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기억하고 생각하라(Remember & Consider)!
본문
중국의 양나라에 장승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충성스럽게 일한 관료입니다.
또한 그는 중국의 전설적인 화가로 더 알려졌습니다.
어느 날 그가 남경 근처의 안락사라는 절에서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절의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먹구름을 뚫고 하늘로 솟아오르려는 두 마리의 용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그림을 잘 그렸던지 정말 용이 살아있는 것 같은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용의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용의 눈동자를 그려 달라고 졸랐습니다.
결국 장승요는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용의 눈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레 소리와 함께 용이 벽을 박차고 뛰쳐나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설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벽에 그린 용이 하늘로 올라갈 수는 있겠습니까
미완성의 그림을 완성시켰을 때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해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습니다.
화룡점정의 문자적 의미는 ‘용의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다’는 뜻입니다.
그 의미를 확대하면 ‘어떤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 혹은 ‘모든 것의 마지막 마무리’를 의미합니다.
용의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는 마무리가 중요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마지막을 잘 정리하는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이제 2007년의 마지막 주일예배 시간입니다.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나름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남은 이 시점에서 마지막 한 점을 잘 그려 넣어야 합니다.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면 작품이 완성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예배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화룡점정의 예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비록 지금까지 부족하고 연약한 것이 많이 있었지만 마무리를 잘 하면, 내년 새해에는 더 놀라운 열매가 맺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올 한해를 마무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3가지를 기억하고,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모세는 본문 7절에서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고 말씀합니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
이 말씀을 우리 각자에게 적용해 본다면 “2007년 한해를 돌아보라!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를 .....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 적용해 본다면 “올 한해를 돌아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지교회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 ”
사랑하는 여러분! 조용히 지나온 한 해의 발자취를 돌이켜 기억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우리 가정을, 직장을, 사업을 이끄셨는지를....
우리는 과거에 머물면 안되지만,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내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과 실수를 교훈삼아 새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기억하고 돌이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를 여기까지 보호해주셨음을 기억하라.
지도자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뜨거운 사랑으로 보호해 주셨는지를 말씀합니다.
7절의 "옛날을 기억하라!”로 시작하는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구원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출애굽부터 광야 40년의 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기 직전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다같이 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
이것은 광야 40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보호해 주셨는가를 보여줍니다. 모래 바람이 부는 메마른 사막, 아무런 수확을 기대할 수 없고, 단지 짐승의 울음소리만이 들리는 바로 그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심한 배려와 극진한 사랑으로 만나주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어떻게 보호하셨다고 말씀하십니까
당신의 눈동자같이 이스라엘을 지키셨고 말씀합니다.
눈동자는 인간의 신체 부위 중 매우 소중한 부분입니다.
또한 가장 쉽게 다칠 수 있는 약한 부위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본능적으로 눈에 어떤 물체가 날아오면 눈을 감게 만듭니다.
바로 눈동자를 보호하게 위해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지켜주셨다”는 말은 ‘최우선적으로 아끼며, 아주 조심스럽게 보호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택하신 모든 백성들을 눈동자같이 소중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의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보십시오.
내가 식생활 조절을 잘 해서 건강을 지켰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믿음생활을 잘 해서 믿음을 남보다 잘 지켰다고 여기십니까
내가 남보다 더 수고하고 땀 흘려서 내 가정과 산업을 지켰다고 보십니까
대답은 No!입니다.
돌이켜보면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들이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하다못해 숨을 쉬는 것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성인을 기준으로 심장은 하루에 자그마치 10만3천6백89번을 뛴다고 합니다. 내가 식사를 할 때에도, 내가 일을 할 때에도, 운동을 할 때에도, 무의식중에 잠을 잘 때에도 10만3천6백89번을 뛰고 있습니다.
또 하루 동안 폐는 2만3천40번 숨을 쉰다고 합니다.
또 하루에 700만개의 두뇌 세포를 사용하며 산다고 합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내가 심장이 이렇게 많이 뛰도록 무슨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한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어떤 수고를 해서 나의 폐가 호흡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무슨 노력을 해서 두뇌세포를 700만개씩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는데도, 나는 의식조차도 못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여호와 하나님께는 나의 심장을 움직여 주시고, 폐를 움직여 주시고 두뇌세포를 움직이셔서, 내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기에 우리는 지난 1년동안도 안전하게 산 줄로 믿습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친구가 어느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드디어 약속한 날자가 되어 두 친구가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오다가 중간에 겪은 일을 들어보게! 난 하마터면 여기에 못 올 뻔했네. 갑자기 내 말이 길을 가다가 뭔가에 깜짝 놀라 뛰는 바람에 땅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지. 다행히 다친 데가 없기 망정이지 인적도 드문 그곳에서 다쳤더라면 어떻게 됐겠는가 그런데 더 감사한 것은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기절할 뻔 했지 뭔가. 내가 말에서 떨어진 그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이 바로 낭떨어지였네. 나는 즉시 무릎을 꿇고 기적적으로 살려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네. "
그러자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친구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의 말을 들으니 나는 자네보다 훨씬 놀랍고 기적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것 같네. 내가 탄 말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날 떨어뜨려 본 적이 없다네. 그 녀석은 아주 침착하고 안전하게 아무 사고 없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 주었다네. 나는 위험스런 상황에 조금도 빠져들지 않았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 ”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힘든 문제 가운데에서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평탄하게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더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교회를, 이 민족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를 깊이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지가족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우리를 연단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올 한 해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우리를 보호해 주셨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목사님! 저희는 한 해 동안 자녀문제로 얼마나 속을 썩었는지 몰라요.
저는 건강문제로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그리고 재정적인 문제로, 직장의 일로, 사업의 일 얼마나 힘들고 지쳤는데요
목사님! 올 한해는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합니다.
빨리 이 해가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실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보면 기쁘고 좋은 일도 있었지만, 힘들고 고통스런 일도 많았습니다.
언론이 발표한 10대 뉴스처럼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들게 한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은 해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신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항상 평화롭고, 기쁜 일 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당신의 백성들을 풀무불에 연단하십니다.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보통 독수리는 높은 절벽 위에 집을 짓습니다.
둥지를 만들 때 밑바닥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것을 깝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깃털로 덮어놓고, 새끼를 기릅니다.
어느 정도 새끼가 자라나면 보금자리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깃털을 제거해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새끼를 집 밖으로 내어 좇습니다.
그러면 새끼들이 절벽 밑으로 떨어집니다.
힘이 없는 새끼들이 절벽 밑으로 정신없이 떨어질 때 지켜보고 있던 어미 독수리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낚아채서 다시 위로 올라갑니다.
높이 올라간 어미 독수리는 다시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 독수리는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계속반복해서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는 독수리가 됩니다.
어미 독수리는 목숨을 건 가혹한 훈련을 통해 가장 높이 솟아오르는 강한 독수리를 만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때때로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다루는 것처럼 우리를 다루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 만드시기 위해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을 시킵니다.
물론 광야의 여정 가운데 그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때로는 전갈을 보내기도 하시고, 불뱀을 보내기도 하십니다.
이방 나라의 왕들을 통해 괴롭힘을 당하게 하십니다.
때로는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배후에는 백성들의 불순종을 순종으로 바꾸시기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 택하신 자녀들에게 건강을 지켜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형통케 하시는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이 내 생각대로, 내 소원대로 만사형통한다면 그것만이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잠깐은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얼마나 귀한 축복이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그 형통이 자기를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독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시온의 대로가 아닌 좁은 가시밭길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를 의도적으로 고생시키거나 힘들게 하기 위함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훈련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여호와 하나님은 다양한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우리의 인격을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모습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기 위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인내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유없이 우리를 힘든 골짜기로 이끄시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모든 상황을 원망 불평하지 않고, 인내하며,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그것이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베드로 사도의 고백처럼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하려 함이라. ”(벧전1:7)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연단의 불을 통과하셨습니까
아니면 지금도 통과하고 계십니까
이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분명한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연단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훈련시키시기 위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혹독한 추위를 견딘 히말라야의 장미가 가장 아름다운 향을 풍기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불시험을 받을수록 내게 더 소중한 것을 주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히려 그 불 시험을 통해 내 믿음을 부요하게 하십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구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올 한 해 동안도 우리를 연단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하며 나아갈 때 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우리를 인도해주셨음을 기억하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려 40년 동안을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그들을 고생시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광야는 과정일 뿐 그들의 목적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광야 40년의 여정은 그들에게는 때로는 너무 가혹해 보입니다.
가나안은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목표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언제나 신실하게 이루십니다.
믿음이 부족한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심하고, 배반합니다.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한걸음씩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끄십니다.
다같이 12-13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어리석은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셨다고 여겼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한 번도 그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들 앞에서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나의 모든 삶을 인도해 주신다는 확신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방황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내 인생의 네비게이션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확한 목적지를 정하기만 하면 때로는 돌아가고, 때로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믿음으로 따라가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모래위의 발자국 이란 시를 기억하시죠.
한 사람이 꿈을 꿉니다.
자기의 지나온 과거의 모습이 해변 모래 위에 발자국으로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발자국과 주님의 발자국이 사이좋게 찍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발자국이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입니다.
불만스런 목소리로 여호와 하나님께 묻습니다.
“왜 내 인생의 여정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 주님은 어디가시고, 내 발자국만 찍혀 있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세히 보아라. 그것은 너의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란다.
네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내가 너를 업고 갔단다. ”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발걸음마다 함께 동행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힘들고 험난한 여정이 많았지만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한 사람을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사역을 같이 하시는 분 가운데 킴 윅스라는 한국인 맹인이 있습니다.
6. 25 전쟁 때 시력을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공부를 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집회를 할 때마다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맹인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말합니다. 내가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20년 후도 알지 못합니다. 또 알고자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며 오늘을 살면, 여호와 하나님은 내일을 인도하셔서 마침내 내 생애를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도달케 하실 것입니다. ”
새로운 2008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오늘 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의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차지할 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올 한 해 동안 우리를 보호하시고, 연단시키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베풀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기억하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화룡점정의 마음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 짓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충성스럽게 일한 관료입니다.
또한 그는 중국의 전설적인 화가로 더 알려졌습니다.
어느 날 그가 남경 근처의 안락사라는 절에서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절의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먹구름을 뚫고 하늘로 솟아오르려는 두 마리의 용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그림을 잘 그렸던지 정말 용이 살아있는 것 같은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용의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용의 눈동자를 그려 달라고 졸랐습니다.
결국 장승요는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용의 눈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레 소리와 함께 용이 벽을 박차고 뛰쳐나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설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벽에 그린 용이 하늘로 올라갈 수는 있겠습니까
미완성의 그림을 완성시켰을 때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해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습니다.
화룡점정의 문자적 의미는 ‘용의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다’는 뜻입니다.
그 의미를 확대하면 ‘어떤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 혹은 ‘모든 것의 마지막 마무리’를 의미합니다.
용의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는 마무리가 중요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마지막을 잘 정리하는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이제 2007년의 마지막 주일예배 시간입니다.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나름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남은 이 시점에서 마지막 한 점을 잘 그려 넣어야 합니다.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면 작품이 완성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예배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화룡점정의 예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비록 지금까지 부족하고 연약한 것이 많이 있었지만 마무리를 잘 하면, 내년 새해에는 더 놀라운 열매가 맺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올 한해를 마무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3가지를 기억하고,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모세는 본문 7절에서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고 말씀합니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
이 말씀을 우리 각자에게 적용해 본다면 “2007년 한해를 돌아보라!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를 .....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 적용해 본다면 “올 한해를 돌아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지교회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 ”
사랑하는 여러분! 조용히 지나온 한 해의 발자취를 돌이켜 기억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우리 가정을, 직장을, 사업을 이끄셨는지를....
우리는 과거에 머물면 안되지만,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내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과 실수를 교훈삼아 새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기억하고 돌이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를 여기까지 보호해주셨음을 기억하라.
지도자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뜨거운 사랑으로 보호해 주셨는지를 말씀합니다.
7절의 "옛날을 기억하라!”로 시작하는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구원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출애굽부터 광야 40년의 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기 직전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다같이 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
이것은 광야 40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보호해 주셨는가를 보여줍니다. 모래 바람이 부는 메마른 사막, 아무런 수확을 기대할 수 없고, 단지 짐승의 울음소리만이 들리는 바로 그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심한 배려와 극진한 사랑으로 만나주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어떻게 보호하셨다고 말씀하십니까
당신의 눈동자같이 이스라엘을 지키셨고 말씀합니다.
눈동자는 인간의 신체 부위 중 매우 소중한 부분입니다.
또한 가장 쉽게 다칠 수 있는 약한 부위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본능적으로 눈에 어떤 물체가 날아오면 눈을 감게 만듭니다.
바로 눈동자를 보호하게 위해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지켜주셨다”는 말은 ‘최우선적으로 아끼며, 아주 조심스럽게 보호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택하신 모든 백성들을 눈동자같이 소중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의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보십시오.
내가 식생활 조절을 잘 해서 건강을 지켰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믿음생활을 잘 해서 믿음을 남보다 잘 지켰다고 여기십니까
내가 남보다 더 수고하고 땀 흘려서 내 가정과 산업을 지켰다고 보십니까
대답은 No!입니다.
돌이켜보면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들이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하다못해 숨을 쉬는 것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성인을 기준으로 심장은 하루에 자그마치 10만3천6백89번을 뛴다고 합니다. 내가 식사를 할 때에도, 내가 일을 할 때에도, 운동을 할 때에도, 무의식중에 잠을 잘 때에도 10만3천6백89번을 뛰고 있습니다.
또 하루 동안 폐는 2만3천40번 숨을 쉰다고 합니다.
또 하루에 700만개의 두뇌 세포를 사용하며 산다고 합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내가 심장이 이렇게 많이 뛰도록 무슨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한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어떤 수고를 해서 나의 폐가 호흡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무슨 노력을 해서 두뇌세포를 700만개씩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는데도, 나는 의식조차도 못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여호와 하나님께는 나의 심장을 움직여 주시고, 폐를 움직여 주시고 두뇌세포를 움직이셔서, 내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기에 우리는 지난 1년동안도 안전하게 산 줄로 믿습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친구가 어느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드디어 약속한 날자가 되어 두 친구가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오다가 중간에 겪은 일을 들어보게! 난 하마터면 여기에 못 올 뻔했네. 갑자기 내 말이 길을 가다가 뭔가에 깜짝 놀라 뛰는 바람에 땅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지. 다행히 다친 데가 없기 망정이지 인적도 드문 그곳에서 다쳤더라면 어떻게 됐겠는가 그런데 더 감사한 것은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기절할 뻔 했지 뭔가. 내가 말에서 떨어진 그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이 바로 낭떨어지였네. 나는 즉시 무릎을 꿇고 기적적으로 살려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네. "
그러자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친구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의 말을 들으니 나는 자네보다 훨씬 놀랍고 기적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것 같네. 내가 탄 말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날 떨어뜨려 본 적이 없다네. 그 녀석은 아주 침착하고 안전하게 아무 사고 없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 주었다네. 나는 위험스런 상황에 조금도 빠져들지 않았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 ”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힘든 문제 가운데에서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평탄하게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더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교회를, 이 민족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를 깊이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지가족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우리를 연단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올 한 해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우리를 보호해 주셨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목사님! 저희는 한 해 동안 자녀문제로 얼마나 속을 썩었는지 몰라요.
저는 건강문제로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그리고 재정적인 문제로, 직장의 일로, 사업의 일 얼마나 힘들고 지쳤는데요
목사님! 올 한해는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합니다.
빨리 이 해가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실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보면 기쁘고 좋은 일도 있었지만, 힘들고 고통스런 일도 많았습니다.
언론이 발표한 10대 뉴스처럼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들게 한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은 해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신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항상 평화롭고, 기쁜 일 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당신의 백성들을 풀무불에 연단하십니다.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보통 독수리는 높은 절벽 위에 집을 짓습니다.
둥지를 만들 때 밑바닥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것을 깝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깃털로 덮어놓고, 새끼를 기릅니다.
어느 정도 새끼가 자라나면 보금자리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깃털을 제거해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새끼를 집 밖으로 내어 좇습니다.
그러면 새끼들이 절벽 밑으로 떨어집니다.
힘이 없는 새끼들이 절벽 밑으로 정신없이 떨어질 때 지켜보고 있던 어미 독수리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낚아채서 다시 위로 올라갑니다.
높이 올라간 어미 독수리는 다시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 독수리는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계속반복해서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는 독수리가 됩니다.
어미 독수리는 목숨을 건 가혹한 훈련을 통해 가장 높이 솟아오르는 강한 독수리를 만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때때로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다루는 것처럼 우리를 다루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 만드시기 위해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을 시킵니다.
물론 광야의 여정 가운데 그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때로는 전갈을 보내기도 하시고, 불뱀을 보내기도 하십니다.
이방 나라의 왕들을 통해 괴롭힘을 당하게 하십니다.
때로는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배후에는 백성들의 불순종을 순종으로 바꾸시기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 택하신 자녀들에게 건강을 지켜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형통케 하시는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이 내 생각대로, 내 소원대로 만사형통한다면 그것만이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잠깐은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얼마나 귀한 축복이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그 형통이 자기를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독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시온의 대로가 아닌 좁은 가시밭길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를 의도적으로 고생시키거나 힘들게 하기 위함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훈련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여호와 하나님은 다양한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우리의 인격을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모습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기 위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인내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유없이 우리를 힘든 골짜기로 이끄시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모든 상황을 원망 불평하지 않고, 인내하며,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그것이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베드로 사도의 고백처럼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하려 함이라. ”(벧전1:7)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연단의 불을 통과하셨습니까
아니면 지금도 통과하고 계십니까
이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분명한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연단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훈련시키시기 위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혹독한 추위를 견딘 히말라야의 장미가 가장 아름다운 향을 풍기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불시험을 받을수록 내게 더 소중한 것을 주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히려 그 불 시험을 통해 내 믿음을 부요하게 하십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구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올 한 해 동안도 우리를 연단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하며 나아갈 때 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우리를 인도해주셨음을 기억하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려 40년 동안을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그들을 고생시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광야는 과정일 뿐 그들의 목적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광야 40년의 여정은 그들에게는 때로는 너무 가혹해 보입니다.
가나안은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목표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언제나 신실하게 이루십니다.
믿음이 부족한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심하고, 배반합니다.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한걸음씩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끄십니다.
다같이 12-13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어리석은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셨다고 여겼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한 번도 그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들 앞에서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나의 모든 삶을 인도해 주신다는 확신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방황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내 인생의 네비게이션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확한 목적지를 정하기만 하면 때로는 돌아가고, 때로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믿음으로 따라가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모래위의 발자국 이란 시를 기억하시죠.
한 사람이 꿈을 꿉니다.
자기의 지나온 과거의 모습이 해변 모래 위에 발자국으로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발자국과 주님의 발자국이 사이좋게 찍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발자국이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입니다.
불만스런 목소리로 여호와 하나님께 묻습니다.
“왜 내 인생의 여정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 주님은 어디가시고, 내 발자국만 찍혀 있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세히 보아라. 그것은 너의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란다.
네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내가 너를 업고 갔단다. ”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발걸음마다 함께 동행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힘들고 험난한 여정이 많았지만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한 사람을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사역을 같이 하시는 분 가운데 킴 윅스라는 한국인 맹인이 있습니다.
6. 25 전쟁 때 시력을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공부를 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집회를 할 때마다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맹인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말합니다. 내가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20년 후도 알지 못합니다. 또 알고자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며 오늘을 살면, 여호와 하나님은 내일을 인도하셔서 마침내 내 생애를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도달케 하실 것입니다. ”
새로운 2008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오늘 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의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차지할 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올 한 해 동안 우리를 보호하시고, 연단시키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베풀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기억하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화룡점정의 마음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 짓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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