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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허탄하여 믿지 아니하나(눅 24:1-12)

본문

허탄하여 믿지 아니하나(24:1-12)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성경을 열면 먼저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오지요.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아담)을 만드시고, 그들로 하여금 피조세계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선하게 사용하지 않음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미움, 시기, 질투, 살인과 같은 온갖 불의가 생겨납니다. 하나님은 일그러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모세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그분의 백성으로 훈련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거부하고, 소임을 다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대표, 즉 메시아를 통해 세상을 바로잡기로 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과 시편을 통해 증거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약속을 따라, 이 땅에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지요. 하지만 율법과 선지자들과 시편을 잘못 이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삼일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분이 바로 이스라엘의 참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유대인에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란, 원래 세상 마지막 때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종말론적 사건입니다(의인에게는 생명의 부활, 악인에게는 심판의 부활 - 5:29). 그 일이 역사의 중간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났다는 것은, 바울의 해석에 의하면 부활의 첫 열매이며, 이는 곧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로잡으실 종말의 계획이, 드디어 이 땅 가운데 시작되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동시에 그것을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 온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그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남자와 여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영토는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온 세상에 미칩니다. 이제 그 하나님 나라가 마지막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즉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여전히 불의한 세상 가운데에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그분의 의로운 나라를 날마다 소망하며 오늘도 담대히 살아갑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 이야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옛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부름 받은 백성으로 끝내 신실하지 않았지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놀라운(또는 엽기적인) 기적이 아니라, 일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실 의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시작되었다는 결정적인 신호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증거하는 사람은 곧 예수 그리스도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6일 창조의 증인이 아닙니다. 전 지구적 노아홍수의 증인이나, 물고기 뱃속에서 돌아온 요나를 소개하는 증인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입니다. 사도들의 조건 중에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후 베드로부터 바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도들의 복음 선포의 핵심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를 온 세상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문제는 부활을 믿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및 그들과 함께한 다른 여자들 역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서 본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이었습니다. 그 때 천사로 보이는 두 사람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5-7)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에서 돌아가 자신들이 보고 들은 바를 열 한 사도에게 알려주었을 때, 그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그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사도들이 믿지 아니하더라”(11). 사도들 역시 단 한 번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후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 그들 안에 있는 모든 의심을 떨쳐 버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자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이 일그러진 세상, 불의한 세대를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으로 상징되는 이 세상의 모든 죄와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동시에 그 죄와 불의를 이기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선포입니다. 단지 우리 마음속에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 가운데 그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종말의 하나님 나라 백성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마음속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질 지라도,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마침내 하나님께서 뒤틀리고 불의한 세상을 온전히 바로잡아주실 것을 굳게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허탄하게 여기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불의를 심판하실 것도 허탄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껏 그랬듯이, 언제나 불의가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세상 이 허탄하다 하여 믿지 않는 부활을 믿는 우리는, 일그러진 세상의 모든 불의를 온전히 멸하실 하나님 편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악이 승리하는 것 같아도, 결국 죄와 불의는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 모든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그렇게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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