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새해를 시작하기 전에
본문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종교를 몇 개 꼽아보면 힌두교, 불교, 무슬림,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와 같은 세상의 다른 종교와 우리 기독교의 차이를 아십니까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 기독교가 미래를 중요시하는데 반해,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과거와 현재를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에 얽매여서 발버둥을 칩니다. 가령 예를 들어 힌두교에서는 “전생의 죄 값대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다. ”는 인과응보의 교리를 가르칩니다.
이 교리에 의하면 과거에 잘못한 사람은 현재도 미래도 없습니다. 언젠가는 그 죄 값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한번 죄를 지은 사람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열반의 교리를 가르칩니다. 열반은 “촛불을 끄듯이 꺼진다. ”는 뜻으로, 욕망을 우리 마음에서 완전히 없애버리면 인간의 모든 고통은 사라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서 욕망을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죽지 않고 우리가 살아있는 이상,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에서는 욕망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무슬림에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알라신이 정해 준 철저한 운명론으로 가르칩니다.
“네가 당하고 있는 고난은 너의 운명이다. 신이 너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으니 불평하지 말고 그대로 받으라”는 식의 운명론을 가르칩니다. 그러다보니 이 교리에 의하면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대의 에피큐로스학파에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쾌락주의로 처리합니다. “현재의 고통을 잊을 수만 있다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망각해 버리자. 술을 마시든지, 쾌락에 빠지든지, 무엇을 하든지 잊어버리고 넘기면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다”라는 식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과거나 현실에 얽매여있는 세상의 다른 종교들과 달리, 우리 기독교는 미래 지향적입니다. 성경을 보면 과거에 대한 말씀 보다 미래에 대한 말씀이 훨씬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과거의 것에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빌립보서 3장 13절과 14절을 보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까지 이루어놓은 업적이나 행한 일들은 다 잊겠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앞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기독교는 과거 회귀적인 다른 종교와 달리, 미래 지향적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아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다사다난했던 2006년도를 뒤로 하고, 이제 몇 시간이 지나면 맞이하게 되는 새로운 2007년도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2007년도 새해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과거에 매이지 말라
첫째로 과거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매이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18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 여기에서 ‘이전 일’과 ‘옛날 일’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까지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긋지긋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배 한 척도 만들지 않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홍해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거의 일을 잊으라고 하십니다.
과거에 있었던 홍해의 기적신앙에 매여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놀라운 사건을 기억도 하지 말고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의 신앙은 오늘을 있게 한 밑거름임에 분명합니다.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자세나,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과거에 매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귀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역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후, 그들을 홍해 길로 인도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를 아십니까 출애굽기 13장 17절과 18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블레셋 땅으로 가는 길이 가나안으로 향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길 대신에 홍해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 쪽으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홍해 쪽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홍해바다를 가르신 후, 그들을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갈라놓았던 홍해바다를 다시 닫으셨습니다. 이것은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를 몰살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 17절에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포도주를 통이 아닌 가죽부대에 저장하였습니다. 그런데 낡은 가죽부대에 포도주를 저장하면 발효가 되어 부풀어 올라 결국에는 낡은 가죽부대가 터지고 맙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부대가 아닌, 새 가죽부대에 저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낡은 가죽부대로는 새로운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낡은 생각으로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 하니라. ”(눅 9:62)고 말씀하신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자꾸만 뒤돌아보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낡은 옷을 벗어야만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처럼, 과거를 정리하지 않고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과거 이곳에서 신앙생활하며 훈련받은 후, 이곳을 떠난 형제들이 주고 간 컴퓨터입니다. 호주 퍼스로 간 권오형형제가 주고 간 모니터와 3~4년 전에 한국으로 간 김민우형제가 주고 간 하드웨어와 지난주에 한국으로 간 왕정일형제가 주고 간 본체, 등에 약간의 비용을 들여 하드웨어를 엎그레이드 한 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량이 딸리는지, 4주 전부터 저절로 컴퓨터가 멈추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참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그제 서야 작동이 될 만큼 느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주 전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파일들,
특별히 저 모르게 저희 집 아이들이 저장해놓은 각종 인터넷 게임이라든가, FIFA 2002 축구게임이라든가 하는 프로그램들을 지워 하드웨어를 약간 비웠습니다. 그랬더니 정상적인 속도는 아니지만, 전보다 훨씬 빨라지는 것을 보면서 저는 굉장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파일들이 계속해서 쌓이다보면 컴퓨터가 작동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여러 가지 파일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파일들을 삭제하지 않으면 컴퓨터가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이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어느 마을에 살던 한 노인이 길을 가던 한 노인이 갑자기 길에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 어느 누구도 그 노인이 돌아가신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그 노인이 돌아가신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어르신이 돌아가신 이유는 쇠로 된 지팡이를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어르신이 지팡이를 아까워하지 않고 멀리 던져 버렸더라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어르신은 천둥이 치는데도 지팡이가 아까워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벼락을 맞아 돌아가신 것입니다. ” 우리는 아쉬움과 미련 때문에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버려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까지 이 자리에 과거 결혼하기 전에 만났던 ‘미스 김, 미스 리’를 밤마다 생각하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아직도 ‘초등학교 때 짝꿍하고 결혼할 걸’하며 과거를 잊지 못하는 분 계시지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들에게 아직도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한 채 붙들고 있지 않습니까 미움이라는 지팡이, 과거에 만났던 애인이라는 지팡이,
실수와 실패라는 지팡이, 등의 버려야 할 지팡이를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붙들고 있지 않습니까 2007년 새해를 시작하기 전에 그 지팡이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미련 없이 던지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 여러분들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파일들이 여러분들 안에 있습니까 시간을 낭비하는 게으름이란 제목의 파일, 먹을 것을 탐하는 식탐이란 제목의 파일, 쉽게 돈을 벌겠다는 도박이라는 제목의 파일, 등 정리해야 할 파일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새해를 시작하기 전에 그러한 파일들을 잘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파일들을 다 삭제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기대하라
둘째로 믿음으로 기대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매이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어서 놀라운 것을 기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같이 19절을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여호와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새 일'이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그 일이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은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뚫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만에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뚫는 이유를 아십니까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엄청난 새 일을 행하시려고 할까요 이사야 36장 6절 이하를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제가 이사야 36장 6절부터 9절을 읽겠습니다. “.....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뚫는다고 하십니까 누구 때문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신다고 하십니까 다름 아닌 저와 여러분들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새 일'은 거룩한 자들, 즉 예수 믿고 구원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새 일’은 이미 2000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이후 시작되었습니다.
이 ‘새 일’은 예수님의 재림 때 완성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꼐서는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일을 꼭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날을 믿음으로 기대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사40:3~5).
어느 집사님이 앵무새를 하나 키웠습니다. 매일 퇴근할 때면 파김치가 돼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고,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앵무새가 이 주인의 말을 반복해서 듣더니 하루는 주인을 보고 ‘아이고,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들을 때에야 웃음이 낫지만 자꾸 들으니까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장로님 댁의 앵무새한테 뭔가 좋은 것을 배우라고 자기 앵무새를 그 옆에다 갖다 놨습니다. 집사님의 앵무새가 장로님의 앵무새를 보자 ‘아이고,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의 앵무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 잠언 18장 20절과 21절을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인생은 말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코카콜라 회장이었던 아사 캔들러(Asa Candler)씨는 원래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삶을 돌이키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믿는 아내의 권고를 받아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어 항상 믿음으로 기대하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알콜 중독자가 아니다. 나는 새 사람이 되었다” 믿음으로 기대하며 믿음의 말을 계속하다보니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술을 먹고 싶은 생각, 술병에 끌리던 생각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술이 없으면 살 수 없던 그가 “나는 더 이상 알콜 중독자가 아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다보니, 저절로 술이 싫어지게 되었습니다. 술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 그는 자신의 수입에서 십일조를 드리며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의 사업을 번창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영세한 코카콜라 회사가 법원에 경매 처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캔들러는 당시 2,300 달러라는 저렴한 금액을 주고 그 코카콜라를 인수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함께 주님을 위한 선교사업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입술의 고백대로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2007년은 힘들 거야. 경기가 이렇게 좋지 않은데 무슨 재주로 사업을 하겠어. ”라는 말 대신에, “2007년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를 위해 새 일을 행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새롭게 시작하는 2007년에는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대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 기대하고 그 기대한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한 체조 선수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나디아 코마네치(Nadia Comaneci)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체조경기 역사에 길이 남는 기록을 올렸습니다. 비록 키가 153Cm, 체중이 39Kg 밖에 되지 않는 10대의 작은 소녀이었습니다만, 체조경기 사상 처음으로 이단 평행봉에서 10점 만점을 받는 등,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977년,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80년 구 소련의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는 소련 심판들의 편파 판정에도 불구하고 2관왕에 올랐습니다. 그 선수는 체조경기 사상 모두 7번이나 10점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가 그렇게 엄청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6살 때, 벨라 카롤리 코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벨라 카롤리 코치는 어린 코마네치를 만나자마자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 첫째로 개인적인 평안을 포기하고 코치의 훈련방향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 둘째로 생활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체조를 제1순위에 둘 것. 셋째로 지나간 모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체조에 헌신할 것. ” 결국 어린 소녀 코마네치는 카롤리 코치가 제시한 세 가지를 잘 지켜 세계적인 체조선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모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새 해를 시작해야 합니다.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축구 경기를 보면, 공격과 수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비만 하고 공격을 하지 않으면 결코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수비만 하지 말고 공격도 해야 합니다.
공을 빼앗았으면 몰고 가서 골문을 향하여 슛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나가버린 2006년도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2007년도에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매이지 말고 새로운 2007년을 믿음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다 끝나버린 2006년도를 아쉬워하다가 과거에 묶이지 말고, 믿음으로 기대하며 2007년을 힘차게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으로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이 아침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교리에 의하면 과거에 잘못한 사람은 현재도 미래도 없습니다. 언젠가는 그 죄 값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한번 죄를 지은 사람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열반의 교리를 가르칩니다. 열반은 “촛불을 끄듯이 꺼진다. ”는 뜻으로, 욕망을 우리 마음에서 완전히 없애버리면 인간의 모든 고통은 사라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서 욕망을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죽지 않고 우리가 살아있는 이상,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에서는 욕망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무슬림에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알라신이 정해 준 철저한 운명론으로 가르칩니다.
“네가 당하고 있는 고난은 너의 운명이다. 신이 너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으니 불평하지 말고 그대로 받으라”는 식의 운명론을 가르칩니다. 그러다보니 이 교리에 의하면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대의 에피큐로스학파에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쾌락주의로 처리합니다. “현재의 고통을 잊을 수만 있다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망각해 버리자. 술을 마시든지, 쾌락에 빠지든지, 무엇을 하든지 잊어버리고 넘기면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다”라는 식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과거나 현실에 얽매여있는 세상의 다른 종교들과 달리, 우리 기독교는 미래 지향적입니다. 성경을 보면 과거에 대한 말씀 보다 미래에 대한 말씀이 훨씬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과거의 것에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빌립보서 3장 13절과 14절을 보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까지 이루어놓은 업적이나 행한 일들은 다 잊겠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앞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기독교는 과거 회귀적인 다른 종교와 달리, 미래 지향적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아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다사다난했던 2006년도를 뒤로 하고, 이제 몇 시간이 지나면 맞이하게 되는 새로운 2007년도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2007년도 새해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과거에 매이지 말라
첫째로 과거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매이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18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 여기에서 ‘이전 일’과 ‘옛날 일’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까지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긋지긋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배 한 척도 만들지 않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홍해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거의 일을 잊으라고 하십니다.
과거에 있었던 홍해의 기적신앙에 매여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놀라운 사건을 기억도 하지 말고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의 신앙은 오늘을 있게 한 밑거름임에 분명합니다.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자세나,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과거에 매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귀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역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후, 그들을 홍해 길로 인도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를 아십니까 출애굽기 13장 17절과 18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블레셋 땅으로 가는 길이 가나안으로 향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길 대신에 홍해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 쪽으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홍해 쪽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홍해바다를 가르신 후, 그들을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갈라놓았던 홍해바다를 다시 닫으셨습니다. 이것은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를 몰살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 17절에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포도주를 통이 아닌 가죽부대에 저장하였습니다. 그런데 낡은 가죽부대에 포도주를 저장하면 발효가 되어 부풀어 올라 결국에는 낡은 가죽부대가 터지고 맙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부대가 아닌, 새 가죽부대에 저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낡은 가죽부대로는 새로운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낡은 생각으로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 하니라. ”(눅 9:62)고 말씀하신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자꾸만 뒤돌아보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낡은 옷을 벗어야만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처럼, 과거를 정리하지 않고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과거 이곳에서 신앙생활하며 훈련받은 후, 이곳을 떠난 형제들이 주고 간 컴퓨터입니다. 호주 퍼스로 간 권오형형제가 주고 간 모니터와 3~4년 전에 한국으로 간 김민우형제가 주고 간 하드웨어와 지난주에 한국으로 간 왕정일형제가 주고 간 본체, 등에 약간의 비용을 들여 하드웨어를 엎그레이드 한 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량이 딸리는지, 4주 전부터 저절로 컴퓨터가 멈추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참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그제 서야 작동이 될 만큼 느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주 전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파일들,
특별히 저 모르게 저희 집 아이들이 저장해놓은 각종 인터넷 게임이라든가, FIFA 2002 축구게임이라든가 하는 프로그램들을 지워 하드웨어를 약간 비웠습니다. 그랬더니 정상적인 속도는 아니지만, 전보다 훨씬 빨라지는 것을 보면서 저는 굉장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파일들이 계속해서 쌓이다보면 컴퓨터가 작동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여러 가지 파일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파일들을 삭제하지 않으면 컴퓨터가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이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어느 마을에 살던 한 노인이 길을 가던 한 노인이 갑자기 길에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 어느 누구도 그 노인이 돌아가신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그 노인이 돌아가신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어르신이 돌아가신 이유는 쇠로 된 지팡이를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어르신이 지팡이를 아까워하지 않고 멀리 던져 버렸더라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어르신은 천둥이 치는데도 지팡이가 아까워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벼락을 맞아 돌아가신 것입니다. ” 우리는 아쉬움과 미련 때문에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버려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까지 이 자리에 과거 결혼하기 전에 만났던 ‘미스 김, 미스 리’를 밤마다 생각하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아직도 ‘초등학교 때 짝꿍하고 결혼할 걸’하며 과거를 잊지 못하는 분 계시지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들에게 아직도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한 채 붙들고 있지 않습니까 미움이라는 지팡이, 과거에 만났던 애인이라는 지팡이,
실수와 실패라는 지팡이, 등의 버려야 할 지팡이를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붙들고 있지 않습니까 2007년 새해를 시작하기 전에 그 지팡이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미련 없이 던지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 여러분들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파일들이 여러분들 안에 있습니까 시간을 낭비하는 게으름이란 제목의 파일, 먹을 것을 탐하는 식탐이란 제목의 파일, 쉽게 돈을 벌겠다는 도박이라는 제목의 파일, 등 정리해야 할 파일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새해를 시작하기 전에 그러한 파일들을 잘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파일들을 다 삭제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기대하라
둘째로 믿음으로 기대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매이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어서 놀라운 것을 기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같이 19절을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여호와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새 일'이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그 일이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은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뚫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만에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뚫는 이유를 아십니까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엄청난 새 일을 행하시려고 할까요 이사야 36장 6절 이하를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제가 이사야 36장 6절부터 9절을 읽겠습니다. “.....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뚫는다고 하십니까 누구 때문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신다고 하십니까 다름 아닌 저와 여러분들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새 일'은 거룩한 자들, 즉 예수 믿고 구원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새 일’은 이미 2000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이후 시작되었습니다.
이 ‘새 일’은 예수님의 재림 때 완성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꼐서는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일을 꼭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날을 믿음으로 기대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사40:3~5).
어느 집사님이 앵무새를 하나 키웠습니다. 매일 퇴근할 때면 파김치가 돼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고,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앵무새가 이 주인의 말을 반복해서 듣더니 하루는 주인을 보고 ‘아이고,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들을 때에야 웃음이 낫지만 자꾸 들으니까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장로님 댁의 앵무새한테 뭔가 좋은 것을 배우라고 자기 앵무새를 그 옆에다 갖다 놨습니다. 집사님의 앵무새가 장로님의 앵무새를 보자 ‘아이고,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의 앵무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 잠언 18장 20절과 21절을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인생은 말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코카콜라 회장이었던 아사 캔들러(Asa Candler)씨는 원래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삶을 돌이키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믿는 아내의 권고를 받아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어 항상 믿음으로 기대하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알콜 중독자가 아니다. 나는 새 사람이 되었다” 믿음으로 기대하며 믿음의 말을 계속하다보니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술을 먹고 싶은 생각, 술병에 끌리던 생각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술이 없으면 살 수 없던 그가 “나는 더 이상 알콜 중독자가 아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다보니, 저절로 술이 싫어지게 되었습니다. 술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 그는 자신의 수입에서 십일조를 드리며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의 사업을 번창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영세한 코카콜라 회사가 법원에 경매 처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캔들러는 당시 2,300 달러라는 저렴한 금액을 주고 그 코카콜라를 인수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함께 주님을 위한 선교사업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입술의 고백대로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2007년은 힘들 거야. 경기가 이렇게 좋지 않은데 무슨 재주로 사업을 하겠어. ”라는 말 대신에, “2007년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를 위해 새 일을 행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새롭게 시작하는 2007년에는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대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 기대하고 그 기대한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한 체조 선수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나디아 코마네치(Nadia Comaneci)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체조경기 역사에 길이 남는 기록을 올렸습니다. 비록 키가 153Cm, 체중이 39Kg 밖에 되지 않는 10대의 작은 소녀이었습니다만, 체조경기 사상 처음으로 이단 평행봉에서 10점 만점을 받는 등,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977년,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80년 구 소련의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는 소련 심판들의 편파 판정에도 불구하고 2관왕에 올랐습니다. 그 선수는 체조경기 사상 모두 7번이나 10점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가 그렇게 엄청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6살 때, 벨라 카롤리 코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벨라 카롤리 코치는 어린 코마네치를 만나자마자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 첫째로 개인적인 평안을 포기하고 코치의 훈련방향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 둘째로 생활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체조를 제1순위에 둘 것. 셋째로 지나간 모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체조에 헌신할 것. ” 결국 어린 소녀 코마네치는 카롤리 코치가 제시한 세 가지를 잘 지켜 세계적인 체조선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모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새 해를 시작해야 합니다.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축구 경기를 보면, 공격과 수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비만 하고 공격을 하지 않으면 결코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수비만 하지 말고 공격도 해야 합니다.
공을 빼앗았으면 몰고 가서 골문을 향하여 슛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나가버린 2006년도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2007년도에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매이지 말고 새로운 2007년을 믿음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다 끝나버린 2006년도를 아쉬워하다가 과거에 묶이지 말고, 믿음으로 기대하며 2007년을 힘차게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으로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이 아침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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