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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주님께 감사하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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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절 입니다. 온 나라가 귀성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왜 평상시에 고향도 찾아가고 부모님도 평상시에 찾아보면 되지 꼭 추석날만 되면 내내 찾아보지 않던 고향이나 일가친척을 보겠다고 난리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서 하루면 어디고 다 갔다 올수 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평상시 쉬는 날 찾아가보고 인사도 하고 그러면 추석에 이 난리를 치르지 않아도 될 터인데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서도 추석은 감사를 되찾는 날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며칠동안 년휴니까? 마음껏 놀자가 아니라 정말로 감사할 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동안의 나누지 못한 정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본래 추석명절은 감사가 담겨있던 명절이지요. 기독교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있었고 그래서 하늘에 감사하고 알지는 못하지만 자기를 도와준 신들에게 감사하고 조상님들 덕이다 해서 조상님들에게 감사하고 동네 어른들에게 감사하고 이웃들에게 서로감사하고 그것이 우리들 추석이 가졌던 풍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추석은 더 훈훈했었고 사람들은 바램이 추석 한가위 같기를 기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감사를 잃어버리고 그러다보니 추석명절도 변질이 되고 감사는 형식일 뿐 이기주의적인 삶으로만 치달아 추석절이 지나고 나면 씁쓸한 이야기들이 한동안 메스컴을 타는 것을 보게되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를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감사를 잊는다 해도우리는 감사를 잊지 않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는 나는 주님께 감사하며 산다고 바울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감사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주의은혜인데 어찌 감사하지 않고 살겠는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감사를 잊을 수 없는 사람. 감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얼마나 감사가 있습니까? 언젠가 금강산에 여행 갔던 민영미라는 분이 북한에 엿새 동안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북한에 억류되면서 무슨 생각을 한줄 압니까? 북한에 억류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내가 내일이면 죽을 수도 있지, 영영 남편 얼굴, 아이들 얼굴 못 보게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밥이 안 넘어가고 잠이 안 오더랍니다. 그런데 극적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달라졌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 남편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고, 속을 썩인다고 밤낮 야단을 치던 아이들을 보니 그 얼굴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더랍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감사였습니다.
여러분 주변은 어떻습니까? 남편이 또는 아내가 불만의 대상입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또는 여러분의 환경이 불만입니까? 북한에 한번 갔다 오시지요. 달라질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자신이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다는 것,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 그것을 깨닫고 나니 모든 것이 다 감사입니다. 모든 것이 다 감사의 조건입니다. 모든 불평이던 것이 다감사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행복이지요. 감사할 수 있는 것 이것이 행복입니다. 무엇을 가져도 불평을 가지고 사는 것. 불행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가지든 감사하다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이처럼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감사하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14절이 답입니다. “우리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 하였도다”. 주의 은혜가 풍성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냥 풍성 한 것이 아닙니다. 넘치도록 풍성 하였습니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은혜를 아무리 받아도 느끼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늘처럼 땅처럼 은혜를 받아도 나는 받은 것이 없다 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못된 자식들이 다 그러하지 않아요.
수도권이 충청권으로 온다. 공주 어디 장기 지역으로 온다 하니까? 그 쪽에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일어났는데 생전 찾아오지 않던 자식들이 찾아오고 딸년도 찾아오고 사위 녀석도 찾아오고 그래서 난리랍니다. 제가 제일 효도 하는 것처럼 와서는 어머니 아버지 하는데.. 그전에는 너희 집에서 살면 안 될까? 하면 서로 안 모시려고 하던 자식들이 지금은 서로 모시려고 쌈박 질을 한데요. 그래서 그 쪽에 목회하는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당부하길 절대로 자식들에게 재산 물려주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한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자식들인가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적이 없다 하면 무슨 감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다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친구가 나한테 밥 한끼 사준 것만도 못한 그런 은혜입니다. 내 자식이 생일날 사온 선물만도 못한 은혜입니다. 남편이 월급봉투를 가져다주는 것만도 못한 그런 은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이 주는 그런 기쁨과 은혜에 비하면 아주 적은은혜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릅니다. 주의은혜가 세상이 주는 그 어떤 은혜보다 크고 풍성하고 넘칩니다. 그래서 고백입니다. 나 같은 것에게도 직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도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나를 여호와 하나님 사랑의 증거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은 내가 증거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를 보라는 것이지요.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내가 본이요 증거물입니다. 내가 은혜 받은 산 증거물입니다.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나는 어떤 자이었는데 직분을 맡기셨나요. 13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 었으나”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긍휼을 베풀어 나에게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교회를 훼방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예루살렘 교회에 올라갔는데도 사도들과 성도들이 그를 싫어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를 붙들어 주었기 망정이지, 그러하지 않았더라면 쫓겨 날 뻔 했습니다.
그는 훼방자일뿐 아니라 핍박 자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스데반을 돌로 칠 때 앞장서서 선동한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 편에서 보면 원수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용서 하시고 저를 능하게 하시고 충성 되이 여겨 사도라는 직분을 주었습니다. 어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윌리암 멕도날드라는 분이 은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6살 먹은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잔인하게살해 되었다면 어떻겠습니까? 만약에 당신이 그 살인자를 죽인다면 복수가 됩니다. 만약 당신이 잠잠히 있어 사회법으로 처형하게 한다면 공의가 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당신이 그 살인자를 용서하고 당신의집에 초청하여 함께 살며 그를 당신의 아들로 삼는다면 그것은 은혜가 됩니다.
이것은 가정된 이야기이지만 나를 여기에 적용해 볼 수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그 살인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불렀습니다. 나를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지옥 갈 사람을 천국에 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나는 그런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가 넘칩니다.
이 은혜를 깨달으니 감격이 넘칩니다. 이런 은혜에 대하여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이 그렇게 감격스럽고 절실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깨달은 죄인은 다릅니다. 찬송을 부르면 눈물이 납니다. 기도를 할 때는 머리를 무릎에 박게 됩니다. 교회 십자가만 봐도 눈물이 납니다. 바울은 은혜를 잊지 않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삶이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옛날 어느 나라의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지혜롭고 충성스러워 보이는 목동을 만나서 그를 왕궁으로 데리고 와서 일을 시켰습니다. 왕이 생각했던 바대로 그는 자신의 몫을 잘 감당해 나갔고, 마침내 왕의 신임으로 왕궁의 재산관리인으로 세웠습니다. 이것을 본 다른 신하들은 하찮은 목동 출신이 왕의 신임을 받는 것에 시기와 질투를 내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의 허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사에 신중했고, 진실하여 허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하들은 그에게서 한 가지 이상한 행동을 찾아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끔씩 왕궁 꼭대기에 있는 창고에 몰래 들어갔다 한참 만에 나오는 것입니다. 신하들은 그가 왕의 재물을 빼돌렸을 것이라 여기고, 이 사실을 왕에게 고했습니다. 왕은 즉각 조사를 명했고 신하들은 창고의 문을 열고 그 속을 샅샅이 뒤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한쪽 구석에 다 낡아 빠진 조끼 한 벌과 너덜너덜한 장화 한 켤레뿐 이었습니다.
왕은 그 목동출신의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왜 그 보잘것없는 누더기 옷과 다 떨어진 장화를 그토록 보물처럼 감추어 두었는가 ?“ 그러자 그 신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왕이시여, 제가 왕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이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왕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제 마음대로 살고 교만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이 옷을 보면서 저의 과거를 보고 왕께서 제게 베푼 은혜를 다시금 생각하였습니다. “
은혜가 없습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은혜가 넘칩니까?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평생에 주님께 감사하며 삽니다. 여러분과 저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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