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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알파와 오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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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마지막 주일입니다. 내일이면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올 한 해는, 어떤 한 해 이셨는지 궁금합니다. 2001년이란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리셨습니까 이제 어떻게 마무리하실 계획이십니까
▷ 저는 오늘 본문, 말씀으로 알파와 오메가 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알파는 희랍어 첫 글자입니다. 오메가는 희랍어 가장 마지막 글자입니다. 우리나라 자음으로 치면, ’ㄱ’ 과 ’ㅎ’ 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처음과 나중이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 모든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올해,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우리 김해제일감리교회 교우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특히 지난 1년 동안 실망스럽고, 낙심한 일들을 모두 주님께 맡기시고, 희망 찬 새해를 맞이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지나온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기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망이 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신통치 못한 자신의 삶’이 한심스럽고 허탈감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이 낙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낙심은 자신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낙심은 주변 사람들까지도 낙심시키는 전염성이 강합니다. 낙심은 용기와 의욕을 상실케 만들고 꿈과 소망까지도 짓밟아 버립니다.
한 집의 가장인 아버지가 낙심하면 식구들이 절망에 빠집니다. 어머니가 낙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지도자가 낙망하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함께 절망에 빠집니다.
 구약 성경 민수기 13-1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 땅으로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가데스바네아’라는 지역에 도달했을 때 12명의 족장을 뽑았습니다. 졸개가 아닙니다. 지도자입니다. 민족의 리더입니다. 그런 12명의 족장을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보냈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고합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참 비옥한 땅입니다. 참 좋습니다. 그러나 거기 사는 사람들은 강하고, 성은 견고하고 크며, 우리들은 절대로 거기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워낙 크고 성이 튼튼하기 때문에 우리는 갈 수가 없습니다. 땅은 비옥하지만 그 사람들이 워낙 대단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아마 메뚜기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
이 때 갈렙이 나타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닙니다. 거기는 성이 높고, 사람들이 대단한 것은 틀림이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가 가면 우리가 능히 이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갑시다. ”라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얘기해도 열명의 사람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게 되니 백성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사람의 말만 믿고 절망에 빠집니다.
 민수기 14장 1절에 보면 온 백성들이 소리지르며 밤새도록 곡을 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애굽에서 죽고, 여기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죽었더라면…”라고 그렇게 후회하면서 한 사람을 지도자로 따로 세워서 이집트로 다시 돌아갈까도 생각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가던 사람들, 홍해를 건너오면서 가나안에 가서 살 희망으로 나왔던 사람들이 열 사람의 절망적인 보고를 듣고 가나안의 꿈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떠나온 것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죽지 못했던 것을 한탄하며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몇 사람의 실망과 낙심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때인 줄 압니다. 여기 예배에 참석한 가장들, 예배에 참석한 어머니들, 예배에 참석한 자녀들,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누구를 막론하고 여러분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혹시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왜 사람들이 실망하고 낙심합니까 왜 사람이 살면서 낙심, 실망하게 되느냐 말입니다.
1. 기대했던 것이 빗나갈 때 낙심합니다.
사람마다 다 어떤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한 것이 어긋날 때 낙심하게 됩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애할 때 보니까
”야 이 남자 믿음직스럽고 너무너무 잘해주고 이 남자한테 시집가면 왕비가 되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결혼해 보니, 그날부터 하녀 취급합니다.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속았구나, 속았구나. ”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 웬수”하며 가슴속에 맺히는 것이 생깁니다. 연애할 때 보니까 깔금하고 예의바르고, 단정해서 결혼해 보니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고, 게을러서 야, 속았구나. 그 많은 여자 중에 하필 저런 여자를 골랐나”하고 낙심합니다. 부부간에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간에도 아버지에 대해서 자식이 실망하고, 자식에 대해서 아버지가 실망합니다. 형제간에, 친구간에, 사업을 하면서, 회사에서 승진할 때 승진 못해서, 진학 할 때 제대로 진학하지 못해서, 기대했던 점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실망합니다.
때로는 신앙생활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낙심케도 합니다. 집사 좀 다르겠지. 권사 좀더 다르겠지. 장로 특별한 분이겠지. 목사 우리네 보통 사람과는 다른 부분이 있는 그런 사람이겠지. 그런데 때로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어떤 때는 우리 자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망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저는 저 자신에 대해서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금년에도 시작하면서 저 나름대로 계획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금년엔 꼭 이런 것을 해야지. 매일 이것을 해야지!”라고 결심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제 모습을 보면서 한심하게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으로서, 사람의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서 제 모습이 부끄럽고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다 모르실 것입니다. 모르기를 다행입니다. 다 아시면 실망스러운 일이 많으실 것입니다.
어떤 사모님은, 교인들이 목사님의 인격과 성품을 칭찬 해 주면, ’아이구. 살아 봐! . ’
 기대했던 것이 빗나가면, 실망, 낙심합니다.
2. 남들이 알아 주지 않을 때, 인정받지 못할 때 실망합니다.
사람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인정받지 못할 때도 실망합니다. 누구나 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인정받고 싶어하고 박수 받고 싶어하고 칭찬 받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은 남들이 인정해 줄 때 만족을 얻고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됩니다.
자식은 부모가, 학생은 선생님이, 직장인은 상사가 인정해 줄 때 기분 좋아 일합니다.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곳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신앙생활해야 된다고 배웠으면서도 때로 목회자가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하고 고개를 돌리고 토라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면 실망하게 되는 것이 보통 사람입니다.
그러나 구석구석에 이름없이 빛없이 일해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정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실망합니다.
더 큰 실망은
3. 여호와 하나님의 뜻(섭리)을 깨닫지 못해서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뒤에 감추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서 실망하고 좌절하고 비통해 합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면 그렇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 팔려갑니다. 남의 나라에 잘 사는 집, 권세 있는 집의 하인으로 들어갑니다. 그것도 억울한데 감옥에까지 들어갑니다. 절망에서 아마 자살할 정도의 추락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떤 환경에 가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애썼습니다. 남의 집에 하인으로 가서 사는데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이 있음으로 그 집을 축복하셨고, 다른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음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절망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던 요셉은 그 속에 담겨진 여호와 하나님의 뜻, 그 속에 숨겨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그는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그 감옥에서 오히려 여러 성경을 썼고, 감옥에서 오히려 더 감동적인 교훈을 주는 말씀들을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돌이켜 보면 과거에 실망하고 낙심했던 일들 가운데”오히려 그때 그런 일이 다행이었다. ”고 고백할 만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정말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떳떳하게 살려고 노렸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시험과 시련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 오히려 더 큰 일을 나를 통해서 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숨어져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 보면 정말 원수같은 사람, 지옥에 가면 대장 노릇할 것 같은 그런 못된 사람이 편안하게 잘 살고, 여호와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날마다 징징대고 울어야 되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12장 1절에 보면 예레미야는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여호와 하나님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묻습니다. 악한 자가 잘 되고 패역한 자가 편안하게 사는 것 이 무슨 연고입니까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이렇게 힘들고, 저 못된 것들은 저렇게 잘 삽니까”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시편 37편 1-2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
여러분, 악한 자가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좋은 것도 주시고, 낙심거꺼도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나의 여호와 하나님, 저와 여러분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꼭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세상에서 죄된 삶을 살았던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부끄럽고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잘못 살았던 것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그러나 구해야 될 것은 당당히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기도하는 것도 기도제목도 당당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여러분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눈치를 보고 문을 여는 것도 살금 살금 눈치를 보고 연다면 그 집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집의 문을 어떻게 엽니까 활짝 제껴 엽니다. 어떤 때는 깜짝 놀라게 열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네 집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당당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다가 실망하고 낙심하고, 손해 보고, 억울하고, 눈물 흘린 것, 섭섭한 것, 미운 것 이 2001년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 접고 덮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내가 여호와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기만 하면 선하게 마무리 져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자 어거스틴(St. Augustinus)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다 현재이다.
과거는 기억해 볼 수 있는 현재이고,
미래는 기대할 수 있는 현재이다.
지금 오늘 현재, 실망에 빠져 있다면, 낙심하고 있다면 기억해 내는 것도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미래의 기대도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지금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은, 힘들었던 과거도 아름답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내다보이는 장래가 설령, 불확실하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실 것을 믿는 사람은 자기 장래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미래를 기대하시겠습니까 오늘 절망하면 그것은 절망입니다. 오늘 실망하면 그것은 실망입니다. 오늘 포기하면 과거의 기억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포기하면 미래의 기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카네기”라는 사람이 평생토록 간직하고 살던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별 볼일 없는 그림입니다.
카네기는 젊은 시절 외판원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혼자 사는 노인의 집에 물건을 팔려고 갔는데, 그 혼자 사는 노인과 대화를 하다가 그 벽에 걸린 조그마한 그림을 하나 봤습니다. 별로 신통치 않은 그림입니다.
해변가 모래위에 떠있는 조그마한 고기배입니다. 그림으로 봐도 고기배가 낡았습니다. 모래 위에 얹혀 있습니다. 배는 물 위에 떠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래 위에 얹혀 있습니다.
별로 신통치 않은 그림이라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밑에 이런 글씨가 써 있었습니다. ”밀물 때가 오리라”
너무나 감동적인 그 한 문장을 보고 그 노인에게 그림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 노인은 그 그림을 주지 않으려고 죽은 다음에 가지고 가라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인이 죽은 다음에 그림을 가져다가 평생 간직하고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래 위에 얹혀진 배입니다. 지금은 고기잡이를 못합니다. 그러나 물이 밀 때가 올 터인데 그때에 나가 고기를 잡겠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모래 위에 얹혀 있지만 배를 수리하고 기름을 치고 준비하고 있다가 물밀 때 나가 고기를 잡으리라.
금년에 실망한 것, 낙심한 것, 손해 본 것, 억울 한 것, 섭섭한 것, 그것을 기억하고 그것만 붙잡고 있는 사람은 물이 밀어도 배가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 모래 위에 얹혀진 심정입니까 남들은 다 나가서 고기 잡고 있는데 지금 모래 위에 얹혀져 있습니까 배를 닦고, 기름을 치고, 그물을 꿰매고 준비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물이 밀려 올 때 나가, 내가 나가 고기를 잡으리라. ”
”물밀 때가 오리라. 물밀 때가 오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방관자로, 나와 무관한 분으로 계시지 않다면 밀물 때가 오리라.
2001년이 이틀 남았습니다. 여러분! 남은 이틀과 송구영신예배를 통하여, 밀물 때를 준비하는 날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물을 꿰매고, 배에 기름을 치고 다시 물 밀 때를 준비하는 어부는 지금 힘들어도 기대에 차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가 가지 않았습니다. 때가 올 것입니다.
 시편 118편 6절에 있는 말씀처럼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여호와 하나님이 내 편이십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내 편이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을 붙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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