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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이제 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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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년 중에 마지막 주일입니다.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오고가는 주일입니다.
한편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죄송하고 또한 감사하며 보내게 됩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그 마지막 주일을 보내며 당회를 저녁에 갖습니다. 정기 당회는 결산을 보고하는 주일입니다.
여러분도 그러셨겠지만 저도 지난 한 주간 당회 보고서를 준비 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말씀 드렸듯이 참으로 죄송하기 그지없고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준비하다가 죄송합니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하다가 감사 합니다. 참으로 감사 합니다. 여러 번 소리쳐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나오시는 분은 다 아십니다. 저는 매 토요일 마다 우리 교우들과 함께 기도 합니다. 매 토요일 마다 우리는 먼저 한 주간을 정리 합니다. 한 주간을 정리 하면서 우리의 가족을 돌아보고 우리의 가족 중에서 먼저 내 사랑하는 자녀들은 적어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도하게 합니다. 그리고 오는 주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주일을 준비하게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 됩니다.
지금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번 주간으로 그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새로운 주일을 마지하게 됩니다.
한 해를 잘 마무리를 잘 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여 축복된 새 해를 열어 가시기를 축원 합니다.
2002년이 이제 끝나는 마당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글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계에 부닥칠 때
(1) 겸손과 기도가 필요하다. 왜냐면 겸손은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기도는 새로운 힘과 가능성으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2) 원리와 원칙을 따른다. 왜냐면 원리만큼 확실한 것 없고, 원칙만큼 신속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3) 포기와 선택을 결정한다. 왜냐면 포기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만들며, 선택은 그 관점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와 그 형제들이 예수님을 처음 뵙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어 새로운 생애를 열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모습 속에서 우리는 묵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여는 자세를 찾아 우리도 주님을 새롭게 따라 새 세상을 열어가는 복 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1. 누구나 잘 못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3대 테너(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중의 한 명인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는 오페라의 대중화에 커다란 역할을 한 분입니다.
그는 1941년 스페인에서 출생하였으나 멕시코로 이주하여 피아노, 작곡뿐만 아니라 보컬 테크닉까지 공부하였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갔습니다.
1981년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시도했습니다. 그것은 오페라 가수인 그가 대중 가수인 존 덴버(John Denver)와 함께 ’’Perhaps Love’’를 불러 톱 20 히트를 기록한 것입니다. 성공적으로 대중음악 무대에 데뷔한 그는 1989년에 제니퍼 러쉬 (Jennifer Rush)와 함께 ’’Till I Loved You’’를 불러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전통적인 러브 송을 부르면서 대중적인 지지도를 넓혀갔다고 이로 인해 1990년대 초반 클래식과 오페라의 대중화를 이루었습니다.
도밍고가 서서히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입니다. 소프라노 마르타와 오랫동안 공연을 하고 싶었던 그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거의 3년을 머물며 오페라 공연을 했습니다. 파우스트 공연이 있던 날, 도밍고는 마르타를 향해 “당신을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라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그만 목소리가 갈라지는 등 몇 가지 작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다음날 발간된 신문에는 온통 그의 목소리를 칭찬하는 기사뿐이었습니다. 도밍고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자 마르타가 도밍고에게 다가와 한 말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노래를 알아듣지 힘들어요. 당신의 발음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그 때 도밍고는 그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칭찬하니까 나도 물론 좋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의 잘못을 말한 것입니다. ”
도밍고는 남들의 칭찬에 잠시나마 우쭐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텅 빈 극장에 남아 노래를 반복해 부르며 자기의 발음을 거듭 고쳐가며 연습했습니다. 2년이 지나자 그는 정확한 호흡법으로 풍부한 성량과 안정적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그의 발음상의 단점을 고쳤기 때문에 그는 눈부신 성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약점이 있습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며 더 이상 그에게서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약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의 약점을 고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하신 것은 약한 심령이 복 받는 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심령의 가난함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풍성한 심령으로 바꿔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밍고는 단점을 보완함으로 성공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도 오늘 마지막 주일을 보내며 우리의 잘 못을 인정하고 새롭게 주시는 새 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요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러 온 여인을 모두들 돌려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모두 다 궁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인가 땅에 손가락으로 쓰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예수님을 졸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어서셔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시기 시작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 없는 자가 누구입니까 깨달음이 있는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다 가고 예수님과 그 여인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십니다.
누구나 잘 못할 수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했습니다.
먼저 모두가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어부들 능수능란한 갈릴리 출신의 어부였으나 빈 그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지난 1년을 살면서 왜 내 그물에는 고기가 없나하고 괴로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나 실 수 할 수 있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실수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先生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受苦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依支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잘못을 알고 돌아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8절 말씀을 보세요.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主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罪人이로소이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태도가 필요 합니다.
이 태도는 새로운 생애를 여는 길에 들어서는 관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은 내내 이런 태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28일자 신문에 보니 복제 아기의 첫 탄생이 세계 역사에 기록 되었습니다. 복제 아기는 정자와 난자의 자연 섭리로 아기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복제 대상자의 체 세포를 획득하여 성숙된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체세포 핵을 이식한 후에 복제된 체세포에 전기 충격을 주어 세포 성장을 유도하고 성장한 배아 세포를 대리모 자궁 내에 이식을 시켜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무서운 일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여호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도 할 수 있다는 과학의 교만함의 산물입니다.
과정을 살펴보면
1983년 생쥐의 생식 세포를 복제하는데 성공 하였고,
1986년에는 면양의 생식 세포를 복제 하였고,
1997년에는 세계최초로 복제에 의한 복제 양 ‘둘리’가 탄생 하였고
1998년 체세포 복제에 의한 쥐, 소들이 탄생 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에서도 복제 소 ‘영롱이’를 탄생 시켰으며,
2000년에는 복제 돼지, 복제 원숭이가 성공하면서 미국의 클로네이드사가 인간 복제를 강행 하겠다고 발표 하였고,
2001년에는 이태리의 안티노리 박사가 인간 복제를 강행 하겠다고 발표를 했고,
2002년 올 해는 유전자를 조작한 복제 돼지 고양이가 탄생 했으며,
12월27일 클로네이드사에 의해 인간 복제 제1호가 탄생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간 복제에는 실제로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유산이 많고 장기가 기형이 되는 경우도 많고 복제 양 둘리는 노화가 금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우리나라의 수준이 세계의 수준급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왜 앞장을 서게 되었는지 기도의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는 법으로 인간 복제를 허용하지 않음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잘못을 알았으면 돌아서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의 많은 시간이 돌아서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3. 돌아서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말씀 입니다.
10-11절 말씀을 보세요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後로는 네가 사람을 取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陸地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돌아서고 나니 새 길이 열렸습니다. 이제는 비린내 나는 어부가 아닙니다. 죽어 가는 영혼을 살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안내하는 지도자가 되는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돌아 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매일 같이 새로운 아침을 주시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매 주일을 주시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뭄이 지나 보름달이 되는 매 달을 주시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묵은해가 가고 새 해를 주시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이 돌아서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새 길을 열어 갈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은 바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 주간 31일에도 저녁 11:00에 교회에 모입니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한 시간을, 새로운 한 해의 그 처음 시간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정리하면서 드리는 한 시간은 성찬을 받으며 회개하는 시간을 갖고 새로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해의 처음 양식으로 삼고 축복의 안수와 함께 새 해를 열어 갈 것입니다.
(사43:18-19) 너희는 以前 일을 記憶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行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丁寧히 내가 曠野에 길과 沙漠에 江을 내리니
광야의 길이 사막의 강이 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신다면 광야가 무슨 이유가 되겠으며 사막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다.
앞날에 큰 승리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전일이나 옛적 일을 기억하지 말라 그보다 더욱 크신 은혜와 축복이 주어질 것이니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물을 내어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수많은 위험도 있고 어려움이 극심하여 막막한 광야에 길을 내어 바르게 인도해 줄 것이요, 생명이 빼앗길 수밖에 없는 사막에 생명의 강물을 주어서 새 생명을 풍성하게 하실 것이니 이전보다 훨씬 더욱 귀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의 앞날을 분명히 보장해 주셨습니다.
조카 롯에게 좋은 것 다 양보하고 허탈한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고 하셨습니다.
아프리카 땅 최남단에는 봉우리 같은 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폭풍의 벼랑, 죽음의 벼랑, 절망의 벼랑, 심지어는 악마의 벼랑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최남단을 넘어 동쪽으로 가면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포루투갈의 ’가마’라는 사람이 여기에 도전하였고 마침내 그는 동쪽으로 달려가서 맑고 깨끗한 인도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곳은 죽음의 벼랑이 아니라 희망봉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에는 그 봉우리와 같은 많은 폭풍과 죽음과 절망의 일들을 만나게 되는데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같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과 부딪히기도 전에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의 곳이 희망의 출발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장 눈앞의 먹구름만 보고 낙심하지 말고 그 너머 비취는 태양 빛을 바라보며 그 약속 믿음으로 받아 승리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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