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벧엘로 올라가라(3)
본문
우리는 지금 천년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려고 기다리고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의 관심은 천년의 마지막과 새 천년의 시작을 어디서 맞이할까에 쏠려 있습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는 밀레니엄 축제를 위해 이미 호텔예약이 다 끝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어느 호텔에서는 그 하루을 보내는데 천만원 이상하는 방도 마련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 시간들에 대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나는 논의하지 않겠다고 해도 세상은 이 시간에 대해 한참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루를 살아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산다는 우리 신앙인들이 이 날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것입니다. 지혜롭게 살고 세월을 아끼라,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저 세상을 대항해서 싸운다고 하지 않는다고 해도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신앙인다운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새 천년 맞이 특별 새벽기도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벧엘로 올라가자"입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어디에서도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특별히 역사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벧엘입니다. 벧엘은 높은 곳입니다. 그래서 벧엘로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곳에 벧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산을 한번 올라가 보십시오. 멀리 내다 보이기에 생각이 달라집니다. 새로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벧엘에 올라가서 넓은 지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생각을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 되어 보십시오. 남이 가지지 못한 책임을 가져 보십시오. 생각이 달라집니다. 안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내려가면 안됩니다.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신앙인의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나라는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크게 세 개의 도로가 있습니다. 첫째로, 지중해를 따라가는 해안도로가 있습니다. 이 길은 전쟁하러 가는 군사용도로입니다.
두번째는 요단 강변을 중심으로 왕의 대로가 있습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상인들이 주로 다닙니다. 마지막으로 해안도로와 왕의 대로 중심에 위치한 도로입니다. 이 도로는 산악지방의 길로 높은 곳에 있습니다. 이 길을 가리켜 족장들의 길이라고 합니다. 이 족장도로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들에게 가라고 하신 길입니다. 왕의 대로와 같이 요단강이 있고 옥토가 있는 좋은 길로 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높은 산악지방으로 다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 족장도로는 800-1000m 의 고산지역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여리고성은 바다보다 350m 밑에 있습니다. 사해 바다도 역시 400m 아래에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이 사해바다 밑에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얼마나 낮은 곳에 있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비하면 족장도로는 1000m이상 이나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입니다. 벧엘이 880m, 예루살렘이 800m, 헤브론이 930m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낮은 곳에 다니지 말고 높은 곳에서 생활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이 낮은 곳에 가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땅으로 내려갔을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갔었을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야곱도 세겜땅에 갔었을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높은 곳을 다니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 높은 곳에 삽니다. 반면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부분 낮은 곳에 삽니다. 사실 높은 곳에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방에 돌 뿐이어서 집들도 다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물도 제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곧 죽을 것 같습니다만 죽지 않습니다. 거기엔 거룩한 것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은혜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축복받는 것은 높은 것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왜 당신들은 기름진 요단강가에 살지 않는가"를 물으면 그런것을 생각해 본일이 없다고 합니다. 땅이 얼마나 좋은지,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에 가치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학군이 좋고, 아파트가 좋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단 한가지 이들의 관심은 높은 곳에만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막강한 힘을 가진 이유도 높은 곳을 찾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요단강가와 갔은 좋은 땅만 찾아 다녔다면 아마도 그 나라는 농업이 발전한 나라로 발전했을런지는 몰라도 세계를 움직이는 두뇌들, 정치가, 과학자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곡식을 심고 잘 살아야 겠다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런것들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은 높은 것을 사랑하고 그곳에 거하시는 여호와의 영광과 축복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 그 권세아래 거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서 영혼과 심령이 잘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 그 가정과 기업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비와 늦은비로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를 많이 받고 사는 것이 높은 곳입니다. 그래서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낮은 세상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높은 곳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집으로 가라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벧엘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고향 땅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가족이 있었고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때에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원수를 갚겠다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얍복강가에 엎드려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세겜땅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살기 좋은 땅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땅 추장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겁탈하고 만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디나의 오빠들이 화가나서 복수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세겜이 찾아와 혼인을 청하고 야곱의 아들들은 혼인을 허락하는 대신 그 땅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것을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그 조건을 받아들인 세겜종족들이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너무나 잘 된것 같습니다. 그 이방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가 했더니 왠일입니까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받아서 꼼짝 못하는 그들을 모두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변 종족들이 야곱의 식구들을 죽이겠다고 야곱의 식구들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되겠습니까 지난 신문에 보니 초등학교 학생들이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았다고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미술시간 인데 너무 떠들어서 손바닥을 때린 것 때문에 아이들이 신고를 했고 파출소에서 출동을 한 것입니다. 61세 된 선생님은 그만 사표를 던지고 말았습니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교육을 기대하겠습니까 학교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커녕 점점 문제만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진로 중 어느 길로 가야 좋은 것이고, 잘사는 길인지를 많이 고민하고 있지만 이 고민을 해결해 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님은 이때 말씀하기를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벧엘은 어디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사2:3에"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여호와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를 가르치실 것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르치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문제와 진로를 해결하겠다고 합니까 어디에 가도 해결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벧엘로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있을 곳은 성전이고 갈 곳도 여호와 하나님이 품밖에는 없습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주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 있는 그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주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도 알수 있습니다만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잘된 것은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공산당입니다. 아무리 힘을 합치고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민족은 복을 받을수 없었습니다. 주를 떠난 자는 죄와 슬픔과 불행밖에는 없습니다. 다른것과 비교 할수 없는 고생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나무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질뿐 아니라 태워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이세상에는 무엇을 하든지, 어디서든지 길이 있게 마련입니다. 설상 비행기에서 떨어져도 산사람이 있고, 강물에 빠져도 살아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를 떠나서는 산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머물곳은 벧엘 뿐입니다. 올라갈 곳도 벧엘뿐입니다. 그래서 벧엘로 올라갈때 기쁘고 거할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모든 병자들이 치료받고, 목마른 자가 마시우고, 죄가 용서 받고, 가난한 자가 양식을 얻고, 옷없는 자가 옷을 얻을 것이며 위로와 기쁨과 평안과 승리를 얻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벧엘로 올라오라고 하는데도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벧엘로 올가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
벧엘은 우리를 좋게 하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구분이 없습니다. 마치 나일강과 같습니다. 다 적셔주고 비옥하게 만듭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러나 벧엘로 올라가니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벧엘 때문에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살 길이 있습니다. 야곱은 벧엘로 가기로 결단합니다. 야곱은 모든 식구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중에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1)가정을 영적 권위로 다스려야 합니다.
야곱은 모든 식구들, 자기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딸 디나의 문제를 해결할 때 야곱은 가장이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토록 했습니다. 그곳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가장의 권위는 없고 그저 그들의 감정만 있고 자신들의 생각만 있고 복수심만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적인 권위를 세워 벧엘로 가자고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벧엘로 올라가려고 할때 나 혼자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가족 모두 올라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일을 위해 우리가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2)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또 이방신상을 버리라고 합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라헬은 친정에서 나올 때 '드라빔' 이라는 신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의지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내가 우상섬기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말리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탐욕도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책망하실때 여호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서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으면 우리는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하고 그 외의 것은
두번째로가야 합니다. 이것으로, 저것으로, 편의에 따라 이리갔다, 저리갔다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리심,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믿고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재물도 구하고, 직장도 구하고, 가정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여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가정에 복을 주시면 내 가정이 잘 되는 것입니다. 내 사업에 복을 주시면 사업이 잘 되는 것이고 자녀에게 복을 주시면 자녀가 잘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시간에 한시간 더 잠을 잤다고 해서 나을 것이 없습니다. 잠 못잔 시간만큼 여호와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받게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섬겼던 이방신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시기 바랍니다.
3)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죄를 정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만 지키고 일부는 지키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생각대로 살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내 소망이고 내게 은혜 주실 분으로 믿고 겸손이 무릎을 꿇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4)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가정임을 증거해야 합니다.
의복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옛 옷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옷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유니폼입니다. 축구선수의 옷을 입으면 축구선수로 보이는 것입니다. 야구선수의 옷으로 바꿔 입으면 야구선수인줄 압니다. 어느 직장인의 옷을 입으면 그 직장에 소속된 줄로 압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어디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주님의 옷을 입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거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다운 증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전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도 그것이 그렇게 자랑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찬송을 가지고 다녀도 누구도 보이지 않도록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목사님이 "가방은 저리 치워라. 그리고 성경을 가슴에 품고 다녀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그때부터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새삼 그것이 내게 주는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가방에 넣고 다닐때는 그저 아무데나 갈수 있었지만 성경책을 들고 다니니 갈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의 구분이 자연적으로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지켜주고 세상이 나를 두려워 하게 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겠다고 결정한 그 순간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지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내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환란을 당해 보십시오. 세상은 나에게 응답은 커녕 있던 것 까지도 빼앗아 갑니다. 작년에 IMF가 터졌을때 사업하시던 분은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사업이 부도나서 어렵다고 찾아가도 모른척 하고 떠나가는 것이 이 세상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어려움당할때 더욱 사랑해 주시고 주님을 찾아갈때 기쁨으로 맞아 주시고 은혜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기적의 경험이 아니라 단을 쌓는 것입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께 단을 쌓으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옛날에 그토록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했지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지도 않고 벧엘로 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도 같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홍해바다를 건넜고 반석에서 물을 먹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받았고 아말렉군대를 이스라엘은 군대없이도 물리쳤습니다. 또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고 신이 헤어지거나 옷이 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무슨 문제든지 해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나안 땅에 들어갈때 그 땅을 정탐하고온 사람들,불신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광야생활을 40년간이나 유리하며 방황한 것입니다. 광야생활 40년은 신앙생활의 40년 같지만 허송세월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끔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벧엘로 올라가기 전 가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나안땅을 정복하지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지난세월을 그저 허무하게 보내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이 아닙니까 세상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사모하는 것이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올라가면 세상이 두려워 하는 자가 됩니다.
야곱과 그의 가정은 벧엘로 올라가는 준비를 합니다. 4절에 보면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근처 상수리 나무아래 묻고" 모든 이방신상과 귀거리를 땅에 뭍었습니다. 옛날에는 귀거리도 우상이었던것 같습니다. 좋은 신상 같은 것은 대부분 금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그것을 땅에 묻는 것입니다. 과감히, 완전히 버리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간다면 이 정도의 손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울왕은 삼상15장에 아말렉 군대와 전쟁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다 죽이라는 것입니다. 왕도 죽이고 그가 가진 전리품을 가 없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왕도 살리고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기지 아니하고 가치없고 나쁜것만 없앤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묻을 때 온전히 묻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5-6절에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담대하게 살아갈 때에 세상은 우리를 두려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살아가니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당신의 교회는 모이지 않습니까" 혹은 "오늘 교회에서는 모두 모여 송구영신 예배를 드릴텐데 당신은 왜 보신각 종 앞에 와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시는 분은 혹시 안계십니까 그러니 손가락질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세상이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음성을 들어여 합니다.
7절에 보니 "그거 거기서 단을 쌓고 그 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교회에 아무리 오래 나오며 뭐합니까 이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불러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좋은 목사님은 여러분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십니다. "너를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 이라 하리라" 이미 그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지만 그는 야곱처럼 산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그를 야곱으로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벧엘에서만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창17장에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이라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고 네 허리에서 왕들이 나오리라" 고 말씀하신 것처럼 가문이 복되게 하신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산에서 내리는 놀라운 축복의 은혜가 우리의 가정과 사업과 우리의 앞날을 형통해 하시는 놀라운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 일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번 연말연시를 주님 앞에 나와 은혜를 받아 이 마지막때를 승리하는 성도가 될 수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인은 신앙인의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나라는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크게 세 개의 도로가 있습니다. 첫째로, 지중해를 따라가는 해안도로가 있습니다. 이 길은 전쟁하러 가는 군사용도로입니다.
두번째는 요단 강변을 중심으로 왕의 대로가 있습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상인들이 주로 다닙니다. 마지막으로 해안도로와 왕의 대로 중심에 위치한 도로입니다. 이 도로는 산악지방의 길로 높은 곳에 있습니다. 이 길을 가리켜 족장들의 길이라고 합니다. 이 족장도로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들에게 가라고 하신 길입니다. 왕의 대로와 같이 요단강이 있고 옥토가 있는 좋은 길로 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높은 산악지방으로 다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 족장도로는 800-1000m 의 고산지역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여리고성은 바다보다 350m 밑에 있습니다. 사해 바다도 역시 400m 아래에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이 사해바다 밑에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얼마나 낮은 곳에 있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비하면 족장도로는 1000m이상 이나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입니다. 벧엘이 880m, 예루살렘이 800m, 헤브론이 930m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낮은 곳에 다니지 말고 높은 곳에서 생활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이 낮은 곳에 가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땅으로 내려갔을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갔었을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야곱도 세겜땅에 갔었을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높은 곳을 다니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 높은 곳에 삽니다. 반면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부분 낮은 곳에 삽니다. 사실 높은 곳에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방에 돌 뿐이어서 집들도 다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물도 제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곧 죽을 것 같습니다만 죽지 않습니다. 거기엔 거룩한 것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은혜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축복받는 것은 높은 것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왜 당신들은 기름진 요단강가에 살지 않는가"를 물으면 그런것을 생각해 본일이 없다고 합니다. 땅이 얼마나 좋은지,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에 가치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학군이 좋고, 아파트가 좋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단 한가지 이들의 관심은 높은 곳에만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막강한 힘을 가진 이유도 높은 곳을 찾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요단강가와 갔은 좋은 땅만 찾아 다녔다면 아마도 그 나라는 농업이 발전한 나라로 발전했을런지는 몰라도 세계를 움직이는 두뇌들, 정치가, 과학자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곡식을 심고 잘 살아야 겠다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런것들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은 높은 것을 사랑하고 그곳에 거하시는 여호와의 영광과 축복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 그 권세아래 거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서 영혼과 심령이 잘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 그 가정과 기업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비와 늦은비로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를 많이 받고 사는 것이 높은 곳입니다. 그래서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낮은 세상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높은 곳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집으로 가라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벧엘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고향 땅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가족이 있었고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때에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원수를 갚겠다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얍복강가에 엎드려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세겜땅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살기 좋은 땅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땅 추장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겁탈하고 만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디나의 오빠들이 화가나서 복수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세겜이 찾아와 혼인을 청하고 야곱의 아들들은 혼인을 허락하는 대신 그 땅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것을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그 조건을 받아들인 세겜종족들이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너무나 잘 된것 같습니다. 그 이방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가 했더니 왠일입니까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받아서 꼼짝 못하는 그들을 모두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변 종족들이 야곱의 식구들을 죽이겠다고 야곱의 식구들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되겠습니까 지난 신문에 보니 초등학교 학생들이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았다고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미술시간 인데 너무 떠들어서 손바닥을 때린 것 때문에 아이들이 신고를 했고 파출소에서 출동을 한 것입니다. 61세 된 선생님은 그만 사표를 던지고 말았습니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교육을 기대하겠습니까 학교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커녕 점점 문제만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진로 중 어느 길로 가야 좋은 것이고, 잘사는 길인지를 많이 고민하고 있지만 이 고민을 해결해 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님은 이때 말씀하기를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벧엘은 어디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사2:3에"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여호와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를 가르치실 것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르치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문제와 진로를 해결하겠다고 합니까 어디에 가도 해결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벧엘로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있을 곳은 성전이고 갈 곳도 여호와 하나님이 품밖에는 없습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주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 있는 그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주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도 알수 있습니다만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잘된 것은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공산당입니다. 아무리 힘을 합치고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민족은 복을 받을수 없었습니다. 주를 떠난 자는 죄와 슬픔과 불행밖에는 없습니다. 다른것과 비교 할수 없는 고생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나무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질뿐 아니라 태워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이세상에는 무엇을 하든지, 어디서든지 길이 있게 마련입니다. 설상 비행기에서 떨어져도 산사람이 있고, 강물에 빠져도 살아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를 떠나서는 산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머물곳은 벧엘 뿐입니다. 올라갈 곳도 벧엘뿐입니다. 그래서 벧엘로 올라갈때 기쁘고 거할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모든 병자들이 치료받고, 목마른 자가 마시우고, 죄가 용서 받고, 가난한 자가 양식을 얻고, 옷없는 자가 옷을 얻을 것이며 위로와 기쁨과 평안과 승리를 얻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벧엘로 올라오라고 하는데도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벧엘로 올가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
벧엘은 우리를 좋게 하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구분이 없습니다. 마치 나일강과 같습니다. 다 적셔주고 비옥하게 만듭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러나 벧엘로 올라가니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벧엘 때문에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살 길이 있습니다. 야곱은 벧엘로 가기로 결단합니다. 야곱은 모든 식구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중에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1)가정을 영적 권위로 다스려야 합니다.
야곱은 모든 식구들, 자기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딸 디나의 문제를 해결할 때 야곱은 가장이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토록 했습니다. 그곳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가장의 권위는 없고 그저 그들의 감정만 있고 자신들의 생각만 있고 복수심만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적인 권위를 세워 벧엘로 가자고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벧엘로 올라가려고 할때 나 혼자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가족 모두 올라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일을 위해 우리가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2)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또 이방신상을 버리라고 합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라헬은 친정에서 나올 때 '드라빔' 이라는 신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의지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내가 우상섬기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말리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탐욕도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책망하실때 여호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서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으면 우리는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하고 그 외의 것은
두번째로가야 합니다. 이것으로, 저것으로, 편의에 따라 이리갔다, 저리갔다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리심,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믿고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재물도 구하고, 직장도 구하고, 가정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여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가정에 복을 주시면 내 가정이 잘 되는 것입니다. 내 사업에 복을 주시면 사업이 잘 되는 것이고 자녀에게 복을 주시면 자녀가 잘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시간에 한시간 더 잠을 잤다고 해서 나을 것이 없습니다. 잠 못잔 시간만큼 여호와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받게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섬겼던 이방신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시기 바랍니다.
3)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죄를 정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만 지키고 일부는 지키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생각대로 살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내 소망이고 내게 은혜 주실 분으로 믿고 겸손이 무릎을 꿇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4)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가정임을 증거해야 합니다.
의복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옛 옷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옷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유니폼입니다. 축구선수의 옷을 입으면 축구선수로 보이는 것입니다. 야구선수의 옷으로 바꿔 입으면 야구선수인줄 압니다. 어느 직장인의 옷을 입으면 그 직장에 소속된 줄로 압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어디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주님의 옷을 입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거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다운 증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전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도 그것이 그렇게 자랑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찬송을 가지고 다녀도 누구도 보이지 않도록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목사님이 "가방은 저리 치워라. 그리고 성경을 가슴에 품고 다녀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그때부터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새삼 그것이 내게 주는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가방에 넣고 다닐때는 그저 아무데나 갈수 있었지만 성경책을 들고 다니니 갈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의 구분이 자연적으로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지켜주고 세상이 나를 두려워 하게 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겠다고 결정한 그 순간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지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내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환란을 당해 보십시오. 세상은 나에게 응답은 커녕 있던 것 까지도 빼앗아 갑니다. 작년에 IMF가 터졌을때 사업하시던 분은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사업이 부도나서 어렵다고 찾아가도 모른척 하고 떠나가는 것이 이 세상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어려움당할때 더욱 사랑해 주시고 주님을 찾아갈때 기쁨으로 맞아 주시고 은혜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기적의 경험이 아니라 단을 쌓는 것입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께 단을 쌓으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옛날에 그토록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했지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지도 않고 벧엘로 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도 같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홍해바다를 건넜고 반석에서 물을 먹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받았고 아말렉군대를 이스라엘은 군대없이도 물리쳤습니다. 또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고 신이 헤어지거나 옷이 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무슨 문제든지 해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나안 땅에 들어갈때 그 땅을 정탐하고온 사람들,불신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광야생활을 40년간이나 유리하며 방황한 것입니다. 광야생활 40년은 신앙생활의 40년 같지만 허송세월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끔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벧엘로 올라가기 전 가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나안땅을 정복하지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지난세월을 그저 허무하게 보내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이 아닙니까 세상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사모하는 것이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올라가면 세상이 두려워 하는 자가 됩니다.
야곱과 그의 가정은 벧엘로 올라가는 준비를 합니다. 4절에 보면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근처 상수리 나무아래 묻고" 모든 이방신상과 귀거리를 땅에 뭍었습니다. 옛날에는 귀거리도 우상이었던것 같습니다. 좋은 신상 같은 것은 대부분 금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그것을 땅에 묻는 것입니다. 과감히, 완전히 버리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간다면 이 정도의 손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울왕은 삼상15장에 아말렉 군대와 전쟁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다 죽이라는 것입니다. 왕도 죽이고 그가 가진 전리품을 가 없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왕도 살리고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기지 아니하고 가치없고 나쁜것만 없앤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묻을 때 온전히 묻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5-6절에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담대하게 살아갈 때에 세상은 우리를 두려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살아가니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당신의 교회는 모이지 않습니까" 혹은 "오늘 교회에서는 모두 모여 송구영신 예배를 드릴텐데 당신은 왜 보신각 종 앞에 와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시는 분은 혹시 안계십니까 그러니 손가락질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세상이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음성을 들어여 합니다.
7절에 보니 "그거 거기서 단을 쌓고 그 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교회에 아무리 오래 나오며 뭐합니까 이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불러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좋은 목사님은 여러분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십니다. "너를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 이라 하리라" 이미 그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지만 그는 야곱처럼 산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그를 야곱으로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벧엘에서만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창17장에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이라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고 네 허리에서 왕들이 나오리라" 고 말씀하신 것처럼 가문이 복되게 하신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산에서 내리는 놀라운 축복의 은혜가 우리의 가정과 사업과 우리의 앞날을 형통해 하시는 놀라운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 일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번 연말연시를 주님 앞에 나와 은혜를 받아 이 마지막때를 승리하는 성도가 될 수있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