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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하나님 손의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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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매년 우리는 한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립니다. 해가 거듭 될수록 송구영신 예배를 대하는 우리의 느낌과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설레임과 기대감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로 인하여 약간은 복잡한 마음으로 참여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흔히 한해를 돌이켜 보며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란 표현을 씁니다.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아픔의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리더십의 불안정으로 인한 많은 갈등과 혼란이 있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박태환이 수영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안겨주었고, 이소연 씨가 한국인 최초로 우주선에 오르는 희망적인 소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이 이어졌고, 중국발 멜라민 공포로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됐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적으로도 어수선한 한해였습니다.
세계적으로는 자연재앙으로 인한 피해가 큰 한해였습니다. 미얀마에 불어닥친 쓰나미로 13만여명이 죽었고, 중국 쓰촨성의 지진으로 9만명이 죽었습니다. 인도에서 벌어진 테러와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 등 전쟁과 테러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육신의 질병으로 신음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난 보낸 가족들의 슬픔이 있었습니다. 정든 직장을 떠나야 하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사업의 어려움으로 곤경에 처한 자도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신음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가운데도 남이 알 수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런 모든 무거운 짐들이 새해를 맞이하여 모두 벗겨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새해를 맞이한다고 우리 가운데 있는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해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새해 속으로 주체가 되어 뛰어들어야 합니다. 새해로 새해 되게끔 만들 때에만 새해가 됩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월이 흘러 나를 그 자리에 갖다 놓았다면 어제의 시간이나 지금 새해의 시간은 다를 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소망이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가짐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구습을 좇는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대로 행하고자 하는 새로운 마음의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시간의 주체가 되어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새해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미 주신 것들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에서 내가 놓쳐버린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붙잡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미 과거의 사건입니다. 이미 잃어버린 것들, 놓쳐버린 것들을 아쉬워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인공들을 보십시오. 어쩌면 그들은 실패한 인생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래바람 부는 미디안 광야에 서 있는 80세의 노인이었습니다. 양이나 몰고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지팡이를 들고 일어섰을 때에 그는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주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 앞에 서 있는 소년 다윗은 가장 보잘 것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한주먹거리도 되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손 안에 있는 물맷돌을 가지고 나아갔을 때 골리앗이 넘어졌습니다. 그 이후 찬란한 새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벳세다 들녘의 벌판에 해가질 때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소년이 가지고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주님 앞에 드려졌을 때에 오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오병이어의 놀라운 역사가 벌어졌습니다.
남이 가지고 있는 큰 것을 보고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시기하거나 질투하지도 마십시오.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감사하고, 그 가치를 깨달으십시오. 없는 것을 구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고, 지금 있는 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하십시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지팡이요, 물맷돌, 도시락이라도 주님의 손에 들려지면 놀라운 기적이 임합니다. 새로운 역사가 펼쳐집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정과 이웃과 친구들의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하십시오. 그들에게 서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의 날들은 새날이 될 것입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것인가를 비로소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절망 가운데 새로운 소망을 부어 주시는 비전의 말씀입니다. 당시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무려 포로생활이 시작된 지 70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힘과 능력으로는 해방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들은 자포자기한 상태입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캄캄한 어둠의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픔과 고난의 터널을 지나 새로운 소망의 메시지를 가지고 다가오십니다. 그들 가운데 다가오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성취시키는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도 다스리시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아 33장 2절에서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일을 계획하시고, 그 일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최고 최대의 계획은 무엇일까요 바로 당신의 백성들을 죄와 억압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노릇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들이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품을 떠나 패역한 길로 걸어갈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생활 이라는 아픔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그들 곁에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호시탐탐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결국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통해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십니다.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맛보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포로생활에서 자유케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실 시온의 미래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여호와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고 택하신 시온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하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시온에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가 빛같이 선포되고, 구원의 횃불이 들려질 때까지 여호와 하나님은 잠잠하지 아니하시고, 쉼 없이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품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집을 나간 탕자처럼 내 길로 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 길을 잃은 한 마리 양이 되어 헤맵니다. 우리는 주님을 잃어버리고 살지만 주님은 한시도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항상 사랑의 배신자가 되어 살지만 주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기다리시고 계시는 영원한 아버지이십니다.
언제라도 돌아서기만 하면 반갑게 뛰어 나와 맞아주시고, 기쁨과 감격의 잔치를 마련하십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히 오늘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쉬고 있고, 엉뚱한 길에서 주님을 외면할 지라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히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새해에도 여러분을 향하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 뜻을 이루고자 하는 교만함을 벗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깨닫고 겸허하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에 동참하게 될 때 새로운 미래가 활짝 열릴 줄로 믿습니다. 내 노력으로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겸허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때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의 모든 일을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새 이름으로 불러 주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새 이름으로 우리를 불러주십니다. 어떻게 불러 주십니까 4절을 보십시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버리운 자였습니다. 황무지와 같은 인생을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자녀로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헵시바가 되었습니다. ‘헵시바’의 뜻은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사랑하는 자녀에게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은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잠잠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쁄라’는 ‘결혼한 여자’ 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 많은 우리를 위하여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와 결혼을 시켜주십니다. 주님과 함께 행복의 달콤한 꿈을 꾸며 살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삶이 헵시바로 바꾸어지기를 원합니다. 나의 모든 삶이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송 가사처럼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더불어 달콤한 신혼의 행복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아름답게 단장시켜 주십니다.
우리를 향해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이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불러주시고, 아름답게 단장시켜 주십니다. 어떻게 우리를 단장시켜 주십니까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여호와 하나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
여호와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당치 않도록 우리를 단장시켜 주십니다. 어떻게요 마치 신부를 가장 아름답게 단장시키는 신랑처럼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을 삼으시고, 왕관이 될 때까지 우리를 단장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단장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화장을 한다고 다 예뻐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10대에 하면 치장, 20대에 하면 화장, 30대에 하면 분장, 40대에 하면 변장, 50대에 하면 무장, 60대에 하면 완전무장, 70대에 하면 포장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아름다운 것 같지만 속이 변하지 않으면 겉으로 드러나는 매력은 곧 사라집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면류관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면류관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왕관을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내 힘과 능력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는 교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에 나를 맡겨 드려야 합니다. 내가 하는 단장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단장을 해도 그것은 덧칠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단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이 나의 속사람을 새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면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습은 빛이 납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맡겨 드리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새롭게 만드십니다. 거친 곳은 다듬어 주시고, 어두운 곳은 빛나게 하시고, 병든 곳은 치료해 주십니다. 잃어버린 것은 회복하게 하시고,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십니다.
새해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자신을 맡겨 드림으로 아름답게 빚어 가시는 주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캄캄한 밤에 앞을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별이 반짝거립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빛은 더욱 선명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먹구름 속에도 여전히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몽고제국을 일으켰던 칭기스칸의 어록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부끄럽게 합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만 났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탓하지 말라.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 데 동원한 몽골 병사는 적들의 100분의 1, 200분의 1에 불과했다. 나는 배운 것이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스칸이 됐다. ”
새해에도 여전히 환경을 바라보고 어려움만을 바라본다면 어제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입니다. 새로운 변화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둠을 뚫고 다가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을 가진 자는 새로운 소망의 한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기쁨과 감사와 찬송의 생수가 흘러넘칠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손의 왕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바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마십시오. 어려울수록 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위로부터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능력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용기 있게 전진하십시오.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내가 기대하고 계획하는 것보다 더 놀랍도록 채우실 것입니다. 이런 기대와 감격을 가지고 새해의 문을 활짝 여십시오. 시간에 떠밀려 가는 자가 아니라 시간의 주체가 되어 새해의 주인공으로 힘차게 뛰어 드십시오. 그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들이 바로 여러분을 통해서 아름답게 펼쳐질 줄로 믿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우리는 시간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살아올 때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소중한 시간들을 소모시키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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