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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오늘은 결산하는 날입니다

본문

말씀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용혜원 시인(목사)의 흘러만 가는 세월이라는 제목의 시를 소개합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잠시 스쳐 지나온 것만 같은데, 너무 빨리 지나쳐 버려 아쉬움만 남는다.
어떤 시절엔 붙잡아 매놓은 듯 그리도 가지 않던 시간들이, 나이가 들어가면 남는 것은 그리움뿐, 시간을 도둑맞은 듯 달아난다.
가끔은 잠시 멈추어 준다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은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매달리듯 애원하며 멈추어 놓고 싶어도 떠나가는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꼭 잡아두고 싶었던 것들도 모두 다 놓아주고 싶어진다.
흘러가야만 하는 세월은 멈출 수가 없다. ”
이 시를 가만히 들어보면, 어쩜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매달리듯 애원하며 멈추어 놓고 싶어도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흘러갑니다. 잠시 스쳐 지나 온 것만 같은데, 이제 이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37시간이 지나면 2007년도가 끝나는 것을 보면, ‘흘러만 가는 세월‘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새로운 2008년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나간 363일을 점검해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국가나 일반 기업체와 같은 큰 단체 뿐 아니라, 학교 동창회나 친구들의 조그만 모임에서도 ‘연말결산’이라는 것을 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얼마의 이익이 생겼는지 얼마의 손해를 보았는지를 계산을 합니다.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못했는지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잘못한 것은 잘할 수 있도록 고쳐서, 다음 해에는 그러한 잘못들을 반복하지 않게 합니다. 반대로 잘한 것은 더욱 발전시켜 다음 해에 더 잘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결산은 국가나 기업체나 동창회와 같은 단체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2007년도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지난 한 해를 결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개인을 돌아보고, 가정을 돌아보고, 교회를 돌아보는 결산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 따라서 하시겠습니다. “오늘은 결산의 날입니다. ” “오늘은 결산의 날입니다. ”
우리가 읽은 본문을 많은 사람들은 ‘열 므나의 비유’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내용상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와 므나의 비유의 더 중요한 차이는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실 때의 상황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재림을 말씀하시면서 추가한 비유 말씀입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얼마의 달란트를 받았든지 주신 것을 가지고 충성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열 므나의 비유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제가 11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 제자들은 자기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다가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로마 군병들을 무찌르고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정치적인 왕이 되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이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다’고 수없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도 못한 채, 그들은 크게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착각하고 있는 제자들의 생각을 바꾸시기 위하여 열 므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본문 말씀은 헤롯 왕가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당시 로마제국은 정복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지역대표 격인 분봉왕을 세웠습니다. 예수님 출생 당시 헤롯대왕이 분봉왕이었습니다. 헤롯대왕은 그가 죽을 때, 자기가 다스리는 이스라엘 땅을 세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 헤롯 빌립(Herod Philip), 그리고 아켈라우스(Herod Archelaus)에게 분할해서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정복국가인 로마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유대를 분할 받은 아켈라우스는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허가를 받기 위해 로마를 방문하러 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잔인한 성격을 염려한 유대 백성들은 별도로 50명의 사절단을 구성하여 그의 왕위 취득을 저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아켈라우스는 왕이 되어 유대로 돌아와서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제자들에게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위를 받으러 로마에 간 아켈라우스 왕처럼, 하늘에 올라가셨다가 다시 오실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가 곧 임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당장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즉 재림하실 때 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진리를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므나’는 당시 헬라와 로마의 화폐 표시인데 ‘1므나’는 약 100 데나리온에 해당됩니다. 1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자의 임금이기 때문에 만약 하루에 100불을 벌 수 있다고 가정하면, 1므나 즉 100데나리온은 10,000불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므나는 단순히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달란트 비유와 다른 점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달란트는 은사나 재능을 의미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주인이 3명의 종들을 불러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씩 차별하여 맡긴 후 돌아와서 결산을 하였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사람들에게 은사가 다 다르고 재능이 다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마다 은사의 종류도 다르고 크기도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은사나 재능을 가지고 열심을 다하면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은 달란트와 달리, 천한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역할과 사명은 다 귀합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저를 아브라함처럼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아브라함처럼 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러면 너의 하나뿐인 아들을 내게 줄 수 있느냐” 그는 사랑하는 외아들을 아브라함처럼 주님께 제물로 바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니오. ”라고 대답을 하며 다시 주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주님, 그렇다면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처럼 되게 해주세요. ”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럼 십자가를 거꾸로 질 수 있겠느냐”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주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주님, 정말로 죄송한데요. 그렇다면 저를 차라리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처럼 되게 해 주세요. ”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러면 네가 40년 동안 혼자 광야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말이 40년이지, 그것도 혼자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아 울먹이며 다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그렇다면 저더러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너는 너처럼 되어라. ”
여러분, 다른 사람과 여러분을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역할을 다른 사람의 역할과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꾸만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은사와 재능이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습니다. 친구는 운동을 잘 하고, 나는 운동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김집사는 노래를 잘 하지만, 나는 음치일 수도 있습니다. 이권사는 요리를 잘 하지만 나는 라면 한 제대로 끓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나의 재능이나 은사가 다른 사람에 비해 적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은 크다거나 작다거나 할 수 없습니다. 사명을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다 귀한 줄로 믿습니다. 이 마이크는 소리를 크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이 볼펜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 존재하고 이 강대상은 설교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 아무 의미 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맞는 역할과 각자에게 고유한 사명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떤 귀인이 10명의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주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맡은 사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12절을 보면 어떤 귀인이리고 번역되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어떤 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귀족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외국에 갈 때, 10명의 종들을 불러 각각 1므나씩 주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라 명하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13절). 여기 '장사하라'라는 헬라어는 ‘프라그마튜오마이‘라는 단어로서, '이윤을 내라' ‘이익을 창출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준 그 10,000불을 가지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각자가 열심을 다하여 이윤을 남겨라. 내가 다시 재림할 때까지 너희들에게 준 사명을 잘 감당하라. “ 오늘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 일의 내용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던 지상명령과 동일합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열심을 다하여 복음전파의 사명을 수행하고, 최선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지난 1년 동안 장사를 하여 얼마나 이익을 남기셨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결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장사를 해서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겼는지, 즉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했는지 결산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귀족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을 불렀습니다. 다같이 15절을 보겠습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온 주인은 종들을 불러 결산을 했습니다.
그래서 1므나를 가지고 10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열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고, 1므나를 가지고 5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장사를 하지 않고 1므나를 수건으로 싸두었다가 1므나 그대로 가지고 온 종에게는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아버렸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더 많은 일이 맡겨진다는 사실입니다.
유명한 부흥사 D. L Moody에게는 이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855년 무디가 교회에 나간 지 1년이 지난 때, 주일학교 교사였던 에드워드 킴볼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무디,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체험이 있나” “글쎄요. 저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지금도 교회에 다니며,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자 킴볼이 다시 말했습니다.
“내 말은 ‘자네가 개인적으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네. 나는 자네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네. 오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결국 그 동안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무디는 죄악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여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지 1년 후 무디는 한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그를 주일학교 교사로 임명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포기하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교사로 임명은 해주었지만, 단 한 사람의 학생도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무디는 “괜찮습니다. 그러면 제가 밖에 나가서 아이들에게 전도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밖에 나가서 아이들을 데려다가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숫자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16명, 50명, 100명, 500명, 1,000명, 나중에는 1,500명이나 되는 어린이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19세기 미국을 바꾸는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큰일을 맡겨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일을 맡겨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주인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한 종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상급을 주었습니까 일을 주었습니까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과 상급 둘 다 주었습니다.
이것이 달란트 비유와 다른 점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주인이 무엇을 주었습니까 일이 아니라 상급을 주었습니다. 주인은 열심히 충성해서 5달란트를 더 남긴 사람을 칭찬해주고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악하고 게을러서 1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온 사람으로부터 그 1달란트를 빼앗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주인은 1므나로 5므나를 남긴 사람을 인정해주고 칭찬을 한 후 그에게는 다섯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또한 1므나로 10므나를 남긴 사람 역시 인정해주고 칭찬을 한 후, 그에게는 열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었을 뿐 아니라, 1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온 사람에게서 1므나를 빼앗아 그것까지 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맡겨진 사명을 감당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주시고 칭찬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실 종이 받는 최고의 선물은 주인의 인정과 칭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인에게 인정받으면 더 큰 일은 저절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후보가 당선된 후,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당선자에게 접근하고, 각종 정책을 담은 의견들을 정리한 서류를 당선자에게 전달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통령 당선자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입니다. 당선자에게 인정만 받으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 중요한 요직에 앉을 수도 있고, 당선자에게 인정을 받으면 앞으로 5년 동안 출세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 나라 의 대통령 당선자에게 인정을 받아도 이런 정도인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1므나를 가지고 5므나를 남기고, 1므나를 가지고 10므나를 남김으로 주인에게 칭찬받은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생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고 여호와 하나님께 칭찬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 나타난 1므나를 받았다가 1므나를 가지고 온 사람이 왜 책망을 받았을까요 그리고 그가 1므나까지 빼앗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주인으로부터 받은 1므나를 수건에 싸두었다가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이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도 죄이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과거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저항운동을 벌일 때,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던 그룹에서 한 청년이 교수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동지들에 의해서 사형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사람은 자기를 향해서 총을 겨누고 있는 동지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들은 왜 나를 죽이려고 하시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나는 반역하지도 않았고, 나는 배신하지도 않았고, 나는 당신들의 일을 해롭게 하지도 않았소. 나는 죽을 만한 일을 결코 하지 않았소. ” 그때 총을 겨누고 있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친구야!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네 죄란다. 민족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네 죄라는 것을 모르나. ”
장차 우리는 마지막 주님의 백보좌 앞에서, 계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 이렇게 변명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저는 살인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사기를 친 적도 없습니다. 저는 남의 집 담을 넘어가 도둑질 한 적도 없고, 간음을 한 적도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하십니까” 그 때 주님께서 그러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살인하지도 않았고, 사기를 치지도 않았고, 도둑질도 하지 않았고, 간음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네가 나를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이냐 네가 세상에 살 때, 나를 위해서, 나의 복음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이냐”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2007년도를 결산하는 날입니다.
지금은 결산을 생각해야 할 순간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너에게 준 물질과 건강과 재능과 시간을 가지고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 도대체 네가 지난 2007년 한 해 동안 나를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신다면, 여러분들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지난 한 해 동안의 삶을 보신 주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제 끝으로 우리나라 옛날 야사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떤 부자에게 아들이 없어 두 명의 사내아이를 입양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스물 살이 넘게 되자, 독립을 시켜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아버지, 우리도 한양에 가서 과거시험도 치르고, 벼슬도 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떠날 수 있도록 좀 해 주세요. ” 두 아들이 하도 졸라대니까, 아버지가 마침내 허락을 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떠나는 날인데, 떠나기 전날 이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겨울이 오는데, 너희들이 떠나기 전에 오늘 저녁 마지막으로 새끼줄을 좀 꼬아놓아라” 그러자 큰 아들이 불평을 합니다. “우리가 친자식이 아니라고, 떠나기 마지막 날 저녁까지, 이렇게 일을 시키다니”라고 불평을 하면서 마지못해 억지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키워 주신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인데”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새끼를 꼬았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아 드디어 두 아들은 한양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출발하려는 두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들아, 창고에 들어가서 너희들이 밤새도록 정성을 다 해서 꼰 그 새끼줄에 은전을 꿴 후, 그 돈을 가지고 출발하도록 하라. ” 지난밤 감사하며 열심히 그리고 길게 새끼줄을 꼰 둘째아들은 많은 동전을 챙긴 반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적당히 짧게 새끼줄을 꼰 큰아들은 동전 몇 개를 챙기지 못해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우리는 주님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조금 힘들게 느껴지는 일을 맡기셨다 할지라도, 우리는 불평하지 말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의도를 깨닫고, 주님께서 주신 일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지나간 1년 동안 주님을 위해 해놓은 것이 없다면, 만약 주님께 칭찬 받을만한 일을 하지 못해서 부끄럽다면, 올해가 다가기 전에 주님께 잘못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0므나를 남긴 종처럼 새해 2008년도에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단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할 수만 있으면 인정해주고 싶어 하시고, 칭찬해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더 큰 일을 맡겨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주님이 여러분에게 맡기신 작은 일이 무엇입니까 그 일에 최선을 다하여 내년 이 맘 때에는 “잘 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다”(17절)는 인정받고 칭찬 듣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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