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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낡은 해,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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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다 가고 오늘까지 이틀뿐이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2001년은 낡은 해가 되어 역사 속으로 잠기게 되었습니다. 2001년 금년 한 해는 더 이상 되돌아보기도 싫은 정도로 뒤엉키는 일뿐, 무엇 하나 시원하게 풀린 것이 없는 한 해였습니다. 어느 분은 금년은 뱀해여서 배배 꼬이다 보니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뉴스를 보기가 싫을 정도로 무슨 게이트가 그리 많은지,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등등이 계속 오르락거립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게이트가 무슨 사건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힐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건의 주모자가 전부 강패출신들이요, 그들이 권력층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데 우리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요즈음 조폭영화가 왜 많은 관객을 모으는가 했더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조폭 영화가 얼마나 인기인지, '친구'라는 영화는 800만 관객 돌파로 한국 신기록을 세웠고,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킬러들의 수다' '달마야 놀자'가 모두 200만-300만의 관객을 동원함으로 5개의 깡패 영화만으로 거의 2,0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모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영화는 가상적인 이야기이지만, 깡패 출신들이 정치계, 국정원, 검찰 등과 연계되어 온 나라를 부패공화국으로 전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너무나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다가 9월 11일 미국 테러 참사로 인해서 아프카니스탄에 대전쟁이 벌어짐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 등을 보면 '2001년은 테러·조폭의 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더 나가서는 국민의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우린 것이 '햇볓정책'으로 거의 10억 달라에 해당하는 돈을 주어가면서 북한개방을 유도했지만, 이제는 더 닫히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북한마져 테러지원국이라는 오명으로 세계뉴스에 계속 등장하는 모습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너무나 한심스러운 해여서 2001년은 더 돌아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심정일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2001년을 낡은 해로 빨리 떠나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새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새해에는 우리나라에 역사를 가늠하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할 큰 행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내행사로는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고, 국제행사로는 부산 아시안게임과 세계월드컵 대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 4대행사를 잘 치르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뱀처럼 꼬여 있던 2001년의 문제들이, 2002년에 말해로서 말처럼 힘껏 도약하며 질주하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한해동안 너무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많았을 것이나 2002년에는 주안에서 모든 엉킨 문제들이 활짝 풀리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낡은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자세로 맞아야 합니까
본문에서 모세를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 새 시대, 새날을 맞으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모세는 지금 80세가 되는 때입니다. 그는 40세까지는 애굽 왕궁에서 최고급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순간적인 애국심 때문에 애굽 사람을 죽임으로 광야로 도망쳐서 다시 40년이라는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최고의 학문과 최고의 무술, 뛰어난 지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양떼나 치는 초라한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비참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40년의 은둔세월을 보내다 나니 그 귀한 젊은 날, 그 야망에 찬 장년의 시절이 다 지나가고, 이제는 힘도 능도 없는 노인의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 그때에 그는 고독과 허탈로 가득찬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양떼를 몰고 시내 반도 남단에 있는 호렙산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보통 떨기나무는 불이 붙으면 얼마나 딱딱 소리내며 잘 탑니까 그런데 불은 붙었으되 나무는 전혀 타지 않으니 너무나 신기한 모습입니다. 모세는 너무나 신기해서 양떼를 잠시 놓아두고 가까이 갔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 불 가운데서 놀라운 음성이 들리기를 '모세야, 모세야'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엉겁결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음성의 주인이 자기의 신분을 밝히기를 "나는 네 조상의 여호와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여호와 하나님, 이삭의 여호와 하나님, 야곱의 여호와 하나님이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모세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떨기나무의 모습은 곧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부귀공명을 다 빼앗기고 도망자가 되어 오직 양떼나 거느리고 하루하루 사는 동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 희망이 없다는 것처럼 안타까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앙상한 떨기나무처럼 고독과 허탈, 그리고 무기력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동시에 저 떨기나무는 곧 이스라엘을 상징한다는 깨달았습니다.
압제와 학대 속에서 눌리고 짓밟히는 속에서 나라와 인권, 자유와 희망을 완전히 박탈당한 민족, 누구 하나 도와줄 자 없으므로 절망만 앙상히 남은 백성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그 아무 쓸짝이 없어 보이던 떨기나무에 여호와의 불이 붙으니 그렇게 힘이 있고 화려하고 빛나 보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모세는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강한 자, 능한 자, 있다고 하는 교만자보다는 세상의 약자, 멸시받는 자, 눌린 자를 택하여 쓰심으로, 모든 것을 가졌다는 교만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뜻이 담기어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나는 능력이 있다. '라고 교만할 때는 쓰지 않으시더니 '나는 능력이 없다'라고 낮아질 때는 높이 쓰시려고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가 바로 모세의 또 하나 시대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이제는 양떼나 치는 목동의 시대를 마감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시키라는 새로운 소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낡은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 새날을 맞으려면 새해 새날을 맞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어야 합니다.
새해를 아무 사명감 없이 맞는다는 것은 새날을 다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모독과 같습니다. 아무 사명감없이 새해를 맞는 사람은 새해를 살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2002년을 무슨 사명감, 무슨 결심을 가지고 맞으시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주님, 제가 여기 있나이다. 새해 새날에 제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말씀하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유명한 무디 선생님이 시카코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사람들이 너무 몰려와서 어린이는 입장을 할 수가 없었다. 무디 선생님이 교회당을 들어가려고 하니까 어느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너 왜 우니' '무디 선생님의 말씀을 꼭 듣고 싶은 데 들어갈 수가 없어요. ' '좋은 수가 있다. 내외투 뒷자락을 잡고 따라와 절대 놓치면 안된다. ' 소년 앞에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그 아이를 막는 사람이 없었고 강단까지 올라가서 강사 옆에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특혜를 누렸습니다.
무디는 아이와 헤어질 때 말하기를 '여기에는 내 외투자락이 통했지만, 앞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꼭 붙잡고 살거라'라고 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아이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15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무디가 부흥회를 인도했던 그 시카고에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자기를 소개하기를 '그 때 무디 선생님의 외투자락을 잡고 들어왔던 아이가 바로 저입니다. 그 날부터 저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기 위해 노력한 결과 오늘 이 자리에 설 수가 있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무디가 충고해준 그 한마디가 그 소년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요, 부르심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년 새해, 새날을 새로운 소명감을 가지고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2. 새날, 새시대를 맞으려면 낡은 신을 벗어야 합니다.
모세가 떨기나무의 불을 보러갔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 땅이 왜 거룩합니까 거기는 떨기나무나 살 수 있는 척박한 땅이요, 모세가 늘 양떼를 몰고 다니면서 풀을 먹이던 평범한 땅에 불과한데 거룩한 땅이라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이요, 모세가 사명을 받는 곳이니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그 부르심에 존경을 표하고 즉각적인 복종을 나타내는 자세인 것입니다. 그가 신고 있는 신발은 광야를 헤메이며 고독과 회의, 실패의 쓴맛이 깊이 배인 것입니다. 사명을 저버리고 광야에서 숨어 지내던 요나의 신이요, 자기 자존심과 교만의 신입니다. 그 신을 신고서는 거룩한 새 시대, 새 사명의 땅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 낡은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방황의 시대, 도망의 시대, 회피의 시대를 벗어버리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새날 새해를 맞이하려면 낡은 신을 벗어야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지었던 죄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요나처럼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충성하지 못한 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던 죄, 남에게 나누어주지 못하고 인색으로 움켜쥐고만 살던 죄, 방탕과 음란의 죄, 효도하지 못하던 죄, 빚을 지고 갚지 않은 죄 등, 무슨 죄든지 이 해가 가기 전에 회개하십시오.
그러나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자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네 낡은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너 자신을 이제는 완전히 광야에 벗어 던지라"는 뜻이 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자기 자존심을 죽이기 위해서 40년의 광야생활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의 원인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년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모든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것으로 새날을 맞으십시오.
어떤 사람이 성 마카리우스에게 '예수님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답하기를 '공동묘지에 가서 거기 누워 있는 시체에게 욕을 한바탕 퍼부어 보게'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공동묘지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왔습니다. 성 마카리우스는 그를 다시 공동묘지에 보내서 이번에는 욕설 대신 칭찬하라고 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돌아온 그에게 묻기를 '자네가 욕설을 퍼부으니까 시체들이 성내던가' '아닙니다. ' '그럼 칭찬하니 좋아하던가' '아닙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네'라고 하더랍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왜 교회 안에서조차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서로 울근불근합니까 자기가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다 십자가에 못박고 나면 누가 자기를 업수이 여겨도 낙심하지 않게되며, 누가 칭찬하더라도 우쭐거리지 않게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는 주님의 역사 하심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니, 새날 새해를 맞기 전에 자기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 새해를 맞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새날 새 시대를 맞으려면 순종의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거룩한 날을 향해 낡은 신을 벗고 엎드렸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저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0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주여, 내가 순종하겠나이다. '라고 한 후, 이삭을 바치러 떠나던 아브라함처럼, 임신한 마리아를 데리러 떠나던 요셉처럼 순종의 출발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너무나 답답할 정도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여러 번 거부반응을 보였습니다. 모세가 11절에서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기까'라고 하자,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대답하십니다. 모세가 13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의 조상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 하면 그들이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여호와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4:1에서 말하기를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 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게 나타나지 아니 하였다 할 것이니 그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아니,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명하시면 떨면서 순종해야지, 왜 이렇게 말이 많습니까 여러분 생각에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너무 하지 않는가'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목동생활을 하다보니 완전히 무기력한 자가 되었고, 나이까지 노년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근성으로 가득찬 약 200-300만이나 되는 백성들, 전혀 훈련받지 못한 오합지졸의 백성들을 당시 최강국의 군대를 가진 애굽에서 구해내서 가나안 복지까지 인도하여 간다는 것은 애굽에서 철저하게 지도자 훈련을 받은 모세의 입장에서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여러 번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출4장에서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여러 가지 면으로 설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야,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 "그것을 땅에 던지라. " 당에 던지니 뱀이 되어 꿈틀거립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그처럼 의지하던 것이 알고 보니 뱀입니다. 모세는 무서워서 피했습니다. 이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명하십니다. 잡았더니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 지팡이는 목동의 지팡이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는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모세는 주춤거리며 변명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손을 품에 넣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랬더니 문둥이의 손이 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쓰던 손이 문둥이 손인 줄 몰랐습니다. 너무나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명하시기를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보십시오. 그 더러운 문둥병이 사라지고 깨끗한 손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손은 양젖이나 짜는 손이 아니라, 큰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높이 들고 기도하므로 응답 받는 능력의 손이 된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자기 생각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대국 애굽의 손에서 구출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한 결과, 기적가운데 구출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엇을 하라고 명령만 하지 않으십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 함께 동행하시면서 그 사명을 감당할 만큼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목회하면서 연말 연초가 되어 교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부탁하면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이래서 못합니다. ' '저래서 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내 생각에는 할 수 없고 내 생각에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향해 가는 중, 죽음의 홍해바다가 가로막는 날을 만났으나 기적 가운데 홍해바다를 열어주셨으며, 난데 없이 코스를 광야로 가게 하심으로 죽음의 광야에서 200-300만의 백성들이 떼죽음을 당한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여호와 하나님이 능력을 나타내셨으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로 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에 비하면 1000분지 1도 안 되는 문제 때문에 '못한다'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너무나 무시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년 새해를 맞으면서 순종하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해보십시오. 무슨 명령, 무슨 일을 맡기시든지 여호와 하나님만 의미하고 순종의 길로 떠나십시오. 그러면 순종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체험을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조건 순종만 요구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감당할 만한 능력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유명한 부흥사요, 만나감리교회 김우영 목사님이 군목으로 있었을 때 34, 000원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쌀 한 가마에 38,000원 하던 그 시절에 김 목사님네 여섯 식구는 그 월급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기도 중에 그에게 부대 소속교회 건축 때 헌금을 가장 많이 내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 세 번이나 주의 음성을 거역했더니 기도가 막히고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안되겠다 싶어 제대를 신청했습니다. 당시 군목의 제대가 힘들었지만 육본군종감을 통하여 제대신청을 해서 승인을 얻었습니다.
퇴직금으로 102만원을 받아 건축헌금과 감사 헌금을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당장 살길이 막막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 예비하셔서 왕십리감리교회에 부임토록 하셨습니다. 그 교회에 부임하자 사택도 주고 월급도10만원이나 받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분당에 만나감리교회를 크게 건축하게 하셨고 유명한 부흥사로 다니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순종으로 얻은 축복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순종을 요구만 하지 않으시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홍익교회 온지 내년이면 27년째로 들어섭니다. 그 동안 목회상의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시금 그 과정을 되풀이하라면 도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당회원들이나 중직들에게 만65세가 되는 2006년에 은퇴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앞으로 꼭 5년이 남았습니다. 5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일함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습니다. 모든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님들과 권사님들,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도 다시금 열심에 열심을 다함으로 홍익교회를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모두 연말 연초에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십시다.
(1)주여, 떨기나무같이 앙상한 제 심령에 소명감으로 불타게 하옵소서.
(2)주여, 낡은 신을 벗듯이 저의 모든 것을 벗어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의 것으로 다시 살아 새날 새 시대를 맞게 하옵소서.
(3)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겠사오니 감당할 만한 능력을 부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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