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힘든 세상을 위한 희망의 말씀
본문
12월이 오면 ‘광음여류’(光陰如流)라는 말이 떠오르곤 합니다. 세월의 가는 것이 물의 흐름처럼 빠르다는 사자성어입니다. 엊그제 새해를 맞이한 듯 한데 벌써 12월의 마지막 주일이 되어 2007년도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올 한해도 多事多難했던 해였습니다. 즐겁고 기뻤던 일, 보람되고 자랑스러웠던 일들도 많았고,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과 슬프고 괴로웠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적으로 보면 지난 한 해는 너무 감격스럽고 감동이 넘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오랜 준비 끝에 희년 새성전을 이곳에 건축하고 입당하여 감격과 감동이 넘치는 예배를 지난 1년 동안 잘 드렸습니다. 지난 3월 우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새성전 성별 및 봉헌예배를 입추의 여지도 없을 만큼 많은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드렸습니다.
또 우리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연회를 개최하고 서울시향을 초청하여 은평구민을 위한 음악회도 열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지역복지단체, 기관, 주민들이 우리 교회를 이용하여 갖가지 행사를 가졌습니다. 오는 이마다 우리 교회를 보고 감탄과 찬사를 보내곤 했습니다.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어진 교회가 이렇게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열게 하였습니다.
지난 성탄 축하의 밤에 우리 아이들이 펼치는 공연들을 보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뛰며 장기(長技)를 발휘하는 강단무대를 바라보면서 밝은 미래의 세계를 연상했습니다. 훗날 역사의 주역들이 되어 세계를 무대로 맘껏 뛸 인물들이 여기 있음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열렸던 솔리스트 앙상블 공연은 제 마음을 감동으로 북받치게 했습니다. 한국의 최정상 쏠리스트 60여명이 앙상블을 이루어 부르는 찬양은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감히 개체교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멋진 찬양이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니고는 아무데서도 할 수 없는 찬양제였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쏠라스트 앙상블과 회중들이 마지막으로 “살아계신 주”를 부를 때는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목이 메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충청도 시골의 농촌 마을, 가마니를 깔아놓은 천막교회에서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흙벽돌 초가집 예배당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목사로 소명 받은 후, 모든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 교회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가장 앞선 시설을 갖춘 주일학교에서 세계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신앙교육을 시키며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습니다. 천사들과 화답하는 찬양이 울려 퍼지는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운명을 바꾸어 주는 교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런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졌음을 보고 있기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났습니다. 여러분의 꿈이 이뤄진 것입니다(Dreams come true). 여호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금년 성탄 절기는 우리에게 감격과 감동을 주는 절기였습니다. 이 기쁨의 환희가 우리에게 영원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탄절’을 왜 연말에 두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성탄절은 두 개의 희비가 엇갈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여호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기쁨이요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축제의 분위기가 곧 바로 비극의 순간으로 바뀌어버린 역사적 사건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 유대의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의 예방을 받고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에 너무 놀랐습니다.
불안과 공포가 헤롯왕의 광기를 발작시켜 베들레헴을 중심으로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어떤 역사가는 14,000여 아이들이 살해되었다고도 하고 2-3,000명 정도가 학살되었다고도 합니다. 지금도 그 아이들의 무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광폭한 헤롯왕에 의해 생매장당한 것입니다. 헤롯왕은 정신병자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열 명의 여자와 결혼하여 15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중 의 열은 아들이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아들들까지 믿지 못하였습니다.
두 아들을 반역죄(treason)로 처형하였습니다(7BC). 기원전 4년에는 맏아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황제(Caesar Augustus)는 헤롯에 관해 말하기를 “헤롯의 아들이 되는 것 보다는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게 낫다”(It is better to be Herod’s pig than Herod’s son)고까지 혹평했습니다. 이 인용구는 말장난입니다(The quotation is a play on words). 희랍어로 돼지(pig)를 ‘hys’라 불렀고 아들을 ‘hyios’라 말했기에 두 단어의 발음이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It is better to be Herod’s hys than Herod’s hyios”라고 빈정댔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헤롯은 죽을 날이 임박하자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도록 준비를 시켰고 그날에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슬퍼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죽음의 때에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형을 집행하도록 하여 예루살렘 주변에 우는 자들로 가득 차게 했습니다. 헤롯은 그런 자였습니다. 그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70세의 나이로 죽어가는 그의 모습은 내장이 썩고 벌레가 나며, 악취와 경련이 끊이질 않았다고 요세프스(Josephus)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악한 자에 의해 성탄 절기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베들레헴의 하늘을 뒤덮게 했습니다.
성탄절은 온 인류에게 주시는 소망이요, 기쁨이요, 평안인데, 세상의 한편에서는 이 성탄으로 인해 이런 슬픔과 고통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이렇게 희로애락이 뒤섞이고 평화와 분쟁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 성탄절 패전트(pageant)에도 기쁨과 축제의 행렬만 있지 않았습니다. 서해안 태안반도에서는 기름 유출 사건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한숨소리가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정유회사는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에게 20년 이상의 생활을 책임져야 할 것이며 서해바다 복원에 10년 이상 전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 사흘 뒤인 12월 28일(현지27일)에는 파키스탄 전 총리이며 현재 강력한 야당지도자인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가 자살폭탄 테러에 의해 암살됐습니다. 수많은 그의 지지자들이 모여 정부에 대한 항의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알카에다의 범행이라고 밝혀졌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성탄 절기에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악마는 결코 마지막 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Evil never has the last word).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헤롯의 칼을 피해 이집트로 도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잠시 동안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아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했습니다(The promise of God concerning their Son are sure).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God will never forsake them). 잠시만 지나면 사탄의 세력은 꺾기고 맙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목사님은 1965년 3월 25일 알라바마의 몽고메리(in Montgomery, AL on the 25th of March, 1965)에서 흑인차별 철폐를 위한 시가행진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가 행한 연설문 일부가 가족에 의해 공개되었습니다. 그는 연설에서 백성들의 희망이 실현될 때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는 이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렇게 합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어려움은 잠깐입니다. 좌절은 잠시일 뿐입니다.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에 짓밟힌 진리는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I come to say to you this afternoon, however difficult the moment, however frustrating the hour, it will not be long, because ’truth crushed to earth will rise again’) 마틴 루터 킹이 이 연설을 할 때 몽고메리에 운집한 수 만 명의 청중들은 “아멘”, “할렐루야”, “예수여 도우소서. ”(HelpHim Jesus), “옳습니다”(all right)라며 외치는 함성을 질렀습니다.
세상이 악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악마가 세상을 그렇게 만듭니다. 불의가 세상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게 할 것인가” 오래지 않습니다. 왜냐면 불의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악마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기l지 못합니다. 거짓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진실만이 영원합니다.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앞으로 행진해 오십니다. 영광! 할렐루야! 영광! 할렐루야(Glory, Hallelujah! Glory, Hallelujah). 결코 마귀는 마지막 말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가 행진해 오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이 세상이 마귀로 가득 차 있어도 우리는 풍성한 생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애굽으로 도피케 하고 무죄한 어린아이들의 학살은 끔찍한 이야기이지만, 구원의 메시지는 없앨 수 없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의 한 가운데로 우리의 구세주께서 앞으로 나오셨습니다. 악마는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패배시키지 못했습니다(Evil did not defeat God’s purpose). 영원히 막지 못할 것입니다.
카렌 터커 박사(Dr. Karen Westerfeld Tucker)는 자기 교회에서 경험한 의미 있는 성탄 축하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해에도 전통적인 성탄 축하행렬이 진행되었습니다. 사내아이들은 목자의 옷을 입었고 여자아이들은 천사의 옷을 입었습니다. 성도들은 찬송을 하며 입장을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통로를 따라 행진해 가서 말구유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때 전혀 기대하지 않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리아로 분장한 어린아이가 말구유의 이불을 제끼고 들어 올린 것은 어린 아기 예수가 아니라 나무 십자가였습니다. 그 아이는 십자가를 높이 들었습니다. 성도들이 성탄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기는 죽기 위해 태어납니다. 참으로 잔인한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너머에는 빈 무덤이 있습니다. 죄 없는 어린아이들의 학살(the slaughter of the innocents)이 일어났지만 얼마 안있어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과 함께 나사렛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의 삶은 인간 존재를 변화시키는 삶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는 헤롯과 같은 악한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실패하게 하지 못합니다(But they cannot defeat God).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를 힘들게 합니까(How long) 결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not long). 왜냐하면 나의 눈에는 다시 오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Because mine eyes have seen the glory of the coming of the Lord. )
그래서 성탄절이 연말에 놓인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의 들뜬 분위기가 지나면 이내 새해가 다가옵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아직도 힘들고 슬픈 일들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마귀는 결코 마지막 말을 갖고 있지 못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곧 새로운 태양이 당신을 위해 떠오를 것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돌보심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떠나는 2007년과 함께 모든 짐을 실려 보내고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갖고 새해를 맞이합시다.
늘 그렇듯이 올 한해도 多事多難했던 해였습니다. 즐겁고 기뻤던 일, 보람되고 자랑스러웠던 일들도 많았고,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과 슬프고 괴로웠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적으로 보면 지난 한 해는 너무 감격스럽고 감동이 넘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오랜 준비 끝에 희년 새성전을 이곳에 건축하고 입당하여 감격과 감동이 넘치는 예배를 지난 1년 동안 잘 드렸습니다. 지난 3월 우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새성전 성별 및 봉헌예배를 입추의 여지도 없을 만큼 많은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드렸습니다.
또 우리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연회를 개최하고 서울시향을 초청하여 은평구민을 위한 음악회도 열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지역복지단체, 기관, 주민들이 우리 교회를 이용하여 갖가지 행사를 가졌습니다. 오는 이마다 우리 교회를 보고 감탄과 찬사를 보내곤 했습니다.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어진 교회가 이렇게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열게 하였습니다.
지난 성탄 축하의 밤에 우리 아이들이 펼치는 공연들을 보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뛰며 장기(長技)를 발휘하는 강단무대를 바라보면서 밝은 미래의 세계를 연상했습니다. 훗날 역사의 주역들이 되어 세계를 무대로 맘껏 뛸 인물들이 여기 있음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열렸던 솔리스트 앙상블 공연은 제 마음을 감동으로 북받치게 했습니다. 한국의 최정상 쏠리스트 60여명이 앙상블을 이루어 부르는 찬양은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감히 개체교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멋진 찬양이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니고는 아무데서도 할 수 없는 찬양제였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쏠라스트 앙상블과 회중들이 마지막으로 “살아계신 주”를 부를 때는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목이 메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충청도 시골의 농촌 마을, 가마니를 깔아놓은 천막교회에서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흙벽돌 초가집 예배당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목사로 소명 받은 후, 모든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 교회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가장 앞선 시설을 갖춘 주일학교에서 세계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신앙교육을 시키며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습니다. 천사들과 화답하는 찬양이 울려 퍼지는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운명을 바꾸어 주는 교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런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졌음을 보고 있기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났습니다. 여러분의 꿈이 이뤄진 것입니다(Dreams come true). 여호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금년 성탄 절기는 우리에게 감격과 감동을 주는 절기였습니다. 이 기쁨의 환희가 우리에게 영원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탄절’을 왜 연말에 두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성탄절은 두 개의 희비가 엇갈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여호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기쁨이요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축제의 분위기가 곧 바로 비극의 순간으로 바뀌어버린 역사적 사건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 유대의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의 예방을 받고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에 너무 놀랐습니다.
불안과 공포가 헤롯왕의 광기를 발작시켜 베들레헴을 중심으로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어떤 역사가는 14,000여 아이들이 살해되었다고도 하고 2-3,000명 정도가 학살되었다고도 합니다. 지금도 그 아이들의 무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광폭한 헤롯왕에 의해 생매장당한 것입니다. 헤롯왕은 정신병자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열 명의 여자와 결혼하여 15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중 의 열은 아들이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아들들까지 믿지 못하였습니다.
두 아들을 반역죄(treason)로 처형하였습니다(7BC). 기원전 4년에는 맏아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황제(Caesar Augustus)는 헤롯에 관해 말하기를 “헤롯의 아들이 되는 것 보다는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게 낫다”(It is better to be Herod’s pig than Herod’s son)고까지 혹평했습니다. 이 인용구는 말장난입니다(The quotation is a play on words). 희랍어로 돼지(pig)를 ‘hys’라 불렀고 아들을 ‘hyios’라 말했기에 두 단어의 발음이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It is better to be Herod’s hys than Herod’s hyios”라고 빈정댔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헤롯은 죽을 날이 임박하자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도록 준비를 시켰고 그날에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슬퍼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죽음의 때에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형을 집행하도록 하여 예루살렘 주변에 우는 자들로 가득 차게 했습니다. 헤롯은 그런 자였습니다. 그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70세의 나이로 죽어가는 그의 모습은 내장이 썩고 벌레가 나며, 악취와 경련이 끊이질 않았다고 요세프스(Josephus)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악한 자에 의해 성탄 절기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베들레헴의 하늘을 뒤덮게 했습니다.
성탄절은 온 인류에게 주시는 소망이요, 기쁨이요, 평안인데, 세상의 한편에서는 이 성탄으로 인해 이런 슬픔과 고통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이렇게 희로애락이 뒤섞이고 평화와 분쟁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 성탄절 패전트(pageant)에도 기쁨과 축제의 행렬만 있지 않았습니다. 서해안 태안반도에서는 기름 유출 사건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한숨소리가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정유회사는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에게 20년 이상의 생활을 책임져야 할 것이며 서해바다 복원에 10년 이상 전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 사흘 뒤인 12월 28일(현지27일)에는 파키스탄 전 총리이며 현재 강력한 야당지도자인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가 자살폭탄 테러에 의해 암살됐습니다. 수많은 그의 지지자들이 모여 정부에 대한 항의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알카에다의 범행이라고 밝혀졌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성탄 절기에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악마는 결코 마지막 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Evil never has the last word).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헤롯의 칼을 피해 이집트로 도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잠시 동안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아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했습니다(The promise of God concerning their Son are sure).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God will never forsake them). 잠시만 지나면 사탄의 세력은 꺾기고 맙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목사님은 1965년 3월 25일 알라바마의 몽고메리(in Montgomery, AL on the 25th of March, 1965)에서 흑인차별 철폐를 위한 시가행진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가 행한 연설문 일부가 가족에 의해 공개되었습니다. 그는 연설에서 백성들의 희망이 실현될 때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는 이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렇게 합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어려움은 잠깐입니다. 좌절은 잠시일 뿐입니다.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에 짓밟힌 진리는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I come to say to you this afternoon, however difficult the moment, however frustrating the hour, it will not be long, because ’truth crushed to earth will rise again’) 마틴 루터 킹이 이 연설을 할 때 몽고메리에 운집한 수 만 명의 청중들은 “아멘”, “할렐루야”, “예수여 도우소서. ”(HelpHim Jesus), “옳습니다”(all right)라며 외치는 함성을 질렀습니다.
세상이 악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악마가 세상을 그렇게 만듭니다. 불의가 세상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게 할 것인가” 오래지 않습니다. 왜냐면 불의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악마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기l지 못합니다. 거짓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진실만이 영원합니다.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앞으로 행진해 오십니다. 영광! 할렐루야! 영광! 할렐루야(Glory, Hallelujah! Glory, Hallelujah). 결코 마귀는 마지막 말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가 행진해 오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이 세상이 마귀로 가득 차 있어도 우리는 풍성한 생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애굽으로 도피케 하고 무죄한 어린아이들의 학살은 끔찍한 이야기이지만, 구원의 메시지는 없앨 수 없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의 한 가운데로 우리의 구세주께서 앞으로 나오셨습니다. 악마는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패배시키지 못했습니다(Evil did not defeat God’s purpose). 영원히 막지 못할 것입니다.
카렌 터커 박사(Dr. Karen Westerfeld Tucker)는 자기 교회에서 경험한 의미 있는 성탄 축하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해에도 전통적인 성탄 축하행렬이 진행되었습니다. 사내아이들은 목자의 옷을 입었고 여자아이들은 천사의 옷을 입었습니다. 성도들은 찬송을 하며 입장을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통로를 따라 행진해 가서 말구유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때 전혀 기대하지 않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리아로 분장한 어린아이가 말구유의 이불을 제끼고 들어 올린 것은 어린 아기 예수가 아니라 나무 십자가였습니다. 그 아이는 십자가를 높이 들었습니다. 성도들이 성탄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기는 죽기 위해 태어납니다. 참으로 잔인한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너머에는 빈 무덤이 있습니다. 죄 없는 어린아이들의 학살(the slaughter of the innocents)이 일어났지만 얼마 안있어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과 함께 나사렛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의 삶은 인간 존재를 변화시키는 삶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는 헤롯과 같은 악한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실패하게 하지 못합니다(But they cannot defeat God).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를 힘들게 합니까(How long) 결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not long). 왜냐하면 나의 눈에는 다시 오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Because mine eyes have seen the glory of the coming of the Lord. )
그래서 성탄절이 연말에 놓인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의 들뜬 분위기가 지나면 이내 새해가 다가옵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아직도 힘들고 슬픈 일들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마귀는 결코 마지막 말을 갖고 있지 못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곧 새로운 태양이 당신을 위해 떠오를 것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돌보심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떠나는 2007년과 함께 모든 짐을 실려 보내고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갖고 새해를 맞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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