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추석의 믿음
본문
며칠 후면 추석입니다. 올해는 추석이 그렇게 달갑지 않은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 때문에 올해는 추석을 지내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추석이 되면 물가 말고도 걱정해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제사 문제입니다. 집안이 다 믿음이 있어서 차례대신 추도예배로 드릴 수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도 아직 많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씀을 통해 추석에 필요한 성도의 믿음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릅니다.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시대의 실을 짜는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라 유리왕때 한가위 한달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달뒤인 한가윗날 베를 더 많이 베를 짠 편이 이긴편이 되는데 이 때 진편이 이긴편에게 에게 잔치를 베풀고, 둥근 보름달아래 놀이를 하며 즐겁게 지내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켜 온 명절로 우리 조상들은 일 년 동안 열심히 길러서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추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풍성한 수확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감사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이웃의 은혜에 고마워하는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말이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단어가 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도 추수 때가 되면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자신들을 도와주는 존재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에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못하고 조상에게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모른채 여전히 엉뚱한 대상에게 감사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여전히 잘못된 대상에게 감사하고 절하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우상 숭배의 의미
1-여호와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니라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오늘 본문 말씀은 잘 아시는 것처럼 십계명의 앞부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고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아주 특별한 말씀을 주십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10가지 명령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첫번째 명령이 무엇입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을 조금 풀어서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너는 내가 선택해서 구원한 내 백성이다. 앞으로 너는 내가 책임진다. 그러니 앞으로 넌 오직 나만 의지하고 나만 바라봐라. "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해서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결혼 첫날밤에 아내에게 한가지 부탁이자 명령을 합니다. “여보, 당신은 이제 내 여자에요. 앞으로 내가 당신을 끝까지 책임져줄께요. 그러니 당신은 오직 나만 사랑하고 나만 의지하고 나만 바라봐야 합니다. ”
이 남편의 부탁이 아내에게는 부담스러운 명령일까요 아니면 마음이 든든해 지는 사랑의 명령일까요? 아마 정상적인 아내라면 이 부탁에서 자신을 향한 남편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적 신부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첫 번째 계명에 담긴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시는 것에는 내가 책임질테니 나만 믿으라고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이 첫계명에 담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바라는 모든 것은 다 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 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돈을 더 의지하고 건강을 더 바랄 때가 많습니다. 또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여호와 하나님 보다 애인을 더 사랑하고 자기 실력을 더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꿈이 성취되는 것을 더 바라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자주 여호와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다른 것을 더 의지할까요?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려고 하면 우리 뜻대로 안될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정말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나는 분명히 이쪽으로 가고 싶은데 여호와 하나님은 이상하게 그 길을 막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번 두 번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시는 것을 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험을 하다보면 "여호와 하나님 믿어봐야 별볼일 없네.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하나두 없고 이거 재미없네" 이런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아무리 기도해도 내가 원하는데로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돈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의지하려고 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돈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 돈이 우리 눈에는 좋아보여도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너무나 해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이가 청년부 회장을 굉장히 좋아하고 따릅니다. 사실 저보다 그 형제를 더 좋아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 청년은 제 아이에게 안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줍니다. 사탕을 달라고 하면 사탕을 사주고 위험한 행동을 하고 싶어해도 그것을 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아빠인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 아이가 단 것을 좋아해서 이가 많이 �었기 때문에 사탕을 달라고 해도 줄 수가 없습니다. 또 위험한 행동을 하려고 하면 화를 내면서도 못하게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놈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안주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면 막 울면서 저한테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청년부 회장은 삼촌 삼촌 하면서 너무 좋아합니다. 그러면 전 속으로 외칩니다. "임마, 너 지금 우상숭배하고 있는 거야. "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돈이 더 필요한 것 같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가 원치 않는 것을 주시고 우리가 원치 않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길이 우리에게 유익한 길이요 우리를 살리는 구원의 길임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성숙한 성도의 믿음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제가 다리가 부러져서 보름이상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제가 드러누우니까 당장 교회의 일을 목사님께서 다 감당하셔야 했고 여러 가지로 너무나 많은 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도대체 여호와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내게 허락하셨을까 참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제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냥 한 쪽 다리뼈 두개가 부러져서 수술을 한 것인데 참 많이 고통스러워했고, 참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불편했습니다. 처음에는 화장실에 가는 것 조차도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작은 일 하나하나를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다리 한쪽만 치셔도 이렇게 무력해지는 것이 인간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동안 여호와 하나님이 건강 주신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깨달은 것은 바로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사랑입니다. 목사님은 저 때문에 그렇게 바쁜 일정을 혼자 감당하시면서도 항상 마음 편하게 있으라고 위로해 주셨고, 너무나 많은 성도님들이 그 바쁜 와중에서 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정말 이렇게 부족한 자를 성도님들이 정말 너무나 사랑해 주시는구나 깨달으면서 얼마나 속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리가 부러진 것 자체가 저에게 즐겁고 기쁜 일은 아닙니다. 사실 굉장히 불편하고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여호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저를 가르치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분명히 믿습니다. 저에게는 부러진 다리가 고난일 수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은 저희에게 저마다의 고난들을 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돈으로, 어떤 분들은 자식으로, 또 어떤 분들은 건강으로 저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난을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 삶에 어려움을 주실 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정말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할 때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 당장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안해주신다고 다른 것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면 계속 헤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지금 내 삶에 만족과 평안이 없고 마음이 답답하시다면 이번 추석 기간에 시간을 내셔서 내가 정말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는 삶을 회복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제사가 우상숭배인 이유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여호와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기 두 번째 명령이 나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에 절하지 말고 그것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는 것이 넓은 의미의 우상숭배라면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 절하고 섬기는 것은 보다 더 좁고 분명한 의미의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숭배하는 불상이나 다른 우상 조각 등에는 아무 능력도 힘도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우상을 숭배할 때 배후에서 귀신들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석 명절에 실질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추석에 차례를 지낼 때 절을 받는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혼이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적으적으로 볼 때 죽음이란 우리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면 육체는 �어서 사라지지만 그 영혼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고 존재합니다. 여기에서 믿는 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때 믿는 자의 영혼은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갑니다. 이곳을 어떤 학자들은 낙원이라고 부릅니다. 이 낙원에서 신자의 영혼은 주님과 교제하며 모든 복락과 기쁨을 누리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한 새 몸을 입고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불신자의 영혼은 죽어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때 그 영혼이 음부 라는 곳으로 가서 고통을 당하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심판을 위한 몸이 부활하고 지옥으로 가서 영혼과 육신은 끊임없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심판을 위해서 몸이 부활하는 것을 요한복음 5:29은 둘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신자의 몸과 영혼이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을 성경은 둘째 사망, 영벌이라고 표현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육체를 떠난 영혼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영혼을 불러내어 그 영혼들에게 어떤 보호나 지혜를 얻고 싶어했습니다. 바로 이런 인간의 약점을 귀신들이 이용했습니다. 귀신들이 마치 조상들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여서 그들로 하여금 귀신을 섬기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런 접신이나 강신을 절대로 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무당이나 무속인들에 의해 이런 접신술이나 강신술들은 끊임없이 행해져 왔고 우리나라의 경우 조상을 공경한다는 미명하에 이런 귀신을 섬기는 제사들이 전통으로 내려오게 된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상에 절을 하지 않는다고 기독교인들은 여호와 하나님만 알고 부모님은 모르느냐고 비난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성경은 조상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마태복음 1장이나 누가복음 3장만 봐도 성경이 족보와 조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더욱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십계명 중 인간에 관한 첫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임을 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사상에 절하는 것과 조상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이 부분을 분명히 하지 못하면 자칫 속아서 나도 모르는 새에 부모님을 공경하려는 마음에 귀신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하면서 나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절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하면 일제시대에 신사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사실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드렸어 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부인이 남편 외에 다른 남자를 안고 뽀뽀를 하면서 남편에게 "내가 지금 이 남자를 안아주고 있지만 하지만 사실 나는 당신만을 사랑해요" 라고 말한다면 남편이 그 말을 믿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명절 때 우리를 정말 힘든 것은 바로 가족친지들의 태도입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25% 정도만 기독교를 믿습니다. 30%가 불교이고 나머지 45%도 제사에서 절을 하는 것을 효도와 연관을 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면 불가피하게 믿음이 없는 가족들과 마찰을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영적 아버지를 위해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가족 친지들에게 욕을 먹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절개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사상에 절은 하지 않지만 살아계신 부모님께 지극 정성으로 효도하고 형제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너무나 잘하면서도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가족들에게 핍박을 받는 분들도 계시지만 사실 많은 경우 기독교인들이 욕을 먹는 것은 단지 제사상에 절을 안해서라기 보다는 평소에도 부모 형제에게 별로 잘하지도 못하다가 제사 때는 신앙을 내세우면서 제사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의 문제에 있어서는 제사상에 절하지 않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과감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부분에서는 다른 가족들보다 더 잘 섬기고 더 노력할 필요도 분명히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6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천대까지 축복하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혹시 믿음 때문에 가족들에게 핍박을 받아야 한다면 그 핍박이 축복으로 가는 통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엄청난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이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3. 제사 음식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제사 음식에 대한 말씀을 잠시 드리려고 합니다. 고린도 전서 10장에 보면 제사 음식에 대한 분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은 먼저 성찬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여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귀신의 제사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는 것은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가 귀신에게 드려지는 것임이 분명하다면 제사에 사용된 음식을 먹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제사에 쓰여진 음식 자체가 더러운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후반부에 보면 만약 우리가 제사에 사용되었는지 모르고 어떤 음식을 먹었다면 그것은 죄가 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뻔히 제사에 사용된 음식임을 알면서 먹는 것은 분명 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제사상에 절을 하고 제사 음식을 먹는다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아주 아주 큰 죄입니다.
가령 제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단둘이서 밥을 같이 먹는다면 저는 기분이 굉장히 상해서 아내에게 화를 낼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5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질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를 많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엔 여호와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믿음으로 행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추석이 되셔서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대까지 이르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릅니다.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시대의 실을 짜는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라 유리왕때 한가위 한달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달뒤인 한가윗날 베를 더 많이 베를 짠 편이 이긴편이 되는데 이 때 진편이 이긴편에게 에게 잔치를 베풀고, 둥근 보름달아래 놀이를 하며 즐겁게 지내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켜 온 명절로 우리 조상들은 일 년 동안 열심히 길러서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추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풍성한 수확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감사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이웃의 은혜에 고마워하는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말이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단어가 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도 추수 때가 되면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자신들을 도와주는 존재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에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못하고 조상에게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모른채 여전히 엉뚱한 대상에게 감사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여전히 잘못된 대상에게 감사하고 절하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우상 숭배의 의미
1-여호와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니라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오늘 본문 말씀은 잘 아시는 것처럼 십계명의 앞부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고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아주 특별한 말씀을 주십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10가지 명령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첫번째 명령이 무엇입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을 조금 풀어서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너는 내가 선택해서 구원한 내 백성이다. 앞으로 너는 내가 책임진다. 그러니 앞으로 넌 오직 나만 의지하고 나만 바라봐라. "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해서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결혼 첫날밤에 아내에게 한가지 부탁이자 명령을 합니다. “여보, 당신은 이제 내 여자에요. 앞으로 내가 당신을 끝까지 책임져줄께요. 그러니 당신은 오직 나만 사랑하고 나만 의지하고 나만 바라봐야 합니다. ”
이 남편의 부탁이 아내에게는 부담스러운 명령일까요 아니면 마음이 든든해 지는 사랑의 명령일까요? 아마 정상적인 아내라면 이 부탁에서 자신을 향한 남편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적 신부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첫 번째 계명에 담긴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시는 것에는 내가 책임질테니 나만 믿으라고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이 첫계명에 담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바라는 모든 것은 다 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 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돈을 더 의지하고 건강을 더 바랄 때가 많습니다. 또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여호와 하나님 보다 애인을 더 사랑하고 자기 실력을 더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꿈이 성취되는 것을 더 바라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자주 여호와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다른 것을 더 의지할까요?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려고 하면 우리 뜻대로 안될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정말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나는 분명히 이쪽으로 가고 싶은데 여호와 하나님은 이상하게 그 길을 막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번 두 번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시는 것을 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험을 하다보면 "여호와 하나님 믿어봐야 별볼일 없네.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하나두 없고 이거 재미없네" 이런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아무리 기도해도 내가 원하는데로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돈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의지하려고 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돈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 돈이 우리 눈에는 좋아보여도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너무나 해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이가 청년부 회장을 굉장히 좋아하고 따릅니다. 사실 저보다 그 형제를 더 좋아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 청년은 제 아이에게 안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줍니다. 사탕을 달라고 하면 사탕을 사주고 위험한 행동을 하고 싶어해도 그것을 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아빠인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 아이가 단 것을 좋아해서 이가 많이 �었기 때문에 사탕을 달라고 해도 줄 수가 없습니다. 또 위험한 행동을 하려고 하면 화를 내면서도 못하게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놈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안주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면 막 울면서 저한테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청년부 회장은 삼촌 삼촌 하면서 너무 좋아합니다. 그러면 전 속으로 외칩니다. "임마, 너 지금 우상숭배하고 있는 거야. "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돈이 더 필요한 것 같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가 원치 않는 것을 주시고 우리가 원치 않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길이 우리에게 유익한 길이요 우리를 살리는 구원의 길임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성숙한 성도의 믿음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제가 다리가 부러져서 보름이상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제가 드러누우니까 당장 교회의 일을 목사님께서 다 감당하셔야 했고 여러 가지로 너무나 많은 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도대체 여호와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내게 허락하셨을까 참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제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냥 한 쪽 다리뼈 두개가 부러져서 수술을 한 것인데 참 많이 고통스러워했고, 참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불편했습니다. 처음에는 화장실에 가는 것 조차도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작은 일 하나하나를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다리 한쪽만 치셔도 이렇게 무력해지는 것이 인간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동안 여호와 하나님이 건강 주신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깨달은 것은 바로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사랑입니다. 목사님은 저 때문에 그렇게 바쁜 일정을 혼자 감당하시면서도 항상 마음 편하게 있으라고 위로해 주셨고, 너무나 많은 성도님들이 그 바쁜 와중에서 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정말 이렇게 부족한 자를 성도님들이 정말 너무나 사랑해 주시는구나 깨달으면서 얼마나 속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리가 부러진 것 자체가 저에게 즐겁고 기쁜 일은 아닙니다. 사실 굉장히 불편하고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여호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저를 가르치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분명히 믿습니다. 저에게는 부러진 다리가 고난일 수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은 저희에게 저마다의 고난들을 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돈으로, 어떤 분들은 자식으로, 또 어떤 분들은 건강으로 저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난을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 삶에 어려움을 주실 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정말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할 때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 당장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안해주신다고 다른 것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면 계속 헤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지금 내 삶에 만족과 평안이 없고 마음이 답답하시다면 이번 추석 기간에 시간을 내셔서 내가 정말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는 삶을 회복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제사가 우상숭배인 이유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여호와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기 두 번째 명령이 나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에 절하지 말고 그것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는 것이 넓은 의미의 우상숭배라면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 절하고 섬기는 것은 보다 더 좁고 분명한 의미의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숭배하는 불상이나 다른 우상 조각 등에는 아무 능력도 힘도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우상을 숭배할 때 배후에서 귀신들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석 명절에 실질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추석에 차례를 지낼 때 절을 받는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혼이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적으적으로 볼 때 죽음이란 우리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면 육체는 �어서 사라지지만 그 영혼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고 존재합니다. 여기에서 믿는 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때 믿는 자의 영혼은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갑니다. 이곳을 어떤 학자들은 낙원이라고 부릅니다. 이 낙원에서 신자의 영혼은 주님과 교제하며 모든 복락과 기쁨을 누리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한 새 몸을 입고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불신자의 영혼은 죽어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때 그 영혼이 음부 라는 곳으로 가서 고통을 당하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심판을 위한 몸이 부활하고 지옥으로 가서 영혼과 육신은 끊임없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심판을 위해서 몸이 부활하는 것을 요한복음 5:29은 둘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신자의 몸과 영혼이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을 성경은 둘째 사망, 영벌이라고 표현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육체를 떠난 영혼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영혼을 불러내어 그 영혼들에게 어떤 보호나 지혜를 얻고 싶어했습니다. 바로 이런 인간의 약점을 귀신들이 이용했습니다. 귀신들이 마치 조상들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여서 그들로 하여금 귀신을 섬기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런 접신이나 강신을 절대로 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무당이나 무속인들에 의해 이런 접신술이나 강신술들은 끊임없이 행해져 왔고 우리나라의 경우 조상을 공경한다는 미명하에 이런 귀신을 섬기는 제사들이 전통으로 내려오게 된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상에 절을 하지 않는다고 기독교인들은 여호와 하나님만 알고 부모님은 모르느냐고 비난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성경은 조상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마태복음 1장이나 누가복음 3장만 봐도 성경이 족보와 조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더욱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십계명 중 인간에 관한 첫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임을 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사상에 절하는 것과 조상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이 부분을 분명히 하지 못하면 자칫 속아서 나도 모르는 새에 부모님을 공경하려는 마음에 귀신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하면서 나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절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하면 일제시대에 신사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사실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드렸어 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부인이 남편 외에 다른 남자를 안고 뽀뽀를 하면서 남편에게 "내가 지금 이 남자를 안아주고 있지만 하지만 사실 나는 당신만을 사랑해요" 라고 말한다면 남편이 그 말을 믿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명절 때 우리를 정말 힘든 것은 바로 가족친지들의 태도입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25% 정도만 기독교를 믿습니다. 30%가 불교이고 나머지 45%도 제사에서 절을 하는 것을 효도와 연관을 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면 불가피하게 믿음이 없는 가족들과 마찰을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영적 아버지를 위해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가족 친지들에게 욕을 먹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절개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사상에 절은 하지 않지만 살아계신 부모님께 지극 정성으로 효도하고 형제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너무나 잘하면서도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가족들에게 핍박을 받는 분들도 계시지만 사실 많은 경우 기독교인들이 욕을 먹는 것은 단지 제사상에 절을 안해서라기 보다는 평소에도 부모 형제에게 별로 잘하지도 못하다가 제사 때는 신앙을 내세우면서 제사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의 문제에 있어서는 제사상에 절하지 않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과감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부분에서는 다른 가족들보다 더 잘 섬기고 더 노력할 필요도 분명히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6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천대까지 축복하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혹시 믿음 때문에 가족들에게 핍박을 받아야 한다면 그 핍박이 축복으로 가는 통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엄청난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이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3. 제사 음식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제사 음식에 대한 말씀을 잠시 드리려고 합니다. 고린도 전서 10장에 보면 제사 음식에 대한 분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은 먼저 성찬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여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귀신의 제사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는 것은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가 귀신에게 드려지는 것임이 분명하다면 제사에 사용된 음식을 먹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제사에 쓰여진 음식 자체가 더러운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후반부에 보면 만약 우리가 제사에 사용되었는지 모르고 어떤 음식을 먹었다면 그것은 죄가 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뻔히 제사에 사용된 음식임을 알면서 먹는 것은 분명 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제사상에 절을 하고 제사 음식을 먹는다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아주 아주 큰 죄입니다.
가령 제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단둘이서 밥을 같이 먹는다면 저는 기분이 굉장히 상해서 아내에게 화를 낼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5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질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를 많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엔 여호와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믿음으로 행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추석이 되셔서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대까지 이르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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