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한해의 종말
본문
올 한해는 오늘로 영원히 종말을 고하고 사라져 갑니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새로운 일년이 시작되는데, 우리는 새로운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마지막을 가리켜서 때가 가깝다 혹은 종말이다 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0~11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때가 가깝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때에 관하여 매우 민감한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6, 18절과 로마서 13장 11~12절의 말씀을 통하여 때를 강조하였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1~12)
바울은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는 시점에 있는 우리를 향하여 마지막 때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세 가지 현상에 관하여 증거 하였습니다.
1) 마지막 때가 되면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변질됩니다.
디모데 후서 4장 3절에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하고 말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크리스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크리스천이 어떻게 변질이 됩니까 바른 교훈을 받지 않게 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기쁘게 들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하게 들리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로 들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복이 없기 때문에 바른 교훈을 듣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논산훈련소에 가서 2,235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논산훈련소의 참모장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요즘 군대에 오는 청년들은 옛날의 청년들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옛날 청년들은 훈련을 받다가 힘이 들면 탈영을 했는데 지금은 자살을 합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서를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결단과 의지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약해져서 이러한 일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2) 마지막 때가 되면 귀가 가려지게 됩니다.
이것은 들을 수 있는 귀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들리고 싫어하는 것은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교회의 목사는 이혼이나 간음에 관한 설교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목사나 장로나 교인이나 말할 것 없이 전부 이혼을 떡 먹듯이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목사가 주례를 할 때 “오늘 내가 주례하는 이 부부는 평생동안 이혼하지 말라”하고 말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이혼율이 엄청나게 높기 때문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조그만 것도 서로 참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고 헤어집니다. 왜 부부가 멀쩡한 아이들을 낳고서 헤어져야 합니까 이것은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자신을 여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을 넓게 열어라 내가 채워주겠다”, “마음 문을 열어라 내가 성령을 부어주겠다”
따라서 귀가 열리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 3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내가 전하는 말씀보다 더 많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 의하면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 세 가지 징조가 있었습니다.
①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 것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늘 문이 막혀서 400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침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보다 육개월 전에 미리 온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전파하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예수님으로 인해 하늘 문이 열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침묵을 깨뜨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②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
③ 하늘에서 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TV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고 있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TV수상기와 라디오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은 끊임없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사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못 듣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일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하나하나 잘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가장 복있는 사람입니까
3) 마지막 때가 되면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게 됩니다.
나에게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공격하는 사람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열린 어느 이사회에서 사회를 하고 있을 때 어떤 분이 일어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발언이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저런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발전을 합니다. ”하고 말하자, 발언을 하던 사람이 이야기를 중단했으며 상을 찌푸렸던 사람들도 좋아했습니다.
그 회의는 보통 5~6시간이 걸리는 회의였는데 그 날은 2시간 10분만에 마쳤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사람들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사회를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원래 사회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사회를 못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오셔서 사회를 하신 것입니다. ”
사람이 바른 말을 듣지 않는 까닭은 자기의 욕심에 끌리는 이야기를 하면 ‘아멘!’하고, 자기에게 해로운 이야기를 하면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4) 마지막 때가 되면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장 7~8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가지 말고 경건을 이루기 위해서 연습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마지막 때에 우리는 어떤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 모든 일에 근신해야 합니다.
나는 감리교 본부로 7시 30분에 출근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린 후 업무를 시작합니다.
역대 감독들은 한 달에 한 두 번 출근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상근하는 직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리교의 지도자가 뛰어야 따라오는 사람이 걸어오고 지도자가 걸어가면 따라오는 사람은 기어가며 지도자가 기어가면 따라오는 사람은 아예 누워버립니다. 근신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려면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자런해야 합니다. 근신하며 기도하고 말씀 보아야 합니다.
둘째, 전도인의 일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부흥할 수 없다. ”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도인이 되어서 주일에 교회에 올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오면 교회는 자연히 부흥합니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전도인이 됩시다. ”하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1월 첫 주일에 올 때 한 사람씩 꼭 데리고 오시기 바랍니다. 만약 데리고 올 수 없으면 여자들은 아기를 낳으세요.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양자라도 기르시기 바랍니다. ”
셋째,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의 직무가 있고 장로는 장로의 직무가, 권사는 권사의 직무, 집사는 집사의 직무가, 성도는 성도의 직무가 있습니다.
부목사의 보고에 의하면 금년에 우리 교인의 가족이나 친척 중에서 돌아가신 분이 32명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이 노인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장례를 치른 분은 31세인 분으로서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 올 때에는 어떤 병이 들었든지 간에, 여기서 신앙생활을 잘해서 전부 고침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5장 14~15절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35년 전에 우리 교회에 와서 가난한 집을 심방할 때마다 이와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복을 두었다가 무엇을 합니까 복을 흔들어서 눌러서 넘치게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현실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광규 장로님이 부장으로 있는 경조부 부원들이 늘 모여서 어려운 일을 당한 이들이나 혹은 결혼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감격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박수를 쳐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가서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세월은 쏘는 화살처럼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딤후 4:6)
바울은 이처럼 사명의 종말을 고하면서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1) 선한 싸움을 다 싸웠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악한 싸움이거나 남을 망신주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선한 것을 만들기 위한 싸움입니다.
2)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내내 일등으로 달렸어도 결승점을 1m 남겨놓고 쓰러지면 우승을 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절대로 도중하차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생활과 아멘의 생활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생활을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을 지켰습니다.
한결같은 믿음을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찬송가 133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시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자는 그 결과로서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이러한 종말의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러한 마지막을 가리켜서 때가 가깝다 혹은 종말이다 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0~11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때가 가깝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때에 관하여 매우 민감한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6, 18절과 로마서 13장 11~12절의 말씀을 통하여 때를 강조하였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1~12)
바울은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는 시점에 있는 우리를 향하여 마지막 때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세 가지 현상에 관하여 증거 하였습니다.
1) 마지막 때가 되면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변질됩니다.
디모데 후서 4장 3절에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하고 말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크리스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크리스천이 어떻게 변질이 됩니까 바른 교훈을 받지 않게 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기쁘게 들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하게 들리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로 들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복이 없기 때문에 바른 교훈을 듣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논산훈련소에 가서 2,235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논산훈련소의 참모장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요즘 군대에 오는 청년들은 옛날의 청년들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옛날 청년들은 훈련을 받다가 힘이 들면 탈영을 했는데 지금은 자살을 합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서를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결단과 의지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약해져서 이러한 일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2) 마지막 때가 되면 귀가 가려지게 됩니다.
이것은 들을 수 있는 귀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들리고 싫어하는 것은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교회의 목사는 이혼이나 간음에 관한 설교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목사나 장로나 교인이나 말할 것 없이 전부 이혼을 떡 먹듯이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목사가 주례를 할 때 “오늘 내가 주례하는 이 부부는 평생동안 이혼하지 말라”하고 말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이혼율이 엄청나게 높기 때문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조그만 것도 서로 참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고 헤어집니다. 왜 부부가 멀쩡한 아이들을 낳고서 헤어져야 합니까 이것은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자신을 여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을 넓게 열어라 내가 채워주겠다”, “마음 문을 열어라 내가 성령을 부어주겠다”
따라서 귀가 열리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 3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내가 전하는 말씀보다 더 많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 의하면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 세 가지 징조가 있었습니다.
①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 것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늘 문이 막혀서 400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침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보다 육개월 전에 미리 온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전파하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예수님으로 인해 하늘 문이 열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침묵을 깨뜨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②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
③ 하늘에서 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TV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고 있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TV수상기와 라디오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은 끊임없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사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못 듣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일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하나하나 잘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가장 복있는 사람입니까
3) 마지막 때가 되면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게 됩니다.
나에게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공격하는 사람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열린 어느 이사회에서 사회를 하고 있을 때 어떤 분이 일어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발언이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저런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발전을 합니다. ”하고 말하자, 발언을 하던 사람이 이야기를 중단했으며 상을 찌푸렸던 사람들도 좋아했습니다.
그 회의는 보통 5~6시간이 걸리는 회의였는데 그 날은 2시간 10분만에 마쳤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사람들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사회를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원래 사회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사회를 못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오셔서 사회를 하신 것입니다. ”
사람이 바른 말을 듣지 않는 까닭은 자기의 욕심에 끌리는 이야기를 하면 ‘아멘!’하고, 자기에게 해로운 이야기를 하면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4) 마지막 때가 되면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장 7~8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가지 말고 경건을 이루기 위해서 연습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마지막 때에 우리는 어떤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 모든 일에 근신해야 합니다.
나는 감리교 본부로 7시 30분에 출근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린 후 업무를 시작합니다.
역대 감독들은 한 달에 한 두 번 출근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상근하는 직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리교의 지도자가 뛰어야 따라오는 사람이 걸어오고 지도자가 걸어가면 따라오는 사람은 기어가며 지도자가 기어가면 따라오는 사람은 아예 누워버립니다. 근신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려면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자런해야 합니다. 근신하며 기도하고 말씀 보아야 합니다.
둘째, 전도인의 일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부흥할 수 없다. ”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도인이 되어서 주일에 교회에 올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오면 교회는 자연히 부흥합니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전도인이 됩시다. ”하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1월 첫 주일에 올 때 한 사람씩 꼭 데리고 오시기 바랍니다. 만약 데리고 올 수 없으면 여자들은 아기를 낳으세요.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양자라도 기르시기 바랍니다. ”
셋째,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의 직무가 있고 장로는 장로의 직무가, 권사는 권사의 직무, 집사는 집사의 직무가, 성도는 성도의 직무가 있습니다.
부목사의 보고에 의하면 금년에 우리 교인의 가족이나 친척 중에서 돌아가신 분이 32명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이 노인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장례를 치른 분은 31세인 분으로서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 올 때에는 어떤 병이 들었든지 간에, 여기서 신앙생활을 잘해서 전부 고침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5장 14~15절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35년 전에 우리 교회에 와서 가난한 집을 심방할 때마다 이와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복을 두었다가 무엇을 합니까 복을 흔들어서 눌러서 넘치게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현실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광규 장로님이 부장으로 있는 경조부 부원들이 늘 모여서 어려운 일을 당한 이들이나 혹은 결혼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감격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박수를 쳐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가서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세월은 쏘는 화살처럼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딤후 4:6)
바울은 이처럼 사명의 종말을 고하면서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1) 선한 싸움을 다 싸웠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악한 싸움이거나 남을 망신주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선한 것을 만들기 위한 싸움입니다.
2)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내내 일등으로 달렸어도 결승점을 1m 남겨놓고 쓰러지면 우승을 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절대로 도중하차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생활과 아멘의 생활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생활을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을 지켰습니다.
한결같은 믿음을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찬송가 133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시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자는 그 결과로서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이러한 종말의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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