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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본문

오늘은 마지막 주일입니다. 올해도 말 그 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습니다. 악몽같은 9-11 테러 사건을 비롯하여 별의별 사건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대 속에서 목숨이라도 부지하며 살아 온 것이 용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짓는 여러분들의 감회는 각기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오셨던지 간에 또 한 해가 이렇게 빨리 지나가니 후회스럽고 아쉽다는 생각, 그리고 새해에는 좀더 나은, 보람 있는 생활을 해야겠다는 결단에는 모두 한 마음일 것입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쉰 두 개의 주일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마지막 주일을 맞으면서 지난 쉰 한 개의 주일을 되돌아보며 반성해 볼 시간입니다.
제일 먼저 우리는 과연 주일을 몇 번이나 빼먹었는가 반성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이 책상에 엎드려 잠깐 낮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연결된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단이 하나 빠져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단 하나를 빼서 왜 이렇게 고생하게 만드십니까"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단이 세 개나 빠져 있어서 정말 오르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한 단이 빠졌어도 오르기도 위험하고 힘도 두 배나 들었는데 이번에는 세 단씩이나 빠졌으니 어떡하면 좋습니까"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일러 줍니다. "그 단은 여호와 하나님이 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일을 범해서 스스로 뺀 것입니다!"
주일 하나를 못 지킬 때마다 천국 올라가는 사닥다리의 단 하나가 빠진다고 믿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일을 빼먹는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에 빠져 여호와 하나님은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주일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여호와 하나님의 물질을 도적질한 것도 반성해야 하겠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거룩한 시간도 내 맘대로 쓴 것을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한 해를 되돌아보면 회개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온통 후회스러운 일 투성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마지막 주일에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어지럽히는 적수들에게 응답한 말씀입니다. 도대체 바울의 대적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본문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 단서가 있다면, 빌 3: 2의 '개들'이라는 말입니다. '개들'이란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멸시할 때 사용했던 비속어이기 때문에, 바울의 적대자들이 이방인들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바울 자신이 할례 받았다는 사실을 유난히 강조한다는 사실에서 이 이방인들 역시 기독교로 개종한 다음에도 할례를 받았던 사람들 같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그냥 할례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할례 예식을 행할 때 어떤 마술적인 힘까지도 받는다고 믿었던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유대교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유대교에 대하여 잘 몰랐을 것입니다. 특히 할례를 마술적 힘과 연결시켜 생각했기 때문에 할례에 대하여 아주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방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받았다면 이 역시 기독교를 바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볼 때 이들은 유대교에도 무지했고 기독교도 제대로 몰랐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이면서 기독교인이었던 바울은 이들에 대하여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하여 바로 가르쳐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먼저 저들이 알고 있는 유대교, 특히 할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바울은 자신이 정통 유대교 출신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만일 유대인이 되는 길이 할례를 받고, 어떤 지파에 속하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일에 달려 있다면 자신은 세 가지 모두에 자신만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육체를 신뢰하는 일로 따지자면 한 때 자기를 따를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자랑에는 자기도 한가닥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에 이와 같은 육체적 자랑을 완전히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 자랑은 잃어버렸고 그 대신 기쁨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우리가 묶은 해를 어떻게 마감해야 하고 또 새해를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는 흘러갔으니 잊어야 합니다. "나도 왕년에 한가닥했던 사람인데. " 우리는 흔히 과거의 자랑거리를 들먹입니다. 과거의 상처와 실패를 들먹이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영화와 자랑에 빠져 있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좋든 나쁘든, 영광스럽든 영광스럽지 못하든,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67세 되던 어느 겨울날 실험실이 불에 탔습니다. 실험실에 있던 모든 자료들과 실험 기구들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에디슨은 아내와 아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함께 불구경을 했습니다. 수십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장면을 태연히 바라보는 에디슨에게 아들이 묻습니다. "아빠, 실망되지 않으세요" "어차피 끌 수 없는 불인데 실험실을 잃었다고 해서 웃음마저 잃어서야 되겠니" 얼마나 의젓한 자세입니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는 우리가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그냥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물론 과거의 일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중요한 교훈을 남겨줍니다. 그러나 교훈은 하나의 교훈으로 끝나야지 그것이 오늘을 얽어매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현재와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한 해 동안 뒤에 있었던 모든 일을 잊어버리도록 노력하세요. 자랑스러운 일이든 부끄러운 일이든 다 뒤에 두고 잊어야만 합니다. 바울 역시 과거를 자랑하려면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지만 예수님을 안 다음에는 그 모든 과거의 자랑을 깨끗이 잊어버렸습니다.
본문 5-6절을 보세요.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
바울은 철저히 율법을 준수하는 정통 히브리인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또한 유다 지파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왕-즉, 사울왕-을 배출한 명문가인 베냐민 지파에서 났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특히 예루살렘 성과 예루살렘 성전이 자기 지파 영역내에 있다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혈통적으로만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킴에 있어서도 보통 사람과 확연히 구분되었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 이른바 삼연을 다 따진다고 해도 바울은 조금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즉 '성골 중의 성골'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서의 과거를 자랑하라면 자기를 따를 자가 없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과거가 예수 만난 뒤 어떻게 되었습니까
7절과 8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를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 엄청난 자랑거리를 일시에 다 포기할 각오를 했을까요 참 놀랍습니다. 무엇이 바울의 삶을 이토록 변하도록 만들었을까요
2.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때문에 바울은 과거에 자랑스럽게 여기던 일체의 것을 모두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안 다음부터 과거의 자랑이 덧없음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의를 발견한 다음부터 그 옛날에 율법을 지독하게 지켜보려던 인간적인 열심이 모두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안 다음에 덜 귀한 것을 미련 없이 버린 것입니다.
어떤 스승이 제자에게 진귀한 보석 한 개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보석을 시장으로 가져가 값을 물어보아라. 그러나 어떤 값에도 팔지는 말아라. " 제자는 맨 먼저 과일 가게로 가서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보석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주겠습니까" "오렌지 두 알을 주리라. " 다음으로 감자 파는 상인한테 갔습니다. "그 보석을 내게 준다면 감자 네 근을 주겠소. " 이번에는 대장간으로 갔는데 대장장이는 한 때 보석상을 한 경력이 있어서 그 보석을 5백 달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제자는 몇 군데를 더 거친 뒤 그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상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이 보석상 주인은 그 보석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보석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이 보석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답니다. "
똑같은 보석이었지만 사람에 따라 오렌지 두 알의 가치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재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그렇고 그런 종교적 천재 내지 기독교의 창시자 정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목숨으로도 살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보배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란 보석을 발견한 뒤 자신의 온 생명을 불살라 그를 위해 헌신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귀한 보배로 여겨지면 그동안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이 돌연 헛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 귀한 예수 때문에 과거의 삶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영광스럽고 찬란했던 과거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왕년타령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추한 과거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고 고상한 것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금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이 아등바등 욕심부렸던 것, 미련 부렸던 것, 헛된 자랑에 빠졌던 것, 다 깨끗이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3. 그러므로 이제는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본문 13-14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여기서 바울처럼 정열이 넘치는 사람도 자신의 인생은 미완성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어떤 완성에 이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본문 12절 말씀처럼 우리는 이미 얻은 것도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닙니다. 이 땅위에 사는 동안 인생은 어디까지나 미완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완전을 향하여 도상에 서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해를 조용히 돌아보면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잘된 일이든 안된 일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다 잊어야만 합니다. 때로 기억력이 지나치게 좋은 것도 문제입니다. 불유쾌했던 일일수록, 괴롭고 슬픈 일일수록 빨리빨리 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해가 되는 일은 속히 잊어버릴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보이는 푯대,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앞을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뒤가 아니라 앞입니다. 우리가 또 한번 힘차게 전진해야 할 길은 뒷길이 아니라 앞길입니다.
오래 전에 그리스에 어떤 사람이 형편이 어려워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비 시험에 응시했는데 글을 몰라 떨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저는 어떻게 경비원도 될 수 없나요. "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마침내 그 남자는 미국으로 이민 와서 열심히 일한 나머지 뉴욕의 월 스트리트를 주름잡는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60회 생일을 맞아 큰 파티를 열었을 때 수많은 하객들이 참석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자서전을 하나 내시지요. " "죄송합니다. 저는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른답니다. " "아, 그래요 선생님이 만일 글을 아셨더라면 오늘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인물이 되셨을 건대요!" 그 때 그가 말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글을 알았더라면 아마 저는 지금도 경비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
롬 8: 28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한 해를 돌아보면 누구나 다 희로애락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맑은 날이 있으면 궂은 날이 있었던 것처럼, 누구나 다 즐거웠던 일 괴로웠던 일이 뒤범벅된 채 한 해를 보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이 합하여 결국 다 좋은 일이 되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변하여 선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마지막 세상을 떠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세 가지라고 합니다. "좀 더 감사하며 살 걸…" "좀더 참고 살 걸... " "좀더 베풀면서 살 걸... "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새 해에는 좀더 감사하며, 좀더 참으며, 좀더 베풀며 사는 삶이 되도록 다짐합시다.
한 해 동안 뒤에 있는 일은 다 잊어버리고 우리 앞에 보이는 새해의 목표를 분명히 보아야 할 때입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을 지켜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다가오는 새해에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충만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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