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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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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지막 송년주일입니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이런 생각을 갖습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엊그제 시작한 것 같았는데 벌써 끝에 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조가 있었기에 종말도 반드시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역사는 물 흘러가듯 계속해서 흘러가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끝이 있게 됩니다.
헬라 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은 필립 2세였습니다. 그에게는 이상한 신하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신하는 다른 일을 전혀 하지 않고 꼭 한가지만 맡아서 했다고 합니다. 이른 아침 이 신하는 왕의 침소 머리맡으로 다가가서 큰소리로 왕을 깨웁니다. ”대왕마마! 오늘이 어쩌면 대왕마마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릅니다. ” 그 소리를 듣고 왕이 깜짝 놀라서 깨어난다고 합니다. ”그래 맞아! 오늘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지. 내가 이렇게 잠에 취해 있을 수 없지. ”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아침 식탁에 앉으면, 이 신하가 이번에는 아주 흉측하게 생긴 해골을 갖고 식사를 하고 있는 왕의 식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왕은 연신 그 해골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 맞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결국 썩어질 육신,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아야지. 먹고 마시는 일에 귀중한 인생을 낭비할 수 없지. ” 왕이 식사 후 집무할 때 이 신하는 그 해골을 들고 이제는 왕이 집무하는 책상머리에 갖다 놓습니다. 왕은 틈틈이 해골을 바라보면서 집무를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 맞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어차피 썩어질 육신, 청렴결백하게 살고 공평무사하게 일해야지. ” 왕은 어디를 가든지 그 신하가 가지고 온 해골을 보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신약성경에는 재림에 대한 이야기가 318번 언급되어 있는데 특히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보다 재림에 대한 예언이 거의 8배나 많이 나와 있습니다. 마 24:30”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눅 12:4”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요 14:3”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행 1:10-11”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재림에 대한 이러한 성경구절을 찾기로 말한다면 한이 없을 정도입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주된 관심사는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사람의 문제였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이렇게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살전 4:13-16”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여호와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바울은 여기에서 예수님의 공중재림, 죽은 자의 부활 그리고 살아있는 성도의 휴거를 말씀함으로 그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깨어 준비해야 됨을 강조했습니다. 그랬더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 말씀을 잘못 곡해하여 예수님께서 당장에 재림하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현실 생활을 무시하고 재림만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들 때문에 많은 교인들의 마음이 동요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또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가 데살로니가 후서입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재림 문제로 인해 동요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살후 2:1-2”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것이라” 동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먼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정중하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오히려 가정도 무시하고 직장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살후 3:10-12”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재림의 문제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너무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하는 세상에 재림이라는 것이 어디 있겠어’ 하면서 재림 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가정도, 직장도, 사회도 다 부정해 버릴 정도로 열광에 빠지거나 미쳐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항상 극단은 위험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분명히 아니 반드시 예수님은 재림하십니다. 그러나 현실 생활을 부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여러 차례 설교를 하는데도 교인들의 반응이 별로 시원치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장로님들과 그 일에 대해 상의를 하고 교인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줄 묘안을 찾게 되었습니다. 주일 저녁 예배 때 목사님은 평소처럼 설교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임박했으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 이렇게 설교를 하다가 갑자기 말을 중단했습니다. 설교를 듣고 있던 교인들이 의아해 할 때, 그 목사님은 공중을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러분, 저기를 보십시오. 지금 예수님이 재림하고 계십니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팔 소리가 예배당에 진동을 했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 숨어있던 장로님이 나팔을 불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교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졸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의자 밑에 머리를 처박고 부들부들 떠는 사람, 안절부절 당황해 하는 사람, 그냥 섰다 앉았다 하면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사람, 불이라도 난 줄 알고 출입구 쪽으로 뛰쳐나가는 사람, 그야말로 교회는 온통 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단 몇 사람만이 조용히 의자에 앉아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면서 기도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지금 당장 재림하시면 여러분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을 종말론적인 신앙이라고 합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오늘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면’ 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게 합니다. 어떤 의사는 자기 진찰실의 눈에 잘 띄는 벽 위에 영어로 두 단어를 써 놓았다고 합니다. ”Perhaps Today” 이 말은 ’아마 오늘일지 몰라!’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설마, 오늘은 아니겠지!”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설마, 설마’를 남발하다가 큰 코 다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본문 2-3절”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여기에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상시 ’설마’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도적처럼 임하게 될 것입니다. 멸망이 홀연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집시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재림의 때와 시기를 비밀에 부치셨을까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은 당장에 그의 삶이 달라집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흔히 ’재림의 때가 언제냐’ 집요한 관심을 갖습니다. 재림의 때를 알면, 세상 재미 볼 것은 다 보고 때가 되면 조금 준비했다가 천국 가려고 할 것입니다. 인간의 그러한 얄팍한 꾀에 여호와 하나님이 속으시겠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과 오늘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믿은 복음과 오늘 우리가 믿는 복음이 다릅니까 그들이 믿는 예수님과 오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다릅니까 그들이 받은 죄 사함과 오늘 우리가 받은 죄 사함이 다릅니까 그들이 받은 은혜와 오늘 우리가 받은 은혜가 다릅니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늘 우리들과는 달리 임박한 재림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떠한 환란도, 고난도, 역경도 결코 두렵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산업을 빼앗기면서도 기쁨이 있었고, 생명을 잃으면서도 마음의 평안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임박한 종말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 재림 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의 특징 세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빛의 아들로 삽니다.
본문 4-5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밤이나 어두움에 빠져 있을 수 없습니다. 요일 1:5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빛이시고, 마 5:14에 의하면,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빛의 자녀가 빛 가운데 거하며 살아야지 어두움에 빠져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는 빛의 자녀라고 하면서 어두움의 자녀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롬 13:12-13”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두움은 방탕이고, 어두움은 술 취함이고, 어두움은 음란이고, 어두움은 죄악이고, 어두움은 마귀이고, 어두움은 죽음이고, 어두움은 지옥입니다. 엡 5:8-9”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빛의 자녀로 삽니다.
 둘째, 깨어 근신합니다.
본문 6-8절 상에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라고 했습니다. 근신한다는 것은 자기절제를 의미합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놀고 싶은 것 다 놀고, 잠자고 싶은 것 다 자면서, 언제 기도하고 언제 전도하고 언제 직분 감당하고 언제 주의 일을 합니까 벧전 4: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영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아니 영적인 잠이 처음부터 찾아오지 않도록 더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까사끼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전에 그 지역 주민들에게 경고장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그 경고를 무시하다가 한순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사데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영적인 잠에 취해 있었을지라도 노아는 깨어 있었습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깨어 근신합니다.
 셋째,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무장합니다.
본문 8절 하에 보시면,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일수록 물질과 권력과 건강으로 무장할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라는 세 가지 덕목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고전 13: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바울이 편지를 쓰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무장하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 이러한 덕목들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그들에게는 이러한 덕목들이 있었고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 전서를 쓰면서 그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살전 1:2-3”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그렇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우리가 끝까지,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가 추구해야 될 덕목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무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무장합니다.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임박한 종말 의식을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첫째, 빛의 아들로 살고, 둘째, 깨어 근신하며, 그리고 셋째,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무장합니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 재림하실 수도 있습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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