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세초부터 세밑까지
본문
신명기 - ”다시 명령한다”의 의미 - 두 번째 율법
그 이유 - 청중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명기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출애굽 1세대가 아닌
1. 5나 2세대들이다. 이들에게 1세들이 감당하지 못했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고자 모세가 다시 말씀한 것이 바로 신명기이다. 이들이 감당해야 할 일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 1세대들이 실패한 이유 6절에서 구체적으로 말씀. 하지만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보편적으로 볼 때, 이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 땅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였다는 데 그 오류가 있었다. (ex) 12 정탐꾼 보고 후 - 그 결과, 지도자인 모세의 인도함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다단과 아비람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출애굽 1세대들은 애굽을 그리워했을까 이들이 광야에서 했던 말을 들어보면 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살다가 죽게 할 것이지 왜 이 광야로 끌고 나와 고생을 시키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래도 애굽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를 먹지 않았느냐”, ”그래도 애굽에서는 목마르지는 않지 않았느냐” 이들은 애굽의 풍성했던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조금만 불편한 일이 생기면 반항하고 불순종하여 결국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하다가 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1. 5세대나 2세들에게 다시 말씀함으로 이들은 꼭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고함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기를 바라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말씀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10-12절,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너희는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내용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단지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예전에 살던 애굽 땅과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의 구조와 형편을 말씀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발견해 내어야 합니다.
비교해 보십시다. 애굽 땅에는 물이 풍부합니다. 가나안 땅은 어떻습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라 하였습니다. 즉, 애굽 땅은 Nile 강이 언제나 흘러 넘쳐 물이 언제나 풍부한 땅이라는 뜻이고,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그러한 땅이라는 말입니다. 즉, 비가 안 오면 농사짓기가 아주 어려운 땅이라는 말도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땅이 더 좋은 땅입니까 이러한 가나안 땅은 ”비가 안 오면 어떻게 하지” 불안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를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해야 하늘에서 비가 내릴 것이다’하는 믿음이 필요한 삶,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생각하고 염두에 두는 긴장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Cf. 13-17절 참조.
또 하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애굽 땅에서는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는 땅이라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어떤 땅입니까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 (돌보시는 땅), 여호와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는 땅이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중요하지, 여호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신다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뭐가 좋으냐”하는 질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과연 이런 의미의 말씀일까요 여기서 ”발로 물을 대었다”라는 말은 어떤 기구를 써서 물을 댄 것을 의미하는데, 이 기구를 영어로 treadmill이라고 합니다. 둥그런 원판에 사람이 들어가 밟으면 이것이 도르래와 연결이 되어서 두레박으로 물을 푸게 하는 기계입니다. 이는 일을 효과적으로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는 뜻은 이 treadmill이라 하는 기구를 누가 밟고 일을 하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바로 노예나 감옥의 죄수들이 밟고 일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풍부한 물이 있는 애굽이지만 거기서 종노릇 즉 노예 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의미입니다. 풍부함이 자유함 없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서는 이러한 풍성함에 대한 역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굽과 가나안 땅에서의 삶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을 살면서 우리의 삶이 가나안 땅에서의 삶인지 아니면 애굽에서의 삶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분별하도록 제시하시는 말씀이 바로 1절과 8절의 말씀입니다. 1절, ”그런즉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 직임과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8절,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 개인에게 명하시는 그리고 원하시는 한 가지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나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실 수 있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둘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땅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계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줄 압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서 이러한 결심을 꼭 지닐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 오래 전, 한국에서 본 영화 - 1월 1, 2, 3일 연휴 때 T. V에서 본 영화 : ”불같이 달리는 사람”이라는 영화입니다. 이는 사실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평소에 중국에 선교사로 가고 싶어하는 영국의 한 젊은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름은 Eric Ridel이라고 하는데 이 젊은이는 달리기를 무척이나 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지방 출신이지만 영국 국가 대표 육상 선수로 19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런던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로 가는 도중에 이 청년은 자기가 출전한 200m 단거리 경주가 주일날 실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Eric은 영국 올림픽 위원단에 자기는 이번 시합에 출전할 수 없다고 통보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 경기가 주일날 열리기 때문”이라고 자기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영국 올림픽 위원단은 물론 각국 올림픽 관계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각국 신문에서 이를 대서특필하고 영국 올림픽 위원 중에는 ”대 영국 제국과 국왕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하면서 ”경기에 출정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고 징계 위원회를 소집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자기가 뛰어야 할 경기가 열리는 바로 그 날, 주일날 파리의 어느 교회에서 ”주일을 잘 지키자”는 내용의 설교를 하면서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영국의 올림픽 위원회는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미 금메달을 딴 영국의 어느 육상 선수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자기가 나가야 할 400m 경기에 Eric을 내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제안이었습니다. 위원회에서는 ”그거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Eric을 내보내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400m 경기에 나간 Eric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중이 운집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뛰는 Eric은 그야말로 신이 들려 뛰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렇게 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감탄하면서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달리기를 잘 하는 Eric이지만 평소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의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에서 사는, 아니 살아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나안 땅의 삶의 pattern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 삶이란 우리의 삶의 근거를 어떤 물질적인 데에 두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 두는 삶인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 곧 신앙의 삶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복된 삶인 것입니다. 구약의 모세는 이러한 모습에 대해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는 이 말씀은 영원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인간적이거나 물질적인 풍부함보다 더 위대한 가치로 지닐 수 있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 Robert Schuller 목사 - 처음 개척할 때, ”내게 현금 $500와 그것을 쓸 수 있는 자유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유함의 풍부함이 인간적인 것이나 물질의 노예가 된 풍부함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사실을 간직하면서 영원토록 우리를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믿음의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2002년 세초부터 세말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눈이 여러분들을 지키시고 돌보아 주실 줄 믿고 또 그렇게 기원합니다.
그 이유 - 청중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명기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출애굽 1세대가 아닌
1. 5나 2세대들이다. 이들에게 1세들이 감당하지 못했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고자 모세가 다시 말씀한 것이 바로 신명기이다. 이들이 감당해야 할 일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 1세대들이 실패한 이유 6절에서 구체적으로 말씀. 하지만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보편적으로 볼 때, 이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 땅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였다는 데 그 오류가 있었다. (ex) 12 정탐꾼 보고 후 - 그 결과, 지도자인 모세의 인도함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다단과 아비람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출애굽 1세대들은 애굽을 그리워했을까 이들이 광야에서 했던 말을 들어보면 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살다가 죽게 할 것이지 왜 이 광야로 끌고 나와 고생을 시키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래도 애굽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를 먹지 않았느냐”, ”그래도 애굽에서는 목마르지는 않지 않았느냐” 이들은 애굽의 풍성했던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조금만 불편한 일이 생기면 반항하고 불순종하여 결국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하다가 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1. 5세대나 2세들에게 다시 말씀함으로 이들은 꼭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고함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기를 바라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말씀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10-12절,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너희는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내용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단지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예전에 살던 애굽 땅과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의 구조와 형편을 말씀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발견해 내어야 합니다.
비교해 보십시다. 애굽 땅에는 물이 풍부합니다. 가나안 땅은 어떻습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라 하였습니다. 즉, 애굽 땅은 Nile 강이 언제나 흘러 넘쳐 물이 언제나 풍부한 땅이라는 뜻이고,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그러한 땅이라는 말입니다. 즉, 비가 안 오면 농사짓기가 아주 어려운 땅이라는 말도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땅이 더 좋은 땅입니까 이러한 가나안 땅은 ”비가 안 오면 어떻게 하지” 불안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를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해야 하늘에서 비가 내릴 것이다’하는 믿음이 필요한 삶,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생각하고 염두에 두는 긴장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Cf. 13-17절 참조.
또 하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애굽 땅에서는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는 땅이라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어떤 땅입니까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 (돌보시는 땅), 여호와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는 땅이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중요하지, 여호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신다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뭐가 좋으냐”하는 질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과연 이런 의미의 말씀일까요 여기서 ”발로 물을 대었다”라는 말은 어떤 기구를 써서 물을 댄 것을 의미하는데, 이 기구를 영어로 treadmill이라고 합니다. 둥그런 원판에 사람이 들어가 밟으면 이것이 도르래와 연결이 되어서 두레박으로 물을 푸게 하는 기계입니다. 이는 일을 효과적으로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는 뜻은 이 treadmill이라 하는 기구를 누가 밟고 일을 하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바로 노예나 감옥의 죄수들이 밟고 일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풍부한 물이 있는 애굽이지만 거기서 종노릇 즉 노예 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의미입니다. 풍부함이 자유함 없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서는 이러한 풍성함에 대한 역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굽과 가나안 땅에서의 삶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을 살면서 우리의 삶이 가나안 땅에서의 삶인지 아니면 애굽에서의 삶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분별하도록 제시하시는 말씀이 바로 1절과 8절의 말씀입니다. 1절, ”그런즉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 직임과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8절,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 개인에게 명하시는 그리고 원하시는 한 가지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나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실 수 있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둘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땅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계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줄 압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서 이러한 결심을 꼭 지닐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 오래 전, 한국에서 본 영화 - 1월 1, 2, 3일 연휴 때 T. V에서 본 영화 : ”불같이 달리는 사람”이라는 영화입니다. 이는 사실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평소에 중국에 선교사로 가고 싶어하는 영국의 한 젊은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름은 Eric Ridel이라고 하는데 이 젊은이는 달리기를 무척이나 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지방 출신이지만 영국 국가 대표 육상 선수로 19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런던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로 가는 도중에 이 청년은 자기가 출전한 200m 단거리 경주가 주일날 실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Eric은 영국 올림픽 위원단에 자기는 이번 시합에 출전할 수 없다고 통보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 경기가 주일날 열리기 때문”이라고 자기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영국 올림픽 위원단은 물론 각국 올림픽 관계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각국 신문에서 이를 대서특필하고 영국 올림픽 위원 중에는 ”대 영국 제국과 국왕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하면서 ”경기에 출정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고 징계 위원회를 소집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자기가 뛰어야 할 경기가 열리는 바로 그 날, 주일날 파리의 어느 교회에서 ”주일을 잘 지키자”는 내용의 설교를 하면서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영국의 올림픽 위원회는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미 금메달을 딴 영국의 어느 육상 선수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자기가 나가야 할 400m 경기에 Eric을 내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제안이었습니다. 위원회에서는 ”그거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Eric을 내보내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400m 경기에 나간 Eric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중이 운집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뛰는 Eric은 그야말로 신이 들려 뛰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렇게 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감탄하면서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달리기를 잘 하는 Eric이지만 평소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의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에서 사는, 아니 살아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나안 땅의 삶의 pattern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 삶이란 우리의 삶의 근거를 어떤 물질적인 데에 두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 두는 삶인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 곧 신앙의 삶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복된 삶인 것입니다. 구약의 모세는 이러한 모습에 대해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는 이 말씀은 영원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인간적이거나 물질적인 풍부함보다 더 위대한 가치로 지닐 수 있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 Robert Schuller 목사 - 처음 개척할 때, ”내게 현금 $500와 그것을 쓸 수 있는 자유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유함의 풍부함이 인간적인 것이나 물질의 노예가 된 풍부함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사실을 간직하면서 영원토록 우리를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믿음의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2002년 세초부터 세말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눈이 여러분들을 지키시고 돌보아 주실 줄 믿고 또 그렇게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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