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내가 속히 오리라
본문
오늘은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몇일 있으면 우리는 2000년도를 보내고 불안한 중에 2001년도를 맞게 됩니다. 이 마지막 주일에 성경 마지막을 봉독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성도의 가장 중요한 소망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20-21).
재림에 대한 신앙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구약에 모두 1518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숫자는 성경의 매장마다 한번씩 기록하고도 남는 기록입니다. 예수님의 초림도 중요하지만 재림은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성경의 입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들이 가지는 마지막 희망이며, 성경의 많은 약속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약속입니다. 따라서 이 약속을 믿는 신앙은 종말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신앙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믿을만한 약속
성경은 우주의 창조에서 멸망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시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기록하였을 뿐 아니라 특히 요한 계시록은 인류의 종말에 일어날 대 사건들, 곧 전쟁과 천재지변, 재앙과 질병,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인한 신앙적 갈등과 사회의 혼란 등등 세계의 종말에 있을 많은 사건들과 신앙인들이 겪어야 할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라는 전제하에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천재요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혜안이 있을지라도 우주와 인류 역사에 대한 신비와 미래를 예언할 수도 없고, 글로 써서 몇 천년을 지나면서 읽고 연구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많은 사건들을 예언한 후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라고 한 것은 분명히 인간의 경지를 초월하신 분이 말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미래를 말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조물주가 아니면 불가능 한 일입니다.
요한 계시록도 종말에 대한 말씀이지만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께서 직접 종말에 대하여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말과 자신의 재림을 예언하시면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사역 초기, 갈릴리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팔복산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하셨습니다.
이런 약속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런 분의 약속이기 때문에 이 약속은 절대 불변입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안심하고 믿고, 의지해도 괜찮은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림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하신 주님이 98년에도 함께 하실 것을 믿는 신앙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약속의 내용
그러면 그분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약속은 매우 간단 명료합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입니다. 이 말씀은 단 네 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내가”입니다. 재림의 약속 당사자는 인류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 분이 직접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이를 대신 파송할 것이 아니라 재림의 약속 당사자이신 예수님 자신이 직접 약속하신 대로 오십니다.
둘째, ”진실로”라는 단어는 이 약속의 진실성을 확인해 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통 약속도 믿을 수 있고 확실한데, 진실이라는 확인서가 붙은 약속이기 때문에 재림의 약속은 아주 확실하게 믿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셋째, ”속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약간 이해가 곤란합니다. 그 까닭은 ”속히”라는 말씀이 있는지 2000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예수님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 때문에 이단에 빠지기도 하고 재림의 날을 헛잡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1992년에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될 때, 많은 사람들이 ”속히”라는 말씀에 의문을 제기할 것을 예견하시고 성경을 통하여 미리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베드로는 재림이 더딘 것이 아니라 죄인들이 한 명이라도 더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지연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속히 오리라는 예언이 있은 후 1천년이 지나고 2천년이 되었어도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베드로의 설명은 빛을 잃고 사람들은 여전히 약속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히”라는 단어는 다음의 ”오리라”는 말씀과 연결하여 이해하여야 그 정확한 뜻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리라”는 단어는 현재진행형 단어입니다. 따라서 오리라는 단어의 뜻은 지금 재림은 시작되어 예수님은 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 중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속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시작이 되었으나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벧후 3:8) 영원하신 분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에 아직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으나 다만 우리가 느끼는 시간 안에서 현장감 있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히 임한다고 하신 말씀대로 그는 이미 재림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런 예수님의 재림을 이런 관점에서 믿었고 또 갈급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예배 의식에서도, 신앙 고백에서도, 성도들 상호간의 인사에서도 우리들이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과 같이 Maranatha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는 말을 외치면서 서로를 격려하였고 경성하였습니다. 이런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라나다의 신앙
이런 신앙을 가진 성도는 신앙에 생기가 있고 힘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에 생기가 있고 활력이 넘친 것은 이런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순교의 형장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주님께 기꺼이 바친 이유가 이런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흔적을 신약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이 말씀의 순서를 바꾸면 ”주님께서 임하시니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 교회 교인들이 주님을 진정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 구제하고 도와주면서도 기뻐하고 감격한 이유가 바로 주님께서 지금 임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잠시 후에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열망하는 신앙입니다. 한곳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 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4-5).
이 말씀도 순서를 약간 바꾸면 주님의 재림이 가까우니 기뻐하고 관용하라는 것입니다. 로마 옥에 갖힌 사도 바울은 무엇이 기뻐서 옥중에서도 기뻐한다고 하였겠습니까 더욱이 옥밖에 있는 성도를 향하여 기뻐하라고 권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고생스럽지가 않아서 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이 없어서입니까 박해와 핍박이 없어진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주님의 재림이 시작되었고 지금 그가 임하고 계시기 때문에 옥중의 고생도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니 모든 것이 기쁘기만 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옥 밖의 성도들을 향하여 마음을 넓히고, 관용을 베풀고, 용서하고, 화목하며, 협력하며, 봉사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재림이 시작되어 그가 우리에게 나타날 시간이 가까웠는데 어찌 원수를 맺고, 시기하고, 불목하고, 다투며, 용서를 못하고 살아야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을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재림을 믿기는 하지만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막연한 미래에 있을 대 사건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게 믿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에는 활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여호와 하나님의 시간에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와있는 사건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질 때, 활력이 있고 능력 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98년도에는 재림의 신앙으로 신앙에 활력을 찾고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욱 충실하게
진심으로 재림을 확신하는 신앙인은 오늘의 삶에 충실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크게 오해를 합니다. 즉 만일 주님께서 가까웠으면 그분을 맞기 위하여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만 해야 하지 않을까 신앙에만 전념하여야 하지 않을까 세상일은 모두 버리고 그 분을 맞을 준비를 하여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런 생각과 주장은 이단들의 소리입니다. 마귀의 소리입니다. 마치 신앙촌을 만들고 그곳에 집거하여야 주님을 맞을 수 있다는 허망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참 신앙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마 24:40).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 24:40).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을 깨어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원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직장을 버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재림을 깨어 준비하는 일이 결코 세상의 일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는 바로 그 순간까지 부인들은 가족들을 위하여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고, 남편들은 직장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충실하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맞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서 주인의 오는 것을 기다리는 종과 같이 하라(눅 12:35),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종과 같이 하라”(눅 12:36)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종의 생각에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고 나름대로 예측하고 노비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면 뜻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인이 와서 이런 종들에게 엄한 벌을 내릴 것인데, 그 중에서도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하지 않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중한 벌을 받을 것이고, 알지 못하고 실수를 범한 종들은 적은 벌을 받게 될 것이라(눅 12:48)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종말이 가까운 때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여호와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분명히 종말이 매우 가까이 다가온 시대임을 고하고 있습니다. 몇 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97년도는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지고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사건을 가지고 있는 98년도가 싫던 좋던 우리 앞에 다가 오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지금 임하고 있고, 분명히 가까운 장래에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종말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는 완료되었습니까 오늘이라도 역사적인 사건으로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 오면 당황하지 않고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이런 준비는 매일, 그리고 완벽하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언제 주님께서 오실지라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하면서 환영하며 맞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20-21).
재림에 대한 신앙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구약에 모두 1518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숫자는 성경의 매장마다 한번씩 기록하고도 남는 기록입니다. 예수님의 초림도 중요하지만 재림은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성경의 입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들이 가지는 마지막 희망이며, 성경의 많은 약속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약속입니다. 따라서 이 약속을 믿는 신앙은 종말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신앙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믿을만한 약속
성경은 우주의 창조에서 멸망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시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기록하였을 뿐 아니라 특히 요한 계시록은 인류의 종말에 일어날 대 사건들, 곧 전쟁과 천재지변, 재앙과 질병,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인한 신앙적 갈등과 사회의 혼란 등등 세계의 종말에 있을 많은 사건들과 신앙인들이 겪어야 할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라는 전제하에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천재요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혜안이 있을지라도 우주와 인류 역사에 대한 신비와 미래를 예언할 수도 없고, 글로 써서 몇 천년을 지나면서 읽고 연구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많은 사건들을 예언한 후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라고 한 것은 분명히 인간의 경지를 초월하신 분이 말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미래를 말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조물주가 아니면 불가능 한 일입니다.
요한 계시록도 종말에 대한 말씀이지만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께서 직접 종말에 대하여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말과 자신의 재림을 예언하시면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사역 초기, 갈릴리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팔복산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하셨습니다.
이런 약속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런 분의 약속이기 때문에 이 약속은 절대 불변입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안심하고 믿고, 의지해도 괜찮은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림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하신 주님이 98년에도 함께 하실 것을 믿는 신앙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약속의 내용
그러면 그분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약속은 매우 간단 명료합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입니다. 이 말씀은 단 네 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내가”입니다. 재림의 약속 당사자는 인류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 분이 직접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이를 대신 파송할 것이 아니라 재림의 약속 당사자이신 예수님 자신이 직접 약속하신 대로 오십니다.
둘째, ”진실로”라는 단어는 이 약속의 진실성을 확인해 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통 약속도 믿을 수 있고 확실한데, 진실이라는 확인서가 붙은 약속이기 때문에 재림의 약속은 아주 확실하게 믿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셋째, ”속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약간 이해가 곤란합니다. 그 까닭은 ”속히”라는 말씀이 있는지 2000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예수님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 때문에 이단에 빠지기도 하고 재림의 날을 헛잡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1992년에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될 때, 많은 사람들이 ”속히”라는 말씀에 의문을 제기할 것을 예견하시고 성경을 통하여 미리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베드로는 재림이 더딘 것이 아니라 죄인들이 한 명이라도 더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지연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속히 오리라는 예언이 있은 후 1천년이 지나고 2천년이 되었어도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베드로의 설명은 빛을 잃고 사람들은 여전히 약속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히”라는 단어는 다음의 ”오리라”는 말씀과 연결하여 이해하여야 그 정확한 뜻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리라”는 단어는 현재진행형 단어입니다. 따라서 오리라는 단어의 뜻은 지금 재림은 시작되어 예수님은 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 중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속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시작이 되었으나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벧후 3:8) 영원하신 분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에 아직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으나 다만 우리가 느끼는 시간 안에서 현장감 있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히 임한다고 하신 말씀대로 그는 이미 재림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런 예수님의 재림을 이런 관점에서 믿었고 또 갈급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예배 의식에서도, 신앙 고백에서도, 성도들 상호간의 인사에서도 우리들이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과 같이 Maranatha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는 말을 외치면서 서로를 격려하였고 경성하였습니다. 이런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라나다의 신앙
이런 신앙을 가진 성도는 신앙에 생기가 있고 힘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에 생기가 있고 활력이 넘친 것은 이런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순교의 형장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주님께 기꺼이 바친 이유가 이런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흔적을 신약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이 말씀의 순서를 바꾸면 ”주님께서 임하시니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 교회 교인들이 주님을 진정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 구제하고 도와주면서도 기뻐하고 감격한 이유가 바로 주님께서 지금 임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잠시 후에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열망하는 신앙입니다. 한곳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 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4-5).
이 말씀도 순서를 약간 바꾸면 주님의 재림이 가까우니 기뻐하고 관용하라는 것입니다. 로마 옥에 갖힌 사도 바울은 무엇이 기뻐서 옥중에서도 기뻐한다고 하였겠습니까 더욱이 옥밖에 있는 성도를 향하여 기뻐하라고 권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고생스럽지가 않아서 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이 없어서입니까 박해와 핍박이 없어진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주님의 재림이 시작되었고 지금 그가 임하고 계시기 때문에 옥중의 고생도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니 모든 것이 기쁘기만 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옥 밖의 성도들을 향하여 마음을 넓히고, 관용을 베풀고, 용서하고, 화목하며, 협력하며, 봉사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재림이 시작되어 그가 우리에게 나타날 시간이 가까웠는데 어찌 원수를 맺고, 시기하고, 불목하고, 다투며, 용서를 못하고 살아야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을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재림을 믿기는 하지만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막연한 미래에 있을 대 사건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게 믿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에는 활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여호와 하나님의 시간에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와있는 사건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질 때, 활력이 있고 능력 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98년도에는 재림의 신앙으로 신앙에 활력을 찾고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욱 충실하게
진심으로 재림을 확신하는 신앙인은 오늘의 삶에 충실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크게 오해를 합니다. 즉 만일 주님께서 가까웠으면 그분을 맞기 위하여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만 해야 하지 않을까 신앙에만 전념하여야 하지 않을까 세상일은 모두 버리고 그 분을 맞을 준비를 하여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런 생각과 주장은 이단들의 소리입니다. 마귀의 소리입니다. 마치 신앙촌을 만들고 그곳에 집거하여야 주님을 맞을 수 있다는 허망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참 신앙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마 24:40).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 24:40).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을 깨어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원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직장을 버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재림을 깨어 준비하는 일이 결코 세상의 일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는 바로 그 순간까지 부인들은 가족들을 위하여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고, 남편들은 직장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충실하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맞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서 주인의 오는 것을 기다리는 종과 같이 하라(눅 12:35),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종과 같이 하라”(눅 12:36)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종의 생각에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고 나름대로 예측하고 노비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면 뜻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인이 와서 이런 종들에게 엄한 벌을 내릴 것인데, 그 중에서도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하지 않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중한 벌을 받을 것이고, 알지 못하고 실수를 범한 종들은 적은 벌을 받게 될 것이라(눅 12:48)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종말이 가까운 때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여호와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분명히 종말이 매우 가까이 다가온 시대임을 고하고 있습니다. 몇 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97년도는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지고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사건을 가지고 있는 98년도가 싫던 좋던 우리 앞에 다가 오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지금 임하고 있고, 분명히 가까운 장래에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종말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는 완료되었습니까 오늘이라도 역사적인 사건으로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 오면 당황하지 않고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이런 준비는 매일, 그리고 완벽하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언제 주님께서 오실지라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하면서 환영하며 맞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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