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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환상을 보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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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29:18에 “환상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말씀했는데 우리는 새해 원단에 우리의 신령한 영안이 열려서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환상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환상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가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보입니까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좌정하시고 계신 영광의 보좌는 내가 믿고 의지했던 왕이나 부모, 또는 사랑하는 이가 죽었거나 나라가 큰 난리를 만나 환란을 겪고 있어 세상 쪽으로는 바라볼 수 있는 통로가 모두 막혔을 때 비로소 보입니다.
 유다 왕 웃시야는 주전 789-736년까지 52년간이나 통치하던 왕으로 성군 다윗 왕처럼 태평성대를 누린 왕입니다. 대하 26장에 보면 웃시야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선지자 스가랴의 보필을 받으면서 신무기를 개발하여 예루살렘 성을 견고하게 하고, 30만이 넘는 국방력으로 강대국을 쳐서 이겨 영토를 넓혔고, 농업을 장려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백성들이 국태민안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은 말년에 교만하여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는 성전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산당제사를 허용하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문둥병이 들어 별궁에 거하다가 죽었습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말년에 한 순간 직분자로서 오버하고, 자유신학사상에 물들어 임의로 모이다가 신앙적으로 파산했고 비참하게 인생이 끝나버렸습니다.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다음으로 믿고 의지했던 왕의 죽음으로 백성들의 마음이 공허하고 두려워졌을 때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선지자 다니엘도 자기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노예생활을 하면서 그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를 보여주셨습니다. 단 7:13-14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는 말씀으로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영국 Victoria여왕 시대의 서정시인 Robert Browing은 Pippa의 노래를 썼습니다. “때는 봄, 시간은 아침 7시, 이슬은 언덕에서 방울방울 진주처럼 빛나고 종달새 날개치며 오를 때 달팽이는 가시나무 끝에 도사리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니 만사는 태평하구나” 그렇습니다. 세상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고, 인재와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 보좌 위에 좌정해 계십니다.
우리가 환상 중에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공의와 사랑과 자비의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시니 평안을 얻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시 11:4에 다윗 왕이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할렐루야!
또 누구에게 하늘 보좌를 보여주십니까 주후 96년경 로마제국 도미시안 황제 때 지중해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계 4:2). 여기 성령에 감동했다는 말은 성령 안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영은 영으로 통합니다. 롬 8:8-9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계 4:1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라고 말씀했고,
11:16-19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여 감사하고 찬양하니 이에 하늘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말씀합니다. 언제 하늘 문이 열립니까 감사하고 찬양할 때 성전 문이 열립니다. 성전 안에 있는 우리 마음 문이 열릴 때 응답과 기적의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늘의 문, 교회의 문, 마음의 문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둘째로, 환상 가운데 거룩한 천사들의 예배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2-4절)고 했는데 Serapim 천사들은 셋이 한 조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찬양을 돌리는 여섯 날개를 가진 영물입니다.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었다고 했으니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태도가 어떠해야 함을 잘 보여줍니다. 천사들은 죄를 안 지었고 세상의 때가 묻지 않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가리었습니다. 세상의 더러운 곳을 가거나 밟아 본 일도 없는 깨끗한 발도 가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옵니까 눅 18:9-14에 나오는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온 두 사람을 봅시다.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고 교만한 마음으로 얼굴을 치켜들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멀리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여호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회개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이 바리새인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고 말씀했습니다.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 천사들이 날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세 번 창화한 것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께 복 받기에 앞서 온전히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제일 먼저 자기의 죄를 회개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선포하신 사죄의 확신을 가질 때 비로소 나의 존재와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성탄절을 중심한 송년과 신년은 온통 찬양과 감사로 충만합니다.
눅 1:41-44에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고 기록되었는데 6개월 된 복중의 아이가 주님을 찬양하다니요
엘리사밧과 같이 깊은 심층에서, 존재의 뿌리에서 울어나오는 찬양과 천사들의 찬양이 화합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창화하는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해 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은혜의 표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셋째로, 환상 가운데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절). 환상을 펼쳐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천상의 환상을 보는 예배는 그냥 꿈으로 그치지 않고 생산적인 역사로 이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며, 말해도 말하는 이유조차 모르는 완악한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에는 신령한 예배의 환상에 젖어서 사시기 바랍니다. 20C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Dietrich Bonhoeffer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싼 은혜와 값진 은혜로 구분했습니다. 값싼 은혜가 무엇입니까 아무데서나 마구 남용되는 쉬운 은혜입니다. 회개가 없는 용서의 설교, 훈련이 없는 제자도, 바른 신앙고백이 없는 세례,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성찬, 사명감이 없는 직분 봉사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길을 오히려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값진 은혜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처럼 추하고 더러운 얼굴과 입술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뵙고 두려워할 때 성령의 불화저로 부정한 입술이 정하여지는 체험, 절망적인 세상 속에 살면서도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 옷자락이 우리가 예배 드리는 이곳에 가득히 늘어뜨려져 있는 환상을 보는 체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Serapim 천사들의 찬양드리는 모습을 보고 그 찬양의 소리에 존재의 바탕으로부터 화합하는 체험,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씨앗과 그루터기가 되려는 소명감이 확고해지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교회에서 설교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의 숨소리로 들려지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롬 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씀은 로고스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의 숨소리가 들린다 하여 레에마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 지식을 전달하는 로고스로 듣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숨소리가 섞인 생명과 영으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직접 말씀하셨지만 오늘날은 신구약 66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부모들과 교사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숨소리로 들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어야 하겠습니다. 유대인의 자녀교육에는 쉐마 프로젝트라는 것이 있는데 쉐마란 말은 들으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님께서는 복음서에 교훈을 하신 후에 꼭 덧붙이시기를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도는 육체의 법칙이 아니라 성령의 법칙에 따라 삽니다(롬 8:2). 말씀의 법칙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나를 변화시킨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말씀의 권능을 체험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전 11:1에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했는데 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애굽의 나일 강은 세계에서 두 번째 긴 강인데 비가 자주 오면 강이 범람하여 주위 땅을 기름지게 합니다. 파종하는 10월 경 흙탕물이 덮여서 내 땅, 네 땅이 잘 구분이 안되지만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고 아무 데나 씨를 뿌려놓고 보면, 4월 추수기에 열매를 거둘 때 내 밭에 뿌린 것보다 더 많이 거두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첫째 의미는 무심한 강물에 식물을 던져도 반드시 거두는 것이 있을진대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에게 베푼 것은 반드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둘째 의미는 사 55:10-11에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는 말씀의 성취력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드릴 때마다, 기도드릴 때마다 성령의 호흡을 느끼시는 가운데 말씀에 붙잡히고 말씀과 하나가 되는(행 18:5) 권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저 벳세다 들녘에서 예수님이 장정만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일 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사용하셨습니다. 이름 모를 소년 하나가 혼자 먹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님 앞에 선뜻 내어놓는 데서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약자가 강자를 섬기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강자가 약자를 섬깁니다.
성공의 고지를 점령하고 세상을 정복한 후 세상을 부려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육입니다.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 중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천 명 분을 혼자 다 먹는 사람인데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성공한 사람,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삼천 억, 오천 억을 꿀꺽 삼켰다가 지금까지 배앓이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하나는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인데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성공자로, 잘 사는 사람으로 보십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심어서 어떤 탁월한 인격자로, 성공자로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회전의자나 돌리면서 오천 명의 섬김을 받고, 오천 명 분을 다 먹어치우는 사람입니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불로소득하는 불한당을 키워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오천 명을 섬기며 오천 명을 먹이는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오늘 무자년 송구영신의 미명에 이사야 선지자가 본 환상이 저와 여러분의 환상이 되기 바랍니다. 세상은 어지럽고 뒤죽박죽이고 소망이 없어 보이지만 하늘 보좌에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 앉아 계십니다. 환상을 보고 힘을 얻읍시다.
올해야말로 모세에게 주신 출애굽의 환상이 여러분과 우리 교회에 주신 환상이 되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출 3:7-8).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이야말로 우리들의 교회와 삶의 현장에서 불평과 원망, 가난과 질고, 오만과 편견, 염려와 근심, 탐욕과 증오, 염병과 테러의 가나안 족속들이 떠나가고 믿음과 부흥, 충성과 헌신, 관용과 순종, 기적과 형통, 건강과 경제의 빛이 비치는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를 상속하시기 바랍니다. 20C 권력형 인간, homo politicus가 21C 공생하는 인간, homo symbius로 변신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성도가 당회원이 되고 제직원이 되어야 합니까 첫째,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성도입니다. 둘째, 화합을 가져올 줄 아는 성도입니다. 셋째, 자기 주장이나 고집대로 하지 않는 성도입니다. 넷째, 주님의 때를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성도입니다. 인화 협동적 인간, 상호 의존하는 인간, homo reciprocus로 변신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의 환상, 다니엘의 환상, 사도 요한의 환상, 벳세다 들녘의 환상, 출애굽의 환상을 보는 아침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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