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성공적 삶을 위한 세 가지 약속
본문
금년도 이제 몇일 안남았습니다. 정말 빠른 세월입니다. 항상 일년의 끝에 서서 살아온 나날들을 돌아보면 항상 아쉬운 맘이 듭니다.
금년에도 처음에는 주님을 보고 여러 가지 약속했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뉘우쳐보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새해가 시작됩니다. 그 새해가 어떻게 펼쳐질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가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약속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이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결하게 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여호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약속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성공적 삶을 위해서는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할 세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1. 첫째는 자기와의 약속을 힘써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해를 시작할 때 한해에 대해서 항상 다짐을 합니다.
”이번에는 더욱 충성해야지, 더욱 기도해야지, 더욱 잘해야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구정 지나고 나면 슬그머니 그 다짐이 사라져버립니다. 그런 식으로 살면 세월은 절대 우리를 성공자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시대가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그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힘들게 삼니다.
험한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변함없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자기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려면 특히 자신과의 대화를 잘해야 합니다. 묘하게도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그곳에서 많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묻힐 무덤을 미리 사 두고 울적할 때마다 그 무덤을 갑니다. 그리고 무덤 곁에서 중얼거립니다. ”이제 곧 갈텐데 뭘 그렇게 바둥거리며 사나” 그렇게 조금 있다가 보면 마음이 풀리고, 다시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마음을 고쳐먹으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덤 옆에서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항상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할 때 무엇보다 십자가를 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자기와의 약속 중에서 가장 소중한 약속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약속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헌신이 없으면 절대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어려운 순간을 만나지만 그때에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삶이 힘들 때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십자가를 져야 자기도 살고, 그의 삶도 빛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울 때 십자가를 지면 죽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십자가를 내려놓을 때에 그것이 위험이고 결국 죽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5절에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자기 십자가를 지고 믿음으로 정면 돌파하면 삽니다.
어려울 때 자기 십자가를 회피하면 오히려 더 어려움을 당하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사는 길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면 고생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기쁨과 보람이고,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항상 중심적 인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면 손해 볼 것 같지만 사실상 그것이 성공비결입니다.
이제는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져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의 중심이 되고, 이 땅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십자가를 지겠다는 자기 다짐을 잘 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2.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약속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인간 사회는 약속 공동체입니다. 그러면 마치 약속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와 여백이 생기게 됩니다.
한 심리학자가 울타리 있는 운동장과 울타리 없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놀게 했습니다. 그런데 울타리가 없는 운동장에서는 운동장 중앙에서만 노는 반면에 울타리가 있는 운동장에서는 전체 운동장을 다 쓰면서 노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교훈해 줍니까 울타리가 있어야 사람의 폭이 넓어지고 오히려 더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 사회의 약속은 바로 이 울타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켜야 우리에게는 더욱 폭넓은 자유와 기쁨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웃과 살면서 기분 내키는 대로, 감동대로 이웃을 돕는 것은 차라리 쉽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웃과 살면서 약속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약속도 잘 지킬 줄 아는 신뢰받는 인간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약속을 다 지킬 수는 없지만 힘써 지지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삶과 그 가정에 은총과 축복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약속을 깨면 수많은 사람들과 그가 속한 공동체가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가정도 사실상 법조문이 없는 무언의 약속 공동체입니다.
뚜렷한 약속이 없어도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지켜야 할 것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한 약속을 깨기 때문에 가정의 위기, 관계의 위기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일꾼들이 자기의 일을 잘 맡아 감당할 때 생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특권이란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특권이란 것이 생깁니다.
그래서 특권이 생겨나면서 교회에서도 특권층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특권이 어느정도의 선을 넘게 되면 교회의 발전에 지장이 됩니다.
미국의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파워 그룹인 와스프(wasp)에서 나옵니다. 와스프(White Anglo-Saxon Protestant)란 백인 앵글로색슨 기독교인을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에게 엄격하고 절제된 교육을 하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자기보다 공동체를 생각하는 훈련을 시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이기주의와 상업주의로 미국이 무너질 것 같지만 미국 내면을 흐르고 있는 도도한 약속과 질서의 물결이 미국을 지탱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잉 보호를 합니다.
한번은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인 조나단이 야구에서 홈런을 쳤습니다. 그러자 집에 와서 자랑합니다. ”엄마! 제가 홈런을 쳤어요!” 그때 어머니가 심하게 꾸짖습니다. ”너무 네 자랑이 심하다! 중요한 것은 네 팀이 어떻게 됐는가 하는 거야!”
1923년 영국의 초호화선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그곳 근처에 캘리포니아 호라는 또 다른 선박이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타이타닉 호가 기울면서 무전사들은 필사적으로 구조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호의 무전사는 잠깐의 실수로 무전기를 꺼 놓았습니다. 결국 한 무전사의 무책임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무전기가 자기 역할을 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혹시 믿음 생활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영적 무전기가 잠자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사고와 실패, 아픔과 어려움은 대개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부주의보다 더 큰 재앙의 원인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사실상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는 ”내가 이 자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자기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난 사각형 공동체가 아닌 서로를 감싸주는 원형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중요한 사랑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려지 않고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약속을 깨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공동체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너무 낭비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손실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된 자녀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께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실상 신앙은 내 마음의 주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이 수없이 뒤집혀도 여호와 하나님과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기로 작정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삶과 그 가정에 은총과 축복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이름이 왜 드와이트인 줄 아십니까 그의 어머니가 흑인 부흥사인 드와이트 무디에게 은혜를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도 무디처럼 되라는 의미에서 드와이트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여호와 하나님께 한 자기의 약속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고, 아이젠하워도 여호와 하나님과 약속한 것은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했습니다.
한번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이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폭탄이 무수히 떨어지는 곳에서도 그는 꼭 주일학교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떨어지는 폭탄 속에서도 동네 아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한 신앙의 원칙과 삶의 원칙! 그러한 원칙이 있는 사람이 크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수많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들로 가득한 약속문서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는 환경이나 처지나 상황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약속을 신뢰할 때 우리에게 평안이 있고, 평안히 신뢰할 때 응답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처음 가설될 때 대단한 난공사였습니다. 수면에서 다리까지의 높이가 70미터이고, 수면에서 물밑까지 다리깊이가 70미터인데, 그 엄청난 140미터의 교각을 세우느라고 공사할 때 1년에 23명이 추락사를 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서 비상대책으로 공사현장 밑에 안전망을 설치했습니다. 그러자 공사하는 사람들이 마음이 안정되어서 작업능률이 현저히 올라갔다고 합니다. 안전망에 대한 믿음이 현실을 극복하는 능력을 현저히 키워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영원한 안전망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나안을 약속하셨습니다. 믿고 줄기차게 전진하면 분명히 그 땅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 어려움이 있어도 견디지 못하고 애굽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때 ”그래도 가나안으로 가자!”라고 하면 광야 40년 기간은 짧아졌을 것입니다.
신년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을 잘 지켜서 나 자신이 나를 신뢰할만한 사람, 그리고 사람과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얻어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은혜로 녹아내린 사람들/사55:6-13, 고후8:1-9
헤밍웨이의 한 소설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 어느 스페인인 아버지의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그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을 처음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들을 용서하기로 작정을 하고 한 신문에 이런 광고를 냈습니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아버지는 다 용서했다. 아빠’
파코는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입니다. 우리 나라의 철수나 영이와 같은 이름입니다.
아버지가 약속한 몬타나 호텔에 나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파코란 이름의 젊은이들이 800여명이나 모여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은혜가 목말라 기다리는 파코같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시대는 너무 비은혜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공중 화장실에 화장지를 가져가는 것은 보통이고, 화장실의 비누며 심지어는 공중화장실의 환풍기까지 떼어 가는 시대입니다. 함석판에 특수 시약을 넣고 끓이면 구리가 된다고 속여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기꾼이 있는가하면 교통사고를 당하여 고통 당하는 가정에 접근하여 거짓으로 증거를 세워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는 몰염치 범도 참 많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시대는 은혜가 더욱 필요합니다.
우리 가정도 은혜가 필요하고 우리 교회도 은혜가 필요하고 이 민족에게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는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금년에도 처음에는 주님을 보고 여러 가지 약속했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뉘우쳐보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새해가 시작됩니다. 그 새해가 어떻게 펼쳐질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가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약속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이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결하게 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여호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약속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성공적 삶을 위해서는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할 세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1. 첫째는 자기와의 약속을 힘써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해를 시작할 때 한해에 대해서 항상 다짐을 합니다.
”이번에는 더욱 충성해야지, 더욱 기도해야지, 더욱 잘해야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구정 지나고 나면 슬그머니 그 다짐이 사라져버립니다. 그런 식으로 살면 세월은 절대 우리를 성공자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시대가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그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힘들게 삼니다.
험한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변함없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자기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려면 특히 자신과의 대화를 잘해야 합니다. 묘하게도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그곳에서 많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묻힐 무덤을 미리 사 두고 울적할 때마다 그 무덤을 갑니다. 그리고 무덤 곁에서 중얼거립니다. ”이제 곧 갈텐데 뭘 그렇게 바둥거리며 사나” 그렇게 조금 있다가 보면 마음이 풀리고, 다시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마음을 고쳐먹으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덤 옆에서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항상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할 때 무엇보다 십자가를 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자기와의 약속 중에서 가장 소중한 약속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약속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헌신이 없으면 절대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어려운 순간을 만나지만 그때에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삶이 힘들 때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십자가를 져야 자기도 살고, 그의 삶도 빛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울 때 십자가를 지면 죽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십자가를 내려놓을 때에 그것이 위험이고 결국 죽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5절에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자기 십자가를 지고 믿음으로 정면 돌파하면 삽니다.
어려울 때 자기 십자가를 회피하면 오히려 더 어려움을 당하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사는 길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면 고생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기쁨과 보람이고,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항상 중심적 인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면 손해 볼 것 같지만 사실상 그것이 성공비결입니다.
이제는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져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의 중심이 되고, 이 땅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십자가를 지겠다는 자기 다짐을 잘 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2.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약속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인간 사회는 약속 공동체입니다. 그러면 마치 약속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와 여백이 생기게 됩니다.
한 심리학자가 울타리 있는 운동장과 울타리 없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놀게 했습니다. 그런데 울타리가 없는 운동장에서는 운동장 중앙에서만 노는 반면에 울타리가 있는 운동장에서는 전체 운동장을 다 쓰면서 노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교훈해 줍니까 울타리가 있어야 사람의 폭이 넓어지고 오히려 더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 사회의 약속은 바로 이 울타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켜야 우리에게는 더욱 폭넓은 자유와 기쁨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웃과 살면서 기분 내키는 대로, 감동대로 이웃을 돕는 것은 차라리 쉽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웃과 살면서 약속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약속도 잘 지킬 줄 아는 신뢰받는 인간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약속을 다 지킬 수는 없지만 힘써 지지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삶과 그 가정에 은총과 축복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약속을 깨면 수많은 사람들과 그가 속한 공동체가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가정도 사실상 법조문이 없는 무언의 약속 공동체입니다.
뚜렷한 약속이 없어도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지켜야 할 것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한 약속을 깨기 때문에 가정의 위기, 관계의 위기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일꾼들이 자기의 일을 잘 맡아 감당할 때 생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특권이란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특권이란 것이 생깁니다.
그래서 특권이 생겨나면서 교회에서도 특권층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특권이 어느정도의 선을 넘게 되면 교회의 발전에 지장이 됩니다.
미국의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파워 그룹인 와스프(wasp)에서 나옵니다. 와스프(White Anglo-Saxon Protestant)란 백인 앵글로색슨 기독교인을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에게 엄격하고 절제된 교육을 하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자기보다 공동체를 생각하는 훈련을 시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이기주의와 상업주의로 미국이 무너질 것 같지만 미국 내면을 흐르고 있는 도도한 약속과 질서의 물결이 미국을 지탱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잉 보호를 합니다.
한번은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인 조나단이 야구에서 홈런을 쳤습니다. 그러자 집에 와서 자랑합니다. ”엄마! 제가 홈런을 쳤어요!” 그때 어머니가 심하게 꾸짖습니다. ”너무 네 자랑이 심하다! 중요한 것은 네 팀이 어떻게 됐는가 하는 거야!”
1923년 영국의 초호화선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그곳 근처에 캘리포니아 호라는 또 다른 선박이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타이타닉 호가 기울면서 무전사들은 필사적으로 구조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호의 무전사는 잠깐의 실수로 무전기를 꺼 놓았습니다. 결국 한 무전사의 무책임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무전기가 자기 역할을 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혹시 믿음 생활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영적 무전기가 잠자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사고와 실패, 아픔과 어려움은 대개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부주의보다 더 큰 재앙의 원인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사실상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는 ”내가 이 자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자기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난 사각형 공동체가 아닌 서로를 감싸주는 원형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중요한 사랑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려지 않고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약속을 깨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공동체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너무 낭비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손실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된 자녀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께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실상 신앙은 내 마음의 주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이 수없이 뒤집혀도 여호와 하나님과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기로 작정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삶과 그 가정에 은총과 축복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이름이 왜 드와이트인 줄 아십니까 그의 어머니가 흑인 부흥사인 드와이트 무디에게 은혜를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도 무디처럼 되라는 의미에서 드와이트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여호와 하나님께 한 자기의 약속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고, 아이젠하워도 여호와 하나님과 약속한 것은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했습니다.
한번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이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폭탄이 무수히 떨어지는 곳에서도 그는 꼭 주일학교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떨어지는 폭탄 속에서도 동네 아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한 신앙의 원칙과 삶의 원칙! 그러한 원칙이 있는 사람이 크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수많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들로 가득한 약속문서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는 환경이나 처지나 상황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약속을 신뢰할 때 우리에게 평안이 있고, 평안히 신뢰할 때 응답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처음 가설될 때 대단한 난공사였습니다. 수면에서 다리까지의 높이가 70미터이고, 수면에서 물밑까지 다리깊이가 70미터인데, 그 엄청난 140미터의 교각을 세우느라고 공사할 때 1년에 23명이 추락사를 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서 비상대책으로 공사현장 밑에 안전망을 설치했습니다. 그러자 공사하는 사람들이 마음이 안정되어서 작업능률이 현저히 올라갔다고 합니다. 안전망에 대한 믿음이 현실을 극복하는 능력을 현저히 키워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영원한 안전망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나안을 약속하셨습니다. 믿고 줄기차게 전진하면 분명히 그 땅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 어려움이 있어도 견디지 못하고 애굽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때 ”그래도 가나안으로 가자!”라고 하면 광야 40년 기간은 짧아졌을 것입니다.
신년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을 잘 지켜서 나 자신이 나를 신뢰할만한 사람, 그리고 사람과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얻어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은혜로 녹아내린 사람들/사55:6-13, 고후8:1-9
헤밍웨이의 한 소설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 어느 스페인인 아버지의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그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을 처음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들을 용서하기로 작정을 하고 한 신문에 이런 광고를 냈습니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아버지는 다 용서했다. 아빠’
파코는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입니다. 우리 나라의 철수나 영이와 같은 이름입니다.
아버지가 약속한 몬타나 호텔에 나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파코란 이름의 젊은이들이 800여명이나 모여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은혜가 목말라 기다리는 파코같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시대는 너무 비은혜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공중 화장실에 화장지를 가져가는 것은 보통이고, 화장실의 비누며 심지어는 공중화장실의 환풍기까지 떼어 가는 시대입니다. 함석판에 특수 시약을 넣고 끓이면 구리가 된다고 속여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기꾼이 있는가하면 교통사고를 당하여 고통 당하는 가정에 접근하여 거짓으로 증거를 세워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는 몰염치 범도 참 많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시대는 은혜가 더욱 필요합니다.
우리 가정도 은혜가 필요하고 우리 교회도 은혜가 필요하고 이 민족에게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는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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