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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모세의 죽음과 교훈

본문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느 날 열두 제자 중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갑자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는데,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셨습니다. 그 광경이 얼마나 경이롭고 좋았든지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4절)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저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5절)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 성경을 대표하는 인물로,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엘리야는 한번의 기도로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심한 기근이 오게 했고, 다시 기도하자 3년 반만에 비가 내리도록 했습니다. 엘리야도 분명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도로 하늘 문을 닫기도 하고 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850명과 대결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임을 확실히 증거했습니다. 엘리야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들려 올라가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승천했습니다.
민수기 12장을 보면, 모세가 나이 많아졌을 때 구스 여인 다시 말해서 피부 빛이 검은 에디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그의 누이 미리암과 형인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더니 하늘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6-8절)고 하시며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셨습니다. 그 결과 미리암이 그 자리에서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보통의 선지자들은 꿈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이상을 통해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세만은 여호와 하나님과 면전에서 말씀을 주고받을 정도로 특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모세는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출애굽기 4장 16절과 7장 1절을 보면,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같이 되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애굽은 최강대국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 왕 앞에 모세를 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안수했더니 지혜의 신이 충만하여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높이시고 큰 능력을 주셔서 사용한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과정을 통해 모세가 애굽 왕 바로 앞에서 행한 큰 기사와 이적과 권능과 위엄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한 선지자였지만 왠일인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를 불러 가셨습니다.
모세의 죽음을 통한 두 가지 교훈
1. 율법으로 구원받을 자는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율법을 100% 다 지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준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도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보실 때는 모두 다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인간으로서 전혀 죄를 범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얻을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성경은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한 것입니다(전 7:20).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지 아니하셨다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요 14:6).
2. 예배 받으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본문 6절을 보면, 모세가 죽어 모압 땅 어느 골짜기에 장사되었으나 후세에 모세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30일 동안 애곡하는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 성대한 장례식을 치렀을 것이며, 그의 묘 또한 대단히 웅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의 묘를 흔적도 없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평소에 모세를 신과 같이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혹시 모세의 묘지에 찾아가 제사를 지내고 죽은 모세를 숭배하게 될까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제사를 받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훌륭해도 인간이지 제사를 받을 수 있는 신의 존재가 아닙니다. 신과 같은 행세를 하며 여호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도적질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며 심판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사도행전 12장 21-23절을 보면, 악독한 왕 헤롯이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행세를 했습니다. 헤롯이 어느 날 왕복을 입고 백성들 앞에 나아가 한 마디 교훈을 했습니다. 이 때 아첨하는 무리들이 이는 신의 소리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그를 치켜세웠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어깨가 으쓱해져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했습니다. 주의 사자가 그 자리에서 그를 치니 충(蟲)이 먹어 죽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충이 먹었을까요?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여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뇌염모기에게 물리기만 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습니다. 헤롯이 벌레로 인해 죽은 것은 네가 여호와 하나님처럼 행세하고 큰소리 치지만 너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에 가서 전도할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한 사람이 얼마나 말씀을 잘 듣는지 사도 바울이 그를 자세히 보니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를 향하여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행 14:10)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 뛰어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사람들이 놀라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하며, 신당의 제사장들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지내겠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지요. 이에 바나바와 바울은 앞서 말한 헤롯처럼 신으로 행사하지 않고 오히려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들어가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행 14:15)고 소리지르며 겨우 사람들을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 지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인간이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을 보면,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는 성찬 예식에도 참여하여 떡과 잔을 받고 제사 지내는 사람들 집에 가서 그곳에서도 떡과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이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20-21절)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주었습니다. 제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제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명목으로 죽은 조상들을 위해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냅니다. 효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문제입니다. 효도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 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아무리 천 번 만 번 제사를 잘 지내면 무엇합니까? 부모님이 오셔서 떡을 잡수십니까, 물 한 잔을 드시기라도 하십니까? 이 세상을 떠난 조상들에게 제사하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 믿기 전에 조상들에게 제사 지내온 사람들이 갑자기 제사를 안 지내니 허전하고 뭔가 섭섭한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 날에 맞추어 음식을 준비하고 대신 추도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추도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좋고, 온 가족이 모여 찬송을 하고 말씀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뜻깊은 추도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1. 유훈
고인의 유훈을 되새기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렇게 훌륭한 분이셨고, 살아계실 때 이런 말씀을 늘 하셨다고 자손들에게 알려주면서 우리도 그분들이 말씀하신 교훈을 따라 살자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2. 효도
남아있는 어른들에게 효도하기로 결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는 효도할 길이 없으므로 이제 남아 있는 분에게 갑절의 효도를 하기로 결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3. 형제우애
형제간에 우애있게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님께 용돈을 많이 드리고 잘 지내시도록 효도를 한들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들이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울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잡수시는 밥이 마치 모래알 씹는 것 같고 조금도 마음이 기쁘지 않으실 것입니다.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며 우애있게 사는 것이 진짜 효도입니다.
4. 신앙생활
천국에 가서 모두 다 만날 수 있도록 신앙생활을 잘하기로 결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도 지옥에 가는 사람없이 모두가 천국에서 만나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복을 받으며 살기로 결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4가지를 결심하며 갖는 추도예배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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