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본문
새해를 시작할 때가 엊그제 같았었는데 벌써 마지막 송년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는 법이고, 마지막이 있으면 새로운 의미의 시작이 있는 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요한계시록 22:13)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시간의 개념을 바로 가져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한해가 지나가고 또 한해가 다가오는 시간의 자연적 흐름으로만 보지 말고 시간 속에서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예수님이 세 가지의 사건을 들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첫째는, 빌라도가 성전에서 갈릴리 사람들을 살해한 사건이요,
둘째는,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열 여덟 사람이 치어 죽은 사건이요,
셋째는, 포도원에 심긴 무화과 나무에 열매맺지 못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의 사건을 설명하면서 당시의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에게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제 금년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볼 때 한마디로 격동하는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오늘 이 시간까지 우리 나라와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들을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이되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 해를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동시에 한해를 잘 살았다는 떳떳함과 자랑스러움보다는 오히려 아쉬움과 죄책감이 앞서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뿐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러한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남은 것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 어 죽은 열 여덟 사람보다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금년에도 코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 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또한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직장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사업장이 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문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경고와 위로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I. 주님이 주시는 경고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두 번씩이나 강조한 말씀이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그들처럼 망한 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당시 이 말씀을 주시던 대상자는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지도자들이 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말씀 을 주신 것입니다. 상당히 쇼킹한 경고의 음성입니다.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사건을 생각만 하여도 끔찍한 일인데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경고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정신이 바짝 드는 경고의 음성입니다.
자! 그런데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시면서 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을까요 여기에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진리가 있는 줄 압니다.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 나무는 삼 년동안이나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열매를 맺지도 못하면서 땅만 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갖 영양분은 다 빨아먹으면서도 정작 주인이 요구하는 열매는 맺지 못하였으니 주인이 찍어 버리라고 말한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대로도 무화과 나무는 개나리나 향나무처럼 보고 즐기기 위하여 가꾸는 관상목 아닙니다. 그리고 땔깜으로 사용되는 재목도 아닙니다. 무화과 나무는 과실수입니다. 즉 열매를 맺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나무입니다. 무화과 나무의 존재 이유는 딱 한가지, 열매 맺는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 나무가 삼 년이나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였으니 스스로의 존재 가치 를 상실하였으며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땅만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땅만 버리고 있는 저 무화과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엄히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여기 나오는 무화과 나무는 구약의 이스라엘(호 9:10)을 상징하며 신약의 성도들을 가리킵 니다. 동산 주인은 인류의 역사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심판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과원지기는 죄와 사망과 지옥의 자리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 세상에 찾아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은 이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15:16) 어두움의 자식되었던 우리들, 진노의 자식이었던 우리들,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된 우리들을 빛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신 것은 열매 맺게 하기 위함임 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무화과 나무인데 열매가 없다면 우리가 존재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인데 ”만일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13) 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진노 증에서라도 긍휼을 베푸시고 길이 참으시고 용납하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의 존재 가치가 성령의 열매를 맺고 빛의 열매를 맺는 데 있다면 금년에도 이러한 열매를 얼마나 맺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귀한 직분을 주셨는데 괜히 직분자의 자리만 차지라고 아무 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괜히 목사다, 장로다, 장립집사다, 권사다, 서리 집사다, 부장이다, 회장이다 하고 거드름이 나 피우지 않았습니까 정작 그 직분자의 자리에 걸맞은 열매를 얼마나 맺었습니까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 우리라”(마태복음 3:10)는 말씀이 귓전에 쟁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포도원에 거대는 기대가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탄식이 무엇입니까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 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사 5:4)고 하고 탄식하였습니다. 금년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대성교회의 포도원과 여러분들의 가정의 포도원에 때를 따라 돕 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되로 극상품 포도열매를 맺었습니까 아니면 들포도를 맺었습니까 아렇게 보건대 우리들은 금년에도 ”찍어버리라”는 경고의 음성대로 불에 사름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진대 어찌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직분자답게 살지 못한 것 철저하게 회개하십시다. 사명 감당하지 못한 것 철저하게 회개하십시다. 이것이 복음이며 여기에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2. 주님이 주시는 위로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다.
본문에서 삼 년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위하여 주인에게 간절히 애원하는 과원지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누가복음 13:8-9) 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과원지기는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금년에도 뒤돌아보면 벌써 찍힘을 받아 마땅한 불충한 죄인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말 형편 없는 우리의 모습 앞에 머리를 들 수 없습니다.
여기서 ”두루파고”라는 말은 뿌리 주변에 있는 흙을 긁어 부드럽게 하여 주는 것을 의미 합니다. 한번 생각하여 보십시오. 삼 년이나 지나도록 전혀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를 위하여 다시 뿌리 주변의 흙을 부드럽게 하여 주고 거름을 주는 특별한 배려는 무화과 나무에게는 과분한 대우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편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임에도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정성을 쏟으시고 보살펴 주시는 것처럼 오늘 불충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여 찍어 불에 던짐을 받아 마땅한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소망과 기대감을 가지고 지극한 정성과 관심으 로 보살펴 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만큼 사람 노릇 하면서 사는 것도 우리 주님의 중보 기도의 덕분입니다. 그런데 본문 8절을 유의 깊게 살펴보십시다. 내가 두루파고 거름을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열매 맺지 못하는 책임을 주님이 대신 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화과에 대한 가능성을 보시고 책임을 대신 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을 연기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복음의 정신을 바로 알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쓸모 없는 무용지물같은 우리들을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고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친히 간구하고 계시고 지금도 계속하여 성령님의 은사를 내려 주시고 계십니다. (로마서 8:34; 야고보서 1:17) 빌레몬서에 보면 오네시모라는 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빌레몬서 1:11-12절을 보면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과거에는 주인에게 무익한 종이었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유익한 존재가 되 고 없어서는 안될 심복 같은 종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날마다 우리의 죄를 송사하고 있지만, 금년에도 여러 가지 잘못한 것 을 가지고 고소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피 묻은 두 손을 보이시며 ’아버지여 이들을 위 하여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나이다 나의 이 피묻은 손을 보시고 저들을 다시 한번 용서하 여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들의 남은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지나가게 되면 회개할 수 없을 때가 오고 결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금년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지나간 일년 동안의 모든 죄를 통회 자복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아 다가오는 새해에도 승리하는 축복의 문이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예수님이 세 가지의 사건을 들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첫째는, 빌라도가 성전에서 갈릴리 사람들을 살해한 사건이요,
둘째는,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열 여덟 사람이 치어 죽은 사건이요,
셋째는, 포도원에 심긴 무화과 나무에 열매맺지 못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의 사건을 설명하면서 당시의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에게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제 금년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볼 때 한마디로 격동하는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오늘 이 시간까지 우리 나라와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들을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이되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 해를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동시에 한해를 잘 살았다는 떳떳함과 자랑스러움보다는 오히려 아쉬움과 죄책감이 앞서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뿐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러한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남은 것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 어 죽은 열 여덟 사람보다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금년에도 코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 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또한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직장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사업장이 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문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경고와 위로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I. 주님이 주시는 경고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두 번씩이나 강조한 말씀이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그들처럼 망한 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당시 이 말씀을 주시던 대상자는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지도자들이 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말씀 을 주신 것입니다. 상당히 쇼킹한 경고의 음성입니다.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사건을 생각만 하여도 끔찍한 일인데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경고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정신이 바짝 드는 경고의 음성입니다.
자! 그런데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시면서 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을까요 여기에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진리가 있는 줄 압니다.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 나무는 삼 년동안이나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열매를 맺지도 못하면서 땅만 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갖 영양분은 다 빨아먹으면서도 정작 주인이 요구하는 열매는 맺지 못하였으니 주인이 찍어 버리라고 말한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대로도 무화과 나무는 개나리나 향나무처럼 보고 즐기기 위하여 가꾸는 관상목 아닙니다. 그리고 땔깜으로 사용되는 재목도 아닙니다. 무화과 나무는 과실수입니다. 즉 열매를 맺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나무입니다. 무화과 나무의 존재 이유는 딱 한가지, 열매 맺는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 나무가 삼 년이나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였으니 스스로의 존재 가치 를 상실하였으며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땅만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땅만 버리고 있는 저 무화과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엄히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여기 나오는 무화과 나무는 구약의 이스라엘(호 9:10)을 상징하며 신약의 성도들을 가리킵 니다. 동산 주인은 인류의 역사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심판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과원지기는 죄와 사망과 지옥의 자리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 세상에 찾아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은 이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15:16) 어두움의 자식되었던 우리들, 진노의 자식이었던 우리들,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된 우리들을 빛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신 것은 열매 맺게 하기 위함임 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무화과 나무인데 열매가 없다면 우리가 존재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인데 ”만일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13) 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진노 증에서라도 긍휼을 베푸시고 길이 참으시고 용납하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의 존재 가치가 성령의 열매를 맺고 빛의 열매를 맺는 데 있다면 금년에도 이러한 열매를 얼마나 맺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귀한 직분을 주셨는데 괜히 직분자의 자리만 차지라고 아무 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괜히 목사다, 장로다, 장립집사다, 권사다, 서리 집사다, 부장이다, 회장이다 하고 거드름이 나 피우지 않았습니까 정작 그 직분자의 자리에 걸맞은 열매를 얼마나 맺었습니까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 우리라”(마태복음 3:10)는 말씀이 귓전에 쟁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포도원에 거대는 기대가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탄식이 무엇입니까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 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사 5:4)고 하고 탄식하였습니다. 금년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대성교회의 포도원과 여러분들의 가정의 포도원에 때를 따라 돕 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되로 극상품 포도열매를 맺었습니까 아니면 들포도를 맺었습니까 아렇게 보건대 우리들은 금년에도 ”찍어버리라”는 경고의 음성대로 불에 사름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진대 어찌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직분자답게 살지 못한 것 철저하게 회개하십시다. 사명 감당하지 못한 것 철저하게 회개하십시다. 이것이 복음이며 여기에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2. 주님이 주시는 위로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다.
본문에서 삼 년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위하여 주인에게 간절히 애원하는 과원지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누가복음 13:8-9) 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과원지기는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금년에도 뒤돌아보면 벌써 찍힘을 받아 마땅한 불충한 죄인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말 형편 없는 우리의 모습 앞에 머리를 들 수 없습니다.
여기서 ”두루파고”라는 말은 뿌리 주변에 있는 흙을 긁어 부드럽게 하여 주는 것을 의미 합니다. 한번 생각하여 보십시오. 삼 년이나 지나도록 전혀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를 위하여 다시 뿌리 주변의 흙을 부드럽게 하여 주고 거름을 주는 특별한 배려는 무화과 나무에게는 과분한 대우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편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임에도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정성을 쏟으시고 보살펴 주시는 것처럼 오늘 불충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여 찍어 불에 던짐을 받아 마땅한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소망과 기대감을 가지고 지극한 정성과 관심으 로 보살펴 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만큼 사람 노릇 하면서 사는 것도 우리 주님의 중보 기도의 덕분입니다. 그런데 본문 8절을 유의 깊게 살펴보십시다. 내가 두루파고 거름을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열매 맺지 못하는 책임을 주님이 대신 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화과에 대한 가능성을 보시고 책임을 대신 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을 연기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복음의 정신을 바로 알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쓸모 없는 무용지물같은 우리들을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고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친히 간구하고 계시고 지금도 계속하여 성령님의 은사를 내려 주시고 계십니다. (로마서 8:34; 야고보서 1:17) 빌레몬서에 보면 오네시모라는 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빌레몬서 1:11-12절을 보면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과거에는 주인에게 무익한 종이었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유익한 존재가 되 고 없어서는 안될 심복 같은 종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날마다 우리의 죄를 송사하고 있지만, 금년에도 여러 가지 잘못한 것 을 가지고 고소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피 묻은 두 손을 보이시며 ’아버지여 이들을 위 하여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나이다 나의 이 피묻은 손을 보시고 저들을 다시 한번 용서하 여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들의 남은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지나가게 되면 회개할 수 없을 때가 오고 결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금년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지나간 일년 동안의 모든 죄를 통회 자복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아 다가오는 새해에도 승리하는 축복의 문이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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