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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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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매년 추수감사절을 맞이할 때마다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세월이 흐르는 속도가 10대에서 시속 10킬로, 20대에는 20킬로, 30대에는 30킬로, 40대에는 40킬로로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에 인생 속도를 조절하고 여유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시간 추수의 기쁨과 마음의 풍요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혹시 외적인 풍요는 없어도 마음만은 풍요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풍요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역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두 가지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미안하다는 말이고, 또 하나는 고맙다는 말입니다. "그 동안 내가 못해주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시고, "당신이 잘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시길 바랍니다.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은 가장 위대한 천국 언어입니다. 그러한 감사 언어를 가지고 있어야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불평하고 싶은 일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연약한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감사거리를 찾아보면 감사할 것이 월등히 많이 있습니다. 한두 가지 불평거리 때문에 그것들을 잊어버리면 안될 것입니다. 환경이 어떠하든지 감사의 심령으로 보면 그 심령에는 천국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불평의 심령으로 보면 그 심령은 고통과 불행에 휩싸이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심령을 가지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행복이 좌우됩니다.
옛날에 어느 성문 곁에 지혜로운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와서 묻습니다. "할아버지! 이곳 살기 좋습니까 한번 정착해 볼까 해서 와 봤습니다. " 그러자 노인이 묻습니다. "자네! 전에 살던 곳은 살기 괜찮았는가" "네. 괜찮았습니다. " 그 말을 듣고 노인이 말합니다. "이곳도 살기 괜찮은 곳이네. " 얼마 후에 다른 청년이 와서 묻습니다. "할아버지! 이곳 살기 좋습니까" 노인이 역시 묻습니다. "자네가 전에 살던 곳은 어땠는가 살기가 괜찮았는가" "아주 지옥 같은 곳이었죠. " 그 말을 듣고 노인이 말합니다. "이곳도 아주 지옥 같은 곳이네. " 이 세상은 다 그저 그렇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갈립니다. 같은 환경에서 어떤 사람은 행복하지만 어떤 사람은 불행을 느낍니다. 그처럼 행복은 환경이 결정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가 결정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감사하는 삶을 증진시키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4가지 권면의 말씀을 드립니다.

1.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쳐야 합니다. (15절)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면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쳐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면 됩니다. 며칠 전에 인터넷에 이런 기도문이 올라온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 제가 오늘도 얼마나 바쁘게 살게 되는지 아시지요 그래서 제가 주님을 잊어도 주님은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 정말 얌체 같은 기도입니다. 그래도 그런 기도까지 하셔야 합니다. "주님! 제가 연약해서 주님을 잊어도 주님은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 얌체 같은 기도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질 때 우리의 심령에는 평강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마음에 평강이 넘치면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이 말과 표정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말이 나오고 감사하는 표정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 말과 얼굴에 감사가 가득 담긴 얼굴이 되도록 해 보세요.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그 가운데 넘치게 될 것입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한 고문이 어떤 사람을 장관으로 천거했습니다. 링컨이 면접을 보았는데 맘에 들지 않아서 그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고문이 묻습니다. "왜 쓰지 않습니까 유능한 사람인데요. " 링컨이 대답합니다. "얼굴이 맘에 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 "그거야 얼굴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 아닙니까 원래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반드시 책임질 수 있는 얼굴이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려면 또 한가지 꼭 필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기간에 무엇을 보려는 조급한 성격을 버리려는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단기간에 보지 못하면 금방 실망합니다. 전도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한두 번 해 보다 안되면 금방 포기해 버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인데 우리는 너무 기다리지 못합니다. 세상만사 어떤 일도 쉽게 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쉽게 되는 일이 있을지라도 쉽게 되는 것은 쉽게 사라집니다. 조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바라보고 쉽게 속단하지 말아야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6절) 16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십시오. 말씀이 있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 찬양을 강조합니다. 그 모든 것이 언제 가장 극적으로 이루어집니까 바로 예배할 때입니다.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께 최고로 감사하는 표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기를 힘쓰는 분이 되어야 합니다. 육체의 부모에게 제일 효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선물 드리고, 용돈 드리고, 식사를 사 드리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소중한 효도는 자주 찾아 뵙고 같이 있어 드리는 것입니다. 가끔 찾아와서 아양떨고 잔소리하는 딸보다는 맘에 안 들어도 같이 함께 사는 며느리가 진짜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자녀는 형편이 어려워서 부모님에게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부모님 뵙고 싶어서 왔다고 말할 줄 아는 자식이 진짜 자식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헌신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어떤 것을 드리지 못해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배 자체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예배할 때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견고해지고 역사를 운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시각을 가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감사찬양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런 가정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나" "내가 왜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살게 되었나"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보내시고,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자신의 고난에 대해 나중에 형제들에게 뭐라 말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민족을 구하려고 나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자세 속에 우리의 분노와 한을 푸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가질 때 우리에게는 감사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3. 항상 주님 중심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17절)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 항상 주님 중심적으로 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할까요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교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 중심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비교의식에서 비롯됩니다. 다 무엇이 없어서 죽겠다고 합니다. 정말 다 죽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무엇이 없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없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도 없고, 섭섭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면 우리는 현재의 여건에서 얼마든지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공부를 너무 못해서 수학을 빼고는 다 과락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공장으로 보내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이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네가 잘 하는 것을 해 보렴. " 결국 그는 위대한 학자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다 잘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만 잘 던져도, 방망이만 잘 휘둘러도 영웅이 되는 시대입니다. 무엇이 없으면 다른 있는 것을 가지고 다르게 사십시오. 다르기 때문에 값이 있는 것이지 같으면 값이 크게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조건이 아닌 최상의 가치를 추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최상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최상의 가치일 것입니다. 위인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세상적인 무엇이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최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았기에 위인들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 흑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마르틴 루터 킹이고, 또 한 사람은 말콤 엑스입니다. 말콤 엑스는 어렸을 때 흑인으로 태어난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원은 백인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벼라 별 행동을 다 했습니다. 비누로 피부를 박박 문질렀습니다. 흰 스킨 로숀으로 마구 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도 물들여 보았습니다. 그래도 안되니까 백인에게 한을 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나는 백인이 될 수 없다. 나는 흑인으로 존재해야 한다. " 결국 흑인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운동을 벌이면서 그가 캠페인을 벌입니다. "Black is beautiful. " 흑인은 아름답다. 그처럼 자기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찾으니까 그의 인생이 소중한 인생이 됩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 독특한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탁월한 사람도 쓰임 받지만 우리도 충분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주인공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나 사용하십니다. 사람이 불행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오해입니다. 어떤 오해입니까 자기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는 오해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환경이 어려워도 여호와 하나님이 기대하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면 됩니다. 그러면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 사랑과 희생과 헌신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후회 없이 사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거기에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살면 다 사랑스럽게 보이고 감사가 나오지만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행동 하나 하나가 다 밉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감사하는 삶을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삶을 위해 성공에 대한 개념도 수정해야 합니다.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내가 기여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성공이란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은 일을 이루면서도 가치도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사람들을 긍정적인 방법으로 돕는데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땀과 희생과 헌신이 없는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공은 원하지만 대가를 치루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잃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이 생겨나게 됩니다.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품 인생이고, 또 하나는 작품 인생입니다. 상품은 잠시 반짝입니다. 금방 싫증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떨어집니다. 죄송한 얘기이지만 여성을 공에 비유한 분들이 있습니다. 10대에는 축구공이라고 합니다. 많은 남자들이 따라다닙니다. 20대에는 농구공이라고 합니다. 따라 다니는 남자들이 줄어듭니다. 30대에는 골프공이라고 합니다. 따라 다니는 남자가 한 명 정도 있으면 다행입니다. 40대에는 탁구공이라고 합니다. 서로 남에게 미루려고 합니다. 50대에는 피구공이라고 합니다. 서로 피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남자의 경우도 거의 비슷합니다. 상품 인생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작품 인생은 다릅니다. 나이가 들면서 값이 올라갑니다. 어디에서 그 차이가 생깁니까 헌신을 아는 사람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사랑과 희생과 헌신을 알면 어떤 경우에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영국의 한 마음에 구두 수선을 하는 윌리엄 캐리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주님을 알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헌신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친 헌신으로 그는 25세에 목사가 됩니다. 1792년 31살의 나이에 그는 인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후 그는 깊은 감격 속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불행한 일이 연속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인도에 도착한지 1년만에 그는 총명한 눈을 가졌던 5살짜리 아들을 잃었습니다. 아내는 그 충격으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가 그녀도 죽습니다. 그리고 그는 7년 동안 한 사람도 제자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은 인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부어 주셨습니다. 1812년 인도에 온지 20년만에 그는 인도 사람을 위한 벵갈어 성경번역을 마쳤습니다. 선교부에서 종이와 잉크와 인쇄기를 보내 주어 성경인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찍는 인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그는 감격하며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인쇄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 시간에 캐리 선교사는 전도하러 나갑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인쇄공의 실수로 화재가 나서 그의 20년 수고가 물거품처럼 날라가 버렸습니다. 번역한 원본,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었던 벵갈어 문법책과 사전이 타버렸습니다. 처음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마음이 떨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잿더미 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주님! 저의 20년 수고를 거두어 가셨군요. 그래도 제가 다시 할 수 있는 믿음은 거두어가지 않으셨으니 감사합니다. " 그리고 그는 불안에 젖어 있던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용기를 잃지 맙시다. 이 일은 우리를 전진시키는 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 그 뒤 그는 더욱 훌륭한 벵갈어 성경을 이전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 편에 섰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걸림돌은 반드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생과 헌신은 반드시 열매 맺는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한 차원 더 나가야 합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헌신에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즉 자기 존재의식보다 타인을 위한 존재의식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시선을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돌리느냐에 따라 믿음의 진실성과 성숙성과 순수성과 건강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행복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한 단어! 그것은 바로 감사라는 단어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하고 곧 축복이 따라옵니다. 기복주의는 기원은 있으나 감사가 없고 축복은 바라지만 희생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바른 신앙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두 감사가 넘치는 분이 되어 아름다운 성도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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