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한 전략
본문
2008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송년주일입니다. 엊그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 것 같은 데 벌써 한 해가 다갔습니다. 송년주일 예배에 참여한 모든 성지가족 위에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매년 교수신문에서 일 년을 돌이켜 보며 현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작년에는 사회 지도층의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 등 도덕 불감증을 비판하는 ‘자기기인’(自欺欺人·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이 선정됐었습니다. 올 해의 사자성어는 ‘호질기의(護疾忌醫)’ 가 뽑혔습니다.
이 말은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 통서에서 사용한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병을 숨기고 의원을 기피해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병이 있는데도 의사한테 보여 치료받기를 꺼린다면 결국 화를 자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희망을 안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촛불시위를 비롯한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한해였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민의 비판과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얼른 귀를 열고 국민과 전문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정치인은 물론 우리 신앙들도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충고를 하면 그것을 기분 좋게 받아드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충고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 놓고, 겸허하게 충고를 수용하면 그것은 자신을 새롭게 하고, 성숙시키는 좋은 약이 됩니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해서 삶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의 시간은 동일하게 오고갑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의 각오와 태도를 가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결국 새해를 의미 있게 맞이하려면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해야 합니다.
비행기가 아무리 멋지게 이륙을 해도 착륙을 하지 못하면 큰 일 입니다. 아무리 시작이 멋있어도 끝이 아름답지 못하면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습니다. 연극을 마친 배우가 관객들이 계속 환호하고 박수를 친다고 해서 무대에 계속 서있으면 안 되죠. 박수 소리가 그치기 전에 무대를 떠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박수 소리에 도취되어 계속 있으면 관객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바둑을 아무리 잘 두어도 마지막에 마무리를 못하면 대마가 죽습니다. 그러면 지게 됩니다. 결국 우리 인생은 매 순간마다 어떻게 매듭을 잘 짓느냐가 중요합니다.
대나무는 하늘을 향해 쭉쭉 자랍니다. 땅에서 솟아난 죽순은 하루에 약 80Cm씩 자랍니다. 자라는 기간은 약 1달 정도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약 20m 정도의 크기를 유지합니다. 대나무가 1달에 평생 크기로 자라나면서도 부러지지 않고 높이 자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바로 매듭입니다. 대나무에는 약 70개 정도의 매듭이 있습니다. 매듭이 있어서 대나무는 부러지지 않고 한 달 만에 성장을 끝냅니다.
우리 인생도 좋은 마무리를 하려면 매듭을 잘 지어야 합니다. 아무리 빨리 성장해도 매듭을 잘 짓지 못하면 결국 쓰러집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과거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이전 일’과 ‘옛날 일’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까지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긋지긋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배 한 척도 만들지 않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홍해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거의 일을 잊으라고 하십니다. 과거에 있었던 홍해의 기적신앙에 매여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놀라운 사건을 기억도 하지 말고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의 신앙은 오늘을 있게 한 밑거름임에 분명합니다.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자세나,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과거에 매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귀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역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옛적에 들었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그때가 좋았지 한없이 좋았지 그러나 이젠 꿈이야♪ 누가 부른 노랜지는 모르지만 만약 우리가 여전히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한심하지 않습니까
과거는 아무리 추억해도 오늘 나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과거에 아무리 미스 리(Lee)가 좋았어도, 지금의 미스 최와 결혼했으면 미세스 최를 사랑해야지 옛날 첫 사랑의 미스 리를 여전히 그리워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혹시 그런분 있으면 회개하시고, 옆에 있는 아내를, 남편을 죽도록 사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과거에 매인 인생, 매일 과거를 그리워하며 ‘그때가 좋았지’를 노래하는 인생은 신기루를 잡는 허망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올 한해를 살면서 성공적인 일도 있고, 실패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성공한 일은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문제는 실패한 일입니다. 내가 노력은 했지만 잘 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실패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실패는 잠깐의 연단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실패는 실패의 경험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선다면 오히려 그것은 성공의 열쇠가 됩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실패 앞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좌절하고 낙심할까요 대부분의 경우는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실패라는 상처에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배를 말뚝에 묶어 놓고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제자리를 맴돌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라는 배에 올라타서 묶어 놓은 밧줄을 끊지 못하고 열심히 노를 젓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세타령을 합니다. 자신을 비하하고, 무능력자로 자책하며 열등감에 빠집니다. 때로는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심한 죄책감에 매여서 앞으로 나가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의 죄의 상처와 얼룩 때문에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님은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 사랑이 무엇입니까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용서해 버리는 것입니다. 실수와 허물을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우리의 죄과를 옮겨 주셨습니다. 우리의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의 문서 보따리를 불에 던져 태우셨습니다. 그래서 코리 텐붐 여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 짐을 강물 깊은 곳에 던지시고 낚시금지 라는 푯말을 걸어 두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여전히 주님 앞에 나와서 죄 보따리를 풀어 놓습니다. 그래서 회개와 용서의 기도를 보면 녹음기 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처럼 동일한 내용일 때가 많습니다. 이전에 새벽기도 갔다 오다가 이웃집 호박 따다 빈대떡 부쳐 먹은 것, 옛날에 사랑하는 사람 가슴 아프게 한 것, 남에게 피해 준 것.. 등등
주님은 이미 기억하지도 않는 죄 보따리를 풀어 놓고 푸념하듯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태도가 아닙니다.
아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 용서하고 받아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아들은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설 필요가 없습니다. 당당하게 더 열심히 공부하면서 살면 아버지의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 앞에 엎드려 눈물 흘리면서 ‘아버지 내가 지난 밤에 생각해 보니 죽을 죄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 첫 날은 아버지가 이해하고 아들을 사랑으로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또 아들이 오더니 ‘아버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죽을 죄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용서해 주세요. ’ 만약 매일 이런 일아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중에는 아버지가 화를 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런 미련한 아들의 우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찬송가 255장(너희 죄 흉악하나)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죄의 빛 흉악하나 희게 되리라 주홍 빛 같은 네 죄 주홍 빛 같은 네 죄
눈과 같이 희겠네 눈과 같이 희겠네
3절 : 너희 죄 사해주사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아니 하시네 기억아니 하시네♪
주님은 이미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조차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복음은 용서의 복음이요 속죄의 기쁨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 믿습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해방 되었으며,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실패의 쓰라린 경험, 지난 날 내 기쁨과 행복과 평강을 빼앗아 갔던 모든 죄책감, 이 모든 과거의 아픔과 상처들을 십자가에서 다 용서하시고, 불태우셨습니다. 이 자유함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이상 과거의 포로가 되어 살지 마십시오. 내 안에 있는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말,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부정적인 행동을 과감하게 끊어버리십시오. 아직도 과거에 매여 있다면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안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은 떠날지어다. ” 아멘! 그리고 항상 믿음으로 더 잘 되는 나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나는 잘 될 것이다’ 라고 선포하십시오. 그 입술의 열매가 축복의 열매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 안에서 과거의 모든 아픔과 상처의 기억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 바로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믿음으로 기대하라
다같이 19절을 읽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여호와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새 일'이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그 일이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은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뚫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뚫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슨 이유로, 누구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엄청난 새 일을 행하시려고 할까요 이사야 36장 8절에 보면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거룩한 길을 반드시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여러분의 삶이 광야의 삶 가운데 모래 바람 부는 언덕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언덕을 넘어서면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생명의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능력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을 위해서는 우리는 마음의 청소를 해야 합니다. 내 마음의 창이 어두우면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쓰레기더미처럼 악취가 나고, 더러운 것으로 채워져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물댄 동산의 축복이 보이지 않습니다. 매일 땅만 바라보고, 문제만 바라보고 신음하면 좌절할 뿐입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미래를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장차 행하실 열린 미래를 바라보며 날마다 마음의 거울을 닦아 보십시오. 반드시 약속대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광야의 길에 시온의 대로를 여시고, 사막에 생명의 오아시스를 만드실 줄 믿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앵무새를 하나 키웠습니다. 매일 퇴근할 때면 파김치가 돼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고,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앵무새가 이 주인의 말을 반복해서 듣더니 하루는 주인을 보고 ‘아이고,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들을 때에야 웃음이 낫지만 자꾸 들으니까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장로님 댁의 앵무새한테 뭔가 좋은 것을 배우라고 자기 앵무새를 그 옆에다 갖다 놨습니다. 집사님의 앵무새가 장로님의 앵무새를 보자 ‘아이고,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의 앵무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
사랑하는 여러분! 집사님의 집의 앵무새가 되기를 원하세요 아니면 장로님 집의 앵무새가 되기를 원하세요. 잠언 18장 20-21절을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서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말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말은 자성적인 예언의 힘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내가 믿음으로 선포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비록 내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선포하고, 믿음의 그릇을 깨끗하게 준비하면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한 것으로, 좋은 것으로 채우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기대하며 나아가는 것이 바로 마무리를 잘 하는 지혜인 줄 믿습니다.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깨달으라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한 세 번째 전략은 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해도 내가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불쌍한 인생입니다.
21절 말씀은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분명한 이유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창조의 목적에 맞게 살 때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이 가장 멋진 삶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넘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원망과 한숨과 탄식의 소리만 울리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더 이상 탄식하며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곤고하십니까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러면 먼저 찬송을 힘차게 불러 보십시오. 물론 즐겁고 신나는 일이 있어서 찬송을 부를 수 있지만 반대의 상황에서도 나를 통해 역사하실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일을 기대하면서 찬양을 올려드리십시오. 찬양은 내 마음의 부정적인 생각을 떠나게 합니다. 나를 짓누르는 마귀의 멍에를 꺾을 수 있습니다. 찬양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영광의 면류관을 주시고, 찬양하는 입술에 새 노래를 들려주시며, 더 큰 기쁨과 감격으로 채워주십니다.
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성공적인 전략입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주일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매이지 마시고, 부정적이고,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태도를 과감하게 끊어버리십시오. 광야에 대로를 만드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날마다 찬양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한 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찬 2009년을 맞이할 수 성공적인 비결입니다. 아무리 내년이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나는 내년에는 더 잘될 것이다’ 라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매년 교수신문에서 일 년을 돌이켜 보며 현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작년에는 사회 지도층의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 등 도덕 불감증을 비판하는 ‘자기기인’(自欺欺人·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이 선정됐었습니다. 올 해의 사자성어는 ‘호질기의(護疾忌醫)’ 가 뽑혔습니다.
이 말은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 통서에서 사용한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병을 숨기고 의원을 기피해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병이 있는데도 의사한테 보여 치료받기를 꺼린다면 결국 화를 자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희망을 안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촛불시위를 비롯한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한해였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민의 비판과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얼른 귀를 열고 국민과 전문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정치인은 물론 우리 신앙들도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충고를 하면 그것을 기분 좋게 받아드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충고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 놓고, 겸허하게 충고를 수용하면 그것은 자신을 새롭게 하고, 성숙시키는 좋은 약이 됩니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해서 삶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의 시간은 동일하게 오고갑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의 각오와 태도를 가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결국 새해를 의미 있게 맞이하려면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해야 합니다.
비행기가 아무리 멋지게 이륙을 해도 착륙을 하지 못하면 큰 일 입니다. 아무리 시작이 멋있어도 끝이 아름답지 못하면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습니다. 연극을 마친 배우가 관객들이 계속 환호하고 박수를 친다고 해서 무대에 계속 서있으면 안 되죠. 박수 소리가 그치기 전에 무대를 떠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박수 소리에 도취되어 계속 있으면 관객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바둑을 아무리 잘 두어도 마지막에 마무리를 못하면 대마가 죽습니다. 그러면 지게 됩니다. 결국 우리 인생은 매 순간마다 어떻게 매듭을 잘 짓느냐가 중요합니다.
대나무는 하늘을 향해 쭉쭉 자랍니다. 땅에서 솟아난 죽순은 하루에 약 80Cm씩 자랍니다. 자라는 기간은 약 1달 정도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약 20m 정도의 크기를 유지합니다. 대나무가 1달에 평생 크기로 자라나면서도 부러지지 않고 높이 자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바로 매듭입니다. 대나무에는 약 70개 정도의 매듭이 있습니다. 매듭이 있어서 대나무는 부러지지 않고 한 달 만에 성장을 끝냅니다.
우리 인생도 좋은 마무리를 하려면 매듭을 잘 지어야 합니다. 아무리 빨리 성장해도 매듭을 잘 짓지 못하면 결국 쓰러집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과거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이전 일’과 ‘옛날 일’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까지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긋지긋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배 한 척도 만들지 않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홍해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거의 일을 잊으라고 하십니다. 과거에 있었던 홍해의 기적신앙에 매여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놀라운 사건을 기억도 하지 말고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의 신앙은 오늘을 있게 한 밑거름임에 분명합니다.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자세나,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과거에 매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귀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역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옛적에 들었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그때가 좋았지 한없이 좋았지 그러나 이젠 꿈이야♪ 누가 부른 노랜지는 모르지만 만약 우리가 여전히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한심하지 않습니까
과거는 아무리 추억해도 오늘 나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과거에 아무리 미스 리(Lee)가 좋았어도, 지금의 미스 최와 결혼했으면 미세스 최를 사랑해야지 옛날 첫 사랑의 미스 리를 여전히 그리워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혹시 그런분 있으면 회개하시고, 옆에 있는 아내를, 남편을 죽도록 사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과거에 매인 인생, 매일 과거를 그리워하며 ‘그때가 좋았지’를 노래하는 인생은 신기루를 잡는 허망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올 한해를 살면서 성공적인 일도 있고, 실패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성공한 일은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문제는 실패한 일입니다. 내가 노력은 했지만 잘 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실패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실패는 잠깐의 연단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실패는 실패의 경험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선다면 오히려 그것은 성공의 열쇠가 됩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실패 앞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좌절하고 낙심할까요 대부분의 경우는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실패라는 상처에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배를 말뚝에 묶어 놓고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제자리를 맴돌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라는 배에 올라타서 묶어 놓은 밧줄을 끊지 못하고 열심히 노를 젓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세타령을 합니다. 자신을 비하하고, 무능력자로 자책하며 열등감에 빠집니다. 때로는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심한 죄책감에 매여서 앞으로 나가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의 죄의 상처와 얼룩 때문에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님은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 사랑이 무엇입니까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용서해 버리는 것입니다. 실수와 허물을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우리의 죄과를 옮겨 주셨습니다. 우리의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의 문서 보따리를 불에 던져 태우셨습니다. 그래서 코리 텐붐 여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 짐을 강물 깊은 곳에 던지시고 낚시금지 라는 푯말을 걸어 두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여전히 주님 앞에 나와서 죄 보따리를 풀어 놓습니다. 그래서 회개와 용서의 기도를 보면 녹음기 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처럼 동일한 내용일 때가 많습니다. 이전에 새벽기도 갔다 오다가 이웃집 호박 따다 빈대떡 부쳐 먹은 것, 옛날에 사랑하는 사람 가슴 아프게 한 것, 남에게 피해 준 것.. 등등
주님은 이미 기억하지도 않는 죄 보따리를 풀어 놓고 푸념하듯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태도가 아닙니다.
아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 용서하고 받아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아들은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설 필요가 없습니다. 당당하게 더 열심히 공부하면서 살면 아버지의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 앞에 엎드려 눈물 흘리면서 ‘아버지 내가 지난 밤에 생각해 보니 죽을 죄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 첫 날은 아버지가 이해하고 아들을 사랑으로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또 아들이 오더니 ‘아버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죽을 죄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용서해 주세요. ’ 만약 매일 이런 일아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중에는 아버지가 화를 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런 미련한 아들의 우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찬송가 255장(너희 죄 흉악하나)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죄의 빛 흉악하나 희게 되리라 주홍 빛 같은 네 죄 주홍 빛 같은 네 죄
눈과 같이 희겠네 눈과 같이 희겠네
3절 : 너희 죄 사해주사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아니 하시네 기억아니 하시네♪
주님은 이미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조차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복음은 용서의 복음이요 속죄의 기쁨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 믿습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해방 되었으며,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실패의 쓰라린 경험, 지난 날 내 기쁨과 행복과 평강을 빼앗아 갔던 모든 죄책감, 이 모든 과거의 아픔과 상처들을 십자가에서 다 용서하시고, 불태우셨습니다. 이 자유함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이상 과거의 포로가 되어 살지 마십시오. 내 안에 있는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말,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부정적인 행동을 과감하게 끊어버리십시오. 아직도 과거에 매여 있다면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안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은 떠날지어다. ” 아멘! 그리고 항상 믿음으로 더 잘 되는 나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나는 잘 될 것이다’ 라고 선포하십시오. 그 입술의 열매가 축복의 열매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 안에서 과거의 모든 아픔과 상처의 기억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 바로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믿음으로 기대하라
다같이 19절을 읽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여호와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새 일'이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그 일이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은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뚫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뚫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슨 이유로, 누구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엄청난 새 일을 행하시려고 할까요 이사야 36장 8절에 보면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거룩한 길을 반드시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여러분의 삶이 광야의 삶 가운데 모래 바람 부는 언덕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언덕을 넘어서면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생명의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능력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을 위해서는 우리는 마음의 청소를 해야 합니다. 내 마음의 창이 어두우면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쓰레기더미처럼 악취가 나고, 더러운 것으로 채워져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물댄 동산의 축복이 보이지 않습니다. 매일 땅만 바라보고, 문제만 바라보고 신음하면 좌절할 뿐입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미래를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장차 행하실 열린 미래를 바라보며 날마다 마음의 거울을 닦아 보십시오. 반드시 약속대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광야의 길에 시온의 대로를 여시고, 사막에 생명의 오아시스를 만드실 줄 믿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앵무새를 하나 키웠습니다. 매일 퇴근할 때면 파김치가 돼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고,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앵무새가 이 주인의 말을 반복해서 듣더니 하루는 주인을 보고 ‘아이고,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들을 때에야 웃음이 낫지만 자꾸 들으니까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장로님 댁의 앵무새한테 뭔가 좋은 것을 배우라고 자기 앵무새를 그 옆에다 갖다 놨습니다. 집사님의 앵무새가 장로님의 앵무새를 보자 ‘아이고,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의 앵무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
사랑하는 여러분! 집사님의 집의 앵무새가 되기를 원하세요 아니면 장로님 집의 앵무새가 되기를 원하세요. 잠언 18장 20-21절을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서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말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말은 자성적인 예언의 힘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내가 믿음으로 선포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비록 내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선포하고, 믿음의 그릇을 깨끗하게 준비하면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한 것으로, 좋은 것으로 채우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기대하며 나아가는 것이 바로 마무리를 잘 하는 지혜인 줄 믿습니다.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깨달으라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한 세 번째 전략은 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해도 내가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불쌍한 인생입니다.
21절 말씀은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분명한 이유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창조의 목적에 맞게 살 때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이 가장 멋진 삶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넘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원망과 한숨과 탄식의 소리만 울리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더 이상 탄식하며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곤고하십니까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러면 먼저 찬송을 힘차게 불러 보십시오. 물론 즐겁고 신나는 일이 있어서 찬송을 부를 수 있지만 반대의 상황에서도 나를 통해 역사하실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일을 기대하면서 찬양을 올려드리십시오. 찬양은 내 마음의 부정적인 생각을 떠나게 합니다. 나를 짓누르는 마귀의 멍에를 꺾을 수 있습니다. 찬양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영광의 면류관을 주시고, 찬양하는 입술에 새 노래를 들려주시며, 더 큰 기쁨과 감격으로 채워주십니다.
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성공적인 전략입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주일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매이지 마시고, 부정적이고,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태도를 과감하게 끊어버리십시오. 광야에 대로를 만드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날마다 찬양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한 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찬 2009년을 맞이할 수 성공적인 비결입니다. 아무리 내년이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나는 내년에는 더 잘될 것이다’ 라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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