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TOP
DOWN

[송구영신]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4)

본문

오늘은 마지막 주일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어느덧 이 한해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 2000년이라는 이 한해도 이제 몇 시간 후면 영원히 우리들의 곁을 떠나고 말 것입니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면 그야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해였습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 사회적으로 잠시도 편한 적이 없는 한해였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사건과 일들이 있었고, 아픔도, 기쁨도 있었습니다. 하여튼 우리가 올 한해를 보내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즐거움과 뿌듯함과 만족감보다는 허전함과 아쉬움과 자책이 앞서는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배경을 먼저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몇 명의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 총독에 의해서 사형을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예루살렘에 큰 화제가 되었던 한 가지 사건을 더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열 여덟 명의 사람들이 죽고 만 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주고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2-5
절에 보면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자들을 비롯해 예수님을 따르고 있던 많은 무리들은 빌라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이 다 죄가 많아서 죽은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해석은 이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일을 당한 것은 그들의 죄가 특별히 많아서가 아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신 말씀이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내용은 회개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비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올 한해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너와 나를 상관없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지나가야 할 것이 많을 줄 압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회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해를 출발할 때 그 출발이 복된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범죄했던 모든 것들, 그리고 우리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소망의 한해를 맞이하시기를 먼저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다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포도원은 교회를 상징하고 있고, 포도원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고, 과원지기는 예수님을, 그리고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는 바로 우리 성도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들려주는 음성은 무엇입니까
1.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초라함입니다.
먼저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초라함인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보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저절로 자생한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들판에 자라난 그러한 무화과나무도 아니었습니다. 주인의 계획과 목표 아래서 포도원에 심겨진 나무가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이 무화과나무는 길가나 골짜기나 자갈밭에 심겨진 나무가 아니라 포도원에 심겨진 나무였습니다. 농부가 땀을 흘려 개간한 후에 땅을 파고 거름을 주어 비옥하게 가꾼 후에 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쳐서 정성스럽게 가꾸는 그러한 특별한 장소에 심겨진 나무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정성을 다해 심겨지고 보살펴졌다면 당연히 좋은 열매가 그리고 많이 맺혀져야 할텐데 무화과나무에서는 전혀 열매를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열대 과일 중에 ’빠빠야’라는 과일이 있습니다. 아마도 열대 과일 중에 바나나와 더불어 가장 흔한 과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빠빠야는 따지 않고 그대로 두면 그 과일이 벌어져서 씨가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이 떨어진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어 또 다른 열매는 맺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열대 지방의 나무들은 그 성장 속도가 빠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3년이나 된 나무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장할 만큼 충분히 성장한 나무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1)이 나무는 주인의 기대에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주인은 이 무화과나무를 심으면서 많은 기대를 하였을 것입니다. 충실한 나무로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고, 그래서 주인을 기쁘게 하는 나무가 될 것을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원에 심었고, 또 과원지기를 통해서 정성스럽게 가꾸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전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매해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나무는 주인의 기대를 전혀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이 나무는 주인의 정성을 다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인은 이 나무에서 열매는 얻기 위해서 정성을 다했을 것입니다. 때를 따라 거름도 주었을 것이고, 가뭄이 들면 물도 충분히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거름도, 이 물도 다 헛것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주인이 쏟은 정성이 다 헛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3)이 나무는 자리 값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다른 나무를 심었더라면 열매는 맺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수확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이 수확물들을 창고에 들여놓고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수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무화과나무는 자리 값도 못하고 있는 셈이 된 것입니다.
4)이 나무는 나이 값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 나무는 3년이나 된 나무였습니다. 충분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아니 벌써 열매를 맺었어야만 할 나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나무는 여전히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 값도 못하고 있는 나무인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주인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주인의 정성도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자리 값도 못합니다. 더군다나 나이 값도 못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러한 나무를 과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주인은 이 나무를 향해 격노하고 있습니다.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격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호9:10절 상반절에 보면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무화과나무는 영적인 의미로는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무화과나무가 되는 우리들은 이 한해 얼마나 열매를 맺었습니까 주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은 바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1)만약 우리가 열매 맺지 못한 삶을 살았다면 우선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5:2-4절에 보면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들이게 들려주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처럼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한 기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렸습니까 아니면 본문의 무화과나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습니까 한해를 마무리짓는 이 시간 우리 자신을 한 번 점검해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2)만약 우리가 열매 맺지 못한 삶을 살았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정성을 쏟아버리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녀라는 이 말은 우리들이 우리들의 자식들을 돌보듯이 여호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정성을 다해 볼보고 키우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정성을 다해 우리들을 돌보시고 키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인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지난 1년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서울에는 도로표지판 가운데 이러한 표지판이 있습니다. 어제의 교통사고 건수, 사망자수, 부상자수 등등을 기록한 표지판이 있는 것을 여러분도 다 보신 줄 압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사고와 불행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 가운데서, 이러한 인생들의 삶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 나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이 자체를 여러분들은 축복이라고 생각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었기에,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 앉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정성을 기울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열매를 맺기를 원하셔서 그렇다고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정성을 그저 흘려보내는 미련한 사람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3)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자리 값도, 나이 값도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는 포도원에서도 자리 값도, 나이 값도 못하는, 쓸데없는 그래서 찍혀 불에 던지어질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3년이나 된 나무이기에 잎은 무성했을 것입니다. 보기에는 그럴 듯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열매는 맺지 못하는 나무가 오늘 본문의 무화과나무였습니다.
여기서의 자리와 나이는 육신의 나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연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5:12절에 보면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신앙의 연륜이 쌓여 가면 당연히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할텐데 왜 그렇지 못하냐는 주님의 책망인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군림하라는 직분이 아닙니다. 교회의 직분은 지금보다 더 더욱 봉사하라고 주시는 직분입니다. 직분을 가지고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0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이 시간 여러분들의 신앙의 결산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내 놓을 열매가 있으십니까
3.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희망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가 비록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주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1)여호와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있기에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3년을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3년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내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래 참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비록 열매는 맺지 못하는 나무일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열매 맺기를 기다리
시면서 오래 참아주시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도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갈6:7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우습게 여기고 그 인내하심을 육신의 일을 위해 쓰지 말아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인내하실 때에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2)주님의 정성이 2001년도에도 계속될 것이기에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다시 보면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2001년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정성을 다해 돌보시고 키우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정성 가운데 돌보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들을 지키실 것입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들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이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있을 것이기에 우리들에게는 늘 희망이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또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3)주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거름을 주실 것이기에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8절에 보면 ”거름을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축복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1년에는 더욱 더 많고, 큰 주님의 축복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축복을 열매를 맺는 곳에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
서 우리들을 축복하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주님께서 우리들을 더욱 축복하실 것입니다. 정성으로 우리들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을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이 축복과 사랑 가운데 많은 열매는 맺어 자신 있게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제 다사다난했던 2000년을 보내고 밝아오는 2001년을 맞이하는 시간에 다다랐습니다. 이 2000년을 보내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한번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입
니다. 우리들에게는 과연 열매가 있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이 하나도 없는 부끄러운 삶은 아니었습니까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