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주님을 의지하라
본문
5절은 어떤 사람이 저주 받을 만한지 말하고, 6절에서는 그런 사람의 운명에 대해 알려 준다. 저주를 받을 사람은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이다. 여기서 “사람을 의지하며”에서 ‘의지하다“로 옮긴 히브리 동사는 7절에서 ’의지하다‘로 옮긴 히브리 동사와 같다.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로 옮긴 히브리어 부분을 직역하면, ”살(肉)을 자기의 팔로 삼고“가 된다. 또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로 옮긴 히브리어 부분은 ”야웨로부터 그의 마음이 돌아서 있는“으로 직역할 수 있다. 이리하여 저주 받을 사람은 한마디로 야웨 여호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에 비긴다. 여기서 “황야”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메마르고 거칠어 동식물이 살기 매우 힘든 벌판을 가리키고, “가시덤불”은 바늘이나 비늘 모양의 잎을 지닌 늘푸른 나무의 한가지로, 갈릴리 상부의 아주 제한된 지역에서, 그것도 드물게 볼 수 있거나, 남부 에돔 지역과 남서 아라비아 지역과 시내 반도에서 볼 수 있는 나무다. “황야의 가시덤불”은 생존환경이 아주 어려운 가운데서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가는 생명체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런 황야의 가시덤불같은 사람은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삶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말한다. 뒤이어 다시 식물의 비유를 염두에 두면서 이런 사람이 참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점을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다”는 말로 표현한다. 이런 곳에서는 식물이 제대로 자라나기 매우 힘들다. 이처럼 6절에서는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매우 고달프리라는 점을 똑똑히 말한다.
5-6절과 같은 방식으로 7-8절에서는 먼저 어떤 사람이 복 받을 만한지 말하고, 뒤이어 그런 사람의 운명에 대해 알려 준다. “복을 받을” 사람은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즉 “주님이 그의 의지하는 바가 되는 사람” 이다. 이것은 5절에서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저주 받는다고 한 것과 대조된다. 저주 받거나 복 받는 것은 사람과 여호와 하나님 둘 가운데 누구를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히브리어 본문 8절은 6절의 표현 양식에 맞추어 댓구로 되어 있다.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 이처럼 복 받을 사람을 물가에 심기운 나무에 비긴 것은, 앞에서 저주 받을 사람을 “황야의 가시덤불”과 비긴 것과 대조된다. 물가에 심은 나무는 좋은 생존 환경에서 번영할 수 있는 삶을 상징한다. “그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는 살아가는 힘을 언제나 공급 받는 안전한 상태를 말한다..
그리하여 물가에 심은 나무 같은 사람은 “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다. “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늘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 있는 자의 삶에는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저주 받을 자에게나 복 받을 자에게나 똑같이 생의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복 있는 자에게는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늘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 하나의 차이점이다. 늘 물을 넉넉히 빨아들일 수 있는 나무의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곧 싱싱하고 무성하며, ”언제나 열매를 맺듯이“, 이런 사람은 풍성한 삶을 누리며 끊임없이 열매를 맺는다.
물가에 심은 나무의 비유는 시편 1:3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야웨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자기의 기쁨을 그 율법에 두며 살아가는 의인의 운명을 묘사하는 데 이 비유가 쓰인다.
예레미야는 지금 유다가 망하기 직전 어지럽고 어려운 상황에서 야웨의 백성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일러주고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언제나 가깝고 먼 나라들이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적으로 출몰했다. 가깝게 위로는 아람(시리아), 우로는 에돔, 모압, 암몬, 아래로는 이집트, 좌로는 블레셋이, 멀게는 앗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등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에서부터 체험한 자신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수시로, 이런 주변 나라들이 도움이 되려니 하고 의지하려 했다. 바빌론의 침략 앞에 항복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는 전했지만, 유다는 끝까지 이집트가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바라다가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결국 사람의 도움은 유다를 메마르고 사막과 같은 지경으로 몰아갔다.
이 사람이 내 편일까, 저 사람이 내 편일까, 이 나라가 내 편일까, 저 나라가 내 편일까를 불안하게 오가는 사람이나 나라는 결국 그것이 힘도 안 될 뿐아니라, 결국을 의지하는 자신을 베어버리는 갈대지팡이와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그런 행동을 한다.
개인에게도 이런 성향이 있다. 내게 가까운 이웃, 먼 이웃들, 힘이 센 것같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우리의 고개를 돌려 그 안에서 세력 다툼을 벌리지만, 결국 남는 것은 황폐함 뿐인 경우를 많이 겪는다.
오늘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사람이나 사람의 힘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그리할 때 황야의 가시덤불처럼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 사람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된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늘 살피신다. 사람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옳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부와 번영을 꾀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또 그렇게 얻은 것은 쉬 사라지게 마련이다.
믿는 우리는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써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한 삶을 누리고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넉넉히 이겨내고 끊임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한가위를 맞이한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더욱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힘차게 살아나갑시다.
이런 사람은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에 비긴다. 여기서 “황야”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메마르고 거칠어 동식물이 살기 매우 힘든 벌판을 가리키고, “가시덤불”은 바늘이나 비늘 모양의 잎을 지닌 늘푸른 나무의 한가지로, 갈릴리 상부의 아주 제한된 지역에서, 그것도 드물게 볼 수 있거나, 남부 에돔 지역과 남서 아라비아 지역과 시내 반도에서 볼 수 있는 나무다. “황야의 가시덤불”은 생존환경이 아주 어려운 가운데서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가는 생명체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런 황야의 가시덤불같은 사람은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삶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말한다. 뒤이어 다시 식물의 비유를 염두에 두면서 이런 사람이 참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점을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다”는 말로 표현한다. 이런 곳에서는 식물이 제대로 자라나기 매우 힘들다. 이처럼 6절에서는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매우 고달프리라는 점을 똑똑히 말한다.
5-6절과 같은 방식으로 7-8절에서는 먼저 어떤 사람이 복 받을 만한지 말하고, 뒤이어 그런 사람의 운명에 대해 알려 준다. “복을 받을” 사람은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즉 “주님이 그의 의지하는 바가 되는 사람” 이다. 이것은 5절에서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저주 받는다고 한 것과 대조된다. 저주 받거나 복 받는 것은 사람과 여호와 하나님 둘 가운데 누구를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히브리어 본문 8절은 6절의 표현 양식에 맞추어 댓구로 되어 있다.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 이처럼 복 받을 사람을 물가에 심기운 나무에 비긴 것은, 앞에서 저주 받을 사람을 “황야의 가시덤불”과 비긴 것과 대조된다. 물가에 심은 나무는 좋은 생존 환경에서 번영할 수 있는 삶을 상징한다. “그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는 살아가는 힘을 언제나 공급 받는 안전한 상태를 말한다..
그리하여 물가에 심은 나무 같은 사람은 “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다. “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늘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 있는 자의 삶에는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저주 받을 자에게나 복 받을 자에게나 똑같이 생의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복 있는 자에게는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늘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 하나의 차이점이다. 늘 물을 넉넉히 빨아들일 수 있는 나무의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곧 싱싱하고 무성하며, ”언제나 열매를 맺듯이“, 이런 사람은 풍성한 삶을 누리며 끊임없이 열매를 맺는다.
물가에 심은 나무의 비유는 시편 1:3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야웨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자기의 기쁨을 그 율법에 두며 살아가는 의인의 운명을 묘사하는 데 이 비유가 쓰인다.
예레미야는 지금 유다가 망하기 직전 어지럽고 어려운 상황에서 야웨의 백성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일러주고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언제나 가깝고 먼 나라들이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적으로 출몰했다. 가깝게 위로는 아람(시리아), 우로는 에돔, 모압, 암몬, 아래로는 이집트, 좌로는 블레셋이, 멀게는 앗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등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에서부터 체험한 자신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수시로, 이런 주변 나라들이 도움이 되려니 하고 의지하려 했다. 바빌론의 침략 앞에 항복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는 전했지만, 유다는 끝까지 이집트가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바라다가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결국 사람의 도움은 유다를 메마르고 사막과 같은 지경으로 몰아갔다.
이 사람이 내 편일까, 저 사람이 내 편일까, 이 나라가 내 편일까, 저 나라가 내 편일까를 불안하게 오가는 사람이나 나라는 결국 그것이 힘도 안 될 뿐아니라, 결국을 의지하는 자신을 베어버리는 갈대지팡이와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그런 행동을 한다.
개인에게도 이런 성향이 있다. 내게 가까운 이웃, 먼 이웃들, 힘이 센 것같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우리의 고개를 돌려 그 안에서 세력 다툼을 벌리지만, 결국 남는 것은 황폐함 뿐인 경우를 많이 겪는다.
오늘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사람이나 사람의 힘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그리할 때 황야의 가시덤불처럼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 사람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된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늘 살피신다. 사람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옳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부와 번영을 꾀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또 그렇게 얻은 것은 쉬 사라지게 마련이다.
믿는 우리는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써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한 삶을 누리고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넉넉히 이겨내고 끊임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한가위를 맞이한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더욱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힘차게 살아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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