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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부끄러움이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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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숨가쁘게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변화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새 천년이 시작된 올해 1월 1일 새벽, 광화문 우주 시계추 앞에서 새 천년의 순간을 카운트 다운하던 사람들에게는, 새 천년 0. 1초에 즈믄동이가 태어나는 생명의 소리와 그 모습을 바라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실감 있게 다가오는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핏덩이나 다름없던 즈믄동이가 벌써 이가 다섯 개나 자란 어엿한 돌잡이가 되어 웃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정치 어떤 경제 이야기가 그리고 사회와 문화의 어떤 담론들이 이 신비한 생명의 변화만큼 구체적이고 감동적이고 축복일 수 있을까요
지구 50억의 인류가 제가끔 새 천년을 맞는 행사를 했습니다. 사상 최대의 불꽃놀이를 한 나라도 있고 세상에서 제일 큰 에어돔을 만든 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과 생명의 울음소리로 맞이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보낸 새 천년의 메시지는 화약이 폭발하는 불꽃이 아니라 생명의 빛이었고, 물질의 돔이 아니라 탯줄을 감은 작은 육신의 돔이었습니다. 천년을 이어갈 이보다 더 값지고 귀한 것이 어디 또 있을까요
”보통사람 24시”로 본 올 한해와 새해 소망
요란한 폭죽과 함성으로 시작한 새 천년 첫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언론사에서 ”2000년은 어떠한 해였고 남은 회한은 무엇일까” 시민들을 만나 한해살이에 대한 소감과 새해에 거는 기대를 들었는데‘고단했지만 의미 있었다’는 사연 등이 있었고, 그 중에 연초 벤처특수로 호황을 누리다 하반기로 접어들며 천덕꾸러기로 여겨지는 등 천당과 지옥을 오간 벤처기업가에게 한해살이의 느낌을 묻자“새벽 4시, 5시에 출근해 원도 끝도 없이 일했습니다.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한 기억밖에 없습니다. 내년 계획도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는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올해에는 불만이 많은 한 해였는데 내년에는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 많으면 좋겠네요. ”“내년에는 밝고 건강한 사연들을 많이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분들이 하루하루‘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살아가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섣달 그믐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경계선입니다. 이 시간의 건널목인 섣달 그믐은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늘을 까치설날이라 부르고 묵은 것을 청산하고 새것을 받아들이는 날로 삼고 있습니다. 보신각의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슬픔도 기쁨도 미움도 괴로움도 좋은 일까지 세월 속에 묻고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2000년을 돌이켜 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입은 은혜가 너무 크고 놀랍지만 그 은혜에 응답하여, 어그러지고 일그러지고 흐트러진 바를 제대로 바로 잡지도, 다듬지도 못한 채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사회는 너무 쉽게 1900년대를 마감하더니 결국 지난 해 이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요, 지난날의 역사에서 배울 줄 모르는 교회와 사회가 우리 교회와 사회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끝없이 용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여튼 오늘 1년 365일 중 마지막 날, 마지막 주일입니다. 365일은 이 지구 땅덩어리 태양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고 제 자리에 다시 온 것입니다. 365일 걸렸다는 것입니다.
한해를 보내고 송년 주일이 될 때면 늘 시간의 흐름을 자각합니다. 시간 의식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세대에 따라 느낌이 차이나는 것은 부인 못합니다. 소년들에게 시간은 봄날 한가로이 하늘에 떠있는 구름처럼 거의 정지해 있습니다. 20대 청년시절에 세월의 감각은 여름 하늘에 서서히 움직이는 뭉게 구름 같습니다. 3, 40대의 시간은 제법 유속을 느낄 수 있는 한강물의 흐름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5, 60대 이상 70대 권사님들에게는 시간이 날아가는 화살같이 빠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어제 신년 정초인 것 같은데 벌써 한해가 갔느냐고 탄식하실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빠르게 느껴집니다.
연말 결산서
하여튼, 노인이나 젊은이나 올 한해를 보내면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반성할 시간입니다. 연말 결산서를 주님 앞에 들고서 평가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삶은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①부끄러운 삶 ②부끄러움이 없는 삶입니다. 누구나 이 둘 중의 하나를 살았을 것입니다. 부끄러운 것이 없이 살았다면 떳떳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부끄럽게 살았다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군자의 덕목 중에 수오지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악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 잘못된 일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 군자의 마음입니다.
부끄러운 삶 앞에 부끄러운 마음을 갖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말합니까 잘못 되었으면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죄송함도,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다면 사람이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는 사람은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을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최초로 부끄러움을 느낀 사람입니다.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워 무화과 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다고 합니다. 참 부끄러움은 벗은 사실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가 부끄러운 것입니다. 정말 부끄럽게 느낄 것은 아무렇지 않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사람은 가난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것이 진정 부끄러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문벌, 학벌 좋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진정 부끄러운 것은 진실하지 못하고 비굴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부자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었는가 부끄러움은 없는가 때로 자기의 외모가 부끄럽습니까 그러나 더욱 부끄러운 것은 우리 마음이 정결치 못하고 마음이 편협한 게 진정한 부끄러움입니다.
성도 여러분, 2000년이 다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자랑으로 여겨왔으며 무엇을 부끄러움으로 여기며 살았습니까 우리는 지난 1년 부끄러운 역사를 지켜보았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불을 보고서 뜨거운지 압니다. 미련한자는 불에 손가락을 그을려야 뜨거운 것을 압니다. 더 미련한 자는 그으른 손가락을 다시 불에 넣는 미련함을 보입니다. 지혜자는 실패의 역사에서 교훈 얻고 다시 실패하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는 실패의 역사에서 얻지 못하고 또 실패의 길을 갑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는 이루었으나 도덕적, 정신적 도탄을 겪고 있습니다.
떳떳하고 자랑스런 삶
여러분 우리가 올 한 해를 살았던 삶은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삶이었습니까 한 해를 보내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부끄러움 없는 삶, 떳떳하고 자랑스런 삶을 살라고 명하십니다. 그 삶도 주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삶입니다.
소나 말의 눈망울을 보면 탐욕과 핏발이 섰던 사람들의 눈도 부드러워집니다. 때로는 짐승들이 순수함보다 못한 인간의 추함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이제 부끄럼 없는 삶을 준비해서 새해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에 디모데의 모습은 착하고, 신실한, 충성된 일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와 외할머니 그늘에서 자라난 탓인지 성격이 나약하고 매사에 용기가 없었습니다. 담력이 없다 보니 복음을 위해 고난 받아야 할 장소를 피하면서 비겁한 행동을 했습니다. 스스로 자기의 못난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괴로워할 때 바울이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능력이요, 사랑이요, 근신의 마음이라”고.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감옥에도 가고 매를 맞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고난 받는 것을 디모데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조그만 수고와 고난도 피하면서 안일하게 살려고 한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여러분, 지난 1년 간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이제는 부끄러운 지난날을 잊어버리고 2001년에는 영광과 축복의 삶을 다시 찾아야겠습니다.
지난날에 게을러서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부지런해야겠고, 지난날에 거짓의 삶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진실해야겠고, 지난날에 기피하며 살았고 뒷걸음질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담대히 앞장서야겠고, 지난날에 소극적이었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살아야겠고, 지난날에 안 된다고 하며 살았고 비굴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겠고, 지난날에 갈등과 미움의 삶이었지만 이제는 사랑과 조화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자, 이제 과거는 잘했던 못했던 이미 지나버리고 없는 것입니다. 잘했으면 한번 자축하고 지워버릴 일이요, 못했으면 같은 실수를 범치 않겠다고 잊어버릴 일입니다. 잊는 것도 복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망각의 강
희랍신화에 유명한 강이 나오는데 ”레테의 강”(망각의 강)입니다. 이물을 마시면 모든 것을 망각하고 망각의 강 옆에 ”망각의 의자”있는데 그곳에 앉는 순간 모든 것을 망각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랍인들은 가장 큰 형벌이 망각의 강으로 유배되어 모든 것을 잊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난 세월을 잊어야 합니다. 인간에겐 망각의 기능이 축복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망각의 기능이 없다면 모두 광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 12월 말이 되면 누구나 노젓기를 멈추고 생의 부두로 돌아옵니다.
자기 본분을 다하는 자
자기 본분을 다하는 자
꿀벌은 아파트먼트를 세웁니다. 꿀을 담기 위해 10,000개의 방을, 아기 벌들을 위해서 12,000개의 방을, 여왕벌을 위해 한 개의 거룩한 방을 만듭니다. 이 작은 벌들은 더워지는 것을 지켜봅니다. 밀이 녹아 꿀이 흘러내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식구들은 모조리 조를 짭니다. 문간마다 보초를 세웁니다. 다리들로 버티고 섭니다. 그리고 날개로 각자 바람을 부쳐댑니다. 전기 선풍기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꿀은 녹으려다가도 수 만개의 날개로 부치는 바람에 의해 서늘하게 됩니다. 이 작은 꿀벌은 사방 20마일 안에 있는 꽃은 모조리 찾습니다. 꿀벌은 작지만 자기 본분을 다합니다.
그런데, 수년 전의 일입니다. 한 미국 사람이 상당수의 꿀벌들을 서인도제도에 있는 바르바도스(Barbados)섬으로 옮겨갔습니다. 처음에 이 꿀벌들은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여 열심히 꿀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날이 지나도 겨울은 오지 않고 여름만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애쓰지 않아도 늘 꿀을 가까이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곧 그 부지런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였던 꿀벌들은 게을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꿀을 모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게으르게 날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마침내는 성질까지 나빠져서 사람들을 쏘는 나쁜 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많은 축복에 젖어 이 꿀벌처럼 우리의 삶이 타락하고 나태해지지 않았는지 염려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불행한 이웃을 잊지나 않았는지, 그리하여 영적인 게으름뱅이들이 되지나 않았는지 늘 우리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멍에를 매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지기 원하시는 영적인 본분, 영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각각 자기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주의 일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새 해, 지난해 망각해버렸던 영적인 본분을 다시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참 자유 안에서 다시금 나 자신을 쳐서 복종케 하여 생명을 얻는 감격의 새 해를 맞도록 합시다.
어느 잡지사에서 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응답 중 가장 많은 것이‘죽음” 과 ”실패’였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죽음’은 두려운 사건이며, 또한‘실패’도 무서운 것입니다. 실패에는 사업도 있고, 시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경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올 한해를 돌이켜 봅시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올 한해 기도하며 목표하였던 여러분의 길의 코스, 또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기대하시는 그 코스를 완주하였습니까
중간 중간의 어려움을 다 이기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온갖 내면적인 유혹과 외부의 유혹을 다 물리치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와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000년 한해는 서서히 돛을 내립니다. 이 한 해를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성공 속에서만 아니라 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가까이 오시고 힘 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용기를 가집시다. 은혜 가운데 한 해를 보내고 이제는 부끄럼 없는 삶을 준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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