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본문
여호와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분명히 다릅니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시간 개념은 여호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인간의 시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1년은 열 두 달 365일, 한 달은 30일, 또는 31일로서 4주 혹은 5주로, 그리고 한 주은 7일, 하루는 24시간, 한 시간은 60분, 1분은 60초라는 시간 개념 속에서 우리 인간은 세상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간 개념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분명 의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해 한 해가 지날 때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을 하며 새로운 계획들을 세우고 새롭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2007년은 벌써 과거가 되었고 새롭게 열려진 2008년도에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시작해야 할 것인가 오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우선은 오늘 본문 배경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 하나님이 지시하는 가나안땅에 들어갔을 때 흉년이 들어 잠시 애굽으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애굽에서 다시 올라와서 네게브로 올라와서 살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네게브에서 다시 길을 떠나 벧엘에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람과 롯은 점점 부요해지자 아브람과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투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롯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보기에 좋은 땅을 골라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네가 우측으로 가면 나는 좌측으로 갈 것이고, 네가 좌측으로 가면 나는 우측으로 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롯은 삼촌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소돔과 고모라 성이 있는 소알 땅으로 갔습니다. 조카 롯이 좋은 땅을 차지한 것을 보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이 새해를 맞은 우리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첫째, 비전을 가지고 출발하는 새해가 되십시오.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을 들어라고 했습니다. 눈을 들으라는 것은 멀리 보라는 것이요, 동서남북을 보라는 것은 사방을 둘러보라는 것입니다.
한쪽만 보지 말고 온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비전’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비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현재 인간의 눈으로 보면 비전이 없어보입니다. 왜냐하면 롯이 이미 요단 온 지역을 택하여 갔는데 그곳의 상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얼마나 좋은 땅인가 하면 여호와의 동산, 즉 에덴동산 같고 애굽같이 풍성한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땅은 롯이 차지했고 남아 있는 땅은 척박한 땅입니다. 그런데도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비전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야망(野望)과 비전(vision)은 다릅니다. 비슷한 말인 것 같지만 정반대입니다. 야망은 영어로 ‘ambition’ 이고, 비전은 한문으로 통찰(洞察)입니다.
야망(ambition 野望)은 대망, 공명심, 포부, 명예심, 패기, 열망, 야심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비전(vision洞察)은 훤히 내다봄, 꿰뚫어 봄을 의미합니다.
야망은 개인적인 욕심을 이루는 것이고, 비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전을 버려야 하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야망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야망이 이글이글 불타는 일을 하면서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여러분, 분명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새해에도 무기력하게 살면 안 됩니다. 금년에는 어려움이 많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갖고 출발합시다. 우리가 보기에는 비전이 없어 보이는 아브람에게 비전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눈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보입니다. 태양을 바라보고 사십시오. 당신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머리를 언제나 높이 두고 보다 멀리 바라보십시오.
세상에 살다보면 나의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노력하면 됩니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는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대가 타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당신의 삶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말 조련사 아버지를 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설계해 보라는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소년은 평소에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이다음에 1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목장의 주인이 되리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일곱 장의 종이에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을 꼼꼼하게 작성하여 다음날 선생님에게 제출했습니다.
선생님은 소년의 숙제에 빨갛게 X표를 치며 말했습니다. “예야, 너와 너의 아버지는 지금 너무 가난하단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모아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니 좀 더 현실적인 계획표를 작성해 오면 그때 다시 점수를 주겠다”
하지만 소년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냥 X를 주세요. 저는 점수와 제 꿈을 바꾸지 않겠습니다. ”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소년은 그의 꿈대로 100만평의 목장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늙은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100만평에 달하는 엄청난 목장의 규모를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목장 주인의 손을 덥석 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나를 기억하겠나 30년 전 자네의 100만평짜리 꿈에 X표를 했던 선생이라네. 아, 나는 수많은 아이들의 꿈에 X표시를 한 꿈 도둑이라네. 꿈 도둑! 아, 그런데 자네만이 나에게 꿈을 도둑맞지 않았구만”
비전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름다운 비전을 가지고 있는 한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꿈은 현실의 모든 괴로움을 거뜬히 이겨내게 됩니다. 내일에 대한 꿈은 오늘을 힘 있고 활기차게 살도록 해 주는 원동력입니다.
“당신의 비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가까이 하라” 마크 트웨인의 말입니다.
“당신의 꿈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당신 역시 위대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 고 강준민 목사는 자기의 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실천할 사항들, 인격 형성을 위한 결심들, 중요한 성구들, 인용문들, 좌우명, 그리고 약속의 말씀들을 기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의 약 95%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전혀 글로 적어본 적이 없으며, 글로 써본 적이 있는 5%의 사람들 중 95%가 자신의 목표를 성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제안합니다. “아침에는 이것을 읽고, 낮에는 행하며, 저녁에는 평가하고, 밤이면 기도하라” "….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 "(마9:29).
둘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걸어가는 새해가 되십시오.
17절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시도하지 않는데 그냥 주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시도해야 합니다. ‘일어나 걸어라’고 했을 때 지금까지 앉아있던 사람이, 지금까지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냥 일어났겠습니까 저절로 일어나졌겠습니까 지금까지 걸어보지 못했지만 ‘일어나 걸어라’는 말씀을 듣고 일어나려고 시도를 해보니 벌떡 일어나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습니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믿음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가 7-8개월이 되면 걸음마를 시킬 때 어떻게 합니까 일부러 혼자 세워놓고 발자국을 떼어보라고 합니다. 넘어지지 않게 다른 곳에 기대어 서게 해놓고 걸음을 뛰도록 앞으로 향해 나아오도록 별의 별 방법을 다 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비전을 가졌더라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는 한 이룰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비전을 가졌으면 시도해야 합니다. 17절 말씀에 보면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과 횡으로 걸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시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말만하지 말고 시도해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비전을 가졌더라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종과 횡으로 걸어보라’ 그러면 다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와 약속한대로 밟은 곳은 다 주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면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하라고 한 대로만 하십시오. 반드시 성공합니다.
여러분이 ‘주일 성수를 하겠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새벽기도를 하겠습니다. 성경을 매일 읽겠습니다. 전도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등으로 계획하고 비전을 가졌더라도 주일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른 약속을 하지 않는 시도가 있어야 합니다. 월급통장에서 월급이 입금되었을 때 제일 먼저 십일조를 찾아야 합니다.
전도하겠다고 했으면 복음을 제시하거나 전도지를 건네야 합니다. 기도하겠다고 했으면 잠을 일찍 자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겠다고 했으면 성경을 펼쳐야 합니다. 시도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먼저 용기를 가지고 시도하십시오.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셋째, 예배를 회복하는 새해가 되십시오.
본문 18절 말씀 “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예배입니다. 아브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장막을 헤브론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삶이 비록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는 예배의 단절은 곤란합니다.
세상 살이가 힘들고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간절히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단을 쌓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기도의 제단, 예배의 제단을 쌓을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기도나 예배는 인생의 승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시간은 여호와 하나님과 깊이 친교하는 시간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쏟아지는 시간이요, 또한 우리의 심령이 소생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란 구원받은 자가 구원자에게, 치유받은 자가 치유자에게, 건짐받은 자가 건진 분에게 바치는 자발적 감사 행위다” 맥스 루케이도가 말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사치하에 있을 때입니다. 요셉 케이보라는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에서 공산주의를 가르치는 선생이었습니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일이면 3시간을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가서 2시간 넘게 드리는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시간 걸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주일 마다 그렇게 힘들게 먼 길을 가시는 것을 보고 요셉 케이보가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머니의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명료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곳에 가야 예배드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가야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주일 아침 3시간이 걸리는 길을 즐겁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뜻을 종합해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복종하는 의미에서 입을 맞추는 행위가 예배"라는 뜻입니다. 아직 예배에 익숙치 못해서 혹시 마음이 냉담하여 예배 시간에 조는 한이 있더라도 아예 예배 참석을 기피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예배는 어떠했습니까 혹시 부족한 부분은 없습니까 새해에는 예배부터 회복하도록 합시다.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드려야만 되는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는 시간입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예배를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왜 예배를 중요시 여기고 강조하여야만 되는지 확실하게 깨닫고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은 내 영혼이 살림을 받기 위해서 평생을 예배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4장에 예배에 실패한 가인은 실패한 인생의 대표자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간 개념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분명 의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해 한 해가 지날 때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을 하며 새로운 계획들을 세우고 새롭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2007년은 벌써 과거가 되었고 새롭게 열려진 2008년도에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시작해야 할 것인가 오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우선은 오늘 본문 배경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 하나님이 지시하는 가나안땅에 들어갔을 때 흉년이 들어 잠시 애굽으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애굽에서 다시 올라와서 네게브로 올라와서 살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네게브에서 다시 길을 떠나 벧엘에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람과 롯은 점점 부요해지자 아브람과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투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롯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보기에 좋은 땅을 골라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네가 우측으로 가면 나는 좌측으로 갈 것이고, 네가 좌측으로 가면 나는 우측으로 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롯은 삼촌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소돔과 고모라 성이 있는 소알 땅으로 갔습니다. 조카 롯이 좋은 땅을 차지한 것을 보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이 새해를 맞은 우리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첫째, 비전을 가지고 출발하는 새해가 되십시오.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을 들어라고 했습니다. 눈을 들으라는 것은 멀리 보라는 것이요, 동서남북을 보라는 것은 사방을 둘러보라는 것입니다.
한쪽만 보지 말고 온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비전’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비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현재 인간의 눈으로 보면 비전이 없어보입니다. 왜냐하면 롯이 이미 요단 온 지역을 택하여 갔는데 그곳의 상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얼마나 좋은 땅인가 하면 여호와의 동산, 즉 에덴동산 같고 애굽같이 풍성한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땅은 롯이 차지했고 남아 있는 땅은 척박한 땅입니다. 그런데도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비전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야망(野望)과 비전(vision)은 다릅니다. 비슷한 말인 것 같지만 정반대입니다. 야망은 영어로 ‘ambition’ 이고, 비전은 한문으로 통찰(洞察)입니다.
야망(ambition 野望)은 대망, 공명심, 포부, 명예심, 패기, 열망, 야심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비전(vision洞察)은 훤히 내다봄, 꿰뚫어 봄을 의미합니다.
야망은 개인적인 욕심을 이루는 것이고, 비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전을 버려야 하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야망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야망이 이글이글 불타는 일을 하면서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여러분, 분명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새해에도 무기력하게 살면 안 됩니다. 금년에는 어려움이 많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갖고 출발합시다. 우리가 보기에는 비전이 없어 보이는 아브람에게 비전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눈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보입니다. 태양을 바라보고 사십시오. 당신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머리를 언제나 높이 두고 보다 멀리 바라보십시오.
세상에 살다보면 나의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노력하면 됩니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는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대가 타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당신의 삶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말 조련사 아버지를 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설계해 보라는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소년은 평소에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이다음에 1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목장의 주인이 되리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일곱 장의 종이에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을 꼼꼼하게 작성하여 다음날 선생님에게 제출했습니다.
선생님은 소년의 숙제에 빨갛게 X표를 치며 말했습니다. “예야, 너와 너의 아버지는 지금 너무 가난하단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모아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니 좀 더 현실적인 계획표를 작성해 오면 그때 다시 점수를 주겠다”
하지만 소년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냥 X를 주세요. 저는 점수와 제 꿈을 바꾸지 않겠습니다. ”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소년은 그의 꿈대로 100만평의 목장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늙은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100만평에 달하는 엄청난 목장의 규모를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목장 주인의 손을 덥석 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나를 기억하겠나 30년 전 자네의 100만평짜리 꿈에 X표를 했던 선생이라네. 아, 나는 수많은 아이들의 꿈에 X표시를 한 꿈 도둑이라네. 꿈 도둑! 아, 그런데 자네만이 나에게 꿈을 도둑맞지 않았구만”
비전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름다운 비전을 가지고 있는 한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꿈은 현실의 모든 괴로움을 거뜬히 이겨내게 됩니다. 내일에 대한 꿈은 오늘을 힘 있고 활기차게 살도록 해 주는 원동력입니다.
“당신의 비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가까이 하라” 마크 트웨인의 말입니다.
“당신의 꿈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당신 역시 위대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 고 강준민 목사는 자기의 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실천할 사항들, 인격 형성을 위한 결심들, 중요한 성구들, 인용문들, 좌우명, 그리고 약속의 말씀들을 기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의 약 95%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전혀 글로 적어본 적이 없으며, 글로 써본 적이 있는 5%의 사람들 중 95%가 자신의 목표를 성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제안합니다. “아침에는 이것을 읽고, 낮에는 행하며, 저녁에는 평가하고, 밤이면 기도하라” "….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 "(마9:29).
둘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걸어가는 새해가 되십시오.
17절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시도하지 않는데 그냥 주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시도해야 합니다. ‘일어나 걸어라’고 했을 때 지금까지 앉아있던 사람이, 지금까지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냥 일어났겠습니까 저절로 일어나졌겠습니까 지금까지 걸어보지 못했지만 ‘일어나 걸어라’는 말씀을 듣고 일어나려고 시도를 해보니 벌떡 일어나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습니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믿음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가 7-8개월이 되면 걸음마를 시킬 때 어떻게 합니까 일부러 혼자 세워놓고 발자국을 떼어보라고 합니다. 넘어지지 않게 다른 곳에 기대어 서게 해놓고 걸음을 뛰도록 앞으로 향해 나아오도록 별의 별 방법을 다 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비전을 가졌더라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는 한 이룰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비전을 가졌으면 시도해야 합니다. 17절 말씀에 보면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과 횡으로 걸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시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말만하지 말고 시도해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비전을 가졌더라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종과 횡으로 걸어보라’ 그러면 다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와 약속한대로 밟은 곳은 다 주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면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하라고 한 대로만 하십시오. 반드시 성공합니다.
여러분이 ‘주일 성수를 하겠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새벽기도를 하겠습니다. 성경을 매일 읽겠습니다. 전도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등으로 계획하고 비전을 가졌더라도 주일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른 약속을 하지 않는 시도가 있어야 합니다. 월급통장에서 월급이 입금되었을 때 제일 먼저 십일조를 찾아야 합니다.
전도하겠다고 했으면 복음을 제시하거나 전도지를 건네야 합니다. 기도하겠다고 했으면 잠을 일찍 자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겠다고 했으면 성경을 펼쳐야 합니다. 시도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먼저 용기를 가지고 시도하십시오.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셋째, 예배를 회복하는 새해가 되십시오.
본문 18절 말씀 “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예배입니다. 아브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장막을 헤브론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삶이 비록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는 예배의 단절은 곤란합니다.
세상 살이가 힘들고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간절히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단을 쌓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기도의 제단, 예배의 제단을 쌓을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기도나 예배는 인생의 승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시간은 여호와 하나님과 깊이 친교하는 시간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쏟아지는 시간이요, 또한 우리의 심령이 소생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란 구원받은 자가 구원자에게, 치유받은 자가 치유자에게, 건짐받은 자가 건진 분에게 바치는 자발적 감사 행위다” 맥스 루케이도가 말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사치하에 있을 때입니다. 요셉 케이보라는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에서 공산주의를 가르치는 선생이었습니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일이면 3시간을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가서 2시간 넘게 드리는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시간 걸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주일 마다 그렇게 힘들게 먼 길을 가시는 것을 보고 요셉 케이보가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머니의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명료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곳에 가야 예배드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가야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주일 아침 3시간이 걸리는 길을 즐겁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뜻을 종합해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복종하는 의미에서 입을 맞추는 행위가 예배"라는 뜻입니다. 아직 예배에 익숙치 못해서 혹시 마음이 냉담하여 예배 시간에 조는 한이 있더라도 아예 예배 참석을 기피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예배는 어떠했습니까 혹시 부족한 부분은 없습니까 새해에는 예배부터 회복하도록 합시다.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드려야만 되는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는 시간입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예배를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왜 예배를 중요시 여기고 강조하여야만 되는지 확실하게 깨닫고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은 내 영혼이 살림을 받기 위해서 평생을 예배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4장에 예배에 실패한 가인은 실패한 인생의 대표자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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