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복음적 역사의식
본문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희랍 신화에 레테호수의 이야기라는 그런 재미있는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대개 이렇습니다. 한 여인이 스틱스강에서 이제 영원한 나라로 강을 건너가려고 하는 시간입니다. 뱃사공이 그에게 말해줍니다 "이 강을 건너기 전에 레테호수의 물을 마시고 갈 것인지 마시지 아니하고 갈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에 이 여인은 다시 물어봅니다.
"그래 이 물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뱃사공은 이제 말해줍니다. "이 물을 마시게 되면 지난날의 괴로움을 말끔히 잊어버리게 됩니다. " 이 여인은 눈을 반짝이면서 "아 그럼 빨리 마셔야지요. 고통스러운 일, 지난 과거들 말끔히 잊어버리고 싶은데요" 했더니 뱃사공이 다시 한 마디 덧붙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 물을 마시면 동시에 기뻤던 일도 다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 순간 여인은 고민에 빠집니다. 아프고 괴로웠던 일 잊어버리고 싶지요. 그러나 동시에 기뻤던 일도 다 잊어버려야 한다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참 생각하고 나서 "마시지 안겠어요"하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 잊어버리고 몽롱한 가운데서 평안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민하며 고통을 느끼며 걱정하면서 행복한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뭐든지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어요. 글쎄올시다. 잊어버린다고 해결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내 기억에서 없어진다고 해서 사건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1년을 보내면서 무엇인가 고민할 것은 고민해야 됩니다. 생각할 것은 생각해야 그에게 밝은 미래가 있는 것이올시다. 아프고 괴롭고 쑤시지만은 그래도 생각해야 될 것은 생각해야 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혹은 시작하는 중간에든지 혹은 있던 일을 마감하려고 할 때 우리는 꼭 네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또 당연히 해야합니다.
첫째는 손익계산입니다.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었는가 무엇을 얻을 것이며 무엇을 잃게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백해무익한 것을 계속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꼭 담배 피우는 사람처럼. 제게도 나쁘고 남에게도 나쁘고, 아무리 설명해도 백해무익하다는데 그걸 피우면서 이리저리 구박받으며 쫓겨다니는 걸 봅니다. 참 안됐더라고요. 요새는 비행장에서 이 사람들 아주 구박받거든요. 비행기에서도 못 피우게 하고 그래서 틈틈이 어떻게 좀 피워보려고 하는 걸 보면 참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요. 어쨌든 손익계산이 분명해야 됩니다. 뻔히 손해나는 일을 알면서 그 일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은 구제불능입니다. 유익하다면 무엇이 유익한가 오늘 유익할 것인가 내일 유익할 것인가 보다 더 먼 장래를 위해서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손익계산에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목적을 물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했던지 간에 무엇을 위하여 한 것인가,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었나 이제 다 지나고 나서 결산하면서 물어봅시다. 정말로 목적이 무엇이었나 간혹 우리 교회 봉사하는 분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있어요. 봉사는 열심히 한 것처럼 되어 있는데 마지막에 보면 원망 불평이요. 이제 나는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한 일이냐고 당신이 일하는 목적이 무엇이었냐고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로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이 일을 해야 했던가 목적을 재진단해야 할 것이구요 또 하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잘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대개 보면 그렇더만요. 일이 잘될 때는 재수 좋았다, 그래버려요. 그 잘된 이유가 있어요. 잘된 이유를 확실히 알아야 그것을 지속할 수가 있겠는데 잘 된 이유에 대해서 깊은 연구가 없습니다. 그저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한번에 끝나고 말아요. 그런가 하면 잘못되었다고 할 때는 이것은 깊이 반성해야 됩니다. 아무리 괴롭고 아파도 잘못된 건 잘못된 바를 알아야 됩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또 팔자라 그래버리거든요. 잘못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잘못의 이유에 대해서 냉철한 판단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어디까지 왔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시점을 이해해야 됩니다. 과거는 현재로, 현재는 미래로 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시점에 있느냐는 겁니다. 잘 아시는 대로 그래서 일을 마감해야 될 사람이 시작하겠다고 그러면 그것을 주책이라고 하는 겁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은 이제는 하던 일만 하고 하던 일도 좀 줄여가면서 일을 해야 되는데 이제 와서 뭘 한다, 뭘 한다 그거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의 생각입니다. 내가 이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이 뭔가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카이로스, 이 프레젠트 타임은, 이 시간은 내게 뭘 말하고 있는가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 시기를 알라!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가 아닙니다 카이로스! 주어진 시간, 이 시점에 의미를 바로 알아라. 오늘이 몇 시입니까 오늘이 며칠입니까 이거 모르면 안되거든요. 저 브라질에 가니까 우리 선교사님이 수고하는 그 지역은 말입니다 적도가 지나가는 지역 아니에요. 그래서 여름, 겨울이 없어요. 없다 보니까 사람들이 춘하추동이 없어서 해 가는 걸 모른답니다. 나이를 모른답니다. 실제로 자기 마누라 나이도 모른답니다. 얼마쯤 됐을 거라고 그런데요. 얼마쯤, About. 그렇게 대답을 해요. 나이를 물어봐야 대답이 없어요. 얼마쯤 됐을 거라고. 그게 편하겠습니다. 까짓 거. 대충 알고 사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시점. 내가 처한 시점에 대해서 확실해야 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 밤이 깊었다는 거죠. 지금 이 시점이 깊은 밤으로 치닫고 있단 말입니다. 밤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이 뭐냐는 거죠.
이 밤이 점점 깊어지면 낮이 가까이 왔다는 걸 의미하죠. 밤은 아침을 예고하고 있는 거예요. 낮은 저녁을 예고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고로 밤이 깊었다 하는 이 현실 속에서 밤에서 밤을 생각해선 안되고 밤에 침륜되고 밤에 젖어 들어서 밤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이 밤은 지나가니까요. 점점 깊어지고 아침으로 향하고 있으니까. 그 시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말이죠. 경제, 정치, 문화, 도덕, 그 모든 면에서 어두워졌습니다. 캄캄해집니다. 어두워졌는데 이 어두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겁니다. 경험하고야 깨닫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경험하기 전에 알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라는 걸 하지 않습니까 공부라는 게 뭡니까 다른 사람이 미리 경험한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어서 전수해주어서 내가 경험하기 전에 아는 거죠. 자 시집가기 전에 시집살이를 알고 결혼하기 전에 결혼을 알고 죽기 전에 죽음을 알고 그것이 바로 지혜가 아닙니까. 왜 꼭 죽어야만 죽음을 알겠습니까. 죽을 때 가서야 죽음을 알겠습니까, 미리 알아야죠. 그런고로 밤이 깊었다, 할 때에 우리의 의식도 밤에 묶여서는 안 된다는 거죠. 캄캄한 밤에 살고 있어도 우리의 생각만은 벌써 저 앞에 가 있어야 되요. 저 아침에 가 있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아침이 오고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하는 겁니다. 밤은 깊었다! 이 사실은 아침이 다가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완전히 밖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밤을 지내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 남자들은 군대에 나가니까 말이죠. 저는 그 군대 나가서 보초 설 때 꼬박 서서 하늘을 쳐다보며 밤을 지새우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 밤을 밖에서 세워 보면 말입니다 특별한 게 있어요. 초저녁에는 빛이 없어도 좀 훤해요. 그러다가 점점, 점점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밤 세시쯤 되면요 깜깜해지면서 전혀 별빛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어두워졌다가 저 동쪽에서 새벽 별이 반짝하게 떠오르고 훤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동녘 쪽이 훤해지는 것. 얼마나 반갑고 신비로운지 알 수가 없어요. 밤이 깊었다, 이것은 아침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의식해요. 그래서 깊은 밤에서 아직 밤이에요. 점점 깊어만 가고 있어요. 이 깊어만 가는 이 밤에서 우리는 저 아침을 생각해야 한다 그 말이에요. 벌써 우리의 생각과 느낌도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오늘의 삶에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현실에 살면서 현실만 생각해선 안되죠. 젊었다고 젊음만 생각해선 안되죠. 우리는 다음 스테이지, 다음 단계를 계속 생각하고 의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의식은 벌써 저 아침에 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유명한 역사가인 찰스 베어드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역사가인데 어떤 분이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평생 역사를 연구하면서 역사 연구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간단하게 네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이나 국가를 심판하실 때, 혹은 멸망시키려고 할 때는 권세욕에 날뛰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이요. 개인이나 국가나 간에 교만하면 망해요.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아하! 끝났구나" 그렇게 볼 수 있다 말입니다. 역사 속에서 깨달은 거예요. 교만하면 망하는 거예요. 그걸 꼭 잊지 말아야돼요.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기 때문이에요.
둘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맷돌이라고 하는 것, 심판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아주 천천히 돌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돌지 않는 것도 같고 심판이 없는 것도 같은데 아니요. 악과 선, 불의와 의를 아주 고르게 세밀하게 골라주시고 심판하신다. 예외 없이. 절대 숨길 수가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가 세밀하게 세밀하게 역사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벌이 꽃 속에 들어가서 꿀을 빨아내는데 마치 강도질하는 거와 같죠. 이 꽃, 저 꽃 다니면서 들어가서 꿀을 빨아내는 것 허가도 받지 않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꿀을 도적질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묘한 진리가 됩니다. 이렇게 벌이 이 꽃, 저 꽃 옮겨다니면서 꽃의 술을 옮겨놓는단 말입니다. 결국은 도적질하는 것 같으나 벌은 꽃을 위해서 심부름하고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악도 있고 도적질도 있고 강도도 있다 말이에요. 포탈하는 일도 있고 많은 침략도 있는 것 같아도 결국은 이 모든 일을 통해서 더 귀한 일, 더 큰 일들이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
여러분, 전쟁과 재난 엄청난 사건이지만 이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한 일들을 이루셨어요. 그것을 역사에서 보았노라. 또 하나는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 별빛도 보이지 않고 아주 어두워지고 말 것 같지만은 아니요, 저 앞에 소망의 별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노라. 다 망하는 것 같은데 망하지 않아요. 소망의 별이 나타나는 것을 역사에서 보았노라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봅니다. 동시에 구원의 날이 가까워 왔습니다. 전에 보다 더 가까웠다. 구원의 날이.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보는 것이죠. 구원을 의식하는 것이죠. 이것을 복음적 역사의식이라고 합니다. 심판 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심판과 함께 구원의 아침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 여호와 하나님의 경륜,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오묘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말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24장, 25장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말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끔직한 이야기는 거기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진과 전쟁과 재난과 형제간에 미워하고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하는 엄청난 혼란과 무질서와 고통 이런 것들을 예수님께서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두 가지 진리를 말씀합니다.
"이런 어려운 세대가 오겠다. 점점 더 어두워지겠다. 그러나 이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역사의식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안정이 없다고, 우리에게 평안히 없다고 왜 이렇게 늘 세상은 흔들리고 있느냐 하지만은 아니요, 이 흔들리는 역사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나는 가끔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북한에 교인이 얼마나 있습니까" "교회가 몇 개나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 어려운 핍박 속에 교인이 있을까요" 그렇게 묻습니다 만은 저는 그럴 때마다 대답합니다.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믿느냐고, 저는 때마다 다시 설명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1950년 중국 공산당이 교회를 다 문닫아 버렸어요. 중국에 있는 모든 교회를 다 문닫아 버리고 창고로 사용했습니다. 자 그런데 82년에 이제쯤은 교회가 다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 만만하게 하도 세계에서 말들을 하니까 교회 문을 열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6000만명의 교인이 있습니다. 지금은 1억 2000만이라고 합니다.
저도 중국 지금 방문해 보면은 놀랍습니다. 이 세상에 중국처럼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린 곳이 없습니다. 예배당은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좌우간 마당에서, 이 땡볕에 마당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300명 이상이 모여 가지고요 나는 중국말로 하니까 무슨 말하는 지는 모르지만 목사님도 아닌 어떤 분이 올라가서 설교를 하는데요 좌우간 두 시간을 합니다 두 시간. 그래도 한 사람의 동요도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요, 얼마나 간절한지. 이게 중국입니다. 공산주의 40년 동안 무얼 한 거 같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이루신 거예요. 평안할 때, 마음대로 복음 전할 때, 교회가 마음대로 모일 때, 그런 때에 300만 밖에 없었어요 교인이. 핍박과 환난과 고통, 많은 고난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이루신 거예요. 이것이 복음적 역사의식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자 이런 밝은 아침이 오고있기 때문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밤이에요 지금은, 지금은 밤인데 이제 낮이 올 거니까 아침이 다가오니까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어두운 가운데 있지 말아라 하는 거죠. 여자분들 화장이라는 거 있지요. 밤 화장이 있고 낮 화장이 있다고 그러데요. 그 밤 화장이라는 건 좀 더 야하게 해서 뭐 이렇게 하고 뭐 눈도 시커멓게 아이새도하고 그리고 뭐 작은 눈도 크게 보이게 하고 뭐 어떻게 깊지 않은 눈도 깊게 만들고 뭐 그렇게 재주를 부리는가 봐요. 한데 단 알아야 합니다. 이거는 밤에만 통하는 거예요. 불그스레한 촛불을 켜놓고 마주 앉아야 그게 그 거짓말이 통하는 거지 이 밤 화장을 가지고 대낮에 햇빛에 나가보세요.
정신나간 여자라고 그래요. 안 그렇습니까 이걸 우리가 알아야 되요. 낮에 할 일이 있고 밤에 할 일이 있어요. 밤에 할 일을 우리가 그대로 가지고 그 모습으로 낮을 맞을 수는 없어요. 아침을 맞을 수는 없단 말입니다. 그런고로 지금은 밤이요. 그러나 앞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에 아침이 오고있으니까 우리는 낮에와 같이 밤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지금 빛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빛을 보듯이 밝은 햇빛 앞에 선 것처럼 그렇게 행하라 그 말입니다.
미국이 낳은 유명한 세계적인 목사님 조나단 에드워드라고 있습니다.
그는 다섯 가지를 결심하고 한평생 지켜 그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전력을 다 해서 주님의 뜻을 이룰 것이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거나 욕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셋째는 앙갚음을 하거나 혹 분하다고 해서 복수하려는 마음에서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넷째는 걱정거리나 부끄러움으로 남을 일은 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으로 남을 일은 하지 않는다, 그걸 잊지 마세요. 젊었을 때 되는대로 살아놓고 나이 많아서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고개를 들 수 없는 사람들, 저는 그래서 결혼 주례를 할 때마다 젊은 사람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신랑, 신부다. 내일은 아버지, 어머니다. 조금 있으면 할아버지 할머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되돌아보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다오. 간혹 보면은요 그 잠깐에 순간 잘못하고 또 잠깐 참지 못하고 그래서 저 먼 훗날에 후회하고 뉘우치고 이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참 괴로운 거 아닙니까 부끄러움으로 남을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시간을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시간으로 보낸다. 절대로 부정적이거나 절대로 소극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역사는 윤회가 아닙니다.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이 그러하듯이 계속 앞으로만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어두움 속에서 빛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 마치 옷을 벗듯이 어두움의 일, 어두움에 관계된 거 다 벗어버립시다. 그리고 빛에 갑옷을 입자. 환한 밝은 빛,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리할 때 아침이 와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밝은 빛이 내게 다가와도 그는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구원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웠습니다. 구원을 바라보며 새로운 역사의식을 가지고 다시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희랍 신화에 레테호수의 이야기라는 그런 재미있는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대개 이렇습니다. 한 여인이 스틱스강에서 이제 영원한 나라로 강을 건너가려고 하는 시간입니다. 뱃사공이 그에게 말해줍니다 "이 강을 건너기 전에 레테호수의 물을 마시고 갈 것인지 마시지 아니하고 갈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에 이 여인은 다시 물어봅니다.
"그래 이 물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뱃사공은 이제 말해줍니다. "이 물을 마시게 되면 지난날의 괴로움을 말끔히 잊어버리게 됩니다. " 이 여인은 눈을 반짝이면서 "아 그럼 빨리 마셔야지요. 고통스러운 일, 지난 과거들 말끔히 잊어버리고 싶은데요" 했더니 뱃사공이 다시 한 마디 덧붙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 물을 마시면 동시에 기뻤던 일도 다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 순간 여인은 고민에 빠집니다. 아프고 괴로웠던 일 잊어버리고 싶지요. 그러나 동시에 기뻤던 일도 다 잊어버려야 한다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참 생각하고 나서 "마시지 안겠어요"하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 잊어버리고 몽롱한 가운데서 평안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민하며 고통을 느끼며 걱정하면서 행복한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뭐든지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어요. 글쎄올시다. 잊어버린다고 해결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내 기억에서 없어진다고 해서 사건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1년을 보내면서 무엇인가 고민할 것은 고민해야 됩니다. 생각할 것은 생각해야 그에게 밝은 미래가 있는 것이올시다. 아프고 괴롭고 쑤시지만은 그래도 생각해야 될 것은 생각해야 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혹은 시작하는 중간에든지 혹은 있던 일을 마감하려고 할 때 우리는 꼭 네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또 당연히 해야합니다.
첫째는 손익계산입니다.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었는가 무엇을 얻을 것이며 무엇을 잃게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백해무익한 것을 계속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꼭 담배 피우는 사람처럼. 제게도 나쁘고 남에게도 나쁘고, 아무리 설명해도 백해무익하다는데 그걸 피우면서 이리저리 구박받으며 쫓겨다니는 걸 봅니다. 참 안됐더라고요. 요새는 비행장에서 이 사람들 아주 구박받거든요. 비행기에서도 못 피우게 하고 그래서 틈틈이 어떻게 좀 피워보려고 하는 걸 보면 참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요. 어쨌든 손익계산이 분명해야 됩니다. 뻔히 손해나는 일을 알면서 그 일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은 구제불능입니다. 유익하다면 무엇이 유익한가 오늘 유익할 것인가 내일 유익할 것인가 보다 더 먼 장래를 위해서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손익계산에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목적을 물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했던지 간에 무엇을 위하여 한 것인가,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었나 이제 다 지나고 나서 결산하면서 물어봅시다. 정말로 목적이 무엇이었나 간혹 우리 교회 봉사하는 분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있어요. 봉사는 열심히 한 것처럼 되어 있는데 마지막에 보면 원망 불평이요. 이제 나는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한 일이냐고 당신이 일하는 목적이 무엇이었냐고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로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이 일을 해야 했던가 목적을 재진단해야 할 것이구요 또 하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잘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대개 보면 그렇더만요. 일이 잘될 때는 재수 좋았다, 그래버려요. 그 잘된 이유가 있어요. 잘된 이유를 확실히 알아야 그것을 지속할 수가 있겠는데 잘 된 이유에 대해서 깊은 연구가 없습니다. 그저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한번에 끝나고 말아요. 그런가 하면 잘못되었다고 할 때는 이것은 깊이 반성해야 됩니다. 아무리 괴롭고 아파도 잘못된 건 잘못된 바를 알아야 됩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또 팔자라 그래버리거든요. 잘못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잘못의 이유에 대해서 냉철한 판단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어디까지 왔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시점을 이해해야 됩니다. 과거는 현재로, 현재는 미래로 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시점에 있느냐는 겁니다. 잘 아시는 대로 그래서 일을 마감해야 될 사람이 시작하겠다고 그러면 그것을 주책이라고 하는 겁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은 이제는 하던 일만 하고 하던 일도 좀 줄여가면서 일을 해야 되는데 이제 와서 뭘 한다, 뭘 한다 그거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의 생각입니다. 내가 이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이 뭔가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카이로스, 이 프레젠트 타임은, 이 시간은 내게 뭘 말하고 있는가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 시기를 알라!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가 아닙니다 카이로스! 주어진 시간, 이 시점에 의미를 바로 알아라. 오늘이 몇 시입니까 오늘이 며칠입니까 이거 모르면 안되거든요. 저 브라질에 가니까 우리 선교사님이 수고하는 그 지역은 말입니다 적도가 지나가는 지역 아니에요. 그래서 여름, 겨울이 없어요. 없다 보니까 사람들이 춘하추동이 없어서 해 가는 걸 모른답니다. 나이를 모른답니다. 실제로 자기 마누라 나이도 모른답니다. 얼마쯤 됐을 거라고 그런데요. 얼마쯤, About. 그렇게 대답을 해요. 나이를 물어봐야 대답이 없어요. 얼마쯤 됐을 거라고. 그게 편하겠습니다. 까짓 거. 대충 알고 사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시점. 내가 처한 시점에 대해서 확실해야 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 밤이 깊었다는 거죠. 지금 이 시점이 깊은 밤으로 치닫고 있단 말입니다. 밤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이 뭐냐는 거죠.
이 밤이 점점 깊어지면 낮이 가까이 왔다는 걸 의미하죠. 밤은 아침을 예고하고 있는 거예요. 낮은 저녁을 예고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고로 밤이 깊었다 하는 이 현실 속에서 밤에서 밤을 생각해선 안되고 밤에 침륜되고 밤에 젖어 들어서 밤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이 밤은 지나가니까요. 점점 깊어지고 아침으로 향하고 있으니까. 그 시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말이죠. 경제, 정치, 문화, 도덕, 그 모든 면에서 어두워졌습니다. 캄캄해집니다. 어두워졌는데 이 어두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겁니다. 경험하고야 깨닫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경험하기 전에 알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라는 걸 하지 않습니까 공부라는 게 뭡니까 다른 사람이 미리 경험한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어서 전수해주어서 내가 경험하기 전에 아는 거죠. 자 시집가기 전에 시집살이를 알고 결혼하기 전에 결혼을 알고 죽기 전에 죽음을 알고 그것이 바로 지혜가 아닙니까. 왜 꼭 죽어야만 죽음을 알겠습니까. 죽을 때 가서야 죽음을 알겠습니까, 미리 알아야죠. 그런고로 밤이 깊었다, 할 때에 우리의 의식도 밤에 묶여서는 안 된다는 거죠. 캄캄한 밤에 살고 있어도 우리의 생각만은 벌써 저 앞에 가 있어야 되요. 저 아침에 가 있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아침이 오고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하는 겁니다. 밤은 깊었다! 이 사실은 아침이 다가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완전히 밖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밤을 지내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 남자들은 군대에 나가니까 말이죠. 저는 그 군대 나가서 보초 설 때 꼬박 서서 하늘을 쳐다보며 밤을 지새우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 밤을 밖에서 세워 보면 말입니다 특별한 게 있어요. 초저녁에는 빛이 없어도 좀 훤해요. 그러다가 점점, 점점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밤 세시쯤 되면요 깜깜해지면서 전혀 별빛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어두워졌다가 저 동쪽에서 새벽 별이 반짝하게 떠오르고 훤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동녘 쪽이 훤해지는 것. 얼마나 반갑고 신비로운지 알 수가 없어요. 밤이 깊었다, 이것은 아침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의식해요. 그래서 깊은 밤에서 아직 밤이에요. 점점 깊어만 가고 있어요. 이 깊어만 가는 이 밤에서 우리는 저 아침을 생각해야 한다 그 말이에요. 벌써 우리의 생각과 느낌도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오늘의 삶에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현실에 살면서 현실만 생각해선 안되죠. 젊었다고 젊음만 생각해선 안되죠. 우리는 다음 스테이지, 다음 단계를 계속 생각하고 의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의식은 벌써 저 아침에 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유명한 역사가인 찰스 베어드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역사가인데 어떤 분이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평생 역사를 연구하면서 역사 연구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간단하게 네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이나 국가를 심판하실 때, 혹은 멸망시키려고 할 때는 권세욕에 날뛰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이요. 개인이나 국가나 간에 교만하면 망해요.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아하! 끝났구나" 그렇게 볼 수 있다 말입니다. 역사 속에서 깨달은 거예요. 교만하면 망하는 거예요. 그걸 꼭 잊지 말아야돼요.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기 때문이에요.
둘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맷돌이라고 하는 것, 심판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아주 천천히 돌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돌지 않는 것도 같고 심판이 없는 것도 같은데 아니요. 악과 선, 불의와 의를 아주 고르게 세밀하게 골라주시고 심판하신다. 예외 없이. 절대 숨길 수가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가 세밀하게 세밀하게 역사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벌이 꽃 속에 들어가서 꿀을 빨아내는데 마치 강도질하는 거와 같죠. 이 꽃, 저 꽃 다니면서 들어가서 꿀을 빨아내는 것 허가도 받지 않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꿀을 도적질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묘한 진리가 됩니다. 이렇게 벌이 이 꽃, 저 꽃 옮겨다니면서 꽃의 술을 옮겨놓는단 말입니다. 결국은 도적질하는 것 같으나 벌은 꽃을 위해서 심부름하고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악도 있고 도적질도 있고 강도도 있다 말이에요. 포탈하는 일도 있고 많은 침략도 있는 것 같아도 결국은 이 모든 일을 통해서 더 귀한 일, 더 큰 일들이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
여러분, 전쟁과 재난 엄청난 사건이지만 이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한 일들을 이루셨어요. 그것을 역사에서 보았노라. 또 하나는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 별빛도 보이지 않고 아주 어두워지고 말 것 같지만은 아니요, 저 앞에 소망의 별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노라. 다 망하는 것 같은데 망하지 않아요. 소망의 별이 나타나는 것을 역사에서 보았노라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봅니다. 동시에 구원의 날이 가까워 왔습니다. 전에 보다 더 가까웠다. 구원의 날이.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보는 것이죠. 구원을 의식하는 것이죠. 이것을 복음적 역사의식이라고 합니다. 심판 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심판과 함께 구원의 아침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 여호와 하나님의 경륜,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오묘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말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24장, 25장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말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끔직한 이야기는 거기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진과 전쟁과 재난과 형제간에 미워하고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하는 엄청난 혼란과 무질서와 고통 이런 것들을 예수님께서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두 가지 진리를 말씀합니다.
"이런 어려운 세대가 오겠다. 점점 더 어두워지겠다. 그러나 이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역사의식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안정이 없다고, 우리에게 평안히 없다고 왜 이렇게 늘 세상은 흔들리고 있느냐 하지만은 아니요, 이 흔들리는 역사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나는 가끔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북한에 교인이 얼마나 있습니까" "교회가 몇 개나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 어려운 핍박 속에 교인이 있을까요" 그렇게 묻습니다 만은 저는 그럴 때마다 대답합니다.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믿느냐고, 저는 때마다 다시 설명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1950년 중국 공산당이 교회를 다 문닫아 버렸어요. 중국에 있는 모든 교회를 다 문닫아 버리고 창고로 사용했습니다. 자 그런데 82년에 이제쯤은 교회가 다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 만만하게 하도 세계에서 말들을 하니까 교회 문을 열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6000만명의 교인이 있습니다. 지금은 1억 2000만이라고 합니다.
저도 중국 지금 방문해 보면은 놀랍습니다. 이 세상에 중국처럼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린 곳이 없습니다. 예배당은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좌우간 마당에서, 이 땡볕에 마당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300명 이상이 모여 가지고요 나는 중국말로 하니까 무슨 말하는 지는 모르지만 목사님도 아닌 어떤 분이 올라가서 설교를 하는데요 좌우간 두 시간을 합니다 두 시간. 그래도 한 사람의 동요도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요, 얼마나 간절한지. 이게 중국입니다. 공산주의 40년 동안 무얼 한 거 같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이루신 거예요. 평안할 때, 마음대로 복음 전할 때, 교회가 마음대로 모일 때, 그런 때에 300만 밖에 없었어요 교인이. 핍박과 환난과 고통, 많은 고난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이루신 거예요. 이것이 복음적 역사의식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자 이런 밝은 아침이 오고있기 때문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밤이에요 지금은, 지금은 밤인데 이제 낮이 올 거니까 아침이 다가오니까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어두운 가운데 있지 말아라 하는 거죠. 여자분들 화장이라는 거 있지요. 밤 화장이 있고 낮 화장이 있다고 그러데요. 그 밤 화장이라는 건 좀 더 야하게 해서 뭐 이렇게 하고 뭐 눈도 시커멓게 아이새도하고 그리고 뭐 작은 눈도 크게 보이게 하고 뭐 어떻게 깊지 않은 눈도 깊게 만들고 뭐 그렇게 재주를 부리는가 봐요. 한데 단 알아야 합니다. 이거는 밤에만 통하는 거예요. 불그스레한 촛불을 켜놓고 마주 앉아야 그게 그 거짓말이 통하는 거지 이 밤 화장을 가지고 대낮에 햇빛에 나가보세요.
정신나간 여자라고 그래요. 안 그렇습니까 이걸 우리가 알아야 되요. 낮에 할 일이 있고 밤에 할 일이 있어요. 밤에 할 일을 우리가 그대로 가지고 그 모습으로 낮을 맞을 수는 없어요. 아침을 맞을 수는 없단 말입니다. 그런고로 지금은 밤이요. 그러나 앞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에 아침이 오고있으니까 우리는 낮에와 같이 밤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지금 빛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빛을 보듯이 밝은 햇빛 앞에 선 것처럼 그렇게 행하라 그 말입니다.
미국이 낳은 유명한 세계적인 목사님 조나단 에드워드라고 있습니다.
그는 다섯 가지를 결심하고 한평생 지켜 그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전력을 다 해서 주님의 뜻을 이룰 것이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거나 욕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셋째는 앙갚음을 하거나 혹 분하다고 해서 복수하려는 마음에서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넷째는 걱정거리나 부끄러움으로 남을 일은 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으로 남을 일은 하지 않는다, 그걸 잊지 마세요. 젊었을 때 되는대로 살아놓고 나이 많아서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고개를 들 수 없는 사람들, 저는 그래서 결혼 주례를 할 때마다 젊은 사람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신랑, 신부다. 내일은 아버지, 어머니다. 조금 있으면 할아버지 할머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되돌아보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다오. 간혹 보면은요 그 잠깐에 순간 잘못하고 또 잠깐 참지 못하고 그래서 저 먼 훗날에 후회하고 뉘우치고 이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참 괴로운 거 아닙니까 부끄러움으로 남을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시간을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시간으로 보낸다. 절대로 부정적이거나 절대로 소극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역사는 윤회가 아닙니다.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이 그러하듯이 계속 앞으로만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어두움 속에서 빛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 마치 옷을 벗듯이 어두움의 일, 어두움에 관계된 거 다 벗어버립시다. 그리고 빛에 갑옷을 입자. 환한 밝은 빛,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리할 때 아침이 와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밝은 빛이 내게 다가와도 그는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구원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웠습니다. 구원을 바라보며 새로운 역사의식을 가지고 다시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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