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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예수는 알파와 오메가

본문

알파는 헬라어의 첫 글자이고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이십니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 뜻, ”여호와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라는 그 말씀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는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선언입니다. 다시 재림하는 날이죠. 우리는 그 날을 역사 완성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그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고 그 날은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심으로써 속죄의 길을 여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로 승리했고 사단은 결정적으로 패망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아직도 죽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단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 그분은 분명히 다시 오셔서 이젠 모든 일을 완전히 해결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알, 바로 그것이 해결되는 완성의 날인 것입니다.
역사의 시작은 알파! 역사의 마지막은 오메가! 최후의 완성을 위해서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십니다. 그날은 성도들에게 상급이 내려지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살았던 우리들의 삶이 결산되는 날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묵시록을 기록할 당시의 로마 황제는 도미티아누스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이 시작되고 노골적으로 황제숭배가 강요된 때가 바로 이때였습니다.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던 민족들은 모두 다 이 도미티아누스상을 향하여 ”황제는 주님이시다” 라는 고백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 그들은 황제숭배의 고백을 하지 않고 그들은 반대로 ”예수님만이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말 속에는 무슨 의미가 들어있습니까 ”황제는 주님이 아닙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황제는 주님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이 고백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의 명령에 불복종한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사회에서 추방되고 순교를 당하고 말할 수 없는 위협을 당하며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메시지를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8)
여기에서는 단순히 ”주님이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그분이 창조자요 마지막 완성자가 될 것이다” 라는 사실만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더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을 처음 되게 하시고 마지막을 마지막 되게 하실 그분이, 우리 그리스도께서 오늘 21세기에도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이천 년 전에만이 아니라, 지금도, 미래에도 역사를 통치하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
여러분, 믿으십시오. 만물은 창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탱되고 있습니다. 그분은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섭리자요, 진행자요, 주관자이십니다. 그 다음 끝에는 만물은 결국 주님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님에게서 끝날 것입니다.
로마서 11장에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메시야를 약속하시고 특별하게 섭리하셨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거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절하자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가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놀라운 일과 기적이 가득하였습니다.
”깊도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3-36)
역사를 경륜하시는 주님! 역사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 그러나 선교의 역사가 일어나는 데도 로마 도미티아누스황제의 핍박 아래 있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이 역사 속에 과연 주님이 일하실까” ”주님이 주관하신다면 이런 환난이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여! 당신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라는 하소연이 새로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들은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의 입술을 통해 고백되고 있었을 그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들어 이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처음과 나중이라. 시작과 끝이라!
그렇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핍박이 있어도 견디라고 하십니다. 순간적으로 힘이 비록 들지라도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우리 그리스도께서는 역사를 선하게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우리 주위의 모든 상황이 불행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주님은 불행의 역사를 바로 축복의 역사로 바꿀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리스도는 역사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또한 그분은 우리 개개인의 인생의 주님도 되십니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계 1:17)
이 말씀은 주께서 계시록의 저자였던 사도 요한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요한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환상으로 보았을 때 그 발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때 주께서 사도 요한에게 손을 얹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처음이요 나중이니. ”
당시 사도 요한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곳이 어디입니까 밧모 섬입니다. 요한은 밧모라는 섬에 유배당했던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밧모섬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 사도 요한! 이 고도에서 그는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단절된 그의 아픔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사도 요한에게도 이런 마음이 들었을 지 모릅니다. 내 인생이 이게 전부인가 이 외딴 섬에서 이대로 끝나고 마는 것은 아닌가 그때 자신을 보이시며 나타나신 주님! 그분이 이 놀라운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나는 처음과 나중이라!”
이것은 만물에 대한 그분의 선포일 뿐만 아니라 요한 개인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요한의 인생 속에서도 그분은 역시 처음과 나중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요한아! 네 인생의 시작이 나였느니라. 네 인생의 마지막도 나이니라. ”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 역사속에서 요한이라는 한 개인을 섭리하시면서 동시에 이 개인의 역사를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 속에 포함시키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역사는 나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역사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역사는 우연히 시작되어 그냥 돌고 도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마치 원처럼 순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순히 살고 있고 존재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 역사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역사는 어떤 시작점에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끝을 향해 돌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선에는 반드시 시작하는 점과 끝나는 점이 있습니다. 나의 시간도 어디인가에서 시작하여 분명한 끝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시간은 분명한 시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분명히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은 그냥 흘러만 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흘러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시간이라는 역사 속에 태어난 우리 개개인의 삶에도 분명한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오늘이라는 순간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은 다시 연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심각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장난처럼 살아버리기에는 너무나 엄숙하고 소중합니다. 우리는 한 번밖에는 오지 않는 시간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우리 되게 하시고 이 역사 속에 태어나게 하셔서 한 순간의 삶을 시작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한 위대한 뜻을 갖고 계십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성도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향한 삶을 향해서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해 우리가 경험한 힘든 일과 고통 속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 고독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철저히 단절되어 있고 전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외로움과 절망감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주께서 요한에게 다가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처음과 나중이다!”
이것이 사도 요한에게 어떤 감회와 어떤 각성을 불러일으켰겠습니까 아마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입니다. 아! 이 밧모 섬의 주인도 주님이시구나! 이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그분은 여전히 내 삶의 주님이시구나!
개인의 삶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 그분이 오늘도 여러분의 삶 속에도 주인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지나간 한해의 시간들, 그 고통스럽고 짜증나는 일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같이 계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이젠 일어나십시오. 우리 그리스도는 말씀을 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처음과 나중이다!”
일어나서 외치십시오.
”주여! 나를 붙들어 주시니 당신께 영광을 온전히 드리옵나이다!”
3. 그리스도는 환난 중에 있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9)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밧모섬의 사건은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고난이었음을 사도 요한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주님을 위해 그리고 주님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여전히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 귀양살이를 계속해야 하나 나에게도 내일이 있는가 어느 한 순간에 여기서 내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많은 두려움이 사도 요한의 마음과 영혼을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옵니다. 누구겠습니까 눈을 들어보니 너무나 놀라운 모습입니다. 정신을 잃고 엎드러져 까무러칠 정도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거룩하신 예수님 앞에서 그는 더욱 두려워하며 꼬꾸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 순간 주님 손의 따스한 체온이 전해지며 자애로운 사랑의 음성이 들립니다.
”두려워 말라!”
주님이십니다. ”아! 나의 주님!” 벅찬 가슴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모든 두려움과 회한이 사라지고 가슴 뭉클한 가운데 복받치는 기쁨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환난 중에 도우시는 주님!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시는 우리 주님!
이것은 구약의 이사야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배경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사야서 48장 12절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사 48:12-13)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분은 어떤 분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분은 창조자이십니다. ”나는 처음이요” 라는 말씀은 언제나 그분이 창조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예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라” 는 말씀을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세상 이전부터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계 1:1, 8) 그러므로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그 분은 창조자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 예수님은 왕이시고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십니다. 그 백성이 마땅히 서야 할 자리에 서지 못했을 때 예수 십자가의 피로 대가를 지불하고 그들을 사서 다시 제 자리에 있게 하신 구속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이 여호와 하나님께 사용된 이사야서의 독특한 표현들이 요한계시록 1장에서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대로 사용됩니다.
남편이 없는 한 자매는 혼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남편은 빚을 많이 져서 그 빚 때문에 사라졌습니다. 5남매를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 우리 가정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볶은 소금이 인기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 볶은 소금을 만들어 팔기로 했습니다.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소금을 볶아서 미용, 식용 소금을 제조하여 여기저기 내다 팔았습니다. 소금이 점점 잘 팔려서 백화점에까지 납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생겼습니다. 허가를 안 받았다고 고소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공장 문을 닫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마침 옆집의 한 권사님이 전도를 하러 오셨습니다.
이 집은 절망 가운데 낙심하고 있는데, 이웃집 권사님은 새벽마다 교회 가자고 노크를 했습니다. 도망을 가려고 해도 구역 예배, 주일 예배, 예배 때마다 교회로 끌고 갔습니다. 새벽이건 한밤중이건 막무가내였습니다. 하도 권사님이 강권하시니까 새벽에도 끌려나가고, 수요일에도 금요일에도 주일에도 교회에 끌려나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소금을 다시 볶아서 교인들에게 나누어주었더니, 그 볶은 소금을 교인들이 사주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여호와 하나님,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옵소서. ”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한 2년쯤 지났을 때, 소금 제조 허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공장 문도 열고 미용, 식용 볶은 소금을 백화점에도 다시 납품하게 되었습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아 빚진 돈도 다 갚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해서 매일 가정 예배드리고, 교회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충성·봉사·헌신하는 믿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이 너무 고통스럽습니까 만약 제가 여러분을 찾아가서 두 손을 잡고 기도하며 ”두려워 마세요!” 라고 말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위로가 되시겠습니까 이렇듯 사람들의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하물며 창조자요 구속자요 왕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얼마나 위로가 되겠습니까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18)
그 분이 창조자이고 구속자이고 왕이라 해도 현재 그분이 돌아가셨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여기고 살아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절망과 공포와 낙심과 두려움 속에 있던 요한에게 다가오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니라! 나는 지금도 역사할 수가 있느니라. ”
이것은 얼마나 위대한 선포이겠습니까 우리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자주 상기시킬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히 6:13-14)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높은 권위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맹세하실 때 자신을 걸고 맹세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영원한 삶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환란과 고통 속에서 도우시는 그리스도!
여러분, 아직도 여러분에게 말로할 수가 없는 고통이 남아있다면 이 살아계신 주님께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은 지금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여러분의 손목을 꼭 잡으실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내가 산 자라 문제도 내가 해결해 주겠노라”
이렇게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올 한해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도우셨다는 것을 참으로 믿으십니까
4. 궁극적으로 승리케 하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우리 성도들의 궁극적 승리자가 되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분이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8)
음부가 무엇입니까 그곳은 죽은 사람이 거하는 곳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무덤입니다. 죽음입니다. 무덤과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마다 고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종말인가 정말 그것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인가 죽음은 우리를 한없는 고독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자기를 덮쳐 오고 있는 것을 밧모섬에서 느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끝나야 하는가 무덤이 내 인생의 결산인가 그때에 요한에게 나타나서 하신 주님의 말씀!
”나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라, 그리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도 내가 쥐고 있느니라. ”
죽음의 영역 아니 그 다음의 영역까지도 지배하시는 분! 무덤 이편에서만 살아 있어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라 무덤 저 건너편에서까지도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이 고백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저는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을 평생토록 제 고백으로 삼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삼으십시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여호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롬 8:31-33)
하늘과 땅의 심판자요, 창조자요, 주인이신 바로 그분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니라”(롬 8:34)
그렇습니다. 주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창조자, 구속자, 왕이신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이 얼마나 확고하고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며 보장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마지막 승리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있는 우리도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만이 아니라 영원토록 말입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독일의 나치수용소에서 구출 받은 체험을 가지고 있는 화란의 부흥사입니다. 그 녀의 간증 중에는 구 소련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앙인들의 승리담도 있습니다. 한번은 지하교회 교인들이 창고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는데 소련군이 들어 닥쳤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즉결처분을 당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끝없는 노동을 하다가 여생을 마치는 일만 남아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소리쳤습니다.
”너희들을 법대로 처분할 테니 그리스도를 부인할 사람은 나와라. ”
그러자 몇 사람이 나갔고 그들은 밖으로 보내졌습니다. 또 한 번 군인들이 같은 말을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죽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갑자기 문을 잠그며 총을 내리고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함께 예배드리려고 왔는데 여기에 가짜 교인들이 있을까봐 그들을 골라내려고 그랬습니다. 이제 염려 없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립시다. ”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만을 의지하는 성도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기뻐하시며 환경을 바꾸어 주시며 평탄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마지막 승리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있는 우리도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만이 아니라 영원토록 말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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