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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새해를 맞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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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해보다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다 가고 앞으로 일주일 후면 새해가 밝아 옵니다. 새해를 새롭게 맞으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란 제목의 서양 시가 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것 세 가지는 (1)화살 입니다. 한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2)급하게 내뱉은 말입니다. 급하 게 말하고 나면 자신은 잊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남는 것입니다. (3) 황금과 같은 기회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기회는 통곡을 해도 영원히 돌아오 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2005년도는 우리에게 황금과 같은 기회일지 모릅니다. 그 러므로 앞으로 일주일동안 잘 준비함으로 복되고 귀한 새해가 되어야 합니 다. 그러나 아무 준비 없이 새해, 새시간을 맞는 사람은 결국 새해를 낭비하 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가슴 아픈 것은 많은 사람들이 묵은해 가 가고 새해가 올 때에 망년회를 한다고 술을 진탕 같이 마시므로 새해 첫 날부터 몽롱한 정신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망년회’란, 그 해의 온갖 수고로왔던 일들을 잊자는 잔치입니다. 술과 향 락으로 잊으려고 합니다.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해야지 고작해야 한 해를 잊자 는 것으로 끝나니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새날에 대 한 모독적인 행위와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신자들이 새해가 다가옴에도 낡은 해에 가졌던 묵은 감정, 묵은 습관, 묵은 사고방식으로 맞이한다는 것 은 신앙인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새 포도주를 유리병 같은 데 넣고 뚜껑을 꼭 닫아 놓으면 발효율이 얼마나 강하지 폭발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유대 나라에서는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습니다. 가죽부대란 주로 양 이나 염소를 잡을 때 목 부부만 잘라 버린 후 가죽을 그대로 벗겨 말리면 그것으로 하나의 부대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새 포도주를 담으면 처음에 발효가 심할지라도 새 가죽은 신축성이 강하므로 같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낡은 가죽부대는 몇 년을 두고 오래 써 온 탓에 이제 신축성이 없 어져서 만약 그 곳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어느 순간 터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넣어야 하는 것처럼 새해 새시간, 새 기회는 새 틀과 새 형식에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새해를 낡은 사고 의 틀이나 낡은 습관으로 맞이하면 결국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천년 전에 유대 지도자들이 역사상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를 낡은 율법의 틀로 맞으려 했기 때문인 것입니 다. F. 오슬러라는 작가가 쓴 위대한 생애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태어나 던 당시를 실감있게 묘사했습니다. 당시 유대 백성들은 로마의 잔인한 압정 (壓政) 밑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정보정치가 극에 달 해서 로마의 스파이가 사방에 깔려 있음으로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다 지나친 세금 때문에 너나 없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 런데다가 왜 병든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요, 장님, 앉은뱅이, 중풍병자, 문둥 병자들이 거리에 쓰레기처럼 너부러져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로마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뺏은 재물들로 치부를 하면서 사치가 극에 달하고 있었고 각 나라를 침략해서 노예로 끌고 온 여인들을 자기들의 음란의 도구로 삼음 으로 타락의 불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약삭빠른 유대인들은 로마 사람과 결탁하여 권력과 금력을 얻으려 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대해 분노한 애국 청년들이 규합하여 의병 을 일으키거나 로마 사람들을 습격하고 방화하다 체포당함으로 살해당하거 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끌려가는 참으로 암담한 시기였습니다. 바로 칠흑같 이 어둡기만 절망적인 시기에, 빛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동방 하늘에 나타난 별빛입니다. 그 별빛이 움직이더니 가난하고 작은 소읍 (小邑) 베들레헴 한 집 위에서 멈추었습니다. 그 집 말구유에는 아기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 아기 예수님은 세상의 평화와 번영을 투쟁을 통해서 쟁취하 러 오신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영원한 평화와 생명을 주시 기 위해서 오신 메시아였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고 인간은 하늘 시민이 되고 마침내는 빈곤과 병고, 압제와 강탈, 전쟁과 죽음이 없는 영원한 낙원으로 들어가는 좁을 길, 좁은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 을 믿기만 하면 그 영원한 복된 길로 갈 수가 있게된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 분이 사형을 받을 몸인데 갑자기 사면을 받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면 이 는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감격적인 일일 것입니다.

영국 신앙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딸은 편지로 재미난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손녀 딸 세라네 반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성탄을 앞두고 연극을 했답 니다. 아이들이 태양계에 있는 행성들을 하나씩 맡아서 공부를 하더니 그 걸 로 무용극을 만들었답니다. 각 행성에 맞게 지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등으로 분장하여 태양 주변을 천천히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며 돌고 있었습 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체 행성들이 그 움직임을 멈추고 여러 혜성들이 마구 달려들어 오더랍니다. 그리고는 손녀 딸 세라가 커다란 별을 들고 하얀 옷을 입고 머리에 별관을 쓰고 작은 수레를 타고 들어오고 그 뒤로 요셉과 마리 아가 따라오고, 천사들이 아기 예수를 안고 들어오는데, 딸 지연이는 눈물이 눈에서 떨어졌답니다.

”영원히 멸망을 향해 가던 지구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살 수 있는 길 이 열렸다면 너무나 감격적인 사건이구나. 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역사상 가 장 감격적인 사건이기에 온 우주가 아기 예수의 오심을 숨죽이고 기다렸구 나. 그래서 이 거대하고 위대한 우주는 아기 예수 앞에 고개를 숙였구나, 무 릎을 꿇었구나.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이요, 기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율법과 전통의 낡은 가죽부대로 그 기회를 맞으려다가 결국 그 위대한 은혜의 새 포도주를 감당하지 못함으로 버림받 고 저주받는 존재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새해 새날, 새 은혜를 받기 위 해서는 새로운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합니까

1. 새해를 새 마음으로 맞아야 합니다.

새 마음은 어떠한 마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보혈로 깨끗해진 마음을 말 합니다. 우리의 심령을 더럽히는 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악을 씻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뿐이 없습니다. 찬송가 184장에서 ”나의 죄를 씻 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1서1:7에서는 ”그 아 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해가 가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죄를 회개함으로 깨 끗케 하여야 합니다. 무슨 죄를 회개합니까 갈5:19-21에 보면 육체의 죄의 열매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 호색과 우상 숭배, 술수와 원 수를 맺는 것, 분쟁과 시기, 분냄과 당 짓는 것, 분리함과 이단,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입니다. 그러한 죄들을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또한 충성을 게을리한 죄, 기도를 쉬었던 죄, 사랑에 메말랐던 죄들도 예수 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새 로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식에 참여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그 동안 육 적으로나 영적으로 지은 죄들을 모두 회개함으로 이 예식에 참여하시기를 바라며 새해를 새 심령으로 맞이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새해를 새 결심으로 맞아야 합니다. 새로운 기회가 왔음에도 아무 결심이 없이 맞는 것은 인생을 실패할 가능 성이 많습니다. 미국의 어느 큰 광고 회사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로 나온 30여 가지의 실패의 유형 중에서 가장 큰 원인으로 손꼽고 있는 것은 ’결단 력 부족’이었다고 합니다. 새해는 새 기회인 줄 아시고 신앙생활을 더 잘 하기로 결심하십시다. 금년 보다 내년에는 더욱 더 성수주일, 충성생활, 십일조생활, 기도생활을 하십시 다. 그런데 어느 분은 새해를 앞두고 결심한다는 노릇이 ’이제는 교사하기에 너무 지쳤다. 내년에는 쉬어 보겠다. ’라는 식입니다. 올바른 결심에는 한없이 미적거리면서 잘못된 결심은 순식간에 해버립니다. 그런 부정적인 결심을 주 님은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마 그런 결심을 기뻐하는 자가 있다면 사탄일 것 입니다. 아닙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우리는 충성을 다하기로 결심하여 야 합니다. 왜냐하면 재림주가 오셨을 때 충성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24:44-46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 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새해가 올 때에 더욱 더 충성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결심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 다. 아무리 방을 아무리 깨끗이 고치고 도배를 했을지라도 주인에 따라 달라 집니다. 사기꾼이 살면 사기꾼의 집이 되고 음란자가 살면 음란의 집이 됩니 다. 그러므로 우리 회개한 심령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빌2:5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우리 빈 마음은 예수 님의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예수님이 우리 삶을 주 관하시게 됨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복된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뉴 웰 리스라는 사람이 그 친구가 기차를 타고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님과는 거리가 먼 쾌락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웰리스의 친구가 불쑥 말하기를 ”종교 문학 작품이 대부분 고루한 데 자네의 낭만주의로 재미있는 예수전을 써 보면 어떤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웰리스는 흥미 위주로 로맨틱한 예수의 이야기를 쓰려고 결심했습니 다. 그리고 배경설명을 위해서 열심히 성경을 읽기를 시작하고 성지를 순례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쓴 예수전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중에 큰 감동이 그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그는 어느 순 간에 예수님께 사로잡히면서 회개의 눈물이 터졌을 것이요, 그리고 큰 결심 을 하면서 고백하기를 ”주여, 이제부터 주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겠나이 다. ”고 했을 것입니다. 결국 웰리스는 예수님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완성한 작품이 ’벤허’입니다. 그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십자가에서 흐르는 예수의 피 가 빗물과 함께 도랑을 채우고 개천을 채운 후에 대지를 덮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발표와 동시에 베스트셀 러가 되었고, 여러 차례에 걸쳐 연극·영화화되어 인기를 모았고, 특히 1959 년 W. 와일러 감독의 영화는 작품상을 비롯하여 11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설과 영화는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가슴이 신 앙의 불을 붙였을 뿐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많은 전도의 효과를 가져왔던 것 입니다.

한 쾌락주의자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복된 인생이 열린 것입니다. 사랑하 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새해는 새 기회인 줄 아시고 여러 가지로 결심하시 되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충성하기로 결심하시기를 간절히 바 랍니다.

3. 새해를 새 열심을 품고 맞아야 합니다.

우리가 새 마음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충성하기로 결심했다면 이제 더 필요한 것은 열심을 품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22:37에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최선을 다하 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달란트 비유를 눈여겨보십시오. 거기에는 귀한 교훈이 있 습니다. 주인은 먼 나라로 떠나면서 종들에게 그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맡기 면서 장사하여 이를 남기라고 했습니다. 갑이라는 종은 능력이 우수하여서 다섯 달란트를 맡기었고, 을이라는 종에게는 갑보다 조금 능력이 많아서 두 달란트를 맡기었습니다.

그러나 병이라는 종은 능력이 부족하여서 한 달란트를 맡기었습니다. 그러 나 성경의 말씀과 달리 한 달란트 맡은 종이 비록 능력은 부족하지만 최선 을 다하여 장사하다가 겨우 한 달란트를 남겼고 다섯 달란트의 능력을 가진 자는 적당히 노력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고 합시다. 그러면 주인은 와서 누구를 더 칭찬하겠습니까

최선을 다한 한 달란트를 남긴 병을 칭찬할 것이요, 반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갑을 야단을 칠 것입니다. 아빠가 장에 가면서 세 아들에게 밭을 매라 고 하면서 6학년 자리에게는 여섯 고랑을, 3학년 자리에게는 세 고랑을, 1학 년 자리에게는 한 고랑을 맡겼다고 합시다. 그런데 장에 갔다가 오후 늦게 와보니 6학년 아이와 3학년 아이는 벌써 맡은 고랑을 다 매고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그러나 1학년 아이는 어둑해 가는 때에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된 채 밭을 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아빠는 그 아이를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 을 것입니다. 반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두 아이는 야단을 먹을 것입니다. 주 님이 보시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들이여, 교회 안에서 시간과 물질을 바쳐 가면서 열심히 충성하다 보면 어려 운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인들이 알아주기는커녕 앞장 서 충성하다 보니 오히려 더 많 은 비판을 받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너무나 낙심이 되어 더 이상 충성할 마 음이 없습니다. 자기도 남들처럼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 깁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볼 분이 주님이시지 사람이 아닙니다. 누가 알 아주든지, 누가 비판하든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주님만 바라보고 충성할 때 에 어느 날, 우리를 부둥켜안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면서 칭찬과 상급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언제도 말씀 드린 대로 저의 집사람이 중학교 교사로 있던 수동중학교 옆 에는 수동감리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 뜰에는 ’최군명 장로 공로비’라는 비 석이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처음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 마을에 교회가 없 으므로 3년 동안 그곳에서 120리 떨어진 정동감리교회를 출석했습니다. 교회 에 갈 때 감자 큰 것 두 개를 삶아 가지고 토요일 밤 9시경에 떠난다고 합 니다.

밤 12시쯤 되어 고개 마루턱에 오르게 되는데 망우리 쯤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서 감자 하나를 먹고 걸어서 서울로 들어온 후 교회에 도착하여 나머 지 한 개를 조반으로 먹은 후 예배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 친 후 다시 120리를 걸어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의 열심에 너무나 감동한 선교사가 땅을 사주고 그곳에 교회를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도 이런 모습에 너무나 감동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나 감동하셨겠습니 까 밤이 맞도록 120리 길을 걸어서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모습, 식구들이나 사람들이 말리고 혹은 동네 사람들이 ’예수에게 미쳤다. ’고 비웃 을 지라도 마다 않고 추운 겨울 눈보라 치는 속을 뚫고 교회를 찾아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시어 순간순간 동행하시면서 특별한 능력을 주셨을 것 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한 해가 다 저물고 꼭 일주일 남았습니다. 새해를 맞기 전에 우리 모두는 한 해 동안 지었던 영육 간에 지은 죄를 주 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회개함으로 새 마음, 새 심령이 됩시다. 그리고 그 빈 심령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기로 결심합시다. 더 나가서는 그 왕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충성하기로 결심하심으로 새해 에, 새 복을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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