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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헛되지만 헛되지 않은 인생

본문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2000년 새해가 꼭 엿새 남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서기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이런 변환기가 뭣인데우리들이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 1999년과 2000년이라는 숫자에 누구보다도 의미를 두어야할 것입니다. 이 2000년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 2000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창 뜨는 동양철학을 하는 교수 한분이 티브이 방송에 나와서 아주 반 기독교적인 말씀을 많이 하는데, 그분 강의 내용을 들어보면 우리들이 1999년, 2000년 이렇게 우리가 부르는 것조차도 엄청난 사기에 모든 사람들이 속은 것 아니냐 하면서 동양철학의 관점으로 비판합니다. 동양철학에서의 역사란 갑자을축… 이렇게 돌고 도는 것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시간이란 오늘이나 내일이나 다 같은 것이 아닌가 하면서 왜 하필 세계 사람들이 다 기독교인들 같이 직선적인 시간관에 따라서 사람들이 난리를 할 이유가 있는가 했습니다. 그분의 강의는 왜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BC 2000년이라고 하는 서기에 따라 흥분들을 하는가 하는 말입니다. 불신자인 이분이 기독교인들의 시간관에 대하여 더 잘 알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분 강의대로래도 묵은 한 해가 가고 새 천년이 온다는 것에 대하여 가장 마음을 새롭게 할 사람들은 창조론적이고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 우리들입니다.
말장이 교수가 뭐라고 하든지, 또 세상과학지식과 철학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든지간에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이분에게 모든 역사는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길 만물이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나오고,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영원 자존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담이후로 오늘까지 이 모든 역사를 운행하시고 계시는데 이제 곧 2000년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시간의 기원으로해서 이제 2000년이라는 것입니다. 서기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시점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윤회적인 시간관을 원이라고 한다면, 기독교의 시간관은 직선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보이는 것들이 시작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사람들 보기에 어떻게 옛것이 또 오늘에 돌아오는 것 같이 보여도 역사는 지금도 목표를 향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들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시작하신 이가 계신데 이 모든 것을 시작하신 목적을 이루시면 정리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가 가깝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이 모든 보이는 세계를 예정하시고 창조,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는 자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귀한 것을 알고 바로 사용합니다.
윤회적인 시간관에서는 역사와 시간은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 불행하고 실패한 삶의 책임을 운명이나 딴 데다 전가하고, 또 오늘 하지 못한 것은 내일하면 된다하고, 인생은 돌고 도는 물레방아 같다고 합니다. 전생에서 잘못한 업을 오늘 이 생에서 받지만, 그것도 아니면 다음 생에 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래서 운명론에 의존하여 살게하는 이 삶은 아주 폐쇄적이고, 소극적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시간관은 다릅니다.
과거의 보응과 보상을 오늘에도 받을 수 있지만, 이것을 오늘 극복하게 하는 것이요, 오늘이라는 시간을 바로 선용하여 후회하지 않는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것이 창조론적, 성경적인 시간관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실제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우리 인생의 이 세상의 삶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합니다.
이 말씀에는 모든 사람이 동의합니다.
인생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아침 안개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천년이 지난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로서 이 인생이 짧고 허무한 것을 깨달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반응은 둘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일평생을 허무한 인생을 안타까와 하면서 우울하게 근심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생철학이 여기서 나옵니다.
또 한 부류는 그럴 것이 무엇인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부류에 속했습니까 이 두가지 생각은 다 불신자들이 갖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인생살이는 짧고 하무하지만 그러나 결코 아침 안개가 쉬 사라짐 같이 짧은 것 같으나 결코 허무하지는 않고, 안개가 앞을 가리워서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것 같으나 결코 희미하지 않는 이 세상의 삶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의 삶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 살이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3;14에는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올 것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현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훈련의 과정으로 한 도막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 뿐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약속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필요한 온전한 사람으로, 행위로 갖추어 가는 마치 학교와 같은 인생살이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이룰 것은 구원입니다.
여러분들은 영원을 준비했습니까
오늘 이 세상이 다 가기 전에 영원을 준비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에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내세, 천국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를 오늘에 준비할 수 있습니다. 문이 닫히면, 죽음이 오면 영원히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문이 닫힐 때 까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가는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신 여러분들이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보다 중하고, 이보다 급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무서운 불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영생을 얻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미 믿어 구원을 이룬 자들에게도 이 현실은 너무나 중요하고 귀한 현실입니다. 천국들어가는 자 되었으니 이제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로서 선을 행하여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영광 중에 서도록 오늘 현실을 이용해야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생에게 이 세상 삶으로서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 끝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무병 장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이 것이 여러분들의 삶의 목표는 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서 오래 살겠다고 계속 젊어지겠다고 몸부림치지 말아야 합니다. 죽기를 두려워하므로 일생에 종 노릇한다고 성경에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오늘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얼마나 더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이 주어진 인생을 얼마나 값지게 목적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구원을 잘 이루고 가느냐가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 저는 죽음을 찬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에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일생을 에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죽음이 와도 그것에게 종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의 목표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영원히 천국에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들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려는 삶을 살 려고 하는 것입니다.
생의 종말에서 끝이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입학하는 것도 귀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졸업식은 더욱 더 기쁜 일이 아닙니까
입학식에는 많은 학부모가 오지 않으나, 졸업식을 하는 데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축하를 하는 것은 왠 이유입니까 우리의 인생의 종말, 죽음은 졸업식입니다. 그 너머 우리의 승리와 영광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끝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고 있는 일을 다 마치고 난 다음에 끝이 온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기간이 곧 끝나는 시간입니다.
평균 수명을 살지 못하고 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까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시간이 우리의 끝 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창 수고해서 이제 그 수고의 열매로 편할 만하니까 죽음을 맞이하니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의 끝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젊다고 안 죽느냐
올 때는 분명 순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갈 때에는 순서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알고 난 다음에는 현재의 삶의 귀한 것을 압니다.
이러고 보니 이 하루하루의 현재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이 아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해서 이익을 보리라 했는데 이 사람의 계획이 얼마나 어리석음을 보여 줍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오늘 해 아래 있는 분주 복잡한 삶을 사는 모든 인생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사람의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모릅니다.
이 사람은 첫째로,사람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너무나 짧고 허무하고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강건해야 칠팔십 인생, 짧지만 그 미래도 불확실합니다.
어떤 일을 만날는지 안개가 자욱하여 앞을 바라보지 못하듯이 한치 앞을 보지 못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새 천년을 맞이할 수 있을것인지 불안하기까지 한 오늘입니다. 이러한 연약하고 부족한 인생이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맙시다.
또한 이 청년의 허탄한 계획과 장담은 어떤 것입니까
아무 도시에 가겠다,
일년 동안 장사를 하겠다,
또 분명히 이익을 남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 것도 우리들의 계획한대로 되지 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하신 법칙이 있기 때문에 봄 여름에 수고하면 가을에 수확이 있다고 짐작은 하지만,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인생에게 달려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조건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라고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건이라는 것이 천도만도 더된다는 것입니다. 그 조건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 맞추어 주셨을 때에 성공이라는 열매가 맺어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성공하고 난 다음에 자기가 가진 노력과 조건 몇가지를 말하지만 그 사람은 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실패가 되는 때가 더 많습니다. 모든 것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실 때에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천하가 달려들어도 안됩니다. 인간생각을 헛것으로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현실을 제 마음대로 바꾸어서 복되리라 하지만, 그것이 복되게 하실 이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아무도시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복된 현실은 내가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년을 유하며- 일년을 유할런지 이년을 유할런지 돌아오지 못할런지 인생은 계획은 세우지만 장담하면 안됩니다. 시간과 공간을 주장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장사하여- 그 어떤 일을 하리라고 계획을 할 수 있으나 그 일을 성취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보리라- 이를 볼지, 손해를 볼지, 망할지, 흥할지 사람이 알지 못합니다. 희망사항이지만 이루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도 어리석은 부자가 농사를 잘 지어 놓고 ”창고를 크게 늘려 오랫 동안 먹고 마시자,내 영혼아!”라고 했을 때에 ”이 사람아,오늘 밤에 자네 생명을 취한다면 자네 소유가 뉘 것이 되겠느냐”고 경고하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영구적인 것을 좋아해서 다이어몬드, 금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금과 다이어몬드는 조금 오래 갈 지 모르나, 우리 인생이 너무 빨리 가기 때문에 자네 소유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우리의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정한 장소에, 정한 기한 동안에, 내가 정한 방법대로 성공을 할 수 있으려면 내가 주권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알아야합니다. 자신을 아는 자가 겸손해 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이 달려있다는 고백이 겸손한 고백입니다.
지난 일도 내가 계획한대로 되었다고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주님이 해 주지 않으시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고는 내가 하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회와 지혜와 능력을 주셨고, 그 환경과 조건을 맞추어 주신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독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운명론자 같이 살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가질 종말을 생각하는 기독자의 윤리는 어떤 것입니까
먼저는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깨닫고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자는 아무런 계획도 못 세우고 닥치는대로 살아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게획은 사람이 하나, 이루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만난현실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의 뜻이면 살기도하고 이것도 저것도 하리라하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주님의 뜻 안에서 행해야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시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현실에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결과를 다 맡기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열심히 직장생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은 내 계획대로 내 뜻대로, 내 지혜와 열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모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도시에 가라는 것도 주님의 뜻이면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일년을 유하라 하시면 하는 것입니다.
장사하라 하시고 이것저것을 하라면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유익을 볼지 크게 손해를 볼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단지 순종하는 삶만을 살아야합니다.
무엇이든지 내 생각대로 다 되리라 마음먹으면 안됩니다.
과거에 대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자랑을 할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일 뿐 내 자랑이 못됩니다.
그래서 자랑하는 자는 주로 자랑하라 하셨습니다.
또한 현재라는 것은 잠간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또한 미래는 아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미지수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성경 말씀대로 허탄한 자랑을 맙시다.
이 세상은 잠깐이요, 우리에게는 영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은 잠간이요, 우리가 갈 천국은 영원합니다.
이 세상을 영주처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즉 나그네의 윤리로 살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 같이,자기의 가진 것이 영원히 소유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잠깐 보관시키신 것을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이면 내 놓고 가야 한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소유권이 있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용하고 거기서 우리의 건설 구원을 이루는 수익을 볼 수는 있을 뿐입니다.
항상 산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살 준비만 하면 속습니다. 우리가 사는 연습은 많이 하는데 살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실력도 갖추고 애를 쓰는데 이제는 죽는 연습도 해야 합니다.
하기는 우리들이 죽음 연습을 매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하루 적어도 5- 8시간을 잠을 자는데 이것이 바로 죽음 연습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살아 있으나 모든 활동이 정지 되어 있는 상태가 잠입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잠잔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깨어 날 것이기 때문에 잠잔다고 합니다.
존 웨슬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오늘 밤 12시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지금 부터 그 시간 까지 무엇을 하실 것입니까” 웨슬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하던 일을 계속하겠습니다”라고 매우 뜻깊은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매일 매일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기 때문에 이제 죽음이 온다고 해도 새삼스럽게 어떤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루 하루의 삶을 바로 사는 것이 죽음 준비입니다.
여러분,지금 세상이 끝나는 주님의 재림이 있다면,오늘 당신의 생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지금 하고 있는 여러분의 생활을 그대로 할 수 있습니까
죽음이 가까이 온다고 하면 ’이래서는 안되지’하는 것이 있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잘하는 학생은 시험 때라고 특별나게 벼락공부를 않습니다. 매일 매일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해 나온 학생은 그 실력으로 얼마든지 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시험의 때에 조급하지도 않습니다. 시험이 있는 날은 오히려 즐거운 마음까지 들게 됩니다.
그러나 공부 안한 학생은 시험에 신경이 쓰이고 언제 시험이 있는지 걱정입니다. 죽자고 밤샘 공부를 하지만 급하기만 하지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살펴 볼 때에 우리의 인생 종말이 언제와도 상관없이 계속할 수 있는 부끄러움 없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환난이 와도, 죽음이 와도, 주님의 재림이 온다고 해도 안심할 수 있는 자가 되기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기 전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이제 한 끼 먹을 기름과 가루로서 엘리야를 대접을 했는데 이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이제 남은 마지막 건강,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합니까
이를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교회를 위해서,이웃을 위해서 쓰고 갈 수 있습니까
이제 가장 중요한 결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니라” 무슨 뜻입니까
선을 행할 기회도 있고, 선을 알기도 해서 지식도 있고, 능력도 있고, 힘도, 물질도 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것, 뒤로 미룬다는 것은 죄라고 합니다.
다시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현실은 선을 행할 수 있는 현실로, 선을 행할 것을 소망하시면서 이 세상에 우리를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을 행할 수 있고, 선을 행해야하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악을 행하면, 자기 생각과 주관을 따라서 제 욕심을 따라 사는 악을 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 더 적극적인 의미의 죄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죄는 세상에서 말씀하는 죄와 다릅니다.
우리들에게 주신 귀한 현실에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도 교회를 크게 부흥을 시켰다고 해도 그것이 네 중심으로 네 생각을 따라 한 것이면 그것은 다 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께 물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는 것으로 이것도 저것도 하는 것이 선입니다. 이를 이루라고 하신 세월입니다.
도시에 가서 돈을 좀 벌고 나서 주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자에게 ”네 생명이 무엇이뇨”물으십니다.
기회를 뒤로 미루지 마십시요!
게으르든지, 핑계하든지, 뒤로 미루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께 책망을 듣게 됩니다.
도둑질이나 살인하는 죄만 죄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게으른 자도, 뒤로 미루는 자도, 핑계하는 자도 달란트를 도적질 한 것이요, 현실이라는 천하보다 귀한 시간을 남용한 것이라서 죄라고 하십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남의 것을 훔친 적도 없고, 뺏은 적도 없는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무서운 책망을 들었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구원의 일을 해야 합니다.
회개도, 봉사도, 선행도, 충성도 다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는 지나갑니다. 지나가면 회개 하려고 해도, 충성 봉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우리에게 종말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시간은 윤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시간관은 직선적입니다. 자꾸 종말을 향하여 갑니다.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에 영원을 준비해야합니다. 영원을 오늘에 결정짓습니다. 그 결정이 영원히 고정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영원에 대하여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시간에 우리들은 항상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행해야합니다. 또 항상 끝내는 마음으로 충성을 다 합시다.
이제 묵은 해에 귀한 세월 낭비한 것을 회개하고, 새로운 천년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면 진실되게 믿음으로 사랑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구원을 바로 이루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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