지혜의 근본을 터득한 사람의 인생이 복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자기 인생을 아름답게 살지 않겠습니까 그걸 모르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목적도, 삶의 이유도 모르니까 무엇을 위해서, 어디에 자기 인생을 헌신해야 할 줄도 모르고 미련한 인생을 사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꾸 나의 삶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평가하는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조금만 나으면 안심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결코 생각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나타나면 금방 불행해집니다. 이런 사람은 참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그렇게 사는 사람은 결국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늘 나의 인생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평가하라고 합니다. 내 삶이 올바른지, 잘못 되었는지는 일대일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평가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말씀에서 그랬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 , 로마서 12:2). ” 이 세대요 어떤 세대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입니다. 그 세대 속에서 상대적인 자기 만족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 인생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무엇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뜻인가 무엇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가 무엇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여기시는 것인가” 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여러분의 인생을 거십시오. 이런 사람이 자신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립니다.
끝으로, 그 주인은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 소유를 맡겼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천국을 맡기신 비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누가복음 12:32). ” 또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 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기노라(누가복음 22:28-29). ” 대단한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맡기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일들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바로 이 말씀을 하고 싶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자기에게 맡겨준 한 달란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지(無知)했고, 게을렀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자신을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어떻게 수행(遂行)했는지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몇 번은 괜찮을지 몰라요. 여호와 하나님은 워낙 인자가 한이 없으신 분이시니까요. 그러나 무지와 게으름의 삶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을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갈라 놓으십니다. 착하고 신실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갈라 놓으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분의 심판 앞에서 그렇게 갈라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가하는 인생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기는 인생으로 갈라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가할 사람들이 무엇을 마시는지 아십니까 “오래 저장했던 포도주(이사야 25:6)”를 마십니다. 100년, 1,000년, 아니 10,000년 된 포도주일까요 그만큼 우리는 그분과 함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 사람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무지와 게으름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때가 늦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누가 그랬다지요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이가 없어서 일을 갈 수가 없습니다. ” 주님이 그랬답니다. “걱정하지 말고 저기를 보아라. ” 그래서 주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더니틀니 대여소(Rent Dentures)가 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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