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한 알의 밀알’이 된다는 것은?(요12:24)
본문
‘한 알의 밀알’이 된다는 것은?(요12:24)
오늘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부활주일이에요. 부활은 기독교의 절기 중에서 가장 뜻 깊고 의미 있는 절기에요. 어느 종교에도 부활은 없어요. 부활은 오직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님에게만 일어난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부활 이야기는 아주 중요한 것이죠. 그런데 부활의 참 된 의미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또는 의미 없이 지나 칠 수 있는 것이에요. 부활절은 그저 계란 몇 개 삶아 먹는 날이 아니에요. 오늘은 그 부활의 의미와 부활절을 맞은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아요.
이 땅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약 2000년 전 예수님은 수많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의 예언 그대로 이 땅에 오셨어요. 자신이 만드신 인간과 다를 것이 없는 모습으로 오신 것이에요. 그것도 다 큰 어른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할 줄 모르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에요. 화려한 궁궐이나 부잣집의 안방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아주 초라하고 볼품없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디자인하신 하나님이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어요. 이 땅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메시아의 모습 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었어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세상의 통치자요 세상의 왕으로 오실 수도 있었으나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에요. 탄생부터가 사람들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어요.
인간들과 보다 더 초라하게 사신 예수님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만든 인간들과 다를 바 없이 이 땅에서 사셨어요.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일그러져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과 똑같이 목말라하셨고, 배고파하셨고, 피곤해 하셨고, 슾퍼 하셨고, 기뻐하셨어요. 인간들과 똑같이 아파하고 힘들어 하시면서 이 땅에서 사셨어요.
더 나아가 여우도 잠을 잘 수 있는 굴이 있고, 공중의 나는 새도 쉬어갈수 있는 둥지가 있었으나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도 없으셨어요. 노숙자도 아니고 거지도 아닌, 이 세상을 지으신 이 세상의 주인 되신 예수님이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어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준비를 갖추신 예수님
그러나 머리 둘 곳도 없는 그를 수많은 무리와 제자들이 따랐어요. 그리고는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고 했어요. 그 때마다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하시고 오히려 혼자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 하시곤 하셨어요. 어찌 된 일인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왕이 되실 생각은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나 마침내 때가 왔어요.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을 때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랐어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팬이 되었어요. 그를 모르는 사람은 이스라엘에 아무도 없었고 이제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었어요. 왕이 될 준비는 충분히 갖춰졌고 이제는 백성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왕으로 오르시기만 하면 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왜인지 예수님은 아직도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그러나 운명의 날은 다가왔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셨어요. 구약 선지자의 예언대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오신 것이에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야 예수님이 정신을 차리시고 왕으로 오르셔서 자신들을 괴롭혀 왔던 로마와 이방 나라들을 쳐부수어 주실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 기대에 한껏 부푼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어요. 그러나 예수님에게 화려한 모습은 하나도 없으셨어요. 곧 왕이 되실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기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하셨어요. 그러나 백성들은 끝까지 예수님이 왕의 자리에 오르길 기대하고 있었어요.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예수님
그런데 너무나도 황당한 일이 발생했어요. 왕의 자리에 올라 자신들을 괴롭혀 왔던 다른 나라들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의 진정한 메시아요 가장 강력한 왕이 되어 주실 것이라는 백성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처참한 모습으로 죽으셨어요. 탄생부터 죽으시는 그 날까지 너무나도 연약하고 낮은 모습으로 살다가 죽으셨어요. 백성들은 또 다시 절망에 빠졌어요. “그토록 기다려 왔던 메시아가 어찌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단 말인가?” “도대체 우리를 구원 하려 오신 메시아가 어찌 이렇게 약하단 말인가?”라고 말이에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예수님은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 하셨어요. 그토록 연약해 보이셨던 예수님이 가장 권세 있는 모습으로 부활 하셨어요. 쳐부수고 정복하고 군림하여 왕이 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가장 낮고 약하고 연약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어요. 세상은 알 수도, 이해 할 수도 없는 모습으로 말이에요.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죽으신 죽음이었어요. 가장 비참하고 바보 같은 모습으로 죽으신 예수님 같았지만, 부활하신 그 순간 가장 능력있고 권세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셨어요. 역시 예수님은 가장 강하고 지혜롭고 완벽한 방법으로 마귀의 머리를 부수셨어요.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왕이 되어 주셨어요.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어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방법이에요.
오늘 본문 말씀은 강하게 우리의 마음에 충격을 주고 있어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결론
바로 이 것이에요! 우리의 지혜와 강력한 힘과 권력으로 이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없어요.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방법으로는 세상이 변화되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한 알의 밀’이 되어 세상 가운데서 죽어야 해요. 겸손하고 낮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세상에 들어가 자신의 살을 찢어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준다면 세상은 조금씩 변화되고 많은 열매가 맺힐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방법이고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에요. 가장 약한 것 같았던 십자가의 죽음은 가장 강한 방법이었어요. 우리는 이 겸손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항상 기억해야 해요. 부활의 기쁨을 맛보기 전에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세상에 썩어져 죽어야 할 것이에요. 그렇다면 참 된 부활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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